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유한계급론

원용찬 등저
살림출판사 | 2007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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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블렌'이라는 이름은 그리 낯설지 않다. '과시적 소비'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이 괴팍한 경제학자의 생각은 이책을 쓴 당시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는 없어 보인다. 아니 오늘날의 과시적 소비의 정도가 훨씬 지나치지 않을까?

보이기 위한 소비 행태인 과시적 소비가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남들이 보기에 전혀 쓸데없는데 돈을 쓰는 행동은 그가 힘든 일을 하지 않는 고위한 존재라는 점을 알리기 위한 수단인 셈이다. 일부러 새끼 손가락의 손톱을 길러 그가 육체노동을 하지 않는 '있는 집 자식'임을 드러내는 행태는 차라리 애교에 속한다.

과거에는 가문이라는 것이 사람을 외부적으로 판단하는 기준으로서 큰 의미를 가졌지만-물론 요즘도 그렇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비중은 많이 줄었다-요즘은 경제적인 성공을 통해 그 사람을 외부적으로 판단하는 일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소위 명품이나 수입차를 끌고 다니는 사람은 사회적으로(일면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이고 남들이 그 성공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것에 만족을 느끼게 된다. 과거의 귀족들은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타고난 가문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그런 혜택(?)을 누렸지만 현재에 와서는 한번에 그 사람의 가문을 알아내기도 어렵고 특히 우리나라처럼 전통의 가문이 드문 현실에서는 뭔가 다른 것으로 부를 드러내야만 했다.

즉 돈이 많은 부자들은 효용성보다는 가격이 비싼 명품들을 그들을 남들과 다르게 하는 도구로 삼았고 과거에도 그랬지만 그 부자들을 따라하고 싶은-자신들도 그 부자들처럼 남들의 시선을 받고 싶어하는-이들은 앞다투어 명품을 구입하기에 이른다. 물론 이 명품이라는 용어 자체도 상당히 어폐가 있어보이는데 무엇을 기준으로 그런 용어를 사용하는지 좀 더 숙고해볼 일이다.

사정이 이러니 소위 3초백이라 불리는 루이비똥 가방을 든 사람들이 지천에 널리게 된다. 그러나 정작 부자들은 그런 흔한(?) 명품은 지양하는 추세이고 결국 돈을 버는 것은 천박한 심리에 부응하는 상품을 만들어내는 회사들이다. 

일반 서민들이 아무리 수입 중고차를 사고 명품 가방을 둘러메고 다녀도 부자들을 따라갈 수는 없다. 애초에 쓰는 금액의 규모도 규모지만 오늘날에 와서는-아니 예전의 귀족 시대에도 그랬지만-돈만으로는 어려운 벽이 서민과 부자들을 가로 막고 있기 때문인데 바로 '교양'이라는 요소다. 

물론 졸부들의 경우는 그런 교양이라는 면에서 일반 서민들보다 한참 떨어지는 경우도 허다하지만 전통적인 부를 축적해온 이들의 교양은 보통 사람들이 따라가기에는 쉽지 않은 거리에 있다.

책에서도 지적하고 있지만 외적인 상품으로 자신들이 부자인 척할 수는 있지만 어려서부터 부자들 혹은 귀족들이 받아 온 지적인 교육과 교양은 따라갈 수 없기에 소위 천박한 부자 소리를 듣게 된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없는 형편에 명품 가방을 들고 연주회나 전시회를 찾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참 씁쓸한 일이면서도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는 상류 사회에 대한 서민들의 막연한 동경의 일면을 보게 된다.

계급과 계급의 투쟁이라는 말은 우리가 자주 듣지만 실상 우리 주변에서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은 다른 계급을 동경하고 따라가려고 가랑이가 찢어지도록 달려가는 서민들의 모습들이 더 많으니 참 아이러니한 세상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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