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보이지 않는 고릴라

크리스토퍼 차브리스,대니얼 사이먼스 공저/김명철 역
김영사 | 2011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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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것 같지만 불완전한 인간

농구공을 던지는 학생들이 있다. 학생들이 농구공을 서로 던지는 횟수를 헤아리라고 한다. 눈은 정신없이 학생들과 공을 따라다닌다. 횟수를 헤아리고 나면 질문자가 묻는다. 

중간에 등장한 고릴라를 보셨나요?

우리가 세상을 느끼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가장 큰 것은 시각이다. 우리는 눈으로 세상을 보고 정보를 입수하고 그 정보를 판단한다. 눈으로 보는 것은 맛이나 촉각 혹은 청각보다 진실이라고 믿기 쉽다. '무언가가 보인다'는 것의 위력은 그렇게 큰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감각은 생각보다 허점이 많다. 그리고 그 허점이 드러나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은 당사자의 마음에 있다. 우리는 흔히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말을 많이 한다. 이책의 가장 큰 줄기가 된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은 그 맹점을 짚어 내고 있다.

학생들이 공을 던지는 것에 온 신경을 집중하다보니 화면 중간에 등장하는 고릴라를 보지 못 한다. 어떻게 저렇게 또렷한 존재를 못 볼 수 있나? 라고 실험 후에 사람들은 이야기하지만 눈으로 들어온 정보를 우리 마음이 혹은 뇌가 차단해버렸기 때문이다.

이책을 읽는 동안 참 인간이라는 존재가 세밀하고 정교한 것 같으면서도 생각보다 오류가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생각해보면 책을 읽는 데 집중하면 외부의 소리를 듣지 못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는 데 그런 현상 역시 고릴라를 발견하지 못 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집중이나 자기 최면을 통해 망각이나 오류가 생길 수도 있지만 다른 면에서는 제법 긍정적인 면으로도 활용이 가능한 셈이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랄까?

아무튼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정보는 동일하지만 그 정보를 인식하고 해석하는 것은 뇌가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그 정보를 왜곡하는 경우가 우리의 일상에서는 생각보다 많이 일어나는 셈이다. 

운전 중에 전화를 한다던가 DMB를 본다던가 혹은 화장을 하면서도 '나는 괜찮겠지'라고 착각을 하는 것도 외부의 환경을 본인 스스로 극복할 수 있다는 착각에서 비롯된다. 

문제는 우리가 그 왜곡 혹은 착각을 확신하는 데서 자주 발생하는데 이책을 통해 그런 착각이나 오류가 생기는 상황들을 살펴보고 미리 대비할 수 있다면 이책을 읽은 보람은 충분히 느낄 수 있다고 생각된다. 

물론 이 이론을 악용해 국정감사나 청문회에서 정치인들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분명히 전달했다'는 식의 발뺌을 하는데 써서는 안 되겠지만 말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주석 부분을 전혀 번역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50페이지가 넘는 주석 부분은 본문을 이해하는데 있어 상당히 도움이 되는데도 김영사의 의도인지 번역자의 의도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 정보를 습득하는 것을 막고 있다. 이럴 거면 애초에 주석을 달지 않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다. 과거의 서평들을 보니 이 부분은 여전히 개선의 여지는 없어 보인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은 모두 희곡이기 때문에 한 번 읽어볼 양으로 책을 펼쳤다가도 쉽게 읽히지 않는 경험을 하고 나면 그저 제목만 기억할 뿐 내용은 아무래도 좋다는 식이 되기 십상이다. 내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아 햄릿은 그나마 서평을 쓰기 위해 완역판을 읽었지만 나머지 3편은 읽지 못했었다. 그리고 이번에 큰 마음 먹고 시도한 작품이 맥베스다.

4대 비극이라 불리는 작품들 중에 심리묘사가 가장 잘 된 작품을 꼽으라면 나는 '맥베스' 이책을 꼽는다. 햄릿을 꼽지 않은 이유는 그 머뭇거림이 때로는 구차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차라리 맥베스의 과단성에 조금 더 점수를 준다. 물론 이 생각은 현재의 내 심리상태를 반영한 것이니까 시간이 지나면 맥베스의 과단성을 무모함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맥베스에는 비현실적인 공간과 시간과 대상이 존재하는데 바로 마녀들의 존재다. 그리고 이 마녀들은 극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마녀들의 노래 중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아름다운 것은 추한 것, 추한 것은 아름다운 것. 안개 낀 더러운 대기 속을 날아다니자."

아름다운 것은 추한 것이고 추한 것은 아름다운 것이라니.. 한번에 와 닿지는 않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느 순간 이 문장이 확 와닿을 때가 있다. 이 문장만을 떼어 놓고 보면 이해하기가 쉽지 않지만 맥베스 전편을 읽어 나가다 보면 이 문장이 적절하게 사용되었다는 느낌이 온다. 

맥베스의 감정 변화, 맥베스 부인의 감정의 기복.. 첫장에 등장하는 충성과 반역, 마지막장에 등장하는 충성과 반역.. 아름다운 것이 곧 추한 것이고 추한 것이 곧 아름다운 것이라는 문장을 줄거리를 통해 보여주고 있었고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이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허나.. 이 문장은 이 희곡을 읽는데서 그치기에는 왠지 아깝다. 어쩌면 하루하루의 나의 삶 혹은 타인의 삶과 세상의 번거로움에 빗대어 보아도 크게 어색하지 않은 문장이다. 아니 바로 우리네 삶의 현장에서 이 문장은 1초도 거르지 않고 적용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특히나 '이익'이 끼어들게 되면 아무리 숭고한 이상과 생각일지라도 그것이 나의 이익과 어긋나면 곧 추한 것이 되고 비열하고 더러운 생각과 행동일지라도 나의 이익에 도움이 되면 아름다운 것이 되는 경우를 우리를 직접 삶 속에서 겪고 있지 않은가.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국가의 존망이 달린 일까지.. 그 영역은 무한대에 가깝지 싶다.

세상에 절대적인 진리라는 것이 있을까..라는 의문을 우리는 많이 가지지만 그에 대한 뚜렷한 대답은 하지 못 한다. 그러나 세상에 상대적인 진리라는 것이 있을까? 라고 묻는다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긍정할 수 있을 것이다. 맥베스는 그런 상대적인 진리 안에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인간의 심리를 꿰뚫고 있어 읽는내내 가슴이 찔리는 느낌이다. 

내면에 감추어둔 욕망을 비밀을 꿰뚫림당하면 불편한 법이다. 맥베스는 그런 불편함을 독자들에게 있는 그대로 선사한다. 장르는 다르지만 이전의 하루키가 그랬었고 그때의 하루키의 글에 나는 푹 빠지기도 했었다. 물론 지금은 그 궤도를 많이 벗어난 모습에 관망 중이긴 하지만..

번역은 제법 마음에 든다. 뭐랄까 상황상황의 격정적인 감정을 잘 살리고 있어 책을 읽어내려가는 동안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다. 그러나 이 또한 상대적인 것이니 번역자의 번역이 지나치게 극적이다라고 느끼는 분도 계시리라..

이제 4대 비극 중 햄릿과 맥배스에 대한 감상이 마무리됐다. 곧 이어 올라갈 글은 '오셀로'다 이번에는 민음사의 번역이다.



[도서]나는 궁금해 미치겠다

A. J. 제이콥스 저/이수정 역
살림출판사 | 2011년 07월



일단 책 제목이 독특했다. 이런 제목이면 한 번쯤 겉장을 넘겨 보게 된다. 책의 뒷표지와 띠지에 적힌 내용들 역시 궁금증을 자아낸다. 인간처럼 호기심이 강한 동물이 없는데 그런 면에서 이책은 제법 제목을 잘 정했다싶다. 

이책은 총 9가지의 작가의 실험으로 구성되어 있다. 온라인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남장여자 혹은 여장남자 행세는 제법 많은 이들의 공감을 자아낼만한다. 그리고 일상을 아웃소싱하는 실험은 누구나 한 번쯤은 바라는 일이 아닐까? 획기적으로 정직해보기 편은 조금 어색한 감이 있다. 정직을 표현하는 방법들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스타로 살아보기 편은 꽤나 흥미있는 주제였다. 만약 내가 장동건이나 원빈이 되어 하루를 살아본다면 이제까지 살아온 경험들보다 더 많은 것들을 하루에 느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일상에서 모든 편견과 오류 몰아내기 편은 조금은 억지스러운 면이 없지 않은데 아마도 주제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진행한 내용에 별로 공감이 가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누드모델 되기 편은 굳이 실험이라도 말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별 다른 느낌이 없었지만 이어지는 조지 워싱턴의 원칙대로 살아보기나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하기 편은 미국이 아닌 한국에 살고 있는 지금의 우리들도 한 번쯤 해볼만한 실험이지 싶다. 

무엇보다 이책에 실린 내용들이 실제로 필자가 실천한 내용이라는 점에서 자극이 된다. 우리는 많은 경우 '~했으면'이라고 생각만 하거나 공상을 하곤 하는데 그런 상상과 공상들을 직접 실천에 옮기는 일은 드물다. 필자의 여러 실험 중 내 입에 맞는 치약 찾기는 당장이라도 해 볼 수 있는 실험이지만 아마도 이런저런 핑계로(이 순간의 나 역시도) 실천에 옮기기는 어렵지 싶다.

우리는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길들여져 있다. 그러나 그 너무도 당연하다는 것에 대해 과연 진지하게 고민하고 생각해봤는지 되묻고 싶다. 남들이 당연하다고 하니까 나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그 방식과 그 틀에 자신을 맞추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필자는 그런 당연함에 의문을 제기했고 단지 의문을 제기하는데 그치지 않고 직접 자신이 경험을 해보기로 한 것이다. 주제나 내용이야 어쨌건 그와 같은 실천에 많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 이책을 읽는 내내 '과연 나는 어떻게 하고 있나?'라고 나 스스로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던졌다.

부록은 제법 신선하다. 본문에서 필자가 직접 사용했던 조지 워싱턴의 110가지 원칙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책들이 본문에만 이러저러하다고 적어 놓고 정작 독자들이 그 방법 혹은 출처를 찾아볼 기회를 주지 않는데 이책에는 당장이라도 바로 실천에 옮겨볼 수 있는 원칙을 적어 놓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필자가 한 방식을 그대로 따라가지 않고도 나만의 110가지 원칙 실천법을 만들 수 있다.

그럼에도 뭐랄까.. 끝내 아쉬운 것은 작가의 주관이 너무 많이 들어있다는 점이다. 물론 온전히 작가의 창의적인 실험만으로 이루어지다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하지만 여러 실험들에 좀 더 객관성을 부여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실험 자체에 대한 내용 외에 별로 필요치 않은 사족들도 곳곳에서 눈에 보여 아쉬웠다. 

하지만 이 역시 나의 주관일 뿐이다. 필자가 실험한 9가지 외에도 우리는 더 많은 창의적인 실험을 할 수 있다. 이책은 그런 실험을 바로 지금 할 수 있는 동기를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충분히 매력적이다.




책을 읽는 데 기술이 필요한가? 라고 이전에 스스로 질문을 해 본 적은 없다. 어릴 적부터 그저 손에 잡히는대로 책을 읽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교과서라면 사정은 달라서 밑줄도 긋고 노트에 요약도 하며 읽지만 수험용 책이 아닌 일반 서적을 그렇게까지 정성을 들여(?)읽지는 않았던 것이다.


생각해보니 그렇게 읽은 책들은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곧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감동을 많이 받았거나 완전히 새로운 지식을 습득해 나 스스로 감탄한 정도가 아니면 얼마 후에는 이책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가물가물해지고 나중에는 분명히 읽은 기억은 있음에도 내용이 생각나지 않는 난감한 상황을 겪게 되곤 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이었을까?

분명 무언가 내 독서 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정확히 그 문제점은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을 하면 좋을지 문제 의식만 가질 뿐 굳이 해결해야겠다는 적극적인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접한 책이 애들러의 '독서의 기술'이다. 마치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연상시키는 책 제목인데 '사랑의 기술'이 그러하듯 도대체 책을 읽는데도 기술이 필요한가에 대한 의문을 증폭시키는 제목이었다.

책장을 넘겨갈 수록 처음의 생각, 그러니까 책을 읽는데 기술따위는 필요없어! 라는 내 생각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이런, 내가 왜 읽은 책이 다시 기억이 나지 않는지 이제 이해가 가는군..' 출근길에 지하철에서 스스로 감탄을 했다.

책 자체의 느낌은 조금 낡은 느낌이다. 범우사에서 출간된 이책은 번역체도 다소 딱딱하고 종이질이라던가 디자인도 어쩐지 오래되어 보인다. 거기에 제목까지 독서의 기술이니 어지간해서는 책장을 넘기기 힘든 책임은 분명했다. 그럼에도 내가 이책을 끝까지 그리고 줄을 치며 메모를 해가며 읽은 것은 그동안의 잘못된 독서 습관에 대한 반성은 물론이고 이제부터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내 나름의 방향을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번역이 조금 오래된 맛이 있기는 하지만 책장을 넘기기에 어색할 정도는 아니어서 중고등학생들도 조금만 집중을 하면 읽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이책은 중고등학생들에게 적합하기도 하다. 단지 수험 목적이 아닌 앞으로 대학에서 학문을 해 나가는데 있어 참 많은 시사점이 될만한 내용들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애들러의 일종의 독서의 공식은 일반론이다. 자기 스스로 이 방법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서법을 찾고 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흔히 물고기가 아닌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말을 하는 데 내 생각으로는 바로 이책이 그 방법을 가르쳐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자세히 책을 읽다보면 이미 본인이 알고 있는 내용들도 상당수 될 것이다. 책을 읽어 나갈 때 메모를 한다던가 주제를 뽑는다던가 목차를 먼저 읽고 요약을 해본다던가 하는 내용이다. 뻔히 알고 있는 내용임에도 오히려 우리는 실천에는 더디다. 애들러는 그 점을 정확하게 짚고 있고 나아가 우리가 뻔히 알고 있는 것들을 이어붙여 완성된 독서로 이르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열심히 책을 읽고는 있는데 도무지 내가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곤란을 느낀다면 다른 책은 일단 접어두고 이책을 읽기를 권한다. 그리고 이책을 읽어나갈 때는 애들러가 제시한 독서의 기술을 바로 적용해서 읽어보기를 권한다. 어쩌면 지루하고 단순한 작업의 연속일 수도 있겠지만 그 작업을 마친 후 상당히 진보해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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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글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면 먼저 스스로를 드러내고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인식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그가 많은 지식으로 무장을 하고 있더라도 기본이 되어 있지 않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짧은 지식과 숫자놀음..화려한 형용사로 현학적인 글로 상대방을 비난해봤자 스스로의 위선을 드러내는 것외에는 별것도 아니다. 비평과 비난의 차이조차 모르는 그런 글을 굳이 내 블로그에 남겨둘 이유가 없어 삭제한다.


호밀밭의 파수꾼10점

공각기동대 1기를 본 사람이라면 '웃는 남자'의 로고를 기억할 것이다. 그런데 테두리에 뭐라고 씌여져 있는 영문을 자세히 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애니 상에서 이 로고는 계속 회전하고 있기 때문에 화면을 멈추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는 수고를 해야 비로소 전문을 이해할 수 있다.

I thought what I'd do was, I'd pretend I was one of those deaf-mutes.

라고 적혀 있는 이 문장은 공각기동대 1기를 관통하는 주제다. 원문의 출처는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The Catcher in the Rye, 1951)이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여러가지면에서 역사에 미친 영향이 지대한 작품이다.

영화나 음악은 물론이고 존 레논의 암살범인 마크 채프먼이 암살 동기로 지적하기도 한 것은 익히 알려진 바와 같다. 그동안 제대로 보지 못했던 책 중의 하나라 모처럼 시간을 내어 읽어내려갔다. 줄거리와 대략적인 주제는 알고 있었기에 이번에는 행간을 읽는 작업에 주력했다. 책이건 음악이건 그것을 받아들이는 주체의 심리적인 상태에 따라서 느낌은 매번 다르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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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읽을 때 느껴졌던 10대의 방황과 호기심, 일탈에 대한 욕구와 환상이 이번에 읽을 때는 '자유로의 도피'라는 주제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만약 이 책을 단지 남들이 권해서 혹은 공각기동대의 모티브가 되었던 책이라는 점에서 구해보는 것은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 않다. 시대적인 배경도 오래 전이고 10대 소년이 느끼는 감정의 기복이나 다소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 설정, 그리고 미국적 문화 패턴에 대한 압박이 독서를 더디게 하거나 짜증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남들이 대단하다고 느끼는만큼의 이미지가 자신에게 다가오지 않음에 대한 좌절을 맛볼 수도 있는 책이 이 책이기 때문이다. 마치 외눈원숭이 나라에 두눈원숭이가 방문한 것처럼 말이다. 남들은 다 감명깊게 읽었다는 데 내가 보기에는 영 아닌데..라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면 오히려 이 책을 제대로 읽은 것이다.

적어도 이 책을 이해하려면 3번은 봐야할 것같다. 처음 읽을 때의 짜증과 답답함이 두 번째 읽을 때는 호기심을 다가오고 세 번째 읽을 때는 감정의 동화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나는 번역본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번역가에 따라서 원문의 의미를 잘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고 도무지 현실에서는 쓰지도 않을 문장들을 읽고 있자면 내용보다 활자에 연연하게 되니 말이다. 영어가 딸리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겠지만 가능하다면 원서로 읽기를 추천하는 책 중의 하나다.
http://ilifelog.net2009-03-16T04:33:550.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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