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날에 한강을 걷는 것은 썩 기분내키는 일은 아니다. 딱히 해를 피할 곳도 마땅치 않기 때문인데 그래도 천천히 걸으며 주변을 돌아보면 평소에 보지 못 했던 사소함들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어 폭주행위를 금지하는 플래카드를 비웃는 비둘기떼라던가...


사람이 물에 빠지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배워볼 수도 있다. 부실해 보이기는 하지만 저것을 던지면 한 생명을 살릴 수 있다.


아무렇게나 서 있는 전봇대들은 이제는 그 기능을 모두 다 해 쓸쓸한 흔적의 하나로만 기억되고...


그 틈새는 지나가는 이들이 몰래 버린 시간의 찌꺼기들로 점점 차 오른다.


낡음이란 내쳐지는 것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녹이 슬고 제 기능을 하지 못 하게 되면 기억에서도 잊히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신세가 되고 만다. 이것은 비단 물건에만 한정된 일은 아닐 것이다.


비둘기들은 어느 장소, 어느 시간을 막론하고 존재하는데 가끔은 이 녀석들이 시간과 공간 모두를 지배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지난 시간을 뒤돌아볼 때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는 조연이 이 녀석들이기 때문이다.


Contax Aria, Carl Zeiss 35mm Distagon f/2.8, Ilford XP2, LS40


창경궁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날따라 결혼식 야외촬영이 많은 날이었다. 결과적으로 보는 사진은 신랑과 신부가 밝게 웃고 있는 사진들이지만 그 사진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제법 분주하고 한편은 피곤스러워 보였다. 결혼을 해 본 적이 없으니 야외촬영이 얼마나 많은 수고를 동반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신랑신부 모두 제법 힘들어보이는 표정. 

요즘은 디지털카메라가 일반적이니 사진에서처럼 중형 판형의 카메라를 쓰는 일은 없지 않을까 싶은데.. 아무래도 디지털보다 불리한 점이 많으니 한 컷을 찍는 데도 제법 많은 과정들이 필요한 모양이다. 나름 괜찮은 구도라고 생각해 찍었지만 호수 건너에서 35mm로는 무리.. 크롭을 해보니 좀 나아보이긴 하지만 표정을 담지 못한 점은 아쉬웠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차라리 표정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이 그래도 행복한 날의 사진을 담는 이들에게 예의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이동 중에 워낙 힘들어하는 분들이 많았기에..

일포드 XP2는 언제나 이렇게 부드러운 흑백을 그려준다..


Contax Aria, Carl Zeiss 35mm Distagon f/2.8, Ilford XP2, LS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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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의 도시가 밝을까 싶지만 사실은 밤의 도시가 더 밝다. 낮의 도시는 태양 아래 주어진 빛에 의해 보이는 풍광인 반면에 밤의 도시는 보여주는 빛에 의해 보이는 풍광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무엇인가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낸 빛.. 그 빛에 비친 세상은 낮의 그것과는 조금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순리대로라면 밤은 어둡고 캄캄해서 그 시간동안은 세상이 낮의 열기를 식히고 휴식을 해야 하지만 인간들의 욕망은 밤의 어둠을 멀리 걷어버리고 낮에는 보이지 않던 치부마저 선명하게 드러내버린다. 그래서 가장 편안해야할 밤의 시간은 욕망의 시간이 되어 버리곤 한다.


Contax Aria, Carl Zeiss 35mm Distagon f/2.8, Ilford XP2, LS40


헤어짐을 겪게 되면 아쉬움과 미련이 남기 마련이다. 그리고 대개 그 아쉬운 감정에 좀 더 마음을 많이 두곤 한다. 하지만 헤어짐 이전에 만남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자. 소중한 인연인 그 만남이 있었고 덕분에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애초에 그 만남이 없었다면 잠시나마 그런 행복을 느낄 여유도 가지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하자. 만남은 물론 이별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이별이 두려워 만남을 머뭇거릴 필요는 없다. 헤어진 후 느낄 허전함에 지레 겁먹는 것은 그 사람과의 인연의 가치를 떨어뜨려 버릴 뿐이다.

만나는 동안 행복했고 그 사람이 있었기에 미소지을 수 있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짧은 인생에 그런 기억을 간직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감사하자. 그리고 그 추억을 위해서라도 떠난 그 사람을 아쉬워해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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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이글은 지난 2006년도에 썼던 글이네요. 2006년도면 연애도 하지 않을 때인데 이런 글을 왜 썼는지... 아무튼 블로그 레이아웃을 변경하면서 사진들 크기를 수정할 필요가 있어 사진 카테고리의 글들만 조금씩 손 보고 있고 이곳에 올리지 않았던 원본 파일들을 찾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첫번째 글이 이별 이야기라 조금 민망스럽습니다. 하지만 원글이니 내용을 바꿀 수도 없고 해서 일단 그대로 복원(?)을 해봅니다.

콘탁스 기종은 처음에는 칼 차이즈의 T*코팅에 반해 사용을 했었는데 이후에는 흑백의 진득함에 많이 끌렸었죠. 지금은 사라진 메이커가 되어 아쉬움이 더 큽니다만... 칼 차이즈의 흑백과 라이카의 흑백은 그 느낌이 제법 다른데.. 이후 복원 포스팅을 보시면 아마 한눈에 구별이 되시리라 생각이 되네요.

사진들이 원판 필름을 스캔한 것이라 요즘처럼 보정이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아마 메이커나 필름의 고유의 색감을 파악해보는 재미도 쏠쏠하지 싶네요. 아무튼.. 필름 카메라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이 참 아쉽습니다. 충무로 사진 골목에서 방황하던 그 시절이 문득 너무나 그리워 집니다.

<덧> 그러고보니 언젠가부터 글의 제목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Contax Aria, Distagon 35mm f/2.8, Fuji Reala, LS-40



이곳을 기억하는 분들도 제법 되리라.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흔적이 되어 버렸지만...

나처럼 아날로그적인 인간은 늘 이런 장면에 더 많은 신경을 쓰게 되고 마음이 끌릴 수밖에 없는가보다.

신촌의 어느 길을 걸어도 지금처럼 화려한 네온사인이 많지 않았던 시절..

그 동네도 참 아날로그적이지 않았나 싶은데... 나로서는 가끔 들렀던 곳이니 자세한 속사정은 알 길이 없다.

아무튼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현실의 과거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은 때로는 묘한 기분에 빠지게 한다.

Contax Aria, Distagon 35mm f/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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