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연탄은 우리네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필수품이었다. 연탄이 없으면 추운 겨울날을 보낼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오래 전 기억 속에서 떠올려보는 그런 존재가 되었다.

문득 나를 둘러 싼 주변에서 사라진 것들은 무엇이고 새롭게 얻은 것은 무엇일까 생각을 해 본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이 있는가 하면 시간이 흘러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아 억지로 사라지게 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얻는 것이 있는가 하면 시간이 흘러도 좀처럼 얻을 수 없어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어떤 것을 잃고 어떤 것을 얻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을 하지만 "자연스럽게" 잃고 얻는 것들에 대한 생각은 좀처럼 하지 않는다.

'욕망'이 '자연'에 앞서는 것이 우리네 사람의 본성이지 싶다. 

하지만 때로는 그저 시간의 흐름에 몸과 마음을 던져보는 것도 좋으리라 싶다.

'무엇'을 얻고 잃는 것에 몸과 마음을 집중하지 말고 그저 흘러가는대로 놓아두면 어떨까..

굳이 노자의  '上善若水"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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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을 담은 필름은 RDPIII이라는 녀석입니다. 시중에는 '프로비아'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 후지의 슬라이드 필름이죠.

후지의 슬라이드는 프로비아와 벨비아(RVP)가 유명한데 벨비아는 ISO가 50인 특이한 필름이죠 

이 두 필름은 아마 올해말에 모두 단종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오래 전 많은 추억과 이야기들을 만들어 준 필름도 시간이 흐르면서 제 의지와 관계없이 사라져버리네요..

시간되면 슬라이드 필름 이야기를 한 번 써볼까 싶기도 하네요..

사진 윗부분은 슬라이드 스캔의 흔적인데 자를까 하다가 그냥 두었습니다.


Canon EOS 1-Vhs, EF 28-70mm f/2.8L IS USM, RDPIII, LS-40



가을입니다. 라고 이제는 이야기를 해도 좋으려나요? 그렇지만 아직도 한낮에는 여름을 쉽사리 놓아버리지 않으려는 계절의 마지막 안간힘이 느껴지네요. 그렇지만 강하게 내리쬐는 햇살도 한여름이 그것마냥 따갑지는 않은 그래서 어쩐지 가는 여름이 아쉽기도 한 그런 계절이 요즘이 아닌가 합니다.

사진은 원어의 의미가 알려주듯 빛의 예술이지요. 그리고 보통 자연의 빛의 변화무쌍함을 가장 많이 느낄 수 있는 시간은 해 뜨기 전과 해 지기 전입니다. 맨 처음의 사진과 바로 위의 사진의 빛이 얼마나 다른지요. 같은 하늘이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렇게 다양한 색으로 보는 이들을 유혹합니다. 게다가 바람마저 불어준다면 그 기분이란..^^

같은 장소에서의 노을도 해가 떨어지는 속도에 따라서 정말 다양한 빛의 변화를 보여줍니다. 사실 이 시점에서 마음에 드는 사진을 잡아내려면 브라케팅 연사가 제일 좋은데 필름 시절에는 한 컷 한 컷이 500원짜리 동전 떨어지는 소리와 비슷한지라 연사란 그저 부유한 이들이나 할 수 있는 사치로 여겨졌지요. ^^

가난한 사진가는 브라케팅은 '아, 그런 기능이 있어!'라고 여기고 스팟 노출로 하늘을 잡는 것이 그나마 뭔가 건져볼 수 있는 기회기도 했었습니다. 물론 디지털 시대가 된 지금은 브라케팅이란 아주 일상적인 작업 중의 하나가 되어 버렸으니 이걸 좋다고 해야할지 사실 이야기하기는 애매합니다. 사진이 쉬워진만큼 소위 건질 수 있는 사진은 필름 시절보다 확실히 줄어들었으니까요.

제가 사진을 좋아하게 된 계기 중 하나는 외로워서였더랬습니다. 사진을 찍고 있으면 혼자라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였지요. 물론 기계 자체에 대한 흥미도 제법 큰 편이지만 뭐랄까 세상사의 번잡함같은 골치 아픈 것들이 사각 프레임 안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전혀 생각나지 않았기에 사진에 빠졌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래서는 좋은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죠.

사진에는 사진가가 셔터버튼을 누르는 순간의 감정이 그대로 실려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온 정신을 집중해 네모난 그림을 만들어내고 그 안에 마음을 담아 만들어내는 것이 사진인데 당연히 사진가의 감정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이죠. 만약 사진에서 그런 느낌을 얻을 수 없다면 온전한 자신의 사진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닐까요?

아무튼 그런 과정을 겪고 나서야 사진을 좀 더 가깝게 그리고 마주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진을 찍을 때는 온전히 그 시간에 그 장소에서 제가 받은 느낌만을 담아내도록 신경을 씁니다. 그래서 저는 카메라를 들고 어딘가를 나가도 가방에서 전혀 꺼내지 않을 때도 있는데 마음속에 뭔가 불필요한 감정들이 많을 때 주로 그렇게 합니다.

아마 사진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나름대로의 생각들을 가지고 계실텐데 저라는 사람은 이렇다..라는 것을 적다보니 좀 길어졌네요 ^^; 자, 이번 사진들은 코닥의 수프라라는 필름입니다. ISO100인 이 필름은 후지의 리얼라와 함께 네가티브 필름의 쌍벽이랄까..아무튼 그런 느낌을 주는 좋은 필름입니다. 코닥 특유의 붉은 기운을 잘 살리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필름이지요. 후지의 푸른색이냐 코닥의 붉은색이냐는 역시 그날의 분위기에 따라 달라집니다. ^^


Canon Eos-1Vhs, EF 28-70mm f/2.8LKodak Supra, LS-40

가끔 제 사진에 보면 위와 같이 장비를 적어 두는 경우가 있는데요. 이건 제 기억을 남겨두자는 차원도 있고 혹시 어떤 장비가 사용되었는지 궁금해하시는 분이 있을까 싶어 적어 두는 것입니다. 순서대로 설명드리면.. 

Canon Eos-1Vhs: 카메라 바디의 제조사가 캐논이고 Eos-1Vhs라는 바디라는 이야기입니다.

EF 28-70mm f/2.8L: 사용한 렌즈의 이름인데 해당 제조사의 공식 명칭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습니다. 2개 이상의 렌즈가 사용될 때도 많은데 보통 1개만 대표적으로 적어 둡니다. 

Kodak Supra: 사용한 필름의 제조사와 보통 부르는 별칭을 적어 두었습니다.

LS-40: 제가 사용한 니콘의 쿨스캔 필름 스캐너의 이름입니다.




마음이 산란한 탓인지 담배 한 대를 피워야겠다고 생각하고 밖으로 나갔다. 집 앞 구석에 누군가 버려둔 유리판이 몇 주째 있는데 제법 크기도 크고 게다가 3조각으로 잘려있어서 위험하겠다 싶었지만 누가 거기에 가져다놨는지 알 길이 없어 그냥 무시만 하고 지내다가 갑자기 무슨 일인지 저 유리판들을 치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는 그래도 그 유리판들이 어쩐지 시원해보이기도 하고 각도를 잘 잡으면 거울처럼 주변 풍경을 보여주기도 해서 가만히 있었지만 오늘따라 왜 저 유리판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알 길은 없다. 그냥 위치도 잘못되어 있는 것 같고 처음엔 맑기만 했었는데 시간이 지날 수록 먼지를 뒤집어써서 흐려지는 것이 싫었나보다.

담배 한 가치를 입에 물고 아무 생각없이 가장 큰 조각을 오른손으로 잡아올렸는데 내가 생각한 무게와 큰 차이가 있었는지 그대로 미끄러지며 오른손을 가르고 지나갔다. 잡은 면이 당연히 마모작업이 되어 있을 거라고 착각을 한 것이 가장 큰 문제였겠지만 순식간이란 단어가 그렇게 실감이 날 줄은 몰랐다.

오른손 엄지와 검지사이로 유리판이 미끄러졌는데 뭔가 묘한..말로 표현하기 힘든 찰라의 통증이 잠시 스치고 지나가더니 금세 붉은 피가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우습게도 그 순간 든 생각은 '나도 살아있긴 하구나' 였으니 참... 아무튼 이제껏 살아오면서 내 몸에서 그렇게 많은 피가 흐르는 것을 본 것도 처음인데 왼손으로 지압을 하며 '힘줄은 안 끊어졌어야 하는데...'라고 중얼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유리란 물과 같이 투명하다. 다만 물은 그 모양과 흐름을 그저 맡겨둘 뿐이고 유리는 누군가에 의해 그 모양이 정해진 것에 차이가 있다. 그렇게 강제로 만들어진 투명함은 본래의 맑음보다는 억지로 만들어진 것에 대한 상처를 그 내면에 담고 있어 누군가 자기에게 상처를 줄 것 같으면 가차없이 상대의 살을 베어버린다. 그리고 상대의 상처에서는 피가 흐르지만 정작 유리는 깨끗하다. 그 유리에 은가루를 입혀 거울로 쓴다는 것은 또한 아이러니다...

아무튼 모든 문제는 그 유리를 마주하는 이의 마음이다. 자기의 마음이 좋을 때는 한없이 맑고 투명해보이기만 했던 유리가 자신의 마음이 헝클어졌다는 이유로 탁하게 보인다. 애초에 유리 자체는 변한 것이 없다, 그냥 원래 주어진대로 존재할 뿐인데 그것을 대하는 사람만 달라졌을 뿐이다. 결국 모든 문제는 상대가 아닌 나에게서 비롯된다는 단순한 진리를 다시 확인할 뿐이다. 

가장 맑은 것, 가장 투명한 것이 가장 날카롭다. 


Canon EOS-1Vhs, EF 28-70mm f/2.8L, Kodak Supra, LS-40



지금이야 휴대폰이 필수품이 되어 언제 어디서고 손 안의 버튼만 누르면 전화를 할 수 있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전화 한 통 하기란 쉽지가 않았다. 어렵사리 전화를 거는 데 성공을 해도 상대방이 자리에 없거나 받지 않아 버리면 그로써 그 순간의 관계는 더 이상 연장되지 않고 끊어져 버렸다.

특히나 상대가 전화번호를 바꾸기라도 하면 그 관계는 어지간해서는 다시 복원되지 않는다. 몇 년 전의 우리네들의 만남과 헤어짐은 이렇게 애틋한 면이 있었다. 공중전화는 그 이어짐의 끈을 아슬아슬하게 잡아주는 도구였다. 그때가 더 나을까 아니면 너무나 연락이 손쉬워진 지금이 나을까..

연락을 할 수 없어 애태우는 마음이 안타깝고 서글프겠지만 그래도 예전의 그 아날로그적인 만남과 이별이 내게는 더 와닿는다. 인터넷도 없고 휴대폰도 없던 시절이 말이다. 손으로 편지를 쓰거나 그의 집 앞에서 기약없는 기다림에 마음 아파하던 그 시절이 오히려 그리워진다.

요즘의 인연이란 맺기도 쉽지만 끊기도 쉽다. 디지털 부호의 휘발성이 그대로 관계에 담긴 까닭이다


Canon EOS-1Vhs, EF 28-70mm f/2.8L IS USM, RDP-III, LS-40, B&W Converted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해질 무렵 바람이 되어 하늘에 서 본다. 하늘 아래 사람 사는 이야기는 하루하루 그렇게도 많은 사연과 오욕칠정 속에서 번잡하기만 하다. 자연은 늘 같은 자리에서 조용히 시간의 흐름 속에서 스스로의 의미를 찾는데 우리네 삶은 왜 이다지도 어려울까...

지금 이 시간 지금 이 공간에 같이 살아가게 된 것만 해도 큰 인연인데 그 인연에 감사하며 살아간다면 짧은 인생이 참 소중한 순간순간으로 기억될 텐데 실제 현실의 삶은 각박하기만 하다...

내가 타고난 복이 없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나 스스로 그런 기회를 찾아보려고 하지 않아서인지 알 수는 없지만 유난히 정에 약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인 내게 세상이 준 것은 아직까지는 사람이라는 존재의 불안정한 모습 뿐이다.

인생이란 스스로 그 길을 찾고 만들어나가야 하는 것인데 주어진 길만 고집하며 그 길의 울퉁불퉁함을 탓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할 시간이 된 것 같다.


Canon Eos-1Vhs, EF 28-70mm f/2.8L, Kodak Supra 100, LS-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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