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에도 없었다. 사실 이 영화는 보지 않으려 했다. 아니 볼 수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극장에 혼자 가지 못 하는 성격 탓도 있고 오래 전 기억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담이 제법 컸기 때문이다. 영화평을 보니 호평만큼이나 혹평도 많아 어느 샌가 관심을 끊고 지냈다. 게다가 이제 극장에서도 내려갈 즈음인 그런 영화다. 

그러나 오늘은 무슨 일인지 늦은 저녁 컴컴한 극장에 홀로 앉아 영화를 봤다. 그리고 눈물이 났다. 정확하게 두 번이다. 이 영화는 내게 두 번의 눈물을 주었다. 아마 사람마다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포인트는 다를 듯하다. 하지만 적어도 비슷한 시대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면 한 번 정도는 가슴이 찡하게 아려오지 않을까...

나는 정릉에서 나고 자랐는데 영화의 시작이 정릉이다. 신기하다 싶어 이어지는 장면들을 보니 버스에서의 장면이며 학교에서의 모습이며 오래 전 나의 기억들과 정확히 일치한다. 참 별일이다 싶었다. 어설픈 만남, 그리고 그 만남을 만들어내기 위해 안타까워했던 수 많은 날들, 그렇게 처음 만나게 되어서도 말조차 꺼내지 못 했던 시간들, 힘들게 시작했지만 짧았던 연애와 오해로 빚어진 엇갈림, 그리고 세월 속에 자연스레 잊힌 사람... 

영화를 보는내내 마음속 깊은 구석에 감추어진 채 먼지가 수북하게 쌓여가는 기억의 상자들이 하나둘 열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화면에서 펼쳐지는 장면장면들에 내 기억을 겹쳐가며 '그때는 그랬었지..'라고 혼자 고개를 끄덕인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올라올 즈음 나는 영화를 본 것이라기보다 젊은 날의 내 삶을 영화가 상영되는 시간동안 재생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상과 달랐던 마지막 결말...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이 결말은 조금 잔인하다 싶을 정도였지만 그것이 현재의 우리의 모습이기에 그 또한 자연스레 받아들여야 했다.

그래서일까 영화가 끝났어도 줄거리나 배우들의 연기보다 나의 오래 전 기억들이 더 기억에 남았다. 스크린에 펼쳐지는 장면들에 내가 들어가 그 상황을 연기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이루어지지 않은 아니 이루어질 수 없었던 그 시절의 첫사랑.. 이미 기억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첫사랑은 그렇게 되살아났다. 하지만 안타까움이나 아쉬움보다 따뜻함, 편안함으로 기억된다. 비록 한 번의 엇갈림 이후 다시는 만날 수 없었지만 내게 그런 기억을 준 이에게 고마운 마음만 남아 있으니까...

참 그때는 그 첫사랑이.. 그 풋사랑이 마치 세상의 전부였던 것같았다. 도서관에서 우연을 가장해 보기도 하고 버스 타는 시간을 알아내 같이 타 보기도 하고... 그렇게 몇 달을 시름시름 앓다가 마침내 그녀를 만났음에도 한 마디도 못 하고 입안이 바짝 타들어갔던 그날의 기억... 비록 아주 짧은 연애였고 우리 둘의 문제가 아닌 이유로 헤어져 지금껏 만나지 못 하고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때처럼 순수한 마음만으로 사람을 바라봤던 시절도 없었지 싶다.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그런 순수함이나 열정은 식어갔다. 현실, 생활에 하루하루를 보내야 하는 절박함 속에서 낭만이나 꿈 혹은 풋사랑은 그저 감상적인 단어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참 오랜만에 내 안에 잠들어 있는 감정을 감성을 다시 두드려 깨워주었다. 그것으로 됐다. 극장에 혼자 가는 어색함도 옆자리가 비어 있는 허전함도 이젠 그냥 한번 웃음으로 넘겨버릴 수 있어야 하니까...

이 영화는 세상의 모든 첫사랑에게 보내는 편지가 아닐까 싶다. 애타는 마음과 설레는 마음과 눈물과 기쁨을 모두 간직한채 그렇게 마음속에 담아두고 평생 어린 시절의 모습으로 남아있는 그 첫사랑을 위한 그런 영화가 아닐까... 내가 기억하는 그녀 역시 머리를 뒤로 질끈 묶고 청바지에 운동화 그리고 백팩을 맨 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으로 남아 있으니까...


덧) 기억의 습작, 네버엔딩스토리 두 곡은 내가 노래방에 가면 늘 부르던 곡이다. 기억의습작은 과거의 네버엔딩스토리는 현재의 감정을 좀 더 담고 있지 싶은데 영화에 기억의 습작이 들어가 있던 점은 참 내게는 각별했달까...

덧)  예스24에 리뷰 올렸더니 한 편 더 보라는군요 :)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