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입니다. 라고 이제는 이야기를 해도 좋으려나요? 그렇지만 아직도 한낮에는 여름을 쉽사리 놓아버리지 않으려는 계절의 마지막 안간힘이 느껴지네요. 그렇지만 강하게 내리쬐는 햇살도 한여름이 그것마냥 따갑지는 않은 그래서 어쩐지 가는 여름이 아쉽기도 한 그런 계절이 요즘이 아닌가 합니다.

사진은 원어의 의미가 알려주듯 빛의 예술이지요. 그리고 보통 자연의 빛의 변화무쌍함을 가장 많이 느낄 수 있는 시간은 해 뜨기 전과 해 지기 전입니다. 맨 처음의 사진과 바로 위의 사진의 빛이 얼마나 다른지요. 같은 하늘이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렇게 다양한 색으로 보는 이들을 유혹합니다. 게다가 바람마저 불어준다면 그 기분이란..^^

같은 장소에서의 노을도 해가 떨어지는 속도에 따라서 정말 다양한 빛의 변화를 보여줍니다. 사실 이 시점에서 마음에 드는 사진을 잡아내려면 브라케팅 연사가 제일 좋은데 필름 시절에는 한 컷 한 컷이 500원짜리 동전 떨어지는 소리와 비슷한지라 연사란 그저 부유한 이들이나 할 수 있는 사치로 여겨졌지요. ^^

가난한 사진가는 브라케팅은 '아, 그런 기능이 있어!'라고 여기고 스팟 노출로 하늘을 잡는 것이 그나마 뭔가 건져볼 수 있는 기회기도 했었습니다. 물론 디지털 시대가 된 지금은 브라케팅이란 아주 일상적인 작업 중의 하나가 되어 버렸으니 이걸 좋다고 해야할지 사실 이야기하기는 애매합니다. 사진이 쉬워진만큼 소위 건질 수 있는 사진은 필름 시절보다 확실히 줄어들었으니까요.

제가 사진을 좋아하게 된 계기 중 하나는 외로워서였더랬습니다. 사진을 찍고 있으면 혼자라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였지요. 물론 기계 자체에 대한 흥미도 제법 큰 편이지만 뭐랄까 세상사의 번잡함같은 골치 아픈 것들이 사각 프레임 안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전혀 생각나지 않았기에 사진에 빠졌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래서는 좋은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죠.

사진에는 사진가가 셔터버튼을 누르는 순간의 감정이 그대로 실려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온 정신을 집중해 네모난 그림을 만들어내고 그 안에 마음을 담아 만들어내는 것이 사진인데 당연히 사진가의 감정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이죠. 만약 사진에서 그런 느낌을 얻을 수 없다면 온전한 자신의 사진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닐까요?

아무튼 그런 과정을 겪고 나서야 사진을 좀 더 가깝게 그리고 마주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진을 찍을 때는 온전히 그 시간에 그 장소에서 제가 받은 느낌만을 담아내도록 신경을 씁니다. 그래서 저는 카메라를 들고 어딘가를 나가도 가방에서 전혀 꺼내지 않을 때도 있는데 마음속에 뭔가 불필요한 감정들이 많을 때 주로 그렇게 합니다.

아마 사진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나름대로의 생각들을 가지고 계실텐데 저라는 사람은 이렇다..라는 것을 적다보니 좀 길어졌네요 ^^; 자, 이번 사진들은 코닥의 수프라라는 필름입니다. ISO100인 이 필름은 후지의 리얼라와 함께 네가티브 필름의 쌍벽이랄까..아무튼 그런 느낌을 주는 좋은 필름입니다. 코닥 특유의 붉은 기운을 잘 살리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필름이지요. 후지의 푸른색이냐 코닥의 붉은색이냐는 역시 그날의 분위기에 따라 달라집니다. ^^


Canon Eos-1Vhs, EF 28-70mm f/2.8LKodak Supra, LS-40

가끔 제 사진에 보면 위와 같이 장비를 적어 두는 경우가 있는데요. 이건 제 기억을 남겨두자는 차원도 있고 혹시 어떤 장비가 사용되었는지 궁금해하시는 분이 있을까 싶어 적어 두는 것입니다. 순서대로 설명드리면.. 

Canon Eos-1Vhs: 카메라 바디의 제조사가 캐논이고 Eos-1Vhs라는 바디라는 이야기입니다.

EF 28-70mm f/2.8L: 사용한 렌즈의 이름인데 해당 제조사의 공식 명칭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습니다. 2개 이상의 렌즈가 사용될 때도 많은데 보통 1개만 대표적으로 적어 둡니다. 

Kodak Supra: 사용한 필름의 제조사와 보통 부르는 별칭을 적어 두었습니다.

LS-40: 제가 사용한 니콘의 쿨스캔 필름 스캐너의 이름입니다.



비가 제법 많이 내리는 날이었는데 갑자기 내린 비였습니다. 저곳은 마을버스를 타는 곳인데 아가씨 한 명이 어쩔 줄을 몰라하며 내리는 비를 그대로 다 맞고 있더군요. 표정은 잘 안 보이지만 뭐랄까 황당하다는 웃음... 비가 올 것 같지 않았는데 갑자기 쏟아지니 어쩔 수가 없었던 거죠.

뒤의 천막에라도 가 비를 피하면 되지 않겠나 싶지만 이미 워낙 많이 맞은터라 이제와서 비를 피해봐야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살다보면 그럴 때가 있죠. 자신이 예상한 것보다 더 많은 일들이 한번에 터져버려서 그저 손을 놓고 쏟아져들어오는 것들을 온몸으로 받아낼 수밖에 없는 순간..

아마도 그 당시 저분의 마음은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이제와 생각을 해봅니다. 딱 10년 전의 사진인데 동네도 지금과는 너무나 다릅니다. 지금 저곳에 가보면 남아있는 가게는 하나도 없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하지만 요즘은 3년정도면 강산이 변하는 것 같네요. 아니 스마트폰 한대가 새로 나오는 1년이면 변할까요?

흑백은 요즘과 같은 시대에 아련한 향수처럼 다가옵니다. 일전에 앞으로 가능한 흑백 촬영을 하겠다 했었는데 이전의 사진 스캔 폴더를 뒤적여보면 생각보다 흑백사진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흑백 필름은 스캔작업이 제법 까다로운데 그래도 그 당시에는 재미가 붙어 열심히 했던 것 같습니다. 이 사진은 후지 리얼라가 원판이고 사후에 라이트룸에서 레드 필터를 적용시킨 것입니다.


Contax T3, RealaLS-40 film scan


헤어짐을 겪게 되면 아쉬움과 미련이 남기 마련이다. 그리고 대개 그 아쉬운 감정에 좀 더 마음을 많이 두곤 한다. 하지만 헤어짐 이전에 만남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자. 소중한 인연인 그 만남이 있었고 덕분에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애초에 그 만남이 없었다면 잠시나마 그런 행복을 느낄 여유도 가지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하자. 만남은 물론 이별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이별이 두려워 만남을 머뭇거릴 필요는 없다. 헤어진 후 느낄 허전함에 지레 겁먹는 것은 그 사람과의 인연의 가치를 떨어뜨려 버릴 뿐이다.

만나는 동안 행복했고 그 사람이 있었기에 미소지을 수 있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짧은 인생에 그런 기억을 간직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감사하자. 그리고 그 추억을 위해서라도 떠난 그 사람을 아쉬워해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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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이글은 지난 2006년도에 썼던 글이네요. 2006년도면 연애도 하지 않을 때인데 이런 글을 왜 썼는지... 아무튼 블로그 레이아웃을 변경하면서 사진들 크기를 수정할 필요가 있어 사진 카테고리의 글들만 조금씩 손 보고 있고 이곳에 올리지 않았던 원본 파일들을 찾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첫번째 글이 이별 이야기라 조금 민망스럽습니다. 하지만 원글이니 내용을 바꿀 수도 없고 해서 일단 그대로 복원(?)을 해봅니다.

콘탁스 기종은 처음에는 칼 차이즈의 T*코팅에 반해 사용을 했었는데 이후에는 흑백의 진득함에 많이 끌렸었죠. 지금은 사라진 메이커가 되어 아쉬움이 더 큽니다만... 칼 차이즈의 흑백과 라이카의 흑백은 그 느낌이 제법 다른데.. 이후 복원 포스팅을 보시면 아마 한눈에 구별이 되시리라 생각이 되네요.

사진들이 원판 필름을 스캔한 것이라 요즘처럼 보정이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아마 메이커나 필름의 고유의 색감을 파악해보는 재미도 쏠쏠하지 싶네요. 아무튼.. 필름 카메라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이 참 아쉽습니다. 충무로 사진 골목에서 방황하던 그 시절이 문득 너무나 그리워 집니다.

<덧> 그러고보니 언젠가부터 글의 제목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Contax Aria, Distagon 35mm f/2.8, Fuji Reala, LS-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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