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카메라 시절에는 단렌즈를 애용했습니다. 일단 수동기여서 줌렌즈가 많지 않았던 이유도 있고 무거운 장비에 부담을 느끼며 사진을 찍는 것은 아니지 않나하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죠. 처음 사진을 시작한 것은 니콘의 RF카메라였지만 본격적인 재미를 붙이게 된 것은 니콘의 F3를 손에 쥔 이후였죠. 이후 제법 많은 기변을 하게 되는데 "써 보지 않고 말을 말자"는 묘한 논리를 붙여 소위 좋다는 장비들을 섭렵해나갔습니다.

그러다가 충격(?)을 받은 장비가 바로 콘탁스였습니다. 물론 라이카 역시 대단한 충격을 주긴 했지만 아직 라이카를 사용하기 전인 당시는 콘탁스 그러니까 짜이즈 렌즈의 결과물은 이전의 사진과는 뭔가가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처음 장만한 짜이즈 렌즈는 누구나 좋아하는 화각인 50mm였는데 제 눈이 이상한 것인지 50mm는 아무리봐도 표준이라고 부르기에는 초점거리가 멀게만 느껴졌고 이것저것 시험을 해보다가 발견한 것이 바로 35mm입니다.

칼 짜이즈, T* 코팅으로도 유명한 이 렌즈는 렌즈마다 고유한 이름이 붙어 있는데 제가 사용해본 렌즈군은 플라나와 디스타곤이군요. 플라나(Planar)는 이미 그 역사가 100년이 넘은 렌즈로 칼 짜이즈의 역사이기도 하고 현대 광학의 결정체이기도 합니다. 재밌는 것은 칼 짜이즈 렌즈는 표준이 35mm라는 점이죠. 따라서 플라나는 망원 렌즈로 분류됩니다. 오늘날에는 50mm가 표준렌즈로 인식되고 있지만 원래는 망원(엄밀하게는 중망원)인 셈이죠. 그렇게 보면 제 눈이 그렇게 틀린 것도 아니지 싶습니다.

플라나도 마음에 들지만 제가 주력으로 사용했었고 아직도 구입 순위에 올려두고 있는 렌즈는 바로 디스타곤입니다. Distagon즉  거리를 의미하는 '디스턴스'와 각도를 의미하는 '곤'이 결합한 이 렌즈는 광각이라 풍경 촬영에 유리하다는 평을 듣고 있지만 칼 짜이즈 렌즈 구성을 생각해보면 35mm 렌즈가 표준렌즈이니 광각으로 가려면 그 이하의 화각을 가진 렌즈를 찾아야겠죠.

니콘으로 건너오면서 칼 짜이즈는 먼 나라 이야기가 되었고 콘탁스가 단종이 되면서 칼 짜이즈 정확하게는 디스타곤을 다시 잡아볼 기회는 적어졌습니다. 그러다가 '짜이즈의 역습'이라고 불러도 좋을 일이 벌어졌는데 수동 렌즈인 ZF(Z는 짜이즈, F는 니콘 마운트) 렌즈군이 등장한 것이죠. 그리고 소니와의 제휴로 AF렌즈까지 등장했습니다. 후자는 제 관심 밖이니 언급은 하지 않겠습니다.


새로 등장한 짜이즈 렌즈군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렌즈는 바로 이 렌즈입니다. 짜이즈 디스타곤 25mm는 콘탁스 시절부터 명성이 자자했습니다. 25mm라는 독특한 화각이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25mm는 넓지도 멀지도 않은 참 묘한 초점대입니다. 크롭 디지털 바디라면 37.5mm의 화각이 되죠. 제 경우 지금 크롭바디이니 이 정도 화각이면 예전 표준렌즈로 사용할 당시에 큰 차이는 없어보입니다.


35mm보다 길이가 조금 긴 것이 걸리기는 하지만 항상 바디에 마운트해두고 쓸 수 있는 단렌즈 하나만을 고르라면 저는 이 렌즈를 고를 생각입니다. 물론 가격은 왠만한 보급형 카메라 한 대값 이상이니 접근성은 아주 안 좋은 편입니다.


이번 포토키나 2006은 개인적으로 꽤나 흥분되는 행사입니다. ZF시리즈 4종이 추가적으로 공개되었기 때문인데요. 칼 차이즈가 니콘용 F마운트 렌즈를 공개할 당시 왜 정말 알짜인 이 렌즈를 먼저 선보이지 않았을까..의문을 가지기도 했었습니다. 물론 새로운 렌즈 라인업이라면 역시 50mm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었죠..

Distagon T* 2/35 ZF and Distagon T* 2,8/25 ZF


그리고 이제 칼 차이즈의 전설이 시작됩니다. 디스타곤 35mm와 25mm가 선보일 예정이니까요. (지나치게 개인적인 생각이 들어간 점은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 디스타곤 25mm f/2.8 렌즈는 35mm SLR에서 개인적으로 최고의 렌즈 중의 하나로 평가하는 렌즈입니다. 광각 계열을 주력 화각으로 선택하고 있다 보니 다양한 종류의 광각 렌즈들을 사용해보고 정보를 구해보고 했지만 이만한 렌즈는 많지 않다는 것이 개인적인 소견입니다.

물론 라이카의 슈퍼앵글론 21mm라는 괴물이 있지만 RF에서 SLR로 완전히 돌아온 지금은 감히 디스타곤 25mm에 점수를 더 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걸작인 디스타곤 35mm f/2.0 역시 훌륭한 렌즈입니다. 한때 바디캡 대용으로 달고 다녔던 렌즈인데요. 차이즈 렌즈 특유의 색감과 안정적인 화각이 매력적인 렌즈입니다.

D-SLR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제게는 35mm보다는 25mm가 좀 더 현실적인 대안으로 다가옵니다만 가격대가 역시 만만치가 않네요. 올해 말 출시예정인 이 두 개의 '전설'의 가격은 각각 824달러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눈길을 끄는 렌즈가 있습니다. 바로 Makro-Planar 100 mm f/2.0입니다. 35mm급에서 극강의 화질을 선보이는 이 렌즈 역시 전설의 하나로 흔히 분류합니다만 콘탁스 사용자가 아니면 써 볼 수 없는 그림의 떡이었죠..

이 렌즈 역시 ZF마운트로 출시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렌즈와 라이카의 APO-Macro-Elmarit-R 100mm f/2.8 이 두 개를 최고의 접사렌즈로 꼽습니다. 니콘 사용자 입장에서는 정말 흥분되는 일이지만 이 렌즈의 가격은 1749달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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