강화도는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아 종종 다녔는데 차를 팔고난 이후에는 좀처럼 가기가 쉽지 않다. 강화도를 즐겨 찾은 이유 중의 하나는 바다가 있고 유적지가 있다는 점때문이다. 

집에서 조금만 서쪽으로 가면 두 시간 남짓정도의 거리에 위치해 있는데다가 운이 좋으면 석양도 볼 수 있고 곳곳에 유적지가 있어 맘 편하게 쉴 수 있는 여유도 있다.

지난 2009년도던가 수도원에 들를 일이 있어 참 오랜만에 강화를 찾았을 때도 볼일을 마치고 근처의 유적지마다 들러 이곳저곳 둘러봤는데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은(달라질 것도 사실 많지는 않지만) 그 풍경에 마음이 놓이곤 했다.

여러가지 일들이 마무리되고 이제 본격적인 일상으로 돌아갈 때가 되니 이전의 기억들이 못내 아쉬우면서도 그렇게 털어버린 것이 시원하기도 한 복합적인 감정으로 여운이 남아있다. 그러나 어찌되었건 선은 분명하게 그어진 셈이니 뒤돌아볼 이유도 필요도 없어졌다.

아무튼 오늘같은 날에는 바다가 보고 싶다. 딱히 어느 바다인지 구체적이지 않아도 진부한 일상에서 벗어나 제멋대로의 파도가 백사장을 때리는 그래서 그 아무렇지도 않음이 오히려 마음을 다독여주는 그런 바다가 보고 싶다. 

Contax T3, LS-40 Film Scan



태백산을 오르고 다음말 방문한 곳은 영주 부석사였다. 역사책에서 보던 곳인지라 여행 시작 전에 꼭 가보기로 했고 전날의 일정을 마무리한 이후 당연하게 부석사를 찾을 예정이었다. 부석사는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이 마주치는 위치에 있어 그 분위기가 뭐랄까 예사롭지 않았다는 표현이 적당하지 싶다.

다만 날이 겨울이어서 다른 계절에는 어떨까 싶은데 스산한 바람과 한기 속에서 왠지 오래된 이 사찰은 낯선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도 그리 많지 않았고 당시 느낌을 돌아보면 아무도 살지 않는 그런 느낌었달까. 그래도 다행이 날은 무척이나 맑고 오히려 햇살이 따가울 지경이었다. 차디찬 겨울바람만 아니었다면...

현판에 쓰인 부석사라는 글이 빛을 받아 마치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중에 이 사진을 봤을 때 참 그날의 분위기와 앞으로의 미래를 내다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면 지나친 해석일까...사찰의 거의 모든 건물들은 하얗게 빛이 바래있었고 무정한 세월 속에 뼈대만 남은 그런 느낌이었다.

경내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사찰 전체에서 주는 느낌은 제법 장엄했다. 무게가 느껴진다는 표현이 적당할 것같다. 비록 뼈대만 남아 앙상할지라도 과거의 영광을 그렇게 간직하고 있던 곳. 그곳이 부석사였다.

세월의 흐름 속에 이렇게 오늘까지 남아 그 향을 남기고 있다는 것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 무량수전. 어색한 분위기로 이 앞에서 사진을 남기기도 했지만 그 사진들은 이제 남아있지 않다. 

겨울만 아니었다면 잠시 지친 발을 쉬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차가운 겨울바람을 어디 피할 곳없이 온전히 맞아가며 둘러본 부석사. 별 다른 이야기도 별 다른 몸짓도 없이 조용하게 돌아본 그곳 그래서 더 쓸쓸했던 겨울 어느 날의 부석사였다.


이별은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먼저 알 수 있다. 어렵게 어렵게 이어온 가늘기만한 실 한 가닥을 서로 힘을 다해 붙잡았지만 이미 마음속에서는 더 이상 그 실을 지탱할 힘이 없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이별은 물리적인 거리가 생긴다고 바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몸이 떨어져 있어도 마음의 거리가 가깝다면 여전히 관계는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평생을 만나지 못 하고 살더라도 애잔한 추억으로 기억되는 사람이 있다면 상대방은 어떨지 몰라도 자신은 그를 떠나보내지 못한 것이 아닐까.

또한 서로의 마음이 그렇다면 어느 드라마나 영화의 소재로는 어울릴지 몰라도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는 한편에서는 장애가 되기도 한다. 

상대방의 마음속에서 나에 대한 추억과 생각들을 지우는 일은 쉽지가 않다. 특히나 물리적인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다면 더더욱..상대가 앞으로 또 다른 인연을 만들어가고 스스로의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 나에 대한 모든 것들을 지워준다는 것이 어쩌면 지극히 이기적이고 한편에서는 치사한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현재의 나로서는 그것이 최선이 아닐까 라고 판단했다. 어쩌면 잔인하고 타인의 감정에 개입해야 하는 이 불편한 작업을 나는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가 자유로워질 수 있고 '우리'의 기억을 묻어 버리고 앞으로 나갈 수 있다면 나로서는 마지막 내 역할은 다 한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어리석다면 어리석은 생각이지만.. 이제사 그 과정이 마무리되었다.


류시화 시인의 신작 시집인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의 첫번째 시를 읽다가 한 줄에 눈이 멎었다. 

'이미 떠나간 것과 작별하는 법을 배웠지'

나는 이 행을 읽고 또 읽는다. 시인은 절반의 생을 길에서 보내며 비로소 떠나간 것과 작별하는 법을 배웠다한다.

나 스스로 이별을 결심하고 나 스스로 떠나왔음에도 나는 아직 작별하는 법을 배우지는 못 했다.

아니 작별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이별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 이별의 대상은 사람일 수도 있고 사물일 수도 있고 혹은 어떤 생각이나 가치 같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이미 그 대상을 떠났다고 확신하면서도 마음 어느 한 구석엔가는 그 대상의 흔적들을 꼬깃꼬깃 접어놓고 있었다.

그것을 미련이라 부르건 혹은 그 대상에 보낸 내 마음의 일부라고 부르건 상관없다. 

그저 나는 그것들을 놓지 않으려 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동안 들인 마음이 아까워서 그동안 보낸 시간이 아까워서 그저 내 이기심에 붙들어두고 있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미 떠나간 것들과 작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그에 대한 대답은 나 역시 시인처럼 길 위에서 찾아야할지도 모르겠다.

그 대답을 명확하게 알고 있다면 세상의 모든 이별이 아플리가 없으니 말이다.


오래 전 헤어진 이를 다시 만나게 되면 세월의 흐름에 변한 외모를 가장 먼저 마주치게 된다. 과거의 내가 기억하는 이의 모습 그리고 그 모습과 더불어 만들어진 추억들이 어쩐지 낯선 느낌이 들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어떤 장소나 어떤 사물에 맺혀있는 추억은 변하지 않는다. 평소에는 잊고 지내다가 어느 날 문득 오래 전 추억이 담긴 장소를 방문하거나 물건을 찾게 되었을 때 그 장소 그 물건에는 여전히 어린 시절의 그의 모습이 남아있고 그와 함께 만들어갔던 추억이 그 시간에 그대로 멈춘 채 나를 반기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나 여행은 그런 기억을 아주 선명하게 되살린다. 그와 함께 떠났던 그 여행의 흔적들이 그 장소를 다시 찾았을 때 또렷하게 되살아난다. 마치 드라마나 영화의 어느 장면처럼 그와 내가 어울려 웃는 모습, 함께 걷는 모습 등 여러가지의 장면들이 내 눈 앞에 펼쳐진다. 비록 현재의 나는 그 모습에 손을 가져대 댈 수도 과거의 그의 모습에 말을 걸 수도 없지만...

사진 역시 그런 추억을 되살려 희미해진 기억들의 조각들을 붙이는 역할을 하지만 장소나 물건이 주는 오감의 되살림에 비할 바는 아니다. 요즘 건축학개론이라는 영화가 아마도 그런 향수를 많이 불러오는 모양인데 그 향수를 좀 더 느끼고 싶다면 예전의 그 장소를 다시 찾는 것이 가장 나은 방법이지 싶다. 물론 향수에 젖어봐야 지나간 세월을 돌이킬 수는 없지만 잠시나마..아주 잠깐이나마 행복했던 그 시간들을 현재로 불러들여보는 것도 괜찮으리라..


길상사에 다녀온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다시 그곳을 찾았습니다. 이번에는 어머니께서 한 번 가보고 싶으시다하셔서 아침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길상사는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6번 출구로 나가면 셔틀버스를 타고 올라갈 수 있습니다. 일전에는 걸어서 다녀왔지만 이번에는 버스를 탔습니다.


입구에서부터 화려한 연등들이 방문객들을 반깁니다. 사찰에 연등이 걸린 것을 본 것은 참 오랜만인데 곧 부처님오신날이니 이미 준비를 하는 분주한 모습이었습니다. 이날은 날도 꽤나 좋은 편이어서 다른 때보다 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전에 방문했을 때 찍지 못 했던 관음상입니다. 천주교와 불교가 묘하게 어울린 모습으로 서 있는 관음상을 보면 종교라는 것이 끝끝내 추구하는 바는 다르지 않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불교나 천주교나 그런 면에서는 이전부터 잘 어울려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 크지 않은 절이기에 연등만으로 절 전체가 가득 찬 느낌이었습니다. 다시 찾아가 보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길상사에 들르기 전 이전 포스팅에서 적었던 소인형을 발견한 것도 큰 수확이랄까요. 

길상사를 다시 찾으면서 인연이라는 주제에 대해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단 사람간의 인연 뿐 아니라 세상의 어떤 것과도 인연은 맺어질 수 있는 것이고 그 마주치는 인연들을 하나하나 소중하고 간직하고 가꿔가다보면 삶 자체가 윤택해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20여일만에 꼭 같은 장소가 참 많이도 달라지더군요. 물론 장소 자체, 건물들 자체는 달라진 것이 없지만 그 장소와 건물을 둘러싼 분위기랄까..그런 변화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제법 빠른 것 같습니다. 사람도 별반 다르지 않아 한 사람 자체는 언제나 같지만 그 사람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는 매시간시간 본인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빠른 것이 인생사가 아닌가 합니다.

법정스님의 흔적 그리고 백석과 그의 연인 자야의 흔적이 어디엔가 여전히 남아있겠지만 오늘 이 순간만큼은 이곳을 방문한 이들의 흔적이 사찰 전체를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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