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둘레길을 걸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첫발을 내딛은 것이 작년 5월 8일이었다. 그리고 오늘 1구간을 처음 걷기 위해 설렘과 기대와 불안을 갖고 출발했었던 우이동 시작점으로 다시 돌아왔다. 아직 채 1년은 되지 않았지만 벌써 시간이 이렇게 빨리 지났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1년 사이 참 많은 일들.. 사람이 삶을 살아가면서 겪을 수 있는 가장 감정에 민감한 일들을 많이 겪었다. 그래서일까 오늘의 걸음은 예전 둘레길을 걸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지하철 1호선 도봉역 1번 출구로 나간 다음 길을 건너 한참을 걸어야 한다. 둘레길을 걸으면서 자연스레 서울의 여러 지역들을 접하게 되는데 이 지역의 느낌은 약간은 허전하달까? 아마도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곳들이 많아서겠지만 한번 더 생각해보면 오히려 이런 공간적인 여유가 남아있는 것이 다행일런지도 모르겠다.

오늘의 사진들은 라이트룸에서 후지 아스티아 필름의 설정을 전부 적용해봤다. 아스티아는 필름 카메라를 쓰던 시절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던 약간은 비주류 필름인데 청색기운이 약간 강한 편이고(물론 벨비아만은 못하지만 후지에서 나오는 필름은 박스 포장의 색처럼 녹색과 청색이 강조되는 편이다) 상당히 입자가 곱고 동양인의 피부색을 꽤나 잘 구현하는 필름이어서 주로 포트레이트용으로 사용하던 필름인데 풍경에 적용할 경우는 독특한 색감이 나는 게 특징이다. 디지털 변환이 온전히 아스티아의 느낌을 살린다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왠지 오늘은 그냥 그 필름의 느낌이 그리웠다. 아마 색이 왜 이래?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리라...


도봉초등학교의 모습인데 학교의 색을 알록달록하게 칠해놓은 것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가까이 가서 찍어보고도 싶었지만 요즘 초등학교 근처에서 배회하다가는 괜한 오해를 살 수도 있어 90mm로 죽 당겨봤지만 이 정도가 최선이다. 맑은 날이어서 멀리 산의 모습도 제법 또렷이 볼 수 있었는데 아이들에게는 좋은 교육환경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길을 따라 좀 더 올라가면 주말농장을 꾸려둔 곳들이 많이 있다. 온전히 서울 촌놈인 나는 이런 것만 봐도 참 신기한데 한때 주말농장에 꽤 인기를 끌었던 시절도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요즘은 인기가 시들한 모양이다. 저렇게 번호를 붙여 놓으니 농장이라는 느낌보다 묫자리같은 느낌이 들어 왠지 꺼림칙하긴 했지만 내 개인적인 선입견이니 염두에 둘 필요는 없으리라.


이제 19구간의 시작점을 만날 수 있다. 방학동(放鶴洞)이라는 명칭은 한자 을 보면 학이 평화롭게 앉아 놀고, 알을 품고 있는 것 같다는 데서 유래됐다는 설,  방아터가 있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방아골로 부르던 것을 한자명으로 쓴 데서 유래됐다는 설 등이 있지만 한자를 볼때 앞의 의견이 맞는 것이 아닐까 추측을 해본다.


4월이라는 계절은 애매하다. 차라리 3월이면 심리적으로도 봄이라고 생각을 하겠지만 4월은 따뜻한 것도 아니고 추운 것도 아니다. 굳이 어느 시인의 '잔인한 달'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내게는 충분히 잔인했던 달이어서 그런지 그 애매함에 잔인함까지 덧붙여져 썩 마음에 들지 않는 계절이 되어 버렸다. 산길에 들어서서도 그 느낌은 이어졌다. 그러고보니 주변에도 봄을 특히 4월을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도저도 아닌 애매함 때문이 아닐까.


산길의 곳곳에는 이미 활짝 꽃망울을 터뜨린 녀석들도 있는가하면 이제 조금씩 꽃잎을 열어볼까 하는 녀석들도 있고 이미 제철을 다 보내고 바닥에 화려한 흔적들을 남기고 저물어 버린 녀석들도 있다. 삶의 시작과 진행과 마감까지 동시에 이루어지는 공간이 봄의 산길이다. 꽃은 그것이 활짝 펴서 절정을 이룰 때는 아름답지만 삶을 마치고 길바닥에 무참히 꽃잎들의 조각을 흩뿌릴 때가 되면 추한 모습이 된다. 마치 눈과 같다고나 할까.. 하지만 화려함뿐 아니라 그 화려함 뒤의 초라함까지 받아들일 때 온전히 한 존재를 인식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이길만 봐서는 겨울에 접어들 무렵이 아닐까 생각될 수도 있다. 이렇게 4월이라는 계절이 주는 느낌은 애매하다. 아마 당분간은 봄이라는 계절과 4월이라는 달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래도 이 계절과 달을 지나야 본격적인 화창함과 만날 수 있으니 그저 인고의 느낌으로 기다려야 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근처 초등학교의 체육 시간인지 아이들이 제법 많이 나를 지나쳐갔다. 특이했던 것은 시간제한이라도 있는 모양인데 거의 모든 아이들이 달려가고 있다는 점이었는데 그저 앞만 보고 달리는 동안 마주칠 수 있는 수 많은 '느낌'들을 아이들은 인식하기도 전에 지나쳐버린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든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도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 들여다보기에 시간이 모자랄 지경인데...


꽃이 왜 피는지는 알지만 꽃이 왜 지는지를 아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뽐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길가에 아무렇게나 뒹구는 모습이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본 이들은 얼마나 될까? 만약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산에 간다면 그 이유를 설명해주고 싶다. 그리고 이렇게 내버려진듯 흩어져버린 꽃잎들도 모두 다 같은 꽃이라고...


언젠가 연리지(連理枝)라는 단어를 좋아한다고 적은 적이 있는데 사실 연리지를 직접 마주친 적은 드물다. 이 사진에 보이는 나무도 그런 이름으로 부르기에는 부족할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내가 이 사진을 찍은 것은 이 나무들 곁을 지나고 있을 때 불어오는 바람에 두 나무가 부대끼며 끼익끼익하는 소리를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태생이 다른 두 삶이 만나 내는 소리. 같은 나무였다면 결코 만들어낼 수 없었던 그 소리를 이 두 나무는 그렇게 내고 있었다. 인간의 귀로 듣기에는 불편하 소리일 수도 있겠지만 이 두 나무에게는 어쩌면 또 다른 삶을 이루어가는 소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 생각 저 생각하는 중에 19구간 방학동길이 끝났다. 그리고 일반적인 경우라면(21구간은 예약을 해야 하니) 걸을 수 있는 북한산둘레길의 마지막 구간인 20구간 왕실묘역길이 내 앞으로 펼쳐졌다. 19구간이나 20구간이나 모두 걷기에 큰 무리는 없다. 다만 날이 슬슬 덥다는 느낌을 줄 정도가 되고 있으니 옷이라든가 물이라든가 하는 준비물들을 이전과는 조금씩 다르게 챙겨야 한다.


왕실묘역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처음 만나는 곳은 정의공주묘다. 사실 처음 정의공주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발해의 공주였던 정혜, 정효공주가 떠올라 이분도 발해의 공주인가 생각을 했는데 설명이 적힌 표지판을 읽어보니 세종의 따님이셨다.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 이곳은 공개를 하지 않아 이것저것 자세히 살펴볼 여지는 없었다. 명당이라는 것이 과연 있는 것인가 싶지만 따스한 봄날의 햇살을 듬뿍 받기에는 제법 어울리는 장소였다.

이곳을 지나 바로 만나게 되는 장소가 연산군묘와 800념이 넘은 은행나무인데 연산군묘는 사진의 구도가 영 나오지 않았고 천년된 은행나무는 앞에 왠 광고 플래카드를 크게 걸어놓아 탐탁지 않아 이곳에 올리지는 않을 생각이다. 아무튼 왕실묘역이라는 이름은 정의공주묘와 연산군묘의 위치를 빌어 지은 이름 같은데 그 이름이 주는 무게에 비해 여러모로 아쉬운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왕실묘역길은 이렇게 일반 동네의 뒷길 같은 길을 조금 걷다가 산길을 조금 걷다가 금방 마무리 된다. 워낙 거리가 짧은 구간이고 별 다른 특징도 없는데 차라리 이전의 구간에 이어 붙였으면 아쉬움이 덜 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였다. 물론 애초에 북한산둘레길의 구간이라는 것 자체가 인위적인 것이니 특정 구간의 거리와 풍경에 연연해 할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아마도 (어설픈) 아스티아의 색감 덕분에 봄의 산길인데도 마치 겨울의 그것처럼 조금은 쓸쓸한 느낌이 더 드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계절은 분명 봄이고 며칠 후면 절기상 여름인 입하에 접어든다. 어쩌면 나는 아직도 겨울의 느낌을 겨울의 풍경을 그리워하고 있는가보다. 적어도 지난 겨울에는 아니 지난 겨울까지는 그래도 마음을 크게 다치지 않고 지낼 수 있었으니까...


다시 도로로 나서면 이제 막바지다. 멀리 북한산 아니 삼각산의 세 봉우리가 보인다. 북한산을 가로로 관통하는 우이령길을 빼고 보면 온전하게 북한산 자락을 모두 걸은 셈이다. 누군가에게는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닐 수도 있는 이 걸음을 걷는데 1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래도 내가 이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는 말 덕분이 아니었을까.


처음 북한산둘레길을 걷기 위해 그러니까 1구간 소나무길을 걷기 위해 저 멀리 보이는 버스종점에 내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산에 오르는 것도 아니고 고작 둘레길을 걷는 것이었을 뿐인데 그날은 왜 그리 설레고 떨렸을까? 그리고 이제 바라보는 그때의 그길은 지난 해의 그길보다는 조금 더 여유있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약간이라도 익숙함이란 이런 편안함을 주는 가보다.


이곳 블로그에는 없지만 아직도 내 휴대폰에 남아있는 이 장소를 다시 찍어본다. 전체적으로 사진들이 물빠진 듯한 필름의 느낌을 주는 것이 그래도 마음에 든다. 필름카메라에 대한 추억을 이렇게나마 되돌려볼 수 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제 한 번의 걸음을 더 걸으면 북한산둘레길의 모든 구간을 마무리하게 된다. 아마도 1년을 모두 채우기 전이 되겠지만 내게는 마치 평생과도 같았던 1년이었다.


길을 시작했던 그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길을 그대로인데 그길을 걷는 사람만 달라졌다.

사람의 외모도 사람의 마음도 1년 전의 그것과는 참 많이도 달라졌다.


Panasonic LX-7, Adobe Lightroom Fuji Astia Preset


겨울은 내게 매년 어김없이 커다란 기억의 선물 보따리를 안겨 주곤 했다. 올 겨울은 아직 뭔가 크게 기억이 될만한 일은 없지만 1월과 2월이 남아 있으니 무슨 일이 일어날지 한편에서는 기대도 되고 한편에서는 불안한 마음도 없지는 않다. 겨울은 무채색의 계절이고 무채색과 어울리는 사진은 역시 흑백이다. 흑백사진은 언뜻 보면 색이 없는 것같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컬러사진보다 더 많은 빛의 흐름을 발견할 수 있다. 디지털로 넘어오면서 흑백현상이라는 단어가 사라져버리고나서는 좀처럼 흑백 사진을 찍지 않게 되지만 그래도 역시 사진은 흑백..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분명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컬러인데 왜 흑백이 주는 느낌이 더 강할까 생각을 해본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흑백 사진을 찍을 때 좀 더 신경을 쓰는 것도 한 원인이 아닐까 한다. 흑백사진을 찍을 때는 소위 존 시스템을 머릿속에서 부지런히 계산해야 한다. 여기는 얼마고 저기는 얼마니 전체적으로 얼마나 나오겠다..이런 계산을 하고 구도를 잡고 조리개와 셔터 속도를 조절하고 하는 그 모든 과정이 순식간에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사실 흑백 사진을 찍는 일은 꽤나 고된 작업이기도 하다. 


요즘이야 그냥 RAW모드로 차라락 찍어 버리고 집에 와서 컴퓨터로 수정을 하면 되니 예전의 그런 고됨이 없어 편리할지는 몰라도 왠지 사진에 영혼이 없는 느낌이 든다. 막말로 쨍하고 화려한 사진은 많지만 마음에 와 닿는 사진은 갈 수록 적어진다는 말이다. 사진을 마우스로 이리저리 클릭해서 만들어낸다는 게 여전히 어색하지만 이것도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면 받아들여야 할텐데 그게 쉽지가 않다. 

하지만 세상이 변화하고 있는데 계속 제자리에 앉아서 '디지털 세상은 반갑지 않아. 아날로그가 제일이야'라고 외쳐보아야 그저 과거에 집착하는 것일뿐이다. 디지털 시대에 어울리는 아날로그를 찾아야 그것이 제대로 아날로그를 즐기는 법이다. 나는 여태 이런 생각은 하지 않고 변화된 세상이 낭만이 없네 하며 팔짱만 끼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래서는 그저 과거에 매여 사는 꼴밖에 되지 않는데도 말이다. 마찬가지로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에 영혼이 있네 없네 하는 것도 같은 속좁음이다. 그래도 옛것이 좋아라고 하기보다 좋은 옛것을 요즘의 것과 어울리게 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흑백 사진은 인화물을 받아 들고 그것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에 뭔가 쿵하고 내려 앉는 것들이 있다. 물론 이 모든 느낌들이 나 혼자만 느끼는 그런 것이라 해도 나는 그런 느낌이 좋다. 현상된 슬라이드를 라이트박스에 비추어 보는 일보다 흑백 사진이 인화된 인화지가 더 반가운 것이 내 사진 생활의 특징이라면 특징이었다. 지금도 방 한 구석에 가지런히 쌓여 있는 필름 보관함과 인화된 사진 앨범을 열어보면 그렇게 오래된 내 추억들이 하나 둘 현실처럼 느껴지곤 한다. 분명 2차원의 종이인데도 말이다.

디지털로 넘어온 지금도 흑백에 대한 미련은 여전하다. 하지만 아직 디지털 카메라로 적극적으로 흑백 사진을 만들어본 적은 없다. 다음에 카메라를 들고 나가면 온전히 흑백만으로 찍어볼 생각이다. '디지털이니 현상도 안 되고 아날로그의 느낌이 없어!' 라고 계속 이야기하는 것보다 그래도 이 녀석들을 가지고 이전의 느낌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를 연구해보는 것이 더 낫기 때문이다. RAW모드에도 흑백 모드가 있다. 단순히 컬러 사진을 흑백으로 변환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흑백으로 이미지를 잡아내는 것인데 아직 이 모드는 사용해본 적이 없다.

디지털로도 이전의 필름 카메라가 만들어낸 느낌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도구가 아니라 그 도구를 이용하는 사람이다. 만약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필름 카메라로 만들어냈던 그 느낌을 만들어낼 수 없다면 기계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내가 변한 것일 것이다. 과거가 아름답고 추억이 아름답다고 느끼면서 현재에는 그런 기억을 만들려 하지 않는 것 역시 내가 변한 것일뿐이다. 바라봐야 하는 것은 더 이상 지난 기억이 아니라 지금 눈을 뜨고 바라보는 오늘의 하늘이다.


Leica M6, Summicron 35mm f/2.0 asph, Ilford PanF, LS-40



겨울 바다는 마치 산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수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다녀간다. 각각의 사연들로 가득 메워진 겨울 바다는 사람들이 떠난 후에도 그 사연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이곳저곳에 새겨 놓고 다시 돌아올 그들을 기다린다. 세월이 지나 다시 바다를 찾는 이들은 때로는 처음 그 바다를 함께 찾은 사람과 함께 일 수도 있고 때로는 둘이 아닌 혼자가 된 이일 수도 있지만 바다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그네들을 혹은 그를 바라볼 뿐.

지날 것같지 않던 시간들이 벌써 이렇게 흐르고 있다. 잊힐 것같지 않은 기억도 서서히 옅어져 간다. 그 시간 속에서 누군가는 다른 인연을 만나 새로운 미래를 꿈꾸고 누군가는 과거의 인연을 간직한채 고독한 걸음을 걷고 누군가는 인연이라는 끈조차 놓아버린채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바다 앞에 서면 그 모든 복잡하고 가슴 아프기만 한 일들이 모래 사장에 부딪혀 부서지는 물방울처럼 순간의 기억으로 터져 나가버린다. 순간 나는 모든 감정을 잊게 된다.

살 속으로 파고드는 겨울 바닷바람과 부서지는 파도 속에서 우리네 삶의 혹은 인연에서 겪는 희로애락애오욕이라는 것이 결국은 찰라의 감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지만 막상 그 각각의 감정들을 온전히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던 순간에는 그것이 마치 삶의 전부인양 그 순간에 몰입할 수밖에 없다. 또 그것이 사람의 솔직한 모습이기도 하고...

하지만 그 몰입이 미래의 긴 시간을 담보로 한 것이라는 것을 나중에서야 깨닫게 되고 결국 시간이 많은 것을 해결해준다는 아주 흔한 문장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것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구태여 부정하려들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또한 삶을 순리대로 살아가는 방법 중의 하나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겨울은 늘 이렇게 차가움 속에서 머리를 맑게 해 주는 매력이 있다. 여름날의 뜨거움 속에서는 잠시의 판단조차 흐려지지만 겨울의 차가움 속에서는 조금은 냉정하지만 스스로 납득할만한 판단을 할 수가 있다. 그것이 겨울이 내게 주는 또 하나의 선물이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12월도 어느덧 중반...곧 새해다. 언제나 그렇듯이 한 해 한 해 그 해가 가장 격변의 한해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매해 겪다보니 내년엔 올해보다 더 대단한 변화가 있을 거라는 기대반 걱정반의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요 며칠 새 아니 몇달 사이 평생 아팠던 것보다 더 많이 그리고 자주 몸에 이상이 생기다보니 마음만 조급해진 모양이다. 시간이란 것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것이라면 그 시간을 앓아 누워서 보낸다는 것은 그만큼 나아갈 길을 가지 못 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압박을 한 탓이기도 하다.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역시나 좋은 점이 없다. 반성과 질책은 분명 다른 것이니까...

아무튼 시간이 갈 수록 나를 지탱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내가 나일 수 있도록 해 주는 것... 그것이 사람이고 내 반려자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지금의 내게는 무엇이 나를 온전한 나로 버틸 수 있게 만드는 것일까...

그래도 아직은 산에 오를 수 있고 바다를 볼 수 있고 사진을 찍을 수 있고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위안이 된다. 

홀로 산에 오르고 홀로 바다를 보고 홀로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것에 적응만 하면 될 일이다. 

글은 애초에 혼자 쓸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O형은 생각보다 적응을 잘 하는 편이다.


Nikon F5, Ai Nikkor 105mm f/1.8S, Kodak 100SW, LS-40 film scan






어제오늘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내일도 또 눈소식이 있군요. 일전에 말씀 드렸지만 전 겨울 사진이 무척 많은 편인데..아마 3분의 2이상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원래 계획은 오늘 인왕산 기차바위를 구경가는 거였는데 이런 날씨에 어디 가냐는 어머니 호령에 포기하고 말았네요. 인왕산은 그리 높지도 않고 풍광도 좋은 편이라 조만간 올라가볼 생각입니다. 


제목에 적은 이야기는 특별한 것은 아니고 "조금 있으면 결혼하는 애가 '이 사람과 함께라면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하는 건 쉽지만, 이 사람과 함께라면 불행해져도 열심히 살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결혼할 결심을 한거야.'" 라는 이야기였습니다. 행복을 함께 나누는 것이 어려울까 불행을 함께 나누는 것이 어려울까 생각을 해 봅니다. 사실 쉽지는 않은 일이지요. 

제가 저 이야기에서 본 것은 "불행해져도 열심히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부분이었습니다. 사실 살다보면 온갖 일을 겪기 마련인데 불행이 닥쳤을 때 그래도 이 사람과 함께라면..이라고 생각하고 삶에 집중하고 열심히 할 수 있다면 그 불행마저 행복으로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예전에도 그랬겠지만 요즘은 결혼을 하려면 집도 있어야 하고 차도 있어야 하고 혼수는 얼마에 등등 복잡한 것들이 참 많지요.. 온전히 사람만을 보고 맺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이런 생각은 비현실적이고 세상을 모르는 어리석음으로 치부되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제가 아는 분들 중에는 정말 "없이" 시작한 분들이 많습니다. 결혼할 때 통장 잔고가 100만원이었던 분도 있고 남편이 직업도 없이 공부만 하는 학생인 분도 있고(몇 달 전에 취직을 했다고 하더군요).. 그분들의 선택에는 온전히 사람만이 있었을 뿐이었지요. 사람이 아닌 외적인 부분을 보고 만나게 되는 관계는 그 외적인 부분이 사라지게 되면 금방 식기 마련입니다. 아니 애초에 따스한 온기 자체가 없었겠지요. 아무튼 참 큰 용기를 가진 아가씨라는 생각이 들면서 앞으로 참 잘 살아가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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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라이카R로 찍은 것인데 아마 R의 사진은 올라온 적이 없지 않나 싶네요. 지금은 R시리즈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유물이 되었는데(물론 렌즈는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지만요) 라이카가 그렇게 우수하다는 렌즈 성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SLR에서 참패를 한 것은 꽤나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물론 디지털로 넘어오면서는 S라는 괴물을 만들어냈지만요.. 사견으로는 라이카는 역시 M이 나은 것 같습니다. 

Leica R6.2, Summicron-R 50mm F2 , Kodak Supra, LS-40 


사람인지라 마음이 늘 한결같을 수는 없지 싶다. 이것도 나약함에서 오는 변명이라면 어쩔 수 없으려나 싶지만...

살다보면 슬럼프를 겪는 때도 있고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하며 앞으로 죽죽 달려가는 때도 있는 것을 알면서도

가끔은 푹 주저 앉고 싶기도 하고 그렇게 주저 앉아 있을 때 누가 손을 내밀어 일으켜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나름 꿋꿋하게 죽 달려오다가 철퍼덕 넘어졌는데... 마음이란 역시 간사해서 나약해질 때는 끝을 모르고 나약해지나보다.

유난히 정에 약한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럴 땐 곁에 누군가 있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커진다.

하지만 내가 힘들 때 누군가 곁에 있다는 것은 상대에게도 그만큼의 짐을 지워야 하니 역시나 이기적인 생각이다.

아무튼 요 며칠새 정신이 달에 갔는지 별에 갔는지 모르겠다. 시간은 꽤나 빨리 지나가는데 일상은 뭔가 어긋난채 돌아간다.

이럴 때는 그저 숨을 죽이고 웅크리고 앉아서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지 싶다. 물론 가능한 빨리 정신을 수습하고 일어서야 하지만...


Leica M6, Summicron 35mm f/2.0 asph, Kodak EBX, LS-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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