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대학로 사진입니다. 2003년이니 햇수로는 10년 전이네요. 지금의 대학로와는 또 다른 모습이지요. 요즘도 저런가 모르겠지만 대학로에는 천막을 쳐 놓고 점을 보는 간이 점집(?)들이 많았습니다. 문득 점이라는 게 어떤 것일까 생각을 해 봅니다. 미래를 내다 본다는 것은 아마 인류가 지구상에 생긴 이래로 가장 중요한 관심사 중의 하나는 아니었을까요? 하지만 당장 1분 후의 일도 알지 못 하는 것이 사람이지요. 무엇인가 알 수 없다는 것에 대한 불안이 '점'에 대한 수요를 만든 것이겠지요. 죽음 역시 사람이 겪어볼 수 없기에 막연한 두려움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점을 보는 것은 대개 현실에 불만이 있거나 너무 행복한 경우로 나뉘지 않을까 싶습니다. 현재가 막막하기에 앞으로는 좀 나아질까 싶어 점을 보기도 하고 현재가 너무 만족스럽기에 그 만족이 얼마나 더 지속될 수 있을까 알고 싶어지는 것이지요. 결국 궁극적인 이유는 앞서 적은 '알 수 없음에 대한 불안'이지요. 불안의 이야기가 나오니 프로이트의 격리에 관한 이야기와 알랭 드 보통의 책이 떠오르는데 찬반의 의견이 있겠지만 불안이 격리(떨어짐)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에는 제법 공감하고 있습니다.

'점'을 치는 것도 어찌 보면 이 격리되지 않으려는 의지와 관계가 있을 것 같습니다. 독야청청 홀로 살아간다면 굳이 점을 볼 일은 없겠지요. 하지만 누구와 살아야 한다거나 어떤 조직에 들어가야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관계'를 맺으려는 의지 그러니까 격리되지 않으려는 의지가 강해지면 불안이 생기는 거죠. 그렇게 생각하면 점을 보는 것을 그저 구시대의 풍습이라고 치부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뭔가를 모색하는 과정으로 긍정적으로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점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니 저도 무언가 '불안'하거나 혹은 '관계에 대한 의지'가 있는 모양입니다. 그렇다고 점을 보러 나가거나 타로카드를 펼쳐놓지는 않습니다. 번거로움에 대한 습관적인 거부감도 있지만 무엇보다 '알 수 없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큰 동기부여수단이라고 생각하는 까닭이지요. 미래를 알 수 있다면 현재를 적극적으로 살아갈 의지를 잃게 마련입니다. 애매모호함과 불확실함.. 삶은 결국 이런 모양인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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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진은 전형적인 흑백 필름입니다. 일포드사의 FP4라는 필름인데 ISO125의 특이한 필름이지요. 자주 사용하던 XP2에 비해 소위 선예도가 높고  콘트라스트가 강한 경향을 보이는데 라이카와 결합하면 이렇게 더 강한 이미지가 구현됩니다. XP2는 크로모제닉 특성을 가진 필름이라 전반적으로 부드러운 느낌이 강한데 FP4의 경우는 노출에 제법 민감한 모양을 보이는 흑백필름입니다. 두 사진 모두 노출은 언더로 잡았는데 조금 우울한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Leica M6, Summicron 35mm f/2.0 asph, Ilford FP4, LS-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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