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의 많은 봉우리들 중에 유독 나와 인연이 있는 봉우리를 고르라면 '족두리봉'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다. 예전 북한산둘레길을 걸을 때의 기억이 가장 강렬하겠지만 그 이후에도 몇번을 오를 수 있는 기회를 다음으로 미룬 일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오늘 그 인연의 시작을 확인해보고자 그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족두리봉에 오를 수 있는 등산로는 크게 2-3개 정도가 되는데 이번에 고른 등산로는 둘레길 중 하나인 구름정원길을 지나는 길이다. 이곳에서 출발하게 되면 약간 난이도가 높아지는 단점은 있지만 내게 있어서는 오늘만은 이길을 가야한다는 묘한 마음의 부담을 안고 출발했다. 주말이어서 상당히 많은 이들이 북한산을 찾았는데 사람이 없는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길의 시작은 구름정원길이다. 벌써 이곳을 걸었던 것이 1년도 넘은 일이라는 것이 새삼스러웠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곳인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구나..시간은 흘러도 자연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구나. 사람의 삶이란 얼마나 짧고 보잘 것 없는 것인지..


이 표지판은 작년과 약간 달라졌다. 전에는 머리조심이라고 적혀 있어서 어쩐지 재미도 있었는데 이번 표지판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오히려 저 그림을 바라보다가 위험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며 천천히 발길을 옮긴다. 내 산행 속도는 상당히 느린 편인데 아마도 사진을 찍느라 멈추는 일이 많아서가 아닐까 싶다. 


원만한 길을 조금 걷다보면 이 지점을 만나게 된다. 오른쪽에 보이는 탐방객 확인을 위한 문을 지나면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물론 둘레길을 걷는 것도 산행이지만 걷기와 오르기는 묘한 뉘앙스가 분명 존재하기는 한다. 아무튼 이제 1년이 지난 약속을 지키려 이곳에 왔다. 늘 닿을 것만 같으면서 좀처럼 닿지 않았던 인연에 내가 먼저 다가서기로 한다.


둘레길 걷기와 다르다는 것은 초입에서부터 적나라해진다. 족두리봉에 오르는 길을 이곳으로 정했을 경우에는 오르는 내내 이런 모양의 길을 만나게 된다. 북한산의 특징인 바위를 아주 지겹도록 볼 수 있는데 등산화의 선정에 조금은 주의가 필요하지 싶다. 맑은 날이라면 큰 문제는 없겠지만 습기가 많은 날에 이 루트를 탈 경우 비브람창은 다소 미끄러울 수 있기 때문이다.(물론 사람 나름이기는 하다)


한여름이었다면 제법 숨이 벅찼을 길을 따갑지 않은 한낮의 햇살을 맞으며 천천히 올라본다. 내 산행이란 급하지도 않고 정상에 올라야 한다는 사명감도 없기에 아무런 부담이 없다. 물론 정상에 다다르면 잠깐은 기쁘겠지만 몸과 마음이 힘들다면 좋은 산행이라 부르기 어렵다. 일상에서 그렇게 목표달성에 치이며 살아가면서 모처럼 만난 자연에조차 그런 세상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어쩐지 어색하다.


이런 곳에 사람이 쌓은 돌벽이 있을까. 한참을 멈추고 바라본다. 그러고보면 자연이라 해도 어딘들 사람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있을까 싶다. 그렇게 사람들은 자기들의 편의를 위해 자연을 이리 재단하고 저리 재단하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 남는 것은 여전히 변함없는 자연과 어설픈 인간의 흔적이 아닐까. 아무튼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걸음을 옮겨본다.


이쪽 등산로는 흙을 만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돌로 만들어진 길은 어쩐지 차가운 느낌이 강하다. 흙이 주는 따스함보다는 '왜 굳이 이리 올라오느냐'며 채근하는 느낌이다. 돌길은 흙길에 비해 체력소모가 확실히 많고 계절의 뜨거움이나 차가움이 그대로 몸에 전해지기 때문에 조심스럽다. 그나마 습기가 없어 미끄러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이 뿌리들이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얼마나 많은 등산화가 이 뿌리를 밟고 지나갔을까. 가파른 경사로의 이어짐 속에 바닥 한 번 내려다 보기 어려운 길에 이렇게 뿌리는 묵묵히 그 존재를 남기고 있었다. 사람이 걷는 길을 막아서는 나무가 있다면 그 나무를 베어내고 길을 가는 것이 옳을까 아니면 그 나무를 에둘러 가는 것이 맞을까...


주말이어서 제법 많은 이들이 둘레길에 있었지만 족두리봉으로 넘어가는 이쪽 등산로에는 그렇게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다. 그래도 환갑이 훨씬 넘은 어르신들이 성큼성큼 걷는 모습을 보면 내 체력이 영 부실하다는 느낌은 족두리봉을 오르는 내내 지울 수가 없었다. 하루종일 앉아서 씨름해야 하는 직장생활 속에서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산은 꾸준히 와야지 싶다.


이렇게 사진을 찍으니 제법 험해보이는데 실제로도 이렇다. 가끔은 네발(?)로 돌에 붙어서 올라가기도 해야 한다. 등산화가 미끄러지면 참 낭패인 구간이 곳곳에 있으니 이쪽으로 족두리봉을 오르시려는 분들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 물론 신발 종류에 관계없이 잘 오르는 분들은 잘 오른다. 나처럼 기술보다는 장비에 의존해야 하는 초보등산객은 바위에 잘 붙는 신발은 좀 더 유리하다는 말이다.


족두리봉은 불광역에서 접근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올라가면 서울의 한 구석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저 아래 수 많은 아파트들과 건물들 안에서 수 많은 인생들의 희로애락이 펼쳐지고 있겠지만 이렇게 산에 올라 바라보면 그깟 인생이 참 뭐가 대단한가 싶다. 결국은 다시 저곳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잠시 떠나있는 지금만큼은 도시 이야기는 완전히 잊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저 방향으로 오르는 것이 아니어서 조금은 다행이지만 이쪽도 만만치는 않다. 그래도 조금은 벅찬 길로 산을 오르는 느낌은 꽤나 즐겁다. 위험요소에 대한 준비만 잘 한다면 천천히 오르면 아주 어렵지는 않으니 너무 겁내지는 않아도 된다. 다만 계절이 서서히 겨울에 가까워지는 요즘이기 때문에 체온 유지를 위한 겉옷과 비상식량 등은 이전보다는 좀 더 신경을 쓰는 것이 좋겠다.


한참 앉아서 쉬던 곳인데 고소공포증이라도 있다면 제법 무서울만한 장소다. 금방이라도 미끄러질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면 꽤 긴장했을 것같다. 겨울에 눈이라도 쌓이면 바닥 보기도 힘들텐데..라는 생각에 한동안 앉아 이곳저곳의 지형들을 살폈다. 멀리 바라보니 이제까지 올라온 길이 보인다. 능선길을 따라 이렇게 올라왔구나라는 생각 그리고 사람들이 참 길을 잘도 만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리면 어김없이 바위와 바위로 이어진 길이 등장한다. 이쪽 코스에 대한 사전 정보라고는 가파른 곳이라는 게 전부였던지라 오늘은 참 바위를 질리게도 오르는구나 생각하며 걸음을 옮겼다. 가을이 서서히 저물어가는 북한산은 어렴풋하게 남아있는 여름의 흔적과 조금씩 다가오는 겨울의 징조가 어울릴듯 어울리지 않을듯 묘하게 얽히곤 했다.


오르막이 멈추고 난 후 나타난 능선길은 이번 산행의 절반이 끝나가는구나라는 조금은 안도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늦가을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한낮의 햇살은 여전히 따가워 그늘만 보이면 조금이라도 그 그늘에 의지해 쉬곤 했다. 산행은 마음 맞는 이와 같이 가는 것이 제일 좋고 그렇지 않다면 혼자서 가는 편이 낫다. 개인별로 체력이 다르고 산행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이다.


정상인 족두리봉에 다다를 수 있었다. 해발 370미터면 사실 오르기 크게 어렵지 않은 동네 뒷산(?) 정도일 수도 있는 높이지만 초보등산객의 입장에서는 참 높고 멀기만 한 등산이 아니었나 싶다. 나름 천천히 오른다고 시작한 등산이지만 실제 걸린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내 기준에서 천천히지 다른 사람이 보기엔 빠를 수도 있지 않나 싶기도 했다.


족두리봉 정상에는 그다지 경치와 어울리지 않는 송신기 비슷한 것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일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달갑지 않은 이물질일뿐이다. 아무튼 이렇게 인연이라면 인연인 족두리봉과의 만남은 일단 끝이 났다. 그동안 내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내게 무엇을 전하고 싶었는지 바로는 알 수 없었지만 언젠가 그 의미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저 아래 아주 조그맣게 보이는 집이 무엇일까 궁금했지만 굳이 알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저렇게 어우러진 모습 자체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이번 사진들은 이전 사진들과는 아마 색감이 다르게 느껴지지 싶은데 라이트룸에서 VSCO 필터를 적용한 덕분이다. 어떤 필터가 적용된 것인지 짐작이 가는 분이 있을까? 100VS라는 이름이 낯익다면 아마도 스크롤을 다시 위로 올라 한참 사진을 보지 않을까? 나 역시 필터를 적용시키고 나서 한참을 화면을 바라봤는데 아주 오래 전.. 이제는 추억의 이름이 된 Kodak 100VS를 이렇게 어설프게나마 다시 만날 수 있어서 무척이나 반가웠다.


Panasonic LX-7, Lightroom + VSCO Kodak 100V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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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바다는 마치 산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수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다녀간다. 각각의 사연들로 가득 메워진 겨울 바다는 사람들이 떠난 후에도 그 사연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이곳저곳에 새겨 놓고 다시 돌아올 그들을 기다린다. 세월이 지나 다시 바다를 찾는 이들은 때로는 처음 그 바다를 함께 찾은 사람과 함께 일 수도 있고 때로는 둘이 아닌 혼자가 된 이일 수도 있지만 바다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그네들을 혹은 그를 바라볼 뿐.

지날 것같지 않던 시간들이 벌써 이렇게 흐르고 있다. 잊힐 것같지 않은 기억도 서서히 옅어져 간다. 그 시간 속에서 누군가는 다른 인연을 만나 새로운 미래를 꿈꾸고 누군가는 과거의 인연을 간직한채 고독한 걸음을 걷고 누군가는 인연이라는 끈조차 놓아버린채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바다 앞에 서면 그 모든 복잡하고 가슴 아프기만 한 일들이 모래 사장에 부딪혀 부서지는 물방울처럼 순간의 기억으로 터져 나가버린다. 순간 나는 모든 감정을 잊게 된다.

살 속으로 파고드는 겨울 바닷바람과 부서지는 파도 속에서 우리네 삶의 혹은 인연에서 겪는 희로애락애오욕이라는 것이 결국은 찰라의 감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지만 막상 그 각각의 감정들을 온전히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던 순간에는 그것이 마치 삶의 전부인양 그 순간에 몰입할 수밖에 없다. 또 그것이 사람의 솔직한 모습이기도 하고...

하지만 그 몰입이 미래의 긴 시간을 담보로 한 것이라는 것을 나중에서야 깨닫게 되고 결국 시간이 많은 것을 해결해준다는 아주 흔한 문장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것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구태여 부정하려들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또한 삶을 순리대로 살아가는 방법 중의 하나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겨울은 늘 이렇게 차가움 속에서 머리를 맑게 해 주는 매력이 있다. 여름날의 뜨거움 속에서는 잠시의 판단조차 흐려지지만 겨울의 차가움 속에서는 조금은 냉정하지만 스스로 납득할만한 판단을 할 수가 있다. 그것이 겨울이 내게 주는 또 하나의 선물이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12월도 어느덧 중반...곧 새해다. 언제나 그렇듯이 한 해 한 해 그 해가 가장 격변의 한해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매해 겪다보니 내년엔 올해보다 더 대단한 변화가 있을 거라는 기대반 걱정반의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요 며칠 새 아니 몇달 사이 평생 아팠던 것보다 더 많이 그리고 자주 몸에 이상이 생기다보니 마음만 조급해진 모양이다. 시간이란 것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것이라면 그 시간을 앓아 누워서 보낸다는 것은 그만큼 나아갈 길을 가지 못 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압박을 한 탓이기도 하다.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역시나 좋은 점이 없다. 반성과 질책은 분명 다른 것이니까...

아무튼 시간이 갈 수록 나를 지탱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내가 나일 수 있도록 해 주는 것... 그것이 사람이고 내 반려자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지금의 내게는 무엇이 나를 온전한 나로 버틸 수 있게 만드는 것일까...

그래도 아직은 산에 오를 수 있고 바다를 볼 수 있고 사진을 찍을 수 있고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위안이 된다. 

홀로 산에 오르고 홀로 바다를 보고 홀로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것에 적응만 하면 될 일이다. 

글은 애초에 혼자 쓸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O형은 생각보다 적응을 잘 하는 편이다.


Nikon F5, Ai Nikkor 105mm f/1.8S, Kodak 100SW, LS-40 film scan








시간의 흐름이 유수와 같다.. 단순한 진리이지만 이것을 직접 깨닫고 몸으로 느끼고 있노라면 세상사가 한 편에서는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길고 긴 시간 속에서 잠깐의 순간일뿐인 사람의 생이라는 것. 어떻게 살더라도 결국 종착점은 같은 것이지만 그래도 나로 인해 누군가에게 웃음을 미소를 행복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행복한 삶이 아닐까..


역시 사진은 겨울 사진이 제맛이고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 카메라를 들고 나가는 것처럼 즐거운 일은 없다.

Leica R6.2, Summicron 50mm, Kodak Supra, LS-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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