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는 차로 춘천 외곽을 둘러보았는데 이번에는 춘천 안으로 들어가봤다. 춘천으로 가는 길은 이제는 너무나 손쉬워져서 중앙선을 타기만 하면 갈 수 있다. 청량리에서 기차를 타고 기차 안에서 기차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대학생의 낭만은 덕분에 영화에서나 등장하는 이야기가 되어 버리긴 했지만 말이다.

너무나 깨끗해진 현대식 건물의 역사를 보며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아득한 기억을 애써 떠올려보려고 해보지만 워낙 일체감이 없기에 쉽사리 기억을 끄집어내긴 어려워보인다. 하루 정도 머물 생각이어서 렌터카를 알아보니 8만원을 달란다. 주말에 덥썩 사무실을 찾아가니 그럴만하다 싶었다. 춘천 밖으로 나갈 생각은 없었기에 차라리 택시가 저렴할 것 같았고 실제로도 그랬다.

춘천의 기억은 늘 햇살이 따가울 정도로 내리쬐는 여름이다. 오래 전 만나던 이와 청평사를 찾았을 때도 그랬고 오늘 역시 대서라는 절기가 절정에 이르렀는지 햇살이 아플 정도로 따가왔다. '공지천'주변에는 에티오피아 기념관이 있는데 6.25참전을 기억하는 장소로 왜 춘천에 이런 것이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이 지역이 사실은 격전지 중의 하나였다는 역사를 떠올리면 그럴만하다..라는 생각이 든다.

오리보트는 공지천의 녹색 물결을 가르고 있었는데 무슨 일인지 몰라도 정말 강의 색이 '녹색' 자체다. 무언가 정체모를 꺼먼 것들도 둥둥 떠다니고 있어서 저 보트를 타려면 제법 용기가 필요하지 싶다. 그래도 연인들은 더위도 강물의 색도 개의치 않고 끊임없이 오리보트를 타고 열심히 페달을 밟고 있었다. 좋을 때다 연인들이란..

에티오피아 원두로 만든 커피를 파는 전문점인데 커피를 워낙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 '맛'은 전혀 모르는 나로서는 이것이 에티오피아 커피의 맛인지 알 길이 없기에 주는대로 덥썩 받아와 마실 수밖에 없었다. 커피숍은 제법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낡은 인테리어를 뽐내고 있었는데 오래 전 이곳을 들러간 이들에게는 기억을 되살리기에 충분하지 싶었다.

엄청난 더위에 아예 SLR을 들고 가는 것은 상상도 못 했다. LX5 하나만 들고갔는데도 가방은 무거웠다. 체력이 갈 수록 떨어지는 게 분명하다. 게다가 더위에 지쳤다는 핑계로 그나마 가져간 녀석도 좀처럼 꺼내지 않았다.  카메라에 매달려있는 렌즈캡을 찍으며 그나마 사진 몇 장 찍어왔다고 위안을 삼아 본다.

조각공원에는 김유정문학비가 있다. 김유정은 1908년 춘천의 실레마을이라는 곳에서 태어났고 이곳은 그를 기념하기 위한 공원 중의 한 곳이다.  춘천역을 가는 중간에 우리나라 최초로 사람 이름을 역 이름에 담은 김유정 역이 있는데 이곳 역시 같은 의미다. 물론 지금의 김유정 역은 현대식 역사다. 이전의 한옥 지붕의 역사는 폐쇄되어 들어갈 수가 없다고 한다.

공원 곳곳에는 제법 많은 조각들이 있었는데 찬찬히 둘러보기엔 날이 너무나 더웠다. 그럼에도 풀밭 곳곳에서는 연인들이 야릇한 포즈로 부둥켜 안고들 있어서 가뜩이나 더운 날씨를 더 뜨겁게 만들고 있었다. 연인들에게 추위와 더위쯤은 아무 것도 아니다.

춘천의 번화가인 명동의 밤거리다. 명동 자체는 그리 넓다고 볼 수는 없지만 정말 없는 게 없을 정도로 다 있다. 좁은 공간에 상점의 밀집도가 상당하달까.. 예전에는 춘천 시내라 해도 밤 시간이 깊어가면 상점들도 많이 문들 닫고 행인도 적었다는데 요즘은 제법 늦은 시간에도 많은 이들이 거리를 오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겨울연가를 보지 않아 알 수는 없지만 이곳도 촬영지 중의 한 곳인가보다. 촬영지라면...이라고 생각할 즈음 같은 색의 옷을 입은 수십 명의 중국인 관광객들이 우르르 몰려가는 것이 보였다. 외국인 관광객들을 통한 지역사회의 수익창출은 아주 좋은 것이지만 그 지방의 고유한 특색이 아닌 드라마라는 점이 아쉽긴 했다. 그래도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나은 것일까...

춘천은 도시의 이름 자체가 낭만을 안고 있다. 가평, 청명, 대성리...이런 이름들처럼 춘천은 희미한 기억 속의 도시라는 느낌이 강한 곳이다. 그럼에도 선뜻 발이 춘천으로 향하지 않았던 것은 그 희미한 기억, 아스라한 기억이 사라질까 못내 두려웠기 때문이고 오래 전의 추억으로 남아있는 그 기억을 다시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모든 기억은 장소에 그렇게 봉인되곤 한다. 어떤 기억이 좋았건 혹은 그렇지 않았건 세월이 지나 한 번의 웃음으로 그 기억들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때가 오는데 그때 그 기억들이 봉인된 장소를 찾아가게 되면 마치 얼음이 녹듯 서서히 그리고 온전하게 지난 시간의 기억들이 바로 지금의 일처럼 또렷해진다. 

기억은... 그리고 추억은 잊히는 게 아니다. 그저 가두어둘 수 있을 뿐이다. 


Panasonic LX5


후배와 집다리골 자연휴양림을 다녀왔다. 이름이 낯선 곳이어서 집에 와 찾아보니 시원한 계곡으로 유명한 곳이다. 실제로 계곡에 내려가보면 흐르는 물은 얼음물이고 바람은 에어컨 저리가라 할 정도였다. 어제 비가 와서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 않아 한적하게 돌아볼 수 있었다.

집다리골의 유래라는데 칠석의 설명과도 어딘가 비슷한 것 같고.. 새로 만들어진 느낌도 나지만 이름이야 어떻든 시간을 내어 방문할만한 곳이라는데 의미를 부여하면 족하지 싶다. 왼쪽에 약간 보이는 다리는 중간쯤 가면 흔들림이 커지는데 고요한 휴양림에서 그나마 운동감을 느낄 수 있는 소도구랄까.

가뭄에 물이 없는 요즘치고는 제법 많은 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어제 온 비의 영향인 듯하다.  제대로 물이 흐른다면 꽤 장관일 것 같다. 계곡 자체의 경사가 제법 되어서 물의 속도는 꽤 빠른 편이다. 아이들을 동반할 경우에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겠다.

투명하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맑은 물. 이 정도로 맑은 물을 본 기억이 거의 없을 정도인데.. 꽤 오래 전 청평사에 갔을 때 계곡에 발을 담그고 논 적이 있었는데 아마 그 이후 처음이 아닐까 싶다. 물론 그만큼 계곡을 돌아다니지 않은 탓도 있긴 하겠지만..

그냥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온몸이 으슬으슬해질 정도로 차가운 물과 바람. 자연 자체에서 느껴지는 바람인지라 몸 속까지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오래 있기는 정말 어려웠다. 피서라는 말이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는 없었다.

자연 안에 들어가면 편안함을 느끼는 것은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지 싶다. 시간이 갈 수록 인간 자신의 편의를 위해 자연을 훼손하지만... 그래도 자연은 묵묵히 인간을 감싸 안고 있다. 비록 언제까지일지는 모르지만... 그저 어머니처럼 아무 이유도 조건도 없이 안아주는 것이 자연이다..

초행길이고 네비가 구춘천가도로 길을 안내해 시간이 조금 더 걸린 편이었다. 거리는 생각보다 멀다. 서울 노원역 기준으로 2시간이 조금 넘게 걸리는데 주말에는 시간이 좀 더 걸리지 싶다. 펜션 비슷한 숙소도 있고 야영을 위한 장소들도 제법 잘 갖춰두고 있어 가족 캠핑으로 방문하기에도 괜찮아 보였다.

다만 집다리골 휴양림 자체를 빼면 주변에 접근하기 용이한 다른 관광지가 가깝지 않은 점은 단점이라 할 수 있겠는데 휴양림에서 진득하게 쉰다고만 생각하면 큰 무리는 없다. 


Panasonic LX-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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