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성곽길의 두 번째 코스는 낙산길을 골랐다. 낙산길은 도심 한가운데를 지나는 길로 이전에 걸었던 북악산길과는 꽤 다른 풍경을 보이는 길이다. 낙산구간은 전체적으로 보면 장충체육관에서 혜화문에 이르는 제법 먼 길인데 이번에는 혜화문에서 흥인지문까지로 경로를 잡아 보았다. 낙산이라는 이름은 산의 이름이 낙타의 등처럼 볼록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걷는 중에는 사실 낙타의 등 위를 걷고 있는지 알기는 어려웠다. 멀리서 조망해보기도 애매해서 결국 낙타 모양은 보지 못 한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낙산은 풍수지리상 서울의 주산인 북악산의 좌청룡에 해당한다고 한다. 우청룡은 인왕산인데 인왕산이 제법 산의 모양을 하고 있는 것에 비해 낙산은 주거지와 공원 등으로 둘러 싸여 있어서 산의 모습을 찾기는 어려웠다. 


길의 시작은 북악산길과 같은 한성대입구 역이다. 4번 출구로 나가 조금 올라가면 서울성곽길을 안내하는 표지를 만날 수 있다. 낙산길의 전체적인 아쉬움 중의 하나는 이정표가 제대로 갖추어 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특히 낙산공원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이정표는 거의 없다고 보는 편이 낫다. 스마트폰 지도를 켜고 경로를 찾아야 했으니 말이다. 사진 멀리 혜화문이 보인다.


약간 더 올라가면 왼쪽에 계단이 있는데 자세히 보지 않으면 놓칠 수도 있으니 주의 하자. 이 계단을 올라가면 낙산길이 시작된다. 우리나라의 4계절이 이제 존재 의미가 없다는 말이 이해가 가는데 3월말임에도 제법 햇살이 따가웠다.


전체적인 낙산길의 경로다. 사실 일직선으로 죽 가면 되기 때문에 이정표가 필요없을 수도 있겠지만 실제 길을 걸어보면 생각보다 샛길 이곳저곳을 다녀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내 생각일뿐이긴 하지만 쭉 뻗은 도로라도 안내표지판은 제대로 갖추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전체 길이는 2.2km로 그다지 길지 않아 큰 부담없이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진입 구간에는 제법 성곽길의 운치가 있다. 다만 성곽로 도로가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있어서 가까이서 분위기를 느끼기는 어렵다. 대신 멀리서 바라보는 웅장함이랄까 그런 기분은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초입 구간이다.


만들어진 시대와 보수된 시대에 따라 돌의 색이 다르고 건축 방식이 다르다. 이렇게 한눈에 쉽게 알 수 있는 구간들이 종종 보인다. 한양도성의 전체적인 구간이 제대로 정비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개발을 위해 우리 고유의 것들이 사라져 가는 것은 참 아쉬운 일이다. 지난 것은 되돌릴 수 없는 까닭이다. 그때 그 모습이 아니면 의미가 없는 것들도 있는 법이다.


여담이지만 요즘은 D-SLR은 거의 들고 다니지 않는다. 비교적 편한 곳을 다녀서 그렇게 하고 있는데 파인더를 들여다보고 사진을 찍지 않으니 영 답답하긴 하다. 간편함이라는 이름 때문에 본래의 사진찍기가 퇴색되는 듯한 느낌도 든다. 다음 번 걸음에는 오랜만에 큰 녀석을 데리고 나와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낙산길은 전체적으로 흙길이 없다. 닦인 도로와 정비된 느낌. 그런 인상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인지 약간은 건조하다. 편하게 걸을 수 있는 대신 건조함을 얻은 셈이랄까.. 역시나 나는 흙으로 난 길이 좋다. 이 구간에서 나무와 풀을 볼 수 있는 곳은 얼마 되지 않는데 대부분 이곳 초반부에 집중되어 있다. 걸으면 걸을 수록 푸른색 대신 콘크리트의 회색이 늘어간다.


고양이 한 마리가 볕을 쬐고 있는데 까치가 계속 달려와 고양이를 쫓아내고 있는 게 우스웠다. 조금 가서 앉으면 다시 와서 괴롭히고를 반복해 결국은 고양이가 자리를 뜨고 말았다. 고양이가 조금이라도 위협(?)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싶지만 생각과는 다른 결과가 더 재밌었다.


사실 낙산구간은 그렇게 마음이 편안한 걸음은 아니었다. 아마도 이 사진 한 장으로 대략 설명이 되지 않을까 싶다. 더 많은 이야기를 적어보는 것도 그리 좋은 것 같지 않아 사진 한 장으로 대신한다. 아마도 이길을 먼저 걸었던 분이라면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짐작이 되시리라.


길을 가다가 마주치게 되는 암문이다. 한자로 暗門이라 적는데 정식으로 문을 내지 않고 벽 중간에 뚫은 문을 부르는 말이라고 한다. 적들이 어디에 출입구가 있는지 알지 못하도록 하는 용도이고 평소에는 큰 돌로 막아둔다고 한다. 전쟁의 위험이 사라진 지금은 이렇게 열려 있고 이 문을 지나면 낙산공원으로 들어가게 된다.


낙산공원은 낙산의 정상 부분에 만들어진 공원이다. 제법 넓고 이런저런 시설들이 갖추어져 있는 곳이다. 예전에도 한 번 온 적이 있는데 다른 계절에 찾아오니 또 색다른 느낌이다. 낙산공원을 전체적으로 돌아보고 길을 건너면 대학로로 이어진다. 사람들에게 많은 추억거리들을 남겨주고 있는 장소일텐데 대학로는 나중에 한 번 따로 들러보기로 하겠다.


낙산공원에서 왼쪽을 바라보면 성벽 너머로 서울 중심가를 약간 볼 수 있다. 멀리 남산이 보이고 그 아래로 많은 빌딩들이 보인다. 저 안에서 또 얼마나 많은 인생들의 파란만장한 삶이 펼쳐지고 있을까. 이렇게 한 걸음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는 도시는 조금은 안쓰러운 느낌이 든다. 하지만 모든 것은 상대적인 것이니까...


낙산길에서 들러볼 곳이 또 한 군데 있는데 바로 이화마을이다. 벽화마을로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낙산공원에서 흥인지문 방향으로 걷다보면 오른편에 진입로가 있다. 또 나만의 생각이긴 하지만 나는 이런 인위적으로 조성된 길은 약간 거부감이 있다. 대부분 생활환경이 어려운 곳에 이런 길을 조성하곤 하는데... 역시 위에서 적었던 서울 풍경 사진과 맥락이 같은 이야기다. 


가장 먼저 마주치게 되는 것은 그 고양이 그림이 있는 벽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화벽화마을 꽃그림 계단으로 알려져 있는 이 자리가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들르는 곳이 아닐까. 내가 이화마을에 들렀던 때는 마을 이곳저곳에 공사가 한창이었다. 사실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서 나는 카메라를 주머니에 넣었다. 사진을 찍으러 이곳에 들렀다는 것이 조금 부끄러운 느낌이 들어서였다. 역시 이곳에 가 본 분들이라면 짐작이 가시지 않을까 싶은데..

재개발과 그 뒤안길 이야기. 제법 할 이야기가 많은데 이곳에 풀어나가기에는 주제와 한참을 벗어나니 다음으로 미루겠지만 과거 서울의 가장 어려운 지역 중의 한 곳이었던 난곡에 사진을 찍으러 방문하던 아마추어 사진가들과 그곳 주민들이 크게 대립한 일이 있었다는 정도로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압축하겠다. 누구에게는 그저 취미겠지만 누구에게는 생존 그 자체일 수도 있는 경우가 우리 주변에는 생각보다 많다.


아무튼 이곳을 지나 다시 길을 걸으면 어느새 길은 끝이 난다. 이글을 보신 분들은 어떠실까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참 안타까운(?) 걸음이었다는 생각이다. 이전의 북한산둘레길이나 적어도 지난 번의 북악산길만 해도 그래도 무언가 '길'을 걷는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 낙산길은 도무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물론 내 개인적인 성향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요즘 말로 힐링을 위해 떠난 길에서 무거운 짐만 짊어지고 온 격이랄까...

그리고


도심 한 복판 수 많은 빌딩과 차량의 홍수 속에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며 서 있는 흥인지문을 보면서 그 감정은 절정에 다랐다. 

모든 걸음이 늘 행복할 수는 없다. 지극히 당연한 사실인데도 나는 이번 낙산길도 이전의 여느 길처럼 행복한 길이 될 거라 생각했었다. 고정관념이고 편견이 생겼던 것이다. 하루에도 수 만 번 감정이 요동치는 일상인데 말이다. 길도 마찬가지다. 어떤 길은 평화롭고 행복한 길로 의미를 주지만 어떤 길은 쓸쓸하고 어두운 길로 의미를 준다. 그것들이 주는 의미를 내 안에서 자연스레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던 걸음이었다.

내 감정은 이리 변하고 저리 변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왜 길은 이런 길도 있고 저런 길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이번 걸음은 내게 그런 이야깃거리를 던져 주었다.


Panasonic LX-7


말바위 안내소에 드디어 도착이다. 이곳에서 할 일은 간단하다. 출입을 위해 신분증을 제시하고 목에 거는 표찰을 받으면 된다. 구간 자체가 군사지역으로 지정이 되어 있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작업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뭘 이런 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름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이해 못 할 일도 아니다.


신청서는 위와 같은 양식으로 되어 있다.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고 있는데 아마 이쪽 분야에서는 크게 변화는 없지 않을까 싶다. 주의 사항에 보면 금지된 행위를 하면 군의 무력 사용이 가능하다는 부분이 있는데 실제 길 안에 들어가서도 자주 마주치는 문장이다. 약간 위화감은 있지만 자신이 동의하고 입장하는 것이니 지킬 것은 지키는 것이 좋겠다.


신청서를 작성하고나면 위와 같은 목에 거는 표찰을 받게 된다. 이 표찰은 목에 걸고 다녀야 하는데 무게감도 거의 없고 디자인도 나름 괜찮은 편이니 어색하게 생각하지 말고 걸고 다니면 된다. 길을 걷는 중에 수시로 만나게 되는 군인이나 경찰들이 이 표찰 여부를 확인하는 것 같기도 한데 괜히 불필요한 행동으로 지적받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본격적으로 구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곳이 숙정문이다. 성곽의 4대문 중 북문에 해당한다고 한다. 북쪽은 예로부터 개방과는 거리가 먼 방향인데 역시 숙정문도 거의 개방이 되지 않은 상징적인 문의 역할을 했다고 한다. 한양 전체를 놓고 봐도 북대문은 우리에게 낯선 이름이다. 한양의 북대문이 어디인가에 대해서는 의견들이 있지만 이곳 숙정문이 북대문이라는 게 대체적으로 인정 받는 견해인 모양이다. 게다가 위치에 이렇게 있으니 우리에게 낯선 곳임은 틀림없다.


비교적 최근에 복원이 이루어진 까닭에 오래된 느낌보다는 현대적인 느낌이 든다. 과거의 느낌까지 살려 복원을 할 수 있다면 좋을텐데 그런 복원이 가능한지는 모르겠다. 미술 쪽에서 이루어지는 복원은 그렇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건축물도 과거 역사 느낌을 살린다면 더없이 좋지 않을까... 아무튼 숭례문인 남대문을 생각하면 이곳 숙정문은 꽤나 작은 문이다. 


성곽이 확연히 구분되는 구간이 보인다. 초기에 쌓은 돌과 이후 복원이나 보강을 통해 쌓은 구간이 이렇게 다르다. 세월이 지나면서 기술이 좋아졌기 때문이겠지만 그래도 오래 전에 쌓은 성벽 역시 본연의 역할을 하는데는 무리가 없다는 점이 더 대단하게 느껴진다. 아무튼 말바위안내소를 나와 바로 마주치는 곳이 이곳 숙정문이고 이후로는 약간은 지루한(?) 걷기가 계속 된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는데 제한이 있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도 같지만...


그 다음 마주치게되는 장소는 해발 293미터의 청운대다. 높이만 보면 북악산 성곽길은 그리 높지 않지만 오르고 내리는 구간이 경사가 가파른 편이어서 걷기가 아주 수월한 편은 아니다. 청운대도 사진촬영은 허용되는 곳인데 날이 맑다면 서울의 중심부를 멀리 볼 수 있는 조망이 제법 좋은 편에 속하는 장소다.


사진 촬영이 허용되는 몇몇 장소 중의 하나인 1.21사태 소나무다. 나무의 이름을 이렇게 지은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만 소나무 입장에서는 난감한 일은 아닐까. 아무튼 당시의 총격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총탄 자리를 시멘트로 약간은 억지스럽게 보존하고 있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었다. 1.21사태 이후 향토예비군이 생겼다는 것은 이번에 알게된 사실.


드디어 정상이다. 해발 342미터의 북악산 정상. 표지석에는 백악산이라 적혀 있는데 북악산과 같은 의미다. 이곳까지 오면서 좌우로 계속 군인들과 경찰들을 마주 치게 된다. 마음 편하게 걷기는 조금 불편한 길인데 반대로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마음 편하게 군 생활할 곳은 아닐테니 추운데 고생한다고 격려라도 해주면 어떨까


정상 이후는 창의문에 이르기까지 계속 내리막이다. 게다가 이 내리막이 만만치가 않다. 오르막에 힘을 많이 들였다면 바로 내려가지 말고 충분히 쉬었다 가도록 하자. 내려가는 동안 쉴 수 있는 장소는 한 곳뿐이니 미리 체력을 비축해두는 것이 중요하다. 계단의 간격이 약간 애매해서 한발씩 성큼성큼 내딛다가는 넘어질 위험도 있으니 조심하자.


한참을 걷다 보면 멀리 인왕산이 보인다. 그리고 능선을 따라 성곽이 죽 이어져 있는 것이 보이는데 바로 인왕산길 구간이다. 인왕산길은 예전에 적었던 글에 어느 정도 소개를 하고 있는데 나중에 인왕산길을 걸을 때 이 부분은 생략해야 하나 아니면 다시 걸어야 하나 고민 중이다. 당시는 겨울이어서 눈 덮인 풍경을 담았으니 이번에는 봄의 느낌으로 걸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좀 더 커서 아마 다시 가게 될 것 같은데 이전과는 반대 방향으로 길을 잡고 걷게 될 예정이다.

이렇게 한양도성길 중 첫 번째 길인 북악산길 걷기를 마쳤다. 사실 걷기라기보다는 등산에 조금 더 가까운 모양새다. 4개의 성곽길을 모두 걷고 나면 전체적인 생각을 이야기하겠지만 북악산길은 초행자가 바로 걷기에는 약간은 부담스럽다는 점. 적어도 신발만큼은 발에 편한 것을 신고 가는 것이 좋겠다. 물론 등산화가 가장 좋은 선택이 되겠다.


Panasonic LX-7


작년에 북한산 둘레길을 완주한 이후 걷기가 잠시 주춤했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었겠지만 새해 들어서도 다시 걷기를 시작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런데 흔히 말하는 '강제력'이 작용한 것인지 산림청에서 주관하는 블로그 기자단에 선발이 되면서 원고 작성을 위해 한 달에 적어도 한 번은 걸어야 하는 의무(?)가 생겼다. 

어디를 돌아볼까 생각을 하다가 이전에 후배와 성균관대 후문 쪽으로 걸었던 성곽길이 생각이 나 이 코스를 네 번에 걸쳐 돌아보기로 했다. 우선 이 길은 한양도성길로도 불리고 한양성곽길, 서울도성길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공식적으로는 문화재청이 '서울 한양도성길'로 이름짓고 있고 이곳에서는 한양도성길로 부르기로 하겠다. 이번 글은 사진이 많아 두 개의 글로 나누어 올릴 생각이다. 그리고 글자 폰트도 조금 키워보았다.

한양도성길의 시작점으로 택한 것은 북악산길이다. 북악산길도 3곳은 진입로가 있는데 내가 간 곳은 지하철 5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출발하는 길이다. 지하철 출구에서 한 10여 분 정도 직진을 하면 되는데 언덕으로 올라설 즈음 건널목 건너로 진입로가 보인다. 올라 오는 도중에 간송미술관으로 가는 길과 나뉘기도 한다.


안내표지판을 뒤로 하고 걷기 시작하면 평탄하게 잘 포장된 길이 이어진다. 초입부터 시작된 성곽이 이제 이 길을 마무리하는 지점까지 죽 이어지게 된다. 성곽을 쌓은 돌의 재질이 위치마다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리고 왜 그런지 생각해보면서 걷는 것도 좋겠다.


입춘이 지났지만 아직 봄은 오지 않았다. 성벽에 기댄 채 말라 붙은 가지가 아직 오지 않은 봄을 탓하듯이 그리고 지난 겨울의 흔적을 기억하듯이 이제는 따스해진 겨울 햇살을 온몸으로 쬐고 있었다. 


제법 넓어지는 구간이 나온다. 와룡공원과 이어지는 곳인데 지역 주민들의 휴게 공간 역할을 하고 있어서 의자나 운동 기구들 같은 것이 여기저기 배치되어 있다. 미리 말하지만 본격적인 성곽길 걷기를 시작하면 마땅히 쉴 곳이 없으니 미리 충분한 휴식과 에너지 보충을 하는 것이 좋다.


그러고보니 우리 역사 유적 찾기도 하겠다고 야심찬 선언을 한 지도 제법 오래됐다. 한동안 그 작업도 거의 못 하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이곳이 사적 10호다. 보통 여행을 다닐 때 안내문 읽기를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은데 잠깐 멈춰서서 안내문을 보면 자신이 어디에 그리고 왜 왔는지 다시 확인할 수 있고 무엇에 중점을 두고 여행의 방향을 잡아야할지 분명해지기 때문에 안내문은 꼭 읽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다.


이렇게 보면 마치 조선의 어느 시대에 와 있는듯한 느낌이 든다. 세월이 흐르고 사람들의 모습은 다 사라졌지만 성벽은 남아 그 시절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이 자리에도 어느 인물의 인생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을텐데 낯선 이는 그 사연을 알 수 없고 그저 차가운 벽돌에 기댄 햇살만 바라볼 뿐이다.


북악산길의 시작점인 말바위안내소로 가는 길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제법 멀다. 말바위 안내소에서 시작하는 북악산길의 길이보다 그 전에 걸어야 할 거리가 훨씬 길기 때문에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주변 경관을 감상하면서 걷기를 권한다. 날이 따뜻해졌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겨울인지라 오가는 이들이 그리 많지 않아 조용히 산책하기에 더없이 좋았다.


생각해보면 여러 국가의 수도 역할을 했던 서울에 당연히 유적이 많아야 함에도 우리 주변에서 과거의 유적을 찾아보기란 쉽지가 않다. 일제강점기와 전란을 거치면서 많이 소실된 부분도 있겠지만 개발이라는 이름 하에 사라진 유적들도 꽤 많지 않을까? 과거를 기억한다는 것은 발전을 거부하고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를 그리고 미래를 키워나가는 주춧돌이 되는 것인데.. 아쉬운 부분이다.


한양도성길 중 북악산길은 입장 제한이 있다. 지역 자체가 청와대에 인접해 있고 1.21사태라는 분단 시대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장소기 때문이다. 이곳을 걷기 위해서는 신분증이 필요하다. 안내판에 써 있는대로 준비만 하면 입장하는데 전혀 무리는 없으니 참고하도록 하자. 다만 입장 시간이 짧은 편이기 때문에 가급적 오전에 집을 나서는 것이 좋다.


시내에서 좀처럼 구경하기 힘든 표지석이다. 이 돌을 기준으로 성북구와 종로구가 나뉘는데 기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이런 표지석들이 곳곳에 있어 사람들이 왕래하면서 현재 위치를 묻곤 하지 않았을까 싶다. 요즘이야 스마트폰만 켜면 아주 자세한 위치가 나오지만 말이다. 때로는 너무 자세한 정보는 정신에 부담이 가기도 하는데 오히려 이런 표지석이 정감있고 아날로그적이다.


이제 성곽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끼인지 풀인지 모를 식물들이 세월을 간직한채 성벽에 옹기종기 붙어 있다. 지난 겨울을 버틴 힘으로 이제 봄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 역시 다르지 않아 슬픔과 기쁨은 늘 그 자리를 바꿔가며 우리에게 삶이란 이런 것이라고 교훈을 준다. 힘들다고 좌절하지 말고 기쁘다고 교만하지 말 일이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니 제법 높이가 만만치 않다. 전란 시대에는 이 성벽을 지키느냐 오르느냐에 한 국가의 운명이 정해졌을텐데 오르는 자나 지키는 자나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맞부딪힌 장소가 바로 이곳은 아니었을까? 자세히보면 아랫부분의 돌과 윗부분의 돌의 재질이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처음 성곽이 만들어질 때의 상태를 보존하고 있느냐 아니면 이후 보수공사가 이루어졌느냐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고 한다.


한참을 걸었지만 아직 안내소는 보이지 않고 안내문만 나타난다. 위에도 적었지만 실제로 안내소를 지나 걷는 거리는 얼마 되지 않는다. 창의문 쪽에서 오르는 길을 선택했다면 바로 북악산 길부터 길이 시작되지만 말바위 안내소로 오는 길을 택했다면 이렇게 먼저 걸어야할 길이 있으니 경로 선택을 할 때 참고하면 되겠다.


이제 얼마 뒤면 이곳은 개나리가 펼치는 노란색의 물결로 뒤덮이겠지만 아직은 숨을 죽이고 있는 모습이다. 이미 남부지방에는 봄을 알리는 징조들이 속속 선을 보이고 있지만 서울은 여전히 겨울이다. 하지만 자연의 순리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것인지라 경칩이 지날 무렵이 오면 지난 겨울의 흔적은 거의 사라지리라.


오래된 돌과 다음 세대의 돌 그리고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는 바위들과 그 사이의 나무들이 어루어진 풍경에 한참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장소. 시간과 세월, 흔적과 기억 그런 단어들이 머릿속에서 맴돌면서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시간여행이라도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길을 걷기 시작했을 때의 잘 닦인 길은 이제 거의 보기 힘들어졌고 좁은 길과 성벽 그리고 나무들을 벗삼아 걷는 구간이다. 성곽길이라고 표현이 되어 있어서 자칫 산책로 정도로 생각하기 쉽지만 북악산길은 그 이름 그대로 북악산 정상을 통과하는 길이다. 물론 등산 장비를 착용하고 걸을 필요까지는 없지만 대략 5km정도의 거리를 걸어야하기 때문에 등산화 정도는 신고 가는 것이 몸에 무리가 가지 않을 것 같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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