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북한산둘레길을 걷고 있을 때 두 번정도 산의 유혹을 받은 적이 있었다. 한 번은 북한산이고 또 한 번은 사패산이다. 둘중 사패산을 먼저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지난 겨울 둘레길을 걸을 때 먼 발치에서 바라본 사패산의 느낌이 참 좋았기 때문이다. 사패산을 가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고 정상에 오르는 길도 몇 가지나 된다. 등산 초보인 내 입장에서는 그래도 수월한 길이 어디일까 찾아보다가 의정부 회룡역에서 출발하는 코스로 정하고 집을 나섰다.

사패산이라는 이름은 조선 선조 당시 6째 딸인 정휘옹주가 시집을 갈 때 하사한 산이라 하여 賜牌山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원래 이 지역에서 부르는 이름은 갓바위산, 삿갓산이었다고 한다. 북한산도 삼각산이라는 순 우리말 이름이 있는 것처럼 사패산도 이전의 이름을 찾아 부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지하철 1호선 회룡역에서 내려 15분 정도 걸으면 '회룡사'로 길을 안내하는 표지판을 만날 수 있고 그 길을 따라 걸어들어가면 된다. 길을 조금 걷다보니 익숙한 표지판이 보인다. 1년여에 걸쳐 걸었던 북한산둘레길. 한 해를 정신적으로 버티게 해 준 힘이 되었던 그 길을 다시 만나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둘레길은 틈나는 대로 다시 걸어보고 싶은 마음이다.


사진이 작아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클릭하면 약간 커진다) 오늘 가게될 길은 회룡사를 지나 회룡사거리, 범골삼거리를 지나 사패산 정상에 이르는 코스다. 전체적으로 난이도가 높은 산은 아니지만 산에 오를 때는 늘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특히나 홀로 걷는 산행이라면 더더욱 한발한발 조심스럽게 내딛을 필요가 있다. 물론 빠르게 속전속결식으로 산에 오르는 분들도 있지만 나는 그저 거북이 스타일이다.


회룡탐방지원센터인데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아직 영업개시(?) 전이다. 이곳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북한산국립공원의 영역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몇 장 안 되지만 여기까지는 아이폰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작은 화면으로 볼 때는 그래도 괜찮아보이더니 모니터로 옮겨오니 '영 아니올시다'라는 느낌이다. 뭔가 인화된 사진을 물에 담가둔 느낌같기도 하고... 아이폰으로도 사진을 잘 찍는 분들도 있던데.. 내 둔한 감각을 탓해본다.


어디 가서 길치라는 소리는 듣지 않는 편인데 산에만 오면 어디가 어딘지 아니 어느 봉우리가 무슨 산이고 지금 내가 있는 위치가 산의 어디쯤인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는다. 산행 경험이 적어서 그런가 싶기도 한데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것 중의 하나다. 아무튼 저기 뒤쪽으로 보이는 머리가 벗겨진 봉우리가 사패산 정상인가라고 추측만 해본다.


전에 만난 적이 있는 북한산둘레길 중 하나인 보루길이다. 보루길로 올라가면 사패산 보루들을 만날 수 있다.(이전 글 참조) 그렇다는 것은 보루길을 통해서도 사패산에 오를 수 있다는 셈인데 이전 글을 뒤적여보니 포대능선으로 향하는 표지판이 있는 것으로 보아 능선따라 죽 이어진 모양이다. 사실 사패산도 북한산 자락이니 어디로든 길은 이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길을 조금 더 가면 만날 수 있는 '사패공방'. 주인장은 안 계신지 조용했고 벽 쯤에 붙어 있는 문구가 참 마음에 들었다. 그러고보니 누군가를 기다려본 지도 제법 오래됐다. 기다림은 만남을 전제로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던가. 그래도 역시 누군가 만날 사람을 기다리는 일이 조금 더 행복하다. 머지 않아 나 역시 '당신을 기다리고 있으면 마음이 설레인다'라는 말을 건넬 수 있기를 바라며 걸음을 옮긴다.


이곳이 회룡골계곡인지 정확하지는 않다. 지도앱이라도 켜서 확인을 했어야 하나 싶기도 했지만 이내 마음을 접었다. 산행은 그저 산과 내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거기에 다른 요소들을 끼워넣는게 내키지 않아서였다. 산을 걷는 것은 그 자체로 아날로그인데 굳이 거기에 인간 세계의 날카로움을 덧입힐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러면서도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것은 변명의 여지는 없지만...


사패산 등산코스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안내도다. 내가 가는 길은 가운데에 있는 회룡사를 지나 위로 올라가 사패능선에서 우회전하는 코스다. 등산 정보를 찾아보니 4코스라고 한다. 사패능선 그러니까 회룡사거리에서 좌회전으로 하게 되면 포대능선을 지나 도봉산 자운봉으로 갈 수 있다. 언젠가 산행이 조금 더 익숙해지면 가 볼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하고 오늘은 사패산만 바라보고 올라가보자.


조금 더 올라가면 회룡사를 만날 수 있다. 부처님오신날이 막 지난 터라 아직 연등이 곳곳에 매달려 있다. 큰 행사가 끝나서인지 인적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혼자 돌아다니자니 어쩐지 어색해져서 사진만 살짝 찍고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보니 산에 있는 절에서는 점심 때 절밥을 준다는데 아직 먹어본 적은 없다. 하산할 때 이쪽으로 다시 돌아오면 혹시 가능하지 않을까..라고 이때까지는 생각을 했었다.


이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왼쪽으로 보이는 좁은 길이 등산로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산 정상만 목표로 하고 길을 나서본 적은 그리 많지 않다. 태백산, 인왕산, 청계산 정도가 아닐까? 물론 객기로 올랐었던 설악 대청봉도 있었지만 그건 도무지 산행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어서..(이전에 올린 글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아무튼 산행은 둘레길 걷기보다는 준비할 것들이 많다. 오늘은 스틱을 두고 왔는데 하산길에 생각하면 가져오는 것이 나았다.


산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돌탑(?)이다. 산을 오르는 이들의 작은 소원들을 모아놓은 돌무더기. 크고 높은 것들도 많지만 이렇게 앙증맞게 있는 것이 오히려 사람 냄새가 나서 좋다. 돌 하나를 주워 올려볼까 하다가 이내 그만 두었다. 누군가 올려 놓은 돌 위에 내 소원까지 올리면 소원을 이루어주는 분(?)에게 부담이 될까 싶어서다. 그냥 저 돌을 올린 분들의 소원만 이루어져도 충분하다.


산을 조금이라도 다녀온 분들은 아시겠지만 산에서 만나는 이정표의 거리는 진짜 별 의미가 없다. 단순히 사패능선까지 800미터다라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단 등산길은 꾸준한 오르막이고 사패산의 경우는 일직선에 가깝지만 어느 산들은 구불구불한 길들이 제법 많기도 하기 때문이다. 저 거리만 생각해서 등산이나 하산 혹은 휴식 계획을 세우면 낭패를 보기 쉬우니 페이스 조절을 잘 하도록 해야 한다. 나는 저런 표지판이 보이면 대충 곱하기 2를 해버린다. 사패능선까지 1.6km 남았다고 보고 간다는 말이다.


갈림길에서 내가 길을 잘못 든 지점이다. 양쪽 길 모두가 등산로처럼 되어 있어서 어느 길을 가야 하나 고민하다가 이쪽 길로 접어들었는데 이길의 끝은 막다른 곳이다. 그럼에도 들머리는 제법 운치가 있었다. 표지판이 하나 있으면 어땠을까 싶지만 결과적으로는 없는 것이 나았다. 왜냐하면 이길의 끝에서 만나는 곳이 꽤나 멋진 곳이었기 때문이다.


골짜기 사이로 물이 흘러나오는 약수터 비슷한 것이 있었다. 약수터라고 하기에는 물이 고여있지 않으니 아닌 것 같지만 바가지가 있는 것으로 봐서는 물을 먹으라는 소리니 약수터가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물은 제법 시원하다. 요즘에는 산에 흐르는 물도 안심하고 마시기 어렵다지만 산행 중간에 만나는 물마저 외면해야 한다면 너무 인간미가 없는 것은 아닐까. 다만 바가지에 봄벌레들이 자리를 잡고 있어서 파이프를 들어 올려 한 모금 산의 느낌을 맛본다.


내가 좋아하는 산은 겨울산이지만 봄의 산도 그 나름의 매력이 있다. 지난 겨울의 못 다 지워진 흔적들과 다가오는 여름을 미리 알리는 징조들이 섞인 느낌인데 이도저도 아닐 수도 있지만 그 또한 봄의 산이 주는 매력이다. 요즘은 봄이 워낙 짧아 봄의 산을 느끼려면 4월말에서 5월초 정도가 적당하다. 그전은 겨울의 느낌이 강하고 그 후는 여름의 느낌이 강한 까닭이다. 사실 엄밀히 따지만 오늘도 입하가 지났으니 이미 여름인 셈이지만...


이쪽 계곡에는 물이 전혀 흐르지 않는다. 아마도 여름이 오고 비가 내리면 이 계곡에도 물이 흐를 것 같은데 다른 계절을 겪어보질 않아서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겠다. 여름에 다시 한 번 와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이다. 사패산은 북한산국립공원 안에서도 가장 자연림이 보존이 잘 되어 있다고 한다. 확실히 나무들이 어느 곳보다 울창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는데 곳곳에 짙에 깔린 이끼들을 보면 이 산이 얼마나 깨끗한지 알 수 있다.


산에 오를 때는 가능하면 작은 것들을 좀 더 많이 보려고 노력한다. 정상에 오르는 것은 그런 걸음의 결과일 뿐이지 끝까지 오르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 무작정 정상에만 오를 생각으로 급하게 산을 오르다보면 그 중간에 있는 수많은 이야깃거리들을 그냥 지나쳐버리게 된다. 산이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정상에만 있지 않다. 그 많은 것들을 버리고 끝에 있는 하나의 이야기만 들으려하는 것은 인간의 오만함은 아닐까?


경사가 급해지는 것을 보니 사패능선에 거의 다 와가는 모양이다. 둘레길을 걸을 때도 그랬지만 역시나 별 다른 식량(?)준비를 해가지 않는 탓에 여기쯤 오니 제법 숨이 차다. 준비를 잘 해야 한다고 이야기는 잘 하면서 정작 나는 제대로 준비를 안 한 셈이다. 혼자 하는 산행이다보니 이것저것 챙기는 것이 번거롭다고 스스로 변명도 해보지만 그대로 짊어지고 돌아가게 되더라도 최소한의 먹거리는 챙겨와야 한다.


사패능선 그러니까 회룡사거리인데 이곳에서 만나는 표지판은 자운봉과 사패산이 정반대의 거리에 있음을 알려준다. 거리가 만만해보이지만 위에서 적은 것처럼 저 숫자에 곱하기 2를 해보면 어느 곳도 만만하지가 않다. 표지판을 가만히 보니 자운봉은 '봉'이고 사패산은 '산'이다. 이건 산의 규모에서 오는 차이인데 사패산은 여러 봉우리들이 없는 반면에 도봉산은 자운봉, 만장봉, 선인봉 등 여러 봉우리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도봉산의 주봉은 자운봉이다.


능선길은 거의 평지도 되어 있어 걷기가 어렵지 않다. 다만 가림막이 없다보니 바람을 있는 그대로 맞기 때문에 제법 쌀쌀한 느낌이다. 아마 겨울에 이곳에 왔다면 이쯤에서 바람막이 정도는 입어야 체온유지가 되지 싶다. 물론 여름에도 올라오는 동안 땀이 많이 흘렀기 때문에 능선에 오르면 순간적으로 춥게 느껴질 수 있으니 바람막이는 사시사철 배낭 안 구석에 넣고 다니는 것이 좋다.


사패산은 흔히 말하는 꼴딱고개는 없다고 봐도 좋을 것 같지만 사패능선에 도착하기 바로 직전 그리고 이 계단과 이어 등장하는 바위들에서는 체력을 적절하게 조절하는 것이 좋다. 이 계단은 갯수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촘촘하게 이어져 있기 때문에 두 칸씩 성큼성큼 올라가기 보다는 한칸씩 천천히 올라가는 것이 좋다.


그리고 정상 부근의 바위인데 여기는 경사에 비해 어렵지는 않지만 일방통행 코스로 되어 있기 때문에 오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면 주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오늘 신고간 신발은 바위적응형 등산화는 아니어서 약간 미끄러웠는데 바위 위에 흙 등이 있는 경우는 특히 조심하자. 바위에 척척 달라붙는 등산화가 아니라면(물론 붙어도 마찬가지지만) 무리는 금물인 지점이다.


정상에 오르면 평평한 모습의 작은 운동장 같은 느낌이 드는데 계절마다 그리고 날마다 다르겠지만 오늘은 바람이 제법 강하게 불었다. 정상의 경우는 바람을 온몸으로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특히 조심할 필요가 있는데 사패산 정상은 그냥 통바위들이 듬성듬성 연결된 형태이고 조금 내려가면 경치가 더 잘보이기 때문에 별 생각없이 아래 쪽 바위로 향하게 되는데 바위 끝이 아무 것도 없이 바로 절벽으로 이어지므로 조심하도록 하자.


바위 끝 쯤에서 내려다보면 이런 모습이다. 조금 더 자세히 보겠다고 앞으로 내려가지 않도록 하자. 사실 조금 더 간다고 해서 뭐가 더 잘 보이는 것도 아니다. 정상에서 장비를 다시 점검하고 하산을 준비한다. 원래는 올라온 길로 내려갈 생각이었는데 이전 둘레길의 기억이 떠올라 다른 방향으로 진로를 잡아본다. 하산길은 거의 사진이 없는데 내려갈 준비를 하면서 카메라를 배낭에 넣어버렸기 때문이다. 이건 내 습관이라면 습관인데 등산보다 하산길이 좀 더 위험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산의 방향은 원각사 쪽으로 정했다. 이곳으로 내려가면 상당히 빠른 시간에 하산이 가능한데 문제는 교통편이 별로 좋지 않다는 점이 하나고 길이 약간 험하다는 게 또 하나의 문제다. 보통 폭포가 있는 루트는 길이 험하다고 하는데 예전에 북한산에서 한 번 제대로 고생을 해본지라 고민을 조금 하긴 했지만 일단 내려가보기로 한다. 여기서부터는 다시 아이폰으로 촬영.


세월이 계단을 만들었다. 이 나무는 얼마나 많은 이들의 걸음을 지탱하며 살아왔을까 한참 바라본다. 그리고 그 걸음에도 이 나무는 여전히 이곳에 버티고 서 있다. 이 길을 지나려면 이 나무를 밟지 않으면 안 되고 그 고통 속에서 나무는 점점 더 단단해졌으리라. 사람도 역경을 이겨내면 강하진다고 말을 하는데 요즘은 그말이 그렇게 신뢰가 가지는 않는다. 역경 안에서 오히려 가라앉는 모습을 더 많이 봐서일까.. 결국 모든 것은 사람 나름이다.


원각사 길을 선택한 이유는 바로 이곳에 있다. 내가 사패산에 올라야겠다고 생각을 하게 된 곳. 산너미길로 오는 길에 먼발치에서 바라본 사패산이 그리도 정겨워 보여서 이길을 걷던 날 사패산에 오르겠다고 약속을 했었다. 그리고 1년 하고도 몇 개월이 지나 나는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곳에서 사패산의 정상을 다시 바라봤다. 지난 겨울의 약속을 이제야 지켰다고 산에게 이야기 해 주었다.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시간이 지나 나를 둘러싼 많은 것들이 변했어도 여전히 산은 그 자리에 서서 내가 다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 기다림이란 만남을 전제로 할 때 그 의미가 더 큰 것 같다. 그리고 산은 내가 그 초입에서 산을 바라볼 때 그 모습 그대로 내가 그를 떠나는 순간에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Nikon D700, AF 35mm f/2.0D & iPhone 5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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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522미터인 사패산은 '강북5산'이라 불리는 '불수사도북' 그러니까 불암산, 수락산,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의 하나로 난이도는 그리 어렵지 않은 편에 속한다고 한다. 이 부분을 인용한 것은 다른 산을 올라본 적이 없어서 내 판단기준이 없기 때문인데.. 나중에 내 기준에서 느낌은 다시 적어보겠다. 아무튼 오늘 오른 코스는 지하철 1호선 회룡역에서 출발해 회룡사를 거쳐 사패능선을 통해 정상에 오른 다음 원각사 방향으로 하산해 송추에서 버스를 타고 구파발역으로 돌아오는 코스다. 


대략 전체 이동 경로는 위 사진과 같은데 평소 걸음은 빠른 편이지만 산행은 최대한 느릿느릿 가는 편이라 전체 소요시간은 3시간 20분, 이동거리는 8.2km였다. 하산 후 교통편은 하산한 지점에서 바로 건널목을 건넌 다음 34번이나 360번을 타면 구파발역으로 갈 수 있으니 그곳에서 지하철을 이용하면 된다.



서울성곽길의 두 번째 코스는 낙산길을 골랐다. 낙산길은 도심 한가운데를 지나는 길로 이전에 걸었던 북악산길과는 꽤 다른 풍경을 보이는 길이다. 낙산구간은 전체적으로 보면 장충체육관에서 혜화문에 이르는 제법 먼 길인데 이번에는 혜화문에서 흥인지문까지로 경로를 잡아 보았다. 낙산이라는 이름은 산의 이름이 낙타의 등처럼 볼록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걷는 중에는 사실 낙타의 등 위를 걷고 있는지 알기는 어려웠다. 멀리서 조망해보기도 애매해서 결국 낙타 모양은 보지 못 한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낙산은 풍수지리상 서울의 주산인 북악산의 좌청룡에 해당한다고 한다. 우청룡은 인왕산인데 인왕산이 제법 산의 모양을 하고 있는 것에 비해 낙산은 주거지와 공원 등으로 둘러 싸여 있어서 산의 모습을 찾기는 어려웠다. 


길의 시작은 북악산길과 같은 한성대입구 역이다. 4번 출구로 나가 조금 올라가면 서울성곽길을 안내하는 표지를 만날 수 있다. 낙산길의 전체적인 아쉬움 중의 하나는 이정표가 제대로 갖추어 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특히 낙산공원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이정표는 거의 없다고 보는 편이 낫다. 스마트폰 지도를 켜고 경로를 찾아야 했으니 말이다. 사진 멀리 혜화문이 보인다.


약간 더 올라가면 왼쪽에 계단이 있는데 자세히 보지 않으면 놓칠 수도 있으니 주의 하자. 이 계단을 올라가면 낙산길이 시작된다. 우리나라의 4계절이 이제 존재 의미가 없다는 말이 이해가 가는데 3월말임에도 제법 햇살이 따가웠다.


전체적인 낙산길의 경로다. 사실 일직선으로 죽 가면 되기 때문에 이정표가 필요없을 수도 있겠지만 실제 길을 걸어보면 생각보다 샛길 이곳저곳을 다녀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내 생각일뿐이긴 하지만 쭉 뻗은 도로라도 안내표지판은 제대로 갖추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전체 길이는 2.2km로 그다지 길지 않아 큰 부담없이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진입 구간에는 제법 성곽길의 운치가 있다. 다만 성곽로 도로가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있어서 가까이서 분위기를 느끼기는 어렵다. 대신 멀리서 바라보는 웅장함이랄까 그런 기분은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초입 구간이다.


만들어진 시대와 보수된 시대에 따라 돌의 색이 다르고 건축 방식이 다르다. 이렇게 한눈에 쉽게 알 수 있는 구간들이 종종 보인다. 한양도성의 전체적인 구간이 제대로 정비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개발을 위해 우리 고유의 것들이 사라져 가는 것은 참 아쉬운 일이다. 지난 것은 되돌릴 수 없는 까닭이다. 그때 그 모습이 아니면 의미가 없는 것들도 있는 법이다.


여담이지만 요즘은 D-SLR은 거의 들고 다니지 않는다. 비교적 편한 곳을 다녀서 그렇게 하고 있는데 파인더를 들여다보고 사진을 찍지 않으니 영 답답하긴 하다. 간편함이라는 이름 때문에 본래의 사진찍기가 퇴색되는 듯한 느낌도 든다. 다음 번 걸음에는 오랜만에 큰 녀석을 데리고 나와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낙산길은 전체적으로 흙길이 없다. 닦인 도로와 정비된 느낌. 그런 인상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인지 약간은 건조하다. 편하게 걸을 수 있는 대신 건조함을 얻은 셈이랄까.. 역시나 나는 흙으로 난 길이 좋다. 이 구간에서 나무와 풀을 볼 수 있는 곳은 얼마 되지 않는데 대부분 이곳 초반부에 집중되어 있다. 걸으면 걸을 수록 푸른색 대신 콘크리트의 회색이 늘어간다.


고양이 한 마리가 볕을 쬐고 있는데 까치가 계속 달려와 고양이를 쫓아내고 있는 게 우스웠다. 조금 가서 앉으면 다시 와서 괴롭히고를 반복해 결국은 고양이가 자리를 뜨고 말았다. 고양이가 조금이라도 위협(?)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싶지만 생각과는 다른 결과가 더 재밌었다.


사실 낙산구간은 그렇게 마음이 편안한 걸음은 아니었다. 아마도 이 사진 한 장으로 대략 설명이 되지 않을까 싶다. 더 많은 이야기를 적어보는 것도 그리 좋은 것 같지 않아 사진 한 장으로 대신한다. 아마도 이길을 먼저 걸었던 분이라면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짐작이 되시리라.


길을 가다가 마주치게 되는 암문이다. 한자로 暗門이라 적는데 정식으로 문을 내지 않고 벽 중간에 뚫은 문을 부르는 말이라고 한다. 적들이 어디에 출입구가 있는지 알지 못하도록 하는 용도이고 평소에는 큰 돌로 막아둔다고 한다. 전쟁의 위험이 사라진 지금은 이렇게 열려 있고 이 문을 지나면 낙산공원으로 들어가게 된다.


낙산공원은 낙산의 정상 부분에 만들어진 공원이다. 제법 넓고 이런저런 시설들이 갖추어져 있는 곳이다. 예전에도 한 번 온 적이 있는데 다른 계절에 찾아오니 또 색다른 느낌이다. 낙산공원을 전체적으로 돌아보고 길을 건너면 대학로로 이어진다. 사람들에게 많은 추억거리들을 남겨주고 있는 장소일텐데 대학로는 나중에 한 번 따로 들러보기로 하겠다.


낙산공원에서 왼쪽을 바라보면 성벽 너머로 서울 중심가를 약간 볼 수 있다. 멀리 남산이 보이고 그 아래로 많은 빌딩들이 보인다. 저 안에서 또 얼마나 많은 인생들의 파란만장한 삶이 펼쳐지고 있을까. 이렇게 한 걸음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는 도시는 조금은 안쓰러운 느낌이 든다. 하지만 모든 것은 상대적인 것이니까...


낙산길에서 들러볼 곳이 또 한 군데 있는데 바로 이화마을이다. 벽화마을로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낙산공원에서 흥인지문 방향으로 걷다보면 오른편에 진입로가 있다. 또 나만의 생각이긴 하지만 나는 이런 인위적으로 조성된 길은 약간 거부감이 있다. 대부분 생활환경이 어려운 곳에 이런 길을 조성하곤 하는데... 역시 위에서 적었던 서울 풍경 사진과 맥락이 같은 이야기다. 


가장 먼저 마주치게 되는 것은 그 고양이 그림이 있는 벽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화벽화마을 꽃그림 계단으로 알려져 있는 이 자리가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들르는 곳이 아닐까. 내가 이화마을에 들렀던 때는 마을 이곳저곳에 공사가 한창이었다. 사실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서 나는 카메라를 주머니에 넣었다. 사진을 찍으러 이곳에 들렀다는 것이 조금 부끄러운 느낌이 들어서였다. 역시 이곳에 가 본 분들이라면 짐작이 가시지 않을까 싶은데..

재개발과 그 뒤안길 이야기. 제법 할 이야기가 많은데 이곳에 풀어나가기에는 주제와 한참을 벗어나니 다음으로 미루겠지만 과거 서울의 가장 어려운 지역 중의 한 곳이었던 난곡에 사진을 찍으러 방문하던 아마추어 사진가들과 그곳 주민들이 크게 대립한 일이 있었다는 정도로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압축하겠다. 누구에게는 그저 취미겠지만 누구에게는 생존 그 자체일 수도 있는 경우가 우리 주변에는 생각보다 많다.


아무튼 이곳을 지나 다시 길을 걸으면 어느새 길은 끝이 난다. 이글을 보신 분들은 어떠실까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참 안타까운(?) 걸음이었다는 생각이다. 이전의 북한산둘레길이나 적어도 지난 번의 북악산길만 해도 그래도 무언가 '길'을 걷는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 낙산길은 도무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물론 내 개인적인 성향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요즘 말로 힐링을 위해 떠난 길에서 무거운 짐만 짊어지고 온 격이랄까...

그리고


도심 한 복판 수 많은 빌딩과 차량의 홍수 속에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며 서 있는 흥인지문을 보면서 그 감정은 절정에 다랐다. 

모든 걸음이 늘 행복할 수는 없다. 지극히 당연한 사실인데도 나는 이번 낙산길도 이전의 여느 길처럼 행복한 길이 될 거라 생각했었다. 고정관념이고 편견이 생겼던 것이다. 하루에도 수 만 번 감정이 요동치는 일상인데 말이다. 길도 마찬가지다. 어떤 길은 평화롭고 행복한 길로 의미를 주지만 어떤 길은 쓸쓸하고 어두운 길로 의미를 준다. 그것들이 주는 의미를 내 안에서 자연스레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던 걸음이었다.

내 감정은 이리 변하고 저리 변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왜 길은 이런 길도 있고 저런 길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이번 걸음은 내게 그런 이야깃거리를 던져 주었다.


Panasonic LX-7


말바위 안내소에 드디어 도착이다. 이곳에서 할 일은 간단하다. 출입을 위해 신분증을 제시하고 목에 거는 표찰을 받으면 된다. 구간 자체가 군사지역으로 지정이 되어 있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작업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뭘 이런 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름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이해 못 할 일도 아니다.


신청서는 위와 같은 양식으로 되어 있다.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고 있는데 아마 이쪽 분야에서는 크게 변화는 없지 않을까 싶다. 주의 사항에 보면 금지된 행위를 하면 군의 무력 사용이 가능하다는 부분이 있는데 실제 길 안에 들어가서도 자주 마주치는 문장이다. 약간 위화감은 있지만 자신이 동의하고 입장하는 것이니 지킬 것은 지키는 것이 좋겠다.


신청서를 작성하고나면 위와 같은 목에 거는 표찰을 받게 된다. 이 표찰은 목에 걸고 다녀야 하는데 무게감도 거의 없고 디자인도 나름 괜찮은 편이니 어색하게 생각하지 말고 걸고 다니면 된다. 길을 걷는 중에 수시로 만나게 되는 군인이나 경찰들이 이 표찰 여부를 확인하는 것 같기도 한데 괜히 불필요한 행동으로 지적받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본격적으로 구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곳이 숙정문이다. 성곽의 4대문 중 북문에 해당한다고 한다. 북쪽은 예로부터 개방과는 거리가 먼 방향인데 역시 숙정문도 거의 개방이 되지 않은 상징적인 문의 역할을 했다고 한다. 한양 전체를 놓고 봐도 북대문은 우리에게 낯선 이름이다. 한양의 북대문이 어디인가에 대해서는 의견들이 있지만 이곳 숙정문이 북대문이라는 게 대체적으로 인정 받는 견해인 모양이다. 게다가 위치에 이렇게 있으니 우리에게 낯선 곳임은 틀림없다.


비교적 최근에 복원이 이루어진 까닭에 오래된 느낌보다는 현대적인 느낌이 든다. 과거의 느낌까지 살려 복원을 할 수 있다면 좋을텐데 그런 복원이 가능한지는 모르겠다. 미술 쪽에서 이루어지는 복원은 그렇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건축물도 과거 역사 느낌을 살린다면 더없이 좋지 않을까... 아무튼 숭례문인 남대문을 생각하면 이곳 숙정문은 꽤나 작은 문이다. 


성곽이 확연히 구분되는 구간이 보인다. 초기에 쌓은 돌과 이후 복원이나 보강을 통해 쌓은 구간이 이렇게 다르다. 세월이 지나면서 기술이 좋아졌기 때문이겠지만 그래도 오래 전에 쌓은 성벽 역시 본연의 역할을 하는데는 무리가 없다는 점이 더 대단하게 느껴진다. 아무튼 말바위안내소를 나와 바로 마주치는 곳이 이곳 숙정문이고 이후로는 약간은 지루한(?) 걷기가 계속 된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는데 제한이 있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도 같지만...


그 다음 마주치게되는 장소는 해발 293미터의 청운대다. 높이만 보면 북악산 성곽길은 그리 높지 않지만 오르고 내리는 구간이 경사가 가파른 편이어서 걷기가 아주 수월한 편은 아니다. 청운대도 사진촬영은 허용되는 곳인데 날이 맑다면 서울의 중심부를 멀리 볼 수 있는 조망이 제법 좋은 편에 속하는 장소다.


사진 촬영이 허용되는 몇몇 장소 중의 하나인 1.21사태 소나무다. 나무의 이름을 이렇게 지은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만 소나무 입장에서는 난감한 일은 아닐까. 아무튼 당시의 총격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총탄 자리를 시멘트로 약간은 억지스럽게 보존하고 있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었다. 1.21사태 이후 향토예비군이 생겼다는 것은 이번에 알게된 사실.


드디어 정상이다. 해발 342미터의 북악산 정상. 표지석에는 백악산이라 적혀 있는데 북악산과 같은 의미다. 이곳까지 오면서 좌우로 계속 군인들과 경찰들을 마주 치게 된다. 마음 편하게 걷기는 조금 불편한 길인데 반대로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마음 편하게 군 생활할 곳은 아닐테니 추운데 고생한다고 격려라도 해주면 어떨까


정상 이후는 창의문에 이르기까지 계속 내리막이다. 게다가 이 내리막이 만만치가 않다. 오르막에 힘을 많이 들였다면 바로 내려가지 말고 충분히 쉬었다 가도록 하자. 내려가는 동안 쉴 수 있는 장소는 한 곳뿐이니 미리 체력을 비축해두는 것이 중요하다. 계단의 간격이 약간 애매해서 한발씩 성큼성큼 내딛다가는 넘어질 위험도 있으니 조심하자.


한참을 걷다 보면 멀리 인왕산이 보인다. 그리고 능선을 따라 성곽이 죽 이어져 있는 것이 보이는데 바로 인왕산길 구간이다. 인왕산길은 예전에 적었던 글에 어느 정도 소개를 하고 있는데 나중에 인왕산길을 걸을 때 이 부분은 생략해야 하나 아니면 다시 걸어야 하나 고민 중이다. 당시는 겨울이어서 눈 덮인 풍경을 담았으니 이번에는 봄의 느낌으로 걸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좀 더 커서 아마 다시 가게 될 것 같은데 이전과는 반대 방향으로 길을 잡고 걷게 될 예정이다.

이렇게 한양도성길 중 첫 번째 길인 북악산길 걷기를 마쳤다. 사실 걷기라기보다는 등산에 조금 더 가까운 모양새다. 4개의 성곽길을 모두 걷고 나면 전체적인 생각을 이야기하겠지만 북악산길은 초행자가 바로 걷기에는 약간은 부담스럽다는 점. 적어도 신발만큼은 발에 편한 것을 신고 가는 것이 좋겠다. 물론 등산화가 가장 좋은 선택이 되겠다.


Panasonic LX-7


작년에 북한산 둘레길을 완주한 이후 걷기가 잠시 주춤했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었겠지만 새해 들어서도 다시 걷기를 시작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런데 흔히 말하는 '강제력'이 작용한 것인지 산림청에서 주관하는 블로그 기자단에 선발이 되면서 원고 작성을 위해 한 달에 적어도 한 번은 걸어야 하는 의무(?)가 생겼다. 

어디를 돌아볼까 생각을 하다가 이전에 후배와 성균관대 후문 쪽으로 걸었던 성곽길이 생각이 나 이 코스를 네 번에 걸쳐 돌아보기로 했다. 우선 이 길은 한양도성길로도 불리고 한양성곽길, 서울도성길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공식적으로는 문화재청이 '서울 한양도성길'로 이름짓고 있고 이곳에서는 한양도성길로 부르기로 하겠다. 이번 글은 사진이 많아 두 개의 글로 나누어 올릴 생각이다. 그리고 글자 폰트도 조금 키워보았다.

한양도성길의 시작점으로 택한 것은 북악산길이다. 북악산길도 3곳은 진입로가 있는데 내가 간 곳은 지하철 5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출발하는 길이다. 지하철 출구에서 한 10여 분 정도 직진을 하면 되는데 언덕으로 올라설 즈음 건널목 건너로 진입로가 보인다. 올라 오는 도중에 간송미술관으로 가는 길과 나뉘기도 한다.


안내표지판을 뒤로 하고 걷기 시작하면 평탄하게 잘 포장된 길이 이어진다. 초입부터 시작된 성곽이 이제 이 길을 마무리하는 지점까지 죽 이어지게 된다. 성곽을 쌓은 돌의 재질이 위치마다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리고 왜 그런지 생각해보면서 걷는 것도 좋겠다.


입춘이 지났지만 아직 봄은 오지 않았다. 성벽에 기댄 채 말라 붙은 가지가 아직 오지 않은 봄을 탓하듯이 그리고 지난 겨울의 흔적을 기억하듯이 이제는 따스해진 겨울 햇살을 온몸으로 쬐고 있었다. 


제법 넓어지는 구간이 나온다. 와룡공원과 이어지는 곳인데 지역 주민들의 휴게 공간 역할을 하고 있어서 의자나 운동 기구들 같은 것이 여기저기 배치되어 있다. 미리 말하지만 본격적인 성곽길 걷기를 시작하면 마땅히 쉴 곳이 없으니 미리 충분한 휴식과 에너지 보충을 하는 것이 좋다.


그러고보니 우리 역사 유적 찾기도 하겠다고 야심찬 선언을 한 지도 제법 오래됐다. 한동안 그 작업도 거의 못 하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이곳이 사적 10호다. 보통 여행을 다닐 때 안내문 읽기를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은데 잠깐 멈춰서서 안내문을 보면 자신이 어디에 그리고 왜 왔는지 다시 확인할 수 있고 무엇에 중점을 두고 여행의 방향을 잡아야할지 분명해지기 때문에 안내문은 꼭 읽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다.


이렇게 보면 마치 조선의 어느 시대에 와 있는듯한 느낌이 든다. 세월이 흐르고 사람들의 모습은 다 사라졌지만 성벽은 남아 그 시절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이 자리에도 어느 인물의 인생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을텐데 낯선 이는 그 사연을 알 수 없고 그저 차가운 벽돌에 기댄 햇살만 바라볼 뿐이다.


북악산길의 시작점인 말바위안내소로 가는 길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제법 멀다. 말바위 안내소에서 시작하는 북악산길의 길이보다 그 전에 걸어야 할 거리가 훨씬 길기 때문에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주변 경관을 감상하면서 걷기를 권한다. 날이 따뜻해졌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겨울인지라 오가는 이들이 그리 많지 않아 조용히 산책하기에 더없이 좋았다.


생각해보면 여러 국가의 수도 역할을 했던 서울에 당연히 유적이 많아야 함에도 우리 주변에서 과거의 유적을 찾아보기란 쉽지가 않다. 일제강점기와 전란을 거치면서 많이 소실된 부분도 있겠지만 개발이라는 이름 하에 사라진 유적들도 꽤 많지 않을까? 과거를 기억한다는 것은 발전을 거부하고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를 그리고 미래를 키워나가는 주춧돌이 되는 것인데.. 아쉬운 부분이다.


한양도성길 중 북악산길은 입장 제한이 있다. 지역 자체가 청와대에 인접해 있고 1.21사태라는 분단 시대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장소기 때문이다. 이곳을 걷기 위해서는 신분증이 필요하다. 안내판에 써 있는대로 준비만 하면 입장하는데 전혀 무리는 없으니 참고하도록 하자. 다만 입장 시간이 짧은 편이기 때문에 가급적 오전에 집을 나서는 것이 좋다.


시내에서 좀처럼 구경하기 힘든 표지석이다. 이 돌을 기준으로 성북구와 종로구가 나뉘는데 기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이런 표지석들이 곳곳에 있어 사람들이 왕래하면서 현재 위치를 묻곤 하지 않았을까 싶다. 요즘이야 스마트폰만 켜면 아주 자세한 위치가 나오지만 말이다. 때로는 너무 자세한 정보는 정신에 부담이 가기도 하는데 오히려 이런 표지석이 정감있고 아날로그적이다.


이제 성곽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끼인지 풀인지 모를 식물들이 세월을 간직한채 성벽에 옹기종기 붙어 있다. 지난 겨울을 버틴 힘으로 이제 봄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 역시 다르지 않아 슬픔과 기쁨은 늘 그 자리를 바꿔가며 우리에게 삶이란 이런 것이라고 교훈을 준다. 힘들다고 좌절하지 말고 기쁘다고 교만하지 말 일이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니 제법 높이가 만만치 않다. 전란 시대에는 이 성벽을 지키느냐 오르느냐에 한 국가의 운명이 정해졌을텐데 오르는 자나 지키는 자나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맞부딪힌 장소가 바로 이곳은 아니었을까? 자세히보면 아랫부분의 돌과 윗부분의 돌의 재질이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처음 성곽이 만들어질 때의 상태를 보존하고 있느냐 아니면 이후 보수공사가 이루어졌느냐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고 한다.


한참을 걸었지만 아직 안내소는 보이지 않고 안내문만 나타난다. 위에도 적었지만 실제로 안내소를 지나 걷는 거리는 얼마 되지 않는다. 창의문 쪽에서 오르는 길을 선택했다면 바로 북악산 길부터 길이 시작되지만 말바위 안내소로 오는 길을 택했다면 이렇게 먼저 걸어야할 길이 있으니 경로 선택을 할 때 참고하면 되겠다.


이제 얼마 뒤면 이곳은 개나리가 펼치는 노란색의 물결로 뒤덮이겠지만 아직은 숨을 죽이고 있는 모습이다. 이미 남부지방에는 봄을 알리는 징조들이 속속 선을 보이고 있지만 서울은 여전히 겨울이다. 하지만 자연의 순리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것인지라 경칩이 지날 무렵이 오면 지난 겨울의 흔적은 거의 사라지리라.


오래된 돌과 다음 세대의 돌 그리고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는 바위들과 그 사이의 나무들이 어루어진 풍경에 한참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장소. 시간과 세월, 흔적과 기억 그런 단어들이 머릿속에서 맴돌면서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시간여행이라도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길을 걷기 시작했을 때의 잘 닦인 길은 이제 거의 보기 힘들어졌고 좁은 길과 성벽 그리고 나무들을 벗삼아 걷는 구간이다. 성곽길이라고 표현이 되어 있어서 자칫 산책로 정도로 생각하기 쉽지만 북악산길은 그 이름 그대로 북악산 정상을 통과하는 길이다. 물론 등산 장비를 착용하고 걸을 필요까지는 없지만 대략 5km정도의 거리를 걸어야하기 때문에 등산화 정도는 신고 가는 것이 몸에 무리가 가지 않을 것 같다. (2편에서 계속)




북한산둘레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 작년 5월 8일이고 어제 그러니까 2013년 5월 8일에 마지막 구간인 21구간 우이령길을 걷었다. 뭔가 지고 있던 짐을 덜어놓은 기분이 들면서도 아쉬운 마음이다. 북한산둘레길은 총 길이가 71.8km에 달하고 서울과 경기도를 오가며 길이 나 있어서 구간마다 계절마다 독특한 느낌을 주는 길이다. 서울이나 경기에 사는 이들에게는 강북5산(불수사도북)이 있고 이 둘레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 큰 혜택을 받고 있는 셈이다.


둘레길 홈페이지에서 캡쳐한 전체 구간이다. 처음 이 길을 완주해봐야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았는데 막상 걷기를 시작하고 나니 딱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둘레길을 걷는 동안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무뚝뚝하게 스치고 지나가는 사람들, 가볍게 목례를 던져 주는 사람들 그리고 함께 길을 걸었던 사람들... 결국 길이라는 것은 사람과 이어지는 그런 것이 아닐까 돌아온 길을 떠올리며 그런 생각이 든다.


21구간 우이령길은 사전예약구간이다. 하지만 주말을 제외하면 어지간해서는 예약이 가능하다. 내가 택한 코스는 교현에서 출발해서 우이동으로 들어오는 코스인데 이길을 가려면 서울에서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에 내려 740번이나 34번을 타고 석굴암 입구에서 내리면 된다. 우이에서 출발하는 것도 괜찮긴 한데 만약 식사를 할 생각이 있다면 우이동 쪽이 먹거리가 조금 더 많기 때문에 교현에서 출발하는 것이 낫다. 우이로 나올 경우는 버스를 타고 수유역이나 쌍문역으로 가면 된다. 

미리 적지만 21구간 우이령길은 별 다른 특징이 없는 구간이다. 길도 출발한 선에서부터 거의 일직선으로 나있다고 보면 된다. 오르막도 내리막도 많지 않고 계단은 아예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남녀노소 누구나 갈 수 있다. 구간 안쪽에 군부대와 경찰부대가 있어서 가끔 차들도 다닌다. 애초에 둘레길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가는 편이 오히려 나을 수도 있다.


오랜만에 보는 군부대 앞 표지. 무려 39개월을 복무했지만 저걸 지키는 부대는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원칙으로 지키는 이유는 원칙이 있어야 예외나 융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소위 FM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이유인데 어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닥쳤을 때 뭔가 기준이 있다는 것은 커다란 힘이 된다. 쓰지도 않는 것을 왜 매일 연습하냐고 이야기하는 것은 매너리즘에 빠진 이들이 하는 쉬운 핑계일뿐이다.


길을 이렇게 거의 일직선으로 곧게 나 있고 갈림길도 없다시피해 헷갈릴 일도 없다. 그저 산의 공기를 마시며 천천히 걸으면 된다. 다만 햇빛을 피할 곳이 거의 없는데 여름에 이 길을 걸을 때는 준비를 잘 해야할 것 같다. 햇빛이 그대로 내리 쬐기 때문에 길의 난이도가 낮음에도 쉬이 지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늘 이후 이 길을 가는 분이라면 선크림, 선글라스, 팔토시, 모자 정도는 꼭 준비하시길...


계절의 탓인지 날파리들이 심심치 않게 얼굴로 달려 든다. 전에 무슨 TV방송에서 날파리들이 사람 눈에 알을 낳는다는 끔찍한 소리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렇지 않더라도 눈 앞으로 달려드는 것은 신경이 제법 쓰인다. 길을 들어설 때부터 길을 마무리 할 때까지 날파리와의 전쟁이다. 이 날파리들은 참 묘하게도 사람의 눈 앞에서 왔다갔다 하는데 어떻게들 알고 그리 달려드는지...


길을 조금 더 가면 멀리 오봉이 보인다. 원님의 딸을 맞아들이기 위해 내기로 던진 돌이 올라가 자리 잡았다는 전설이 함께 한 오봉. 다섯 개의 봉우리인데 나중에 사진을 더 올리겠지만 4개까지는 그럴 듯 한데 나머지 하나는 조금 애매하다. 사봉이라고 하기 뭐해서 오봉이라 한 것인지 아니면 원해 다섯 개의 돌이 있었는데 한 개가 굴러 내려간 것인지 알 길은 없다.


문든 편지를 써 본 적이 언제인가 돌이켜본다. 흔한 연애편지가 아닌 가족들에게 편지를 써 본 적이 있던가.. 아마도 남자들에게는 군 시절이 거의 유일하지 않을까? 뭔가 절실한 환경에서는 가족에게 글을 쓴다. 나는 지금도 군 시절의 편지들을 가지고 있는데 가족들이 보낸 편지,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 신병교육대 교관 시절 훈련병들이 보낸 편지 등등이 남아 있다. 지금 그 편지들을 읽어보면 참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당시에는 가장 마음속에 담긴 이야기들이 오고간 것이 아니었을까?


길을 걷는 중에 간간히 총소리가 들려 사격장이 있구나라는 것은 알았지만 어느 정도 가니 군인들의 함성 소리가 들려온다. 유격훈련이 한창 진행 중이었던 것이다. 장교 교육 시절 받았던 유격은 정말이지 다시는 가고 싶지 않았던 고통 그 자체였는데... 늘 사람들은 자신이 겪은 일은 과장하는 습성이 있어서 요즘 군대 편해졌다느니 우리 때는 얼마나 고생했는데..라는 말을 하곤 하지만 사실 현실적으로 바로 지금 그 일을 겪고 있는 사람보다 힘든 사람은 없는 법이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에게 "그것도 못 이겨내냐"라고 말하는 것은 정말 조심해야 한다.


전체적인 우이령길의 안내도다. 앞서도 적었지만 길을 걷는 자체는 어렵지 않으니 가벼운 산책코스로 이용하기에도 적당하지만 계절에 따라 준비를 해 가야 할 것들은 잘 챙겨갈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구간은 다른 구간처럼 중간에 걷기를 그만둘 수가 없다. 빠져 나갈 샛길이 존재하지 않으니 볼일은 미리미리 다 보고 걷도록 하자.


이제 이 초소를 지나면 길이 좁아진다. 본격적인 걷기가 시작되는 지점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전체적으로 21구간은 구간 자체를 걷는 시간보다 출발점까지 가는 시간 종착점에서 교통편을 이용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는 시간이 만만치 않다. 여기쯤 왔으면 일단 좀 쉬어 가는 것도 괜찮다. 요즘 방울토마토를 종종 먹는데 평생 살면서 올해 처음으로 제대로 먹게된 녀석이다. 의자에 앉아 한개 두개 입에 넣어본다. 톡 터지는 맛이 산행에는 제격이다. 


표지판대로 맨발로 걸어도 괜찮다 싶다. 등산화를 신고벗는 것에 별다른 귀찮음을 느끼지 않는다면 여기서부터는 신발을 벗고 걸어보는 것도 좋으리라. 실제로 몇몇 분들은 맨발로 길을 걷고 있었는데 행여 발에 뭐라도 박히지 않을까라는 소심함에 나는 끝내 신발을 벗지는 못했다. 상을 차려줘도 수저를 들지 못하니 원...아무튼 맨발로 길을 걷는 것은 권할만한 일이다. 올 여름 어느 바닷가 백사장이라도 걸어보면 어떨까.


앞서 사진들이나 큰 차이가 없다. 뭔가 풍경이라는 것이 있는 것은 아니고 처음부터 내내 이런 모양이다. 지루하게도 생각될 수 있는데 그럴 때는 걸음을 느리게 걸으며 나무들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도 지루함을 물리치는 좋은 방법이다. 겨우내 이곳에는 이런 푸름은 전혀 없었을 것이고 계절이 바뀌어 순식간에 길 전체가 생명으로 가득하게 된 것만 해도 신비로운 일이니 말이다.


조금 더 자세히 보이는 오봉이다. 4개까지는 '아..'하고 이해가 가는데 다섯번 째는 긴가민가하다. 아마도 바위 위에 또 다른 바위가 도드라져보이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120mm까지 당겨보아도 내 눈에는 여전히 '사봉'이다. 바위가 한 개 더 올라가 있어야 오봉이라는 이름에 어울릴거라고 내가 애초에 생각을 고정해둔 탓이겠지만 말이다.


전방에 가면 도로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대전차장애물. 이곳에 이런 것이 있으니 좀 뜬금없다 싶기도 하지만 교현에서 우이까지 산을 관통해 갈 수 있는 길이 공식적으로는 이길밖에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전차의 폭이 이렇게 좁은 경우는 좀처럼 많지는 않겠지만... 지금은 그저 과거의 역사의 흔적의 하나 정도로 남겨져 있다.  


그리고 이곳이 소귀고개인데 우이령의 우리말 표현이다. 우이령이라고 하면 대체 무슨 뜻인가 생각을 해야 하지만(물론 내 경우다.) 소귀라고 하니 단박에 이해가 간다. 차라리 소귀고개라는 표현을 그대로 쓰는 게 낫지 않겠나 싶은데 그러지 못 하는 여러 이유들이 있겠다는 짐작은 간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살던 동네 이름이 우이동에서 소귀동으로 바뀌면 그것을 별 것 아닌 것처럼 받아들일 수 있겠나.. 아파트 이름을 바꾸었더니 집값이 올라갔다고 반기는 것이 우리네들의 생각인데 소귀동이라면...


북한산둘레길 21구간 우이령길은 이렇게 끝이 난다. 우이동에서 출발하는 코스를 관리하는 사무소를 지나 버스를 타는 지점까지 걷는 거리가 제법 멀다. 좌우로 음식점들이 죽 늘어서 있고 포장된 길을 죽 걷다보면 지금 한창 공사 중인 큰길로 나오게 된다. 

우이령길은 실제 거리는 짧지 않음에도 '아, 벌써 길이 끝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금방 걸을 수 있다. 석굴암 입구에서 우이동 버스 정류장까지 거리가 약  7km정도 되는데 아주 단순하게 성인 남성이 1시간에 4km를 걷는다는 기준을 적용하면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사이면 얼추 전체 거리를 걸을 수 있다. 마지막 구간이고 예약제인탓에 뭔가 특별한 것이라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 이래저래 심심한 길이지만 이제까지 걸어온 발자취를 떠올리면서 걷게 되면 애틋한 마음마저 드는 것이 21구간 우이령길의 매력이다.

이제 길 하나를 마무리했으니 다음에는 어디를 걸을까 행복한 고민이다. 미뤄두었던 북한산 오르기를 해볼까 전부터 가 보고 싶던 사패산을 가볼까 생각이 많다. 어찌 되었건 그래도 산이 그리고 길이 좋은 것은 언제고 다시 돌아와 그곳에 설 수 있다는 점때문이다. 인간의 유한한 삶에 비하면 산이나 길이 가지고 있는 삶의 길이와 깊이는 거의 무한에 가까우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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