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오래 찍어오고 있지만 내게 꽃사진은 거의 없다. 애초에 꽃에 대한 관심이 적었다는 표현이 어울리지 싶다. 오래 전 접사를 시도해봤던 때를 제외하곤 풍경 전체에 꽃이 들어가는 경우는 있어도 꽃 자체만을 프레임에 담지는 않았다. 왜 그랬을까? 라는 물음이전에 '꽃'이라는 개념 자체가 내 사진에는 없었던 셈이다.

대개 내 사진의 주제는 하늘, 바다, 길.. 그런 것들이 주를 이루었고 대체로 내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 조금은 우울한 느낌의 흔적들을 만들어냈다. (이 블로그의 사진들 대부분이 주는 그런 느낌말이다) 아마도 그런 일종의 선입견이 나로 하여금 꽃이라는 화려한 혹은 긍정적인 피사체를 무의식 중에 경계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어쩌면 내 삶에서 또 한 번의 괴롭다면 괴로운 시기에 나는 꽃을 발견했다. 이전에는 눈에도 들어오지 않던 꽃들이 하나 둘 내 눈 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상당히 큰 변화다.. 꽃을 파인더로 들여다보면 우울한 감정의 그림은 여간해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하늘이나 길이나..바다나 구름 같은 것들은 어느 정도의 감정이입이 되면 제법 우울한 그림이 나오지만 꽃은 파인더 너머로 그 자태가 보이는 순간 내가 그 힘에 압도되기 때문이다.

사실 사진가가 피사체에 압도되면 원하는 사진을 만들어낼 수 없다. 아니 그렇게 믿고 있었다. 적어도 스스로의 사진을 찍는다면 피사체를 내가 원하는 대로의 이미지로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꽃은 그런 나의 시도를 번번히 무산시킨다. 그리고 내게 역으로 그림을 그려내라 요구한다. 그러면 나는 내 의지는 접어 두고 꽃이 원하는 그림을 그려내려 노력하곤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이 어쩐 일인지 거부감이 생기지 않는다. 

고집스러웠던 사진의 습관이 깨지는 계절.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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