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자의에 의해서건 혹은 타의에 의해서건 꼭 가보고 싶었던 길을 걷지 못 하게 되는 일이 종종 있다. 대부분 '할 수 없지'라고 생각하고 잊고 사는 것이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생각하면 바람직한 일이지만 그래도 못내 아쉬움이 남은 그길에 대한 동경과 아쉬움은 특히나 일상에 지치고 사람에 치일 때면 불쑥 머리를 강하게 치고 지나가곤 한다.

그래서 '아, 전에 그길을 갔더라면 지금 이렇지는 않을텐데...'라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 정말 생각지도 않게 그길을 다시 가야 하는 상황이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지면 그 감격이란 참 대단한 것이다. 물론 그길이 언제나 쭉쭉 뻗어있는 신작로가 아닌 그리고 아제까지 살아온 삶의 어떤 모습보다도 힘든 여정임을 잘 알고 있더라도 말이다.

몇 번인가를 돌고 돌아 다시 여기 섰다. 막상 서 보니 두려움도 생긴다.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반드시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하던 일이 현실이 되니 두려운 것이다. 사람이란 이렇게 간사하다. 늘 손에 닿을 수 없는 것을 바라고 희망한다. 그러면서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과 가고 있는 길에 대해 불만을 늘어놓곤 한다.

이제 다시 그길에 서서 나는 어떤 삶을 살 수 있을까 내게 물어본다. '돌아만 갈 수 있다면...'이리고 늘 바라기만 했던 그 여정의 출발점에 이제 나 홀로 서 있다. 오래 전 묻어두었던 길인지라 어디부터가 길의 시작이고 가장자리인지 보이지도 않고 이정표조차 세월의 무게를 버티지 못해 쓰러져 있는 이길에 단지 내 몸뚱이 하나만 가지고 서게 됐다.

이제 흔한 문구를 인용하며 걸어나가는 수밖에


"운명아 비켜라 용기 있게 내가 간다!" -니체


Nikon D300, AF NIkkor 35mm f2.0D


제법 오랜 기간 이 블로그의 이름은 Vogelfrei였다. 니체에서 시작한 내 독서의 결과물 중의 하나랄까.. 독일어가 주는 특유의 건조한 발음과 웬지 있어보이는 듯(그만큼 유치했었던) 해 무작정 블로그의 이름으로 정한 지도 수년이 지났다. 그리고 오늘 블로그의 이름을 바꾸었는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아예 도메인을 하나 구입해 덜컥 앉혀버렸다. 지금 블로그의 주소가 곧 블로그의 이름인데 Snowroad.. 눈을 좋아하고 길을 좋아하는지라 연결이 되는대로(팔리지 않은 도메인이 있는 조합으로 문법은 무시할 수밖에..) 만들다보니 이렇게 됐다.

눈과 길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고. Vogelfrei에 대한 이야기가 이글의 주제니 그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나의 삶 자체가 그렇게 무엇인가 멀리 있고 위에 있는 것을 지향했었던 것 같다. 자연 현실에 집중하고 현실에 충실해지기 어려웠고 지금 발을 붙이고 있는 땅을 도외시하고 늘 하늘만 바라보다보니 현실도 미래도 모두 붕 떠 버린 그런 삶이었지 싶다. 분명 하늘을 날고 있는 자유로운 새가 내 눈 앞에 보이는데도 그곳에 오를 수도 그 새를 잡을 수도 없었던 지난 시간들.. 그저 바라보기만 할 수밖에 없었던..어쩌면 절망적인 순간들을 하루하루 이어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얻을 수 있었던 그리고 얻은 것보다 읽은 것들, 잃어가는 중인 것들이 더 많다는 자괴감에 무척이나 시달렸는데 냉정하게 들여다봐도 잃은 것이 많았다. 최근 들어 더 이상 잃기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마저 떠나보내고 나서 드는 생각은 나 스스로의 그런 강박관념이 현실에서 내게 주어진 행복조차도 잡지 못 하게 한 것이라는 것.

항상 후회를 하고 정신을 차리지만 또 같은 실수를 하고 다시 후회를 하는 것이 또한 인간의 평범한 삶이라고는 하지만 나는 내 내면의 아주 은밀한 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무언가가 늘상 문제였다. 결국 보이는 것에서부터 변화를 주자고 생각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을 아무리 뒤적이고 뒤짚어보는 것보다 당장 내가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그런 것들부터 바꾸어가기로 했다.

물론 이런 시도가 끝내 성공을 해서 그동안 나를 붙들고 있던 멍에를 내려놓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전보다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자유로운 새를 쫓아갈 수는 있을테니 아무 것도 안 하고 하늘만 바라보는 것보다 내 몸을 가볍게 해 몇 번이고 뛰어 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

아무튼 어쩌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Vogelfrei라는 이름은 사라졌다. 

덧.. 또 하나 남아있는 것은 내 이메일주소인데 워낙 연결된 것들이 많아 시도는 해봤지만 바꾸기가 쉽지가 않다. 언젠가는 분명히 바꿔야할 것 중의 하나다. 



빨래집게는 어느 방향으로 있는 것이 정상일까?

평소의 빨래집게는 집게가 하늘을 보고 있다.

그리고 양말이라도 한짝 집으려면 집게가 땅을 향한다.

빨래를 집으라고 존재하는 것이니 땅을 보는 것이 마땅하다 해야할까

아니면 줄에 걸었을 때 가장 자연스러운 하늘을 보고 있는 것이 마땅하다 해야할까


오래 전 필름 스캔 폴더를 뒤적이다보면 별별 사진들이 다 나오는데 그 사진을 찍을 당시의 느낌을 이미 잊었다면

지금의 느낌대로 그 사진을 해석해도 괜찮으리라. 어차피 사진을 찍은 것은 '나'니 말이다.

어쩌면 그 당시의 나와 현재의 나가 전혀 다른 존재라는 모 철학자의 의견에 따르면

과거 내가 찍은 사진을 내 마음대로 해석하는 것은 촬영자에 대한 모독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아무려면 어떨까.. 어차피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를 생각한 적이 없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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