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잉크는 일단 자부심이 대단해보입니다. 블랙이라는 문구도 없이 'carbon' 이 한 단어뿐입니다.



전반적인 잉크의 느낌은 점성이 제법 높습니다. 잉크가 번지지 않고 한곳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입니다.



Brause 361입니다. 워낙 많이 써서 닙이 다 닳았네요. 수명이 그리 길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잉크의 색을 보세요.



제가 사용해 본 검정 잉크 중에서 이렇게 진하게 나오는 잉크는 처음이네요. 글은 햄릿이 자기를 버린 것을 탓하는 오필리어에게 하는 대사 중의 한 부분입니다. 원래 자기 성질이 그 모양이라 당신을 사랑한 적이 없다고 하는군요..


몽블랑이 잉크 흐름이 좋은 덕에 빡빡한 카본도 이어 쓰는데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만 굵기 적응이 안 되어서 들쑥날쑥합니다. 세필 펜에 카본을 넣었더라면 자연스러운 이어쓰기는 어렵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까렌다쉬 잉크는 세 병이 있는데 가장 놀란 잉크는 이 카본입니다. 물론 블루 스카이의 경우도 상당한 진함을 보여주긴 했지만 이 잉크만은 못합니다. 진하기로 말하면 정말 최고가 아닐까 싶습니다. 진한 검정으로 유명한 오로라는 이 잉크에 비하면 흐릿한 수준이고 몽블랑이나 파커 퀸크는 물 빠진 검정 수준이 되어 버립니다.. 아직 누들러 잉크는 써보지 않아 비교는 할 수 없지만 카본을 따라오기는 어렵지 않을까..추측만 해봅니다.

까렌다쉬 잉크가 상당한 퀄리티를 보임에도 역시 높은 가격과 30ml라는 적은 양은 쓰는 이에게 제법 부담을 줍니다. 그럼에도 종이 위에 표현되는 색을 보고 있자면 그 비용이 크게 아쉽지는 않을 듯합니다. 또 무척이나 무거운 잉크병은 문진으로 쓰기에도 아주 좋습니다.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필기구의 경우는 자기 손에 맞는 것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글씨만 잘 써지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글쓰기를 즐기는 그리고 만년필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경우라면 내 손에 맞는 그리고 내 글씨를 제일 잘 표현해 줄 수 있는 펜을 찾기 위해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게 됩니다.

한참 카메라에 빠져 있을 때에도 내게 맞는 장비를 찾기 위해 참 많은 노력이 들었었는데 만년필에 와서도 역시 같은 과정을 거치게 되더군요.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비교적 빠른 시간과 적은 비용으로 손에 맞는 펜을 찾았다는 점입니다.


이번에 영입한 펜은 146라인 중 P옵션이 붙은 펜으로 클립과 장식부가 크롬 처리된 펜입니다. 흔히 CT(Chrome Trim)라고 불리지요. 저는 금장보다는 이런 스타일을 좋아하는데 일전에 소개한 펠리칸의 경우도 205 즉 CT였습니다.



몽블랑 마이스터스튁 라인은 146까지도 닙은 14K입니다. 149로 올라가야 18K를 사용하는데 실제 사용에 있어서는 14K가 부담은 덜한 편입니다. 금 함량이 높아지면 아무래도 닙이 쉽게 다칠 우려가 많지요. 물론 필자에 따라서는 금의 함량이 높은 것을 좋아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막상 찍어 놓고 보니 지포와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군요.. 저 지포가 약간 특이한데..티타늄 도금이 된 녀석입니다. ^^



146의 닙은 시대에 따라 그 모양과 디자인이 변해왔는데 80년대 146의 경우는 닙이 단색입니다. 단색의 경우를 보통 원톤닙, 현대 146처럼 금과 백금이 혼합되어 있는 경우를 투톤닙이라고 합니다. 닙에 세공된 글자나 문양은 아무래도 현대펜이 보다 선명합니다.



왼쪽이 구형 146이고 오른쪽이 오늘 들어온 신입인 현대 146입니다. 클립 부위의 색으로 GT(Gold Trim)와 CT를 구분합니다. 몽블랑에서는 P 즉 Platinum이라는 단어를 써서 이를 구별하지만 P모델이 가격이 약간 상위일 뿐 근본적인 차이는 없습니다.


 
많은 분들이 현대의 몽블랑의 닙 디자인이나 색상보다 구형 닙을 선호합니다. 디자인이나 색상은 단조롭지만 오히려 그 모습이 더 인간적이라는 생각에서죠. 역시 현대의 몽블랑은 정감어린 느낌이 든다기보다는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는 기계적인 느낌이 드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자필은 적지를 못했는데 세척을 하고 말리는 중이라 그렇습니다. 시필을 해 보니 현대 EF는 확실히 구형 EF보다 굵게 나옵니다. 하긴 몽블랑 만년필에서 글씨의 굵기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는 일이긴 하죠.

대충 이렇게 해서 제 만년필 라인업(?)은 구성을 1차적으로 마쳤습니다. 146은 흑색 계열, M205가 청색 계열 잉크를 사용할 예정이고 국내 저명한 닙마이스터께 폴리싱을 의뢰한 팔콘이 도착하면 세밀한 문서 작성용으로 쓸 예정입니다.  


결국 145를 헐값에 분양하고 들여놓은 펜은 80년대 후반으로 추정되는 146이다.

146은 만년필史에서 가장 밸런스가 좋은 펜 중의 하나로 꼽히는 펜인데 149가 크기 때문에 실사용에서 조금 부담스러운 점이 있는 데 반해(물론 149의 큼직함을 좋아하는 분들도 많이 있다) 무게나 그립감은 물론이고 전체적인 균형이 가장 잘 잡혀 있어 실사용으로 적당한 펜이다.



구형 146의 경우는 닙이 현대 146과는 달리 원톤닙으로 되어 있다. 70년대의 146이 상당한 플렉시블함을 보여주는 것에 비해서는 약하나마 탄성도가 있는 편이어서 필압에 따라 제법 재미있는 글을 쓸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현대 146은 EF닙의 경우에도 상당히 굵게 나오는데 반해 구형 146은 상당히 얇은 필기가 가능하다. 이것은 몽블랑 만년필의 특징 중의 하나인데 빈티지 쪽으로 갈 수록 닙의 품질이나 탄성도가 좋다. 그래서 만년필 동호인들은 빈티지 몽블랑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기도 한다.



현대 몽블랑의 경우는 뭐랄까 인간적인 면이 상당히 빠진 삭막한 도시적인 느낌을 주는데 반해 구형 몽블랑의 경우는 장인의 손놀림이 느껴진다고 말하면 좀 거창하지만 인간적인 면이 제법 느껴진다.



조금 아쉬운 것은 몽블랑의 가장 큰 장점인 풍성한 잉크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두줄 에보나이트 피드를 구하지 못했다는 것인데.. 이런 것들이 결국 또 다른 지름신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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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이 애초에 유럽에서 발명된 필기구이기 때문에 영문 계열의 언어를 필기하기에는 좋지만 한글이나 한자와 같은 동양문화권의 문자를 쓰기에는 쉽지가 않습니다. 이유는 간단한데 대부분의 유럽형 만년필이 글씨가 굵게 나오기 때문이죠. 글이 굵다보니 우리말의 받침이나 한자를 쓰기가 어럽습니다. 이런 난점을 극복한 만년필이 일본산 만년필입니다. 파이로트, 플래티넘, 세일러 3사의 펜들은 펜촉을 아주 가늘게 세공한 제품들을 내놓고 있습니다. (파커에서 한글을 쓰기에 좋다는 '복'이라는 제품을 내놓기도 했었지만요)

오늘 소개할 제품은 세일러의 프로기어슬림입니다.



첫 느낌은 가볍고 통통합니다. 크기도 상당히 작은 편이어서 들고 다니기에도 아주 무난합니다. 가격대도 비슷한 급의 유럽산 만년필에 비해서는 저렴한 축에 듭니다.


촉에 새겨진 1911은 세일러라는 회사가 만들어진 연도를 나타냅니다. 1911년 일본의 히로시마에서 세일러가 처음 제작이 되었죠. 세일러라는 이름은 창립자가 처음 만년필을 접하게 된 계기가 외국 선원이 들고온 펜을 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일본 제품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이라랄까요? 정밀함과 세밀함 그리고 절제된 느낌이 펜촉에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만년필을 좀 만들면 제법 잘 만들 것같기는 합니다만.. 이미 역사를 만들기에는 너무 늦었죠. 종이는 우리나라의 종이가 참 좋은데..그점을 펜으로 살리지 못한 것은 아쉽습니다.


가장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는 몽블랑 145의 닙과의 크기 비교입니다. 확실히 큼직한 크기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크기 역시 145에 비해서는 작습니다. 대충 짐작이 되실까요? 좀 더 비교를 위해 펠리컨의 M150을 맨 아래애 놓아보았습니다.


캡의 각인은 배의 닻 모양을 형상화해서 새겨 놓고 있습니다. 각 제조사별로 특징적인 부분이죠. 몽블랑의 육각별이나 펠리컨의 새 그림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줍니다.

세일러 EF닙의 경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하이테크 포인트펜보다 얇은 굵기로 글을 쓸 수 있습니다. 만년필로 어떻게 이렇게 얇게 글을 쓸 수 있을까..싶을 정도인데요. 사실 더 얇은 펜들도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플래티넘의 UEF촉이나 세일러의 사이비토기 같은 제품은 극세를 넘어서 초극세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습니다.

세필펜은 글을 얇게 쓸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장시간 필기하기에는 손에 부담이 많이 가는 단점도 있습니다. 주력으로 쓰기는 조금 어려운 펜이지만 한글이나 한자를 자주 쓰는 환경이라면 하나 정도 필요한 펜이 아닌가 합니다.

 



펜을 다시 잡으면서 가장 많이 하는 일 중의 하나는 시를 옮겨 적는 일이다.

악필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시인의 시를 옮겨 적다보면 번거로운 세상사는 잠시 잊을 수 있다.

145는 이제야 조금씩 길이 들어 가는데 완전하게 손에 익숙해지려면 한 달 정도는 더 있어야지 싶다.

Montblanc P145 EF, Aurora Bl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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