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둘레길을 걸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첫발을 내딛은 것이 작년 5월 8일이었다. 그리고 오늘 1구간을 처음 걷기 위해 설렘과 기대와 불안을 갖고 출발했었던 우이동 시작점으로 다시 돌아왔다. 아직 채 1년은 되지 않았지만 벌써 시간이 이렇게 빨리 지났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1년 사이 참 많은 일들.. 사람이 삶을 살아가면서 겪을 수 있는 가장 감정에 민감한 일들을 많이 겪었다. 그래서일까 오늘의 걸음은 예전 둘레길을 걸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지하철 1호선 도봉역 1번 출구로 나간 다음 길을 건너 한참을 걸어야 한다. 둘레길을 걸으면서 자연스레 서울의 여러 지역들을 접하게 되는데 이 지역의 느낌은 약간은 허전하달까? 아마도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곳들이 많아서겠지만 한번 더 생각해보면 오히려 이런 공간적인 여유가 남아있는 것이 다행일런지도 모르겠다.

오늘의 사진들은 라이트룸에서 후지 아스티아 필름의 설정을 전부 적용해봤다. 아스티아는 필름 카메라를 쓰던 시절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던 약간은 비주류 필름인데 청색기운이 약간 강한 편이고(물론 벨비아만은 못하지만 후지에서 나오는 필름은 박스 포장의 색처럼 녹색과 청색이 강조되는 편이다) 상당히 입자가 곱고 동양인의 피부색을 꽤나 잘 구현하는 필름이어서 주로 포트레이트용으로 사용하던 필름인데 풍경에 적용할 경우는 독특한 색감이 나는 게 특징이다. 디지털 변환이 온전히 아스티아의 느낌을 살린다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왠지 오늘은 그냥 그 필름의 느낌이 그리웠다. 아마 색이 왜 이래?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리라...


도봉초등학교의 모습인데 학교의 색을 알록달록하게 칠해놓은 것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가까이 가서 찍어보고도 싶었지만 요즘 초등학교 근처에서 배회하다가는 괜한 오해를 살 수도 있어 90mm로 죽 당겨봤지만 이 정도가 최선이다. 맑은 날이어서 멀리 산의 모습도 제법 또렷이 볼 수 있었는데 아이들에게는 좋은 교육환경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길을 따라 좀 더 올라가면 주말농장을 꾸려둔 곳들이 많이 있다. 온전히 서울 촌놈인 나는 이런 것만 봐도 참 신기한데 한때 주말농장에 꽤 인기를 끌었던 시절도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요즘은 인기가 시들한 모양이다. 저렇게 번호를 붙여 놓으니 농장이라는 느낌보다 묫자리같은 느낌이 들어 왠지 꺼림칙하긴 했지만 내 개인적인 선입견이니 염두에 둘 필요는 없으리라.


이제 19구간의 시작점을 만날 수 있다. 방학동(放鶴洞)이라는 명칭은 한자 을 보면 학이 평화롭게 앉아 놀고, 알을 품고 있는 것 같다는 데서 유래됐다는 설,  방아터가 있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방아골로 부르던 것을 한자명으로 쓴 데서 유래됐다는 설 등이 있지만 한자를 볼때 앞의 의견이 맞는 것이 아닐까 추측을 해본다.


4월이라는 계절은 애매하다. 차라리 3월이면 심리적으로도 봄이라고 생각을 하겠지만 4월은 따뜻한 것도 아니고 추운 것도 아니다. 굳이 어느 시인의 '잔인한 달'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내게는 충분히 잔인했던 달이어서 그런지 그 애매함에 잔인함까지 덧붙여져 썩 마음에 들지 않는 계절이 되어 버렸다. 산길에 들어서서도 그 느낌은 이어졌다. 그러고보니 주변에도 봄을 특히 4월을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도저도 아닌 애매함 때문이 아닐까.


산길의 곳곳에는 이미 활짝 꽃망울을 터뜨린 녀석들도 있는가하면 이제 조금씩 꽃잎을 열어볼까 하는 녀석들도 있고 이미 제철을 다 보내고 바닥에 화려한 흔적들을 남기고 저물어 버린 녀석들도 있다. 삶의 시작과 진행과 마감까지 동시에 이루어지는 공간이 봄의 산길이다. 꽃은 그것이 활짝 펴서 절정을 이룰 때는 아름답지만 삶을 마치고 길바닥에 무참히 꽃잎들의 조각을 흩뿌릴 때가 되면 추한 모습이 된다. 마치 눈과 같다고나 할까.. 하지만 화려함뿐 아니라 그 화려함 뒤의 초라함까지 받아들일 때 온전히 한 존재를 인식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이길만 봐서는 겨울에 접어들 무렵이 아닐까 생각될 수도 있다. 이렇게 4월이라는 계절이 주는 느낌은 애매하다. 아마 당분간은 봄이라는 계절과 4월이라는 달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래도 이 계절과 달을 지나야 본격적인 화창함과 만날 수 있으니 그저 인고의 느낌으로 기다려야 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근처 초등학교의 체육 시간인지 아이들이 제법 많이 나를 지나쳐갔다. 특이했던 것은 시간제한이라도 있는 모양인데 거의 모든 아이들이 달려가고 있다는 점이었는데 그저 앞만 보고 달리는 동안 마주칠 수 있는 수 많은 '느낌'들을 아이들은 인식하기도 전에 지나쳐버린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든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도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 들여다보기에 시간이 모자랄 지경인데...


꽃이 왜 피는지는 알지만 꽃이 왜 지는지를 아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뽐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길가에 아무렇게나 뒹구는 모습이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본 이들은 얼마나 될까? 만약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산에 간다면 그 이유를 설명해주고 싶다. 그리고 이렇게 내버려진듯 흩어져버린 꽃잎들도 모두 다 같은 꽃이라고...


언젠가 연리지(連理枝)라는 단어를 좋아한다고 적은 적이 있는데 사실 연리지를 직접 마주친 적은 드물다. 이 사진에 보이는 나무도 그런 이름으로 부르기에는 부족할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내가 이 사진을 찍은 것은 이 나무들 곁을 지나고 있을 때 불어오는 바람에 두 나무가 부대끼며 끼익끼익하는 소리를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태생이 다른 두 삶이 만나 내는 소리. 같은 나무였다면 결코 만들어낼 수 없었던 그 소리를 이 두 나무는 그렇게 내고 있었다. 인간의 귀로 듣기에는 불편하 소리일 수도 있겠지만 이 두 나무에게는 어쩌면 또 다른 삶을 이루어가는 소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 생각 저 생각하는 중에 19구간 방학동길이 끝났다. 그리고 일반적인 경우라면(21구간은 예약을 해야 하니) 걸을 수 있는 북한산둘레길의 마지막 구간인 20구간 왕실묘역길이 내 앞으로 펼쳐졌다. 19구간이나 20구간이나 모두 걷기에 큰 무리는 없다. 다만 날이 슬슬 덥다는 느낌을 줄 정도가 되고 있으니 옷이라든가 물이라든가 하는 준비물들을 이전과는 조금씩 다르게 챙겨야 한다.


왕실묘역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처음 만나는 곳은 정의공주묘다. 사실 처음 정의공주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발해의 공주였던 정혜, 정효공주가 떠올라 이분도 발해의 공주인가 생각을 했는데 설명이 적힌 표지판을 읽어보니 세종의 따님이셨다.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 이곳은 공개를 하지 않아 이것저것 자세히 살펴볼 여지는 없었다. 명당이라는 것이 과연 있는 것인가 싶지만 따스한 봄날의 햇살을 듬뿍 받기에는 제법 어울리는 장소였다.

이곳을 지나 바로 만나게 되는 장소가 연산군묘와 800념이 넘은 은행나무인데 연산군묘는 사진의 구도가 영 나오지 않았고 천년된 은행나무는 앞에 왠 광고 플래카드를 크게 걸어놓아 탐탁지 않아 이곳에 올리지는 않을 생각이다. 아무튼 왕실묘역이라는 이름은 정의공주묘와 연산군묘의 위치를 빌어 지은 이름 같은데 그 이름이 주는 무게에 비해 여러모로 아쉬운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왕실묘역길은 이렇게 일반 동네의 뒷길 같은 길을 조금 걷다가 산길을 조금 걷다가 금방 마무리 된다. 워낙 거리가 짧은 구간이고 별 다른 특징도 없는데 차라리 이전의 구간에 이어 붙였으면 아쉬움이 덜 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였다. 물론 애초에 북한산둘레길의 구간이라는 것 자체가 인위적인 것이니 특정 구간의 거리와 풍경에 연연해 할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아마도 (어설픈) 아스티아의 색감 덕분에 봄의 산길인데도 마치 겨울의 그것처럼 조금은 쓸쓸한 느낌이 더 드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계절은 분명 봄이고 며칠 후면 절기상 여름인 입하에 접어든다. 어쩌면 나는 아직도 겨울의 느낌을 겨울의 풍경을 그리워하고 있는가보다. 적어도 지난 겨울에는 아니 지난 겨울까지는 그래도 마음을 크게 다치지 않고 지낼 수 있었으니까...


다시 도로로 나서면 이제 막바지다. 멀리 북한산 아니 삼각산의 세 봉우리가 보인다. 북한산을 가로로 관통하는 우이령길을 빼고 보면 온전하게 북한산 자락을 모두 걸은 셈이다. 누군가에게는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닐 수도 있는 이 걸음을 걷는데 1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래도 내가 이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는 말 덕분이 아니었을까.


처음 북한산둘레길을 걷기 위해 그러니까 1구간 소나무길을 걷기 위해 저 멀리 보이는 버스종점에 내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산에 오르는 것도 아니고 고작 둘레길을 걷는 것이었을 뿐인데 그날은 왜 그리 설레고 떨렸을까? 그리고 이제 바라보는 그때의 그길은 지난 해의 그길보다는 조금 더 여유있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약간이라도 익숙함이란 이런 편안함을 주는 가보다.


이곳 블로그에는 없지만 아직도 내 휴대폰에 남아있는 이 장소를 다시 찍어본다. 전체적으로 사진들이 물빠진 듯한 필름의 느낌을 주는 것이 그래도 마음에 든다. 필름카메라에 대한 추억을 이렇게나마 되돌려볼 수 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제 한 번의 걸음을 더 걸으면 북한산둘레길의 모든 구간을 마무리하게 된다. 아마도 1년을 모두 채우기 전이 되겠지만 내게는 마치 평생과도 같았던 1년이었다.


길을 시작했던 그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길을 그대로인데 그길을 걷는 사람만 달라졌다.

사람의 외모도 사람의 마음도 1년 전의 그것과는 참 많이도 달라졌다.


Panasonic LX-7, Adobe Lightroom Fuji Astia Preset


제법 오랜 기간 이 블로그의 이름은 Vogelfrei였다. 니체에서 시작한 내 독서의 결과물 중의 하나랄까.. 독일어가 주는 특유의 건조한 발음과 웬지 있어보이는 듯(그만큼 유치했었던) 해 무작정 블로그의 이름으로 정한 지도 수년이 지났다. 그리고 오늘 블로그의 이름을 바꾸었는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아예 도메인을 하나 구입해 덜컥 앉혀버렸다. 지금 블로그의 주소가 곧 블로그의 이름인데 Snowroad.. 눈을 좋아하고 길을 좋아하는지라 연결이 되는대로(팔리지 않은 도메인이 있는 조합으로 문법은 무시할 수밖에..) 만들다보니 이렇게 됐다.

눈과 길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고. Vogelfrei에 대한 이야기가 이글의 주제니 그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나의 삶 자체가 그렇게 무엇인가 멀리 있고 위에 있는 것을 지향했었던 것 같다. 자연 현실에 집중하고 현실에 충실해지기 어려웠고 지금 발을 붙이고 있는 땅을 도외시하고 늘 하늘만 바라보다보니 현실도 미래도 모두 붕 떠 버린 그런 삶이었지 싶다. 분명 하늘을 날고 있는 자유로운 새가 내 눈 앞에 보이는데도 그곳에 오를 수도 그 새를 잡을 수도 없었던 지난 시간들.. 그저 바라보기만 할 수밖에 없었던..어쩌면 절망적인 순간들을 하루하루 이어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얻을 수 있었던 그리고 얻은 것보다 읽은 것들, 잃어가는 중인 것들이 더 많다는 자괴감에 무척이나 시달렸는데 냉정하게 들여다봐도 잃은 것이 많았다. 최근 들어 더 이상 잃기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마저 떠나보내고 나서 드는 생각은 나 스스로의 그런 강박관념이 현실에서 내게 주어진 행복조차도 잡지 못 하게 한 것이라는 것.

항상 후회를 하고 정신을 차리지만 또 같은 실수를 하고 다시 후회를 하는 것이 또한 인간의 평범한 삶이라고는 하지만 나는 내 내면의 아주 은밀한 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무언가가 늘상 문제였다. 결국 보이는 것에서부터 변화를 주자고 생각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을 아무리 뒤적이고 뒤짚어보는 것보다 당장 내가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그런 것들부터 바꾸어가기로 했다.

물론 이런 시도가 끝내 성공을 해서 그동안 나를 붙들고 있던 멍에를 내려놓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전보다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자유로운 새를 쫓아갈 수는 있을테니 아무 것도 안 하고 하늘만 바라보는 것보다 내 몸을 가볍게 해 몇 번이고 뛰어 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

아무튼 어쩌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Vogelfrei라는 이름은 사라졌다. 

덧.. 또 하나 남아있는 것은 내 이메일주소인데 워낙 연결된 것들이 많아 시도는 해봤지만 바꾸기가 쉽지가 않다. 언젠가는 분명히 바꿔야할 것 중의 하나다. 



거의 1년만에 이곳을 다시 찾았다. 예전에 들렀을 때의 코스를 절반정도는 그대로 따라 걸었다. 평일인데도 사람들은 제법 많았고 여러 감정들이 뒤엉키는 가운데 길게 뻗은 길과 그 위를 메운 사람들 속을 걸었다.


이전과 크게 달라진 느낌은 없었다. 딱 그 맘때 와서 그런지 풍경이라던가 주변의 분위기 같은 것들 모두가 마치 어제 들렀다가 오늘 다시 찾은 것처럼 새롭지 않은 그러나 익숙하지도 않은 느낌이었다. 하늘을 보지 않고 눈을 정면을 바라보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있어 그것이 조금 불편했달까..


그러나 하늘을 바라보면 지상의 사람들은 순간 사라지고 그저 평온한 하늘과 바람과 꽃..그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 장면은 1년 전 내가 이곳을 찾았을 때와 다르지 않았다. 장소는 시간을 거스르는 힘이 있다. 특히나 세월이 지나도 별로 변하지 않는 장소는 옛시절을 쉽게 떠오르게 한다.

그 기억이 행복했던 기억이었건 혹은 간절했던 기억이었건 장소는 그렇게 지나간 기억을 바로 내눈 앞으로 툭 던져버린다. 그러면 곧 마음은 그 시절로 돌아가 잠시 멍한 기분이 되지만 다시 현실의 주변을 돌아보면 이 장소에서 그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오직 나 하나뿐이라는 생각에 쓸쓸한 마음이 되어 버린다.

내년에 내가 다시 이곳에 온다면 나는 또 오늘과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행복했던 시간들에 대한 기억으로 그 장소가 기억되기 때문에 잠시 쓸쓸해지더라도 울적한 기분이 들지는 않지 싶다. 내가 미아리의 어느 골목, 어느 공중전화 박스를 다시 찾지 않는 이유, 혹은 집앞 버스정류장의 공중전화박스를 애써 피해 돌아가는 이유는 그 장소가 내가 간절했던 그래서 마음이 괴로웠던 기억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가슴이 아파오는 기억을 담은 장소들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장소에 행복한 기억의 조각들이 남아있으니까..



필름을 사용해서 사진을 찍던 시절.. 지금 생각해보면 스캔을 참 어설프게 했구나 싶다. 스캔 원본의 크기도 작고 스캐너를 다루는 실력이 그리 뛰어나지 않아 먼지며 스크래치며 난리도 아니었다. 슬라이드 원본은 아직도 잘 보관은 하고 있지만 언제 다시 스캔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다.

하루에 두 롤 정도를 찍으면 두 장 정도 마음에 들었다. 마음에 든 사진을 빼고는 그냥 지워버린 것들이 많다. 그러지 않았어야 했다. 사진이란 물론 찍는 순간에 완성이 되지만 그 사진에 대한 인상은 당시에는 자기 스스로도 제대로 느끼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찍을 당시에 좋아보이건 그렇지 않건 바리바리 싸 들고 와 나중에 다시 돌아보면 오히려 그때의 느낌이 더 잘 살아나는 경우가 많다. 사진은 절대 지우면 안 된다. 기억이라는 것 혹은 추억이라는 것을 몇 번의 클릭으로 그렇게 잊어서는 안 된다.

Nikon F5, AF NIkkor ED 80-200mm F2.8D, LS-40



해가 저물어가는 산 정상에서 하늘을 바라본다.

철탑과 달... 사람이 만든 구조물과 자연의 일부가 그렇게 나란히 선채 나를 바라본다..

그래도 가까운 철탑보다 먼 달에 마음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이치...

저녁 바람이 아직은 시원한 어느 날에..

Nikon D300, AF-S 35mm f/1.8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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