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전자사전 그리고 스마트폰 등에 내장된 사전 기능이 뛰어나서 종이사전에 대한 애착이 예전같지는 않다. 하지만 뭐랄까 외국어를 공부하는데 있어 종이사전이 주는 느낌 그리고 학습 효과는 디지털로 된 사전에 비해 뛰어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너무 구세대가 아니냐? 고 되물을 수도 있겠지만 낡은 LP처럼 오래된 사전은 자신의 공부의 이력이고 살아온 인생의 한 단면이니 말이다. 종이사전을 구비하기로 마음 먹었다면 어떤 사전을 사야할까? 아마 국내에서는 민중서림의 엣센스, 동아의 프라임, 시사영어사의 e4u 정도가 선택의 한계가 아닐까 싶다. 실제로 나도 처음 영어 공부를 시작하던 때부터 엣센스를 사용해왔으니 말이다.



그런데 많은 영한사전들의 문제는 일본식 번역이라는 데 있다. 사전을 만들기 어렵던 시절에 일본에서 사전을 들여와 그것을 다시 우리말로 번역하다보니 최신판의 사전을 구입해도 왠지 낯선 한자로 된 뜻풀이가 곳곳에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대안으로 영영사전을 고르기도 한다. 영영사전 중에는 옥스포드대학 ELT의 사전이 많이 알려져 있는데 OALD라고 줄여서 불리는 The Oxford Advanced Learner’s Dictionary가 가장 유명하다. 현재 8판이 나와있는데 사용자들 평으로는 이전의 7판이 더 나아보인다.

아무튼 가능하다면 영영사전을 고르는 것이 보다 깊이 있는 공부에 적당하겠지만 영영사전이 부담스럽다면 위 사전을 우리말로 번역한 사전이 있다는 점에 주목해보자. 정영국 교수와 조미옥 님이 편역자로 참여한 옥스포드 영한사전이 그것이다. 아래 박스는 이 사전이 출시될 당시의 편역자인 정영국 교수의 인터뷰 기사다.

" 사전 편찬 과정에서 비교 분석한 국내 사전은 문제투성이였다.... 영일(英日) 사전을 베낀 듯한 대응어에서는 할 말을 잃게 된다. clove. 국내 영한사전에서 이 단어를 찾아보면 거의 다 ‘<식물> (백합 뿌리 등의) 소인경(小鱗莖), 소구근(小球根)’ 따위 대응어를 제시한다. 소인경과 소구근이라니? 한글학회에서 편찬한 <우리말큰사전>에도 없는 괴이한 단어들이다. 왜 이같이 생뚱맞은 낱말이 등장했을까. 간단하다. 영일 사전을 고스란히 번역한 탓이다. 정영국 교수는 “최근 통마늘로 번역하는 사례도 있지만, <옥스퍼드 영영사전>에 따르면, clove는 마늘 한 쪽을 뜻한다”라고 설명했다. (시사인, 2009년 4월 4일 발행자, p.70-71)"

일단 사전의 외양이나 제본 방식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사전을 디자인으로 선택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영영판에 비해서는 왠지 없어보이는 점은 지적을 하고 넘어가야겠다. 이전까지 국내에서 발간된 가죽 장정의 사전들을 보아왔기 때문인지 비닐로 투박하게 마무리된 커버는 별로 정감이 가지는 않는다. 원서를 보면 아예 비닐조차도 없으니 그것보다는 나을지도 모르겠다. 비닐 커버는 조금 날이 추우면 부러져 버릴 위험도 있어서 별로 선호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 사전의 경우 다른 선택지가 없으니 추운 날에는 돌돌 싸고 다니는 방법이 유일한 대비책일 듯하다. 게다가 표지는 한 번 접히면 회복하기 힘들 정도로 단단하게 마감이 되어 있으니 혹 가방에서 표지가 접히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도록 주의하자.


The Oxford Advanced Learner’s Dictionary의 장점은 다양한 예문에 있다. 그리고 명확한 해석. 사실 사전으로서의 가장 중요한 기능에 충실하다고 할 수 있다. 수 많은 사전들 중에서 이 사전이 많은 사용자들의 인기를 모으는 것은 이 가장 기본이 되는 것들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사전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사전은 학습을 위한 사전이다. 따라서 사전 곳곳에 학습자들을 위한 배려를 하고 있다. 기본적인 단어의 색은 파란색으로 처리해서 눈에 잘 보이게 해 두고 있는데 영영판과 같은 편집 방식이다. 다만 편집이 조금 어설프달까.. 면을 펼치면 눈이 쉽게 피로해질 정도로 가독성은 떨어지는 편이다. 이 점에서는 국내 출간 사전들에 점수를 주고 싶다.


차라리 판형을 좀 더 키워서 가독성을 좋게 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현재로서는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어 보인다. The Oxford Advanced Learner’s Dictionary는 또한 고유의 편집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흔히 국내 사전에서 보는 타동사의 약어인 vt와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VN이라고 표기하고 있으니 첫 장의 약어표를 먼저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 또한 모든 발음 기호는 영국식 영어가 우선된다. 미국식 발음은 뒤에 나오니 이 점도 기억하자.


전반적으로 한글 번역은 간단명료하고(한편에서 보면 부족할 수도 있지만) 예문을 많이 보여주는 편집 방식이다. 단어를 찾아 그 뜻만 보지 말고 실제의 활용법을 보라는 이야기다. 학습자의 사전으로서 당연한 배려다. 다만 많은 어휘를 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학습자를 위한 사전이라는 제목처럼 지엽적인 단어들은 나와 있지 않다는 점도 기억하자. 오히려 이 부분에서는 국내 사전이 좀 더 많은 어휘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영어학습이라는 본연의 목적을 생각한다면 지엽적인 단어들보다는 주로 사용되는 어휘들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다.

국내 출간 사전을 보다가 이 사전을 보면 처음에는 상당히 낯선 느낌이 든다. 단어도 부족한 것같고 왠지 눈도 피로한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활용해 나간다면 이제까지의 영어 공부 방식에 한바탕의 전환점을 마련해줄 수 있는 든든한 친구가 될 것이다. 8판의 한국어판이 출시될지는 알 수 없지만 하드웨어적인 편집에서 보완만 좀 더 이루어진다면 제대로 공부하기에 좋은 사전이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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