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산은 조선의 한양을 기준으로 볼 때 우백호 즉 오른쪽의 흰호랑이라 불리는 영산이다. 인왕산은 조선 개국 초기에 서산(西山)이라 지칭하다가 세종때부터 인왕산(仁王山)이라 불리게 되었다. 본래 인왕이란 불법을 수호하는 금강신(金剛神)의 이름인데 조선왕조를 수호하려는 뜻에서 산의 이름을 개칭하였다고 한다. (출처: 다음) 강감찬 장군이 호랑이를 호통으로 몰아냈다는 전설도 들려오는 등 여러 기이한 이야기들이 많아 한양에 사는 이들에게는 아주 친숙한 산이 이곳 인왕산이다.


오늘 코스는 여러 코스 중에 독립문역에서 출발하여 인왕산 정상을 거쳐 창의문을 들러 경복궁역으로 내려오는 코스로 정했다. 고도가 313미터로 나오는데 정확한 인왕산의 높이는 338미터라고 한다. 인왕산은 청와대에 가까운 까닭에 특정 구간은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고 오르내리는 동안 내내 경찰들을 마주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여유가 된다면 경복궁까지 가보는 것도 괜찮다.


어제 눈이 내려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내심 눈 덮인 산을 기대했지만 뽀드득 소리를 내며 눈을 밟을 일은 거의 없어서 조금 아쉽기는 했다. 평생을 서울에 살면서 인왕산을 이제야 올라가봤다는 것에 의미를 좀 더 두기로 하자. 독립문역 2번 출구로 나와 왼쪽 샛길을 따라 아파트를 곁에 두고 조금 오르다보면 인왕산에 오를 수 있는 등산로가 나온다.


인왕산의 특징 중의 하나는 바위가 많다는 것과 서울성곽길 중의 일부가 이곳에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서울성곽길 엄밀하게는 한양도성(길)로 사적 10호로 지정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사적 10호는 한양도성 전체를 포괄하고 있어 내가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전체를 다 소개하기는 어렵지만 될 수 있는 한 여러 곳을 다녀볼 생각이다.


서울성곽에 대한 안내 표지판을 볼 수 있다. 서울 전역에 이런 안내판들이 대개 반사재질을 택하고 있는데 항상 깨끗하게 하지 않으면 글자를 제대로 알아보기 어렵다는 점은 단점이랄까...2중으로 되어 있어 글자가 겹쳐 보이기도 하는데 미적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실용성면에서는 그다지 좋은 평가를 하기는 어렵겠다.


인왕산 등산로는 거의 계단으로 이루어져있다. 어찌 보면 편한 것같지만 상대적으로 무릎에 무리가 많이 가는 형식이다. 사진에서 보다시피 계단에는 눈의 흔적은 거의 없고 그나마 하얀 것들은 염화칼슘인데 주변에 경찰들이 경비를 서고 있어 눈이 쌓일 틈이 없다. 문득 전방 군생활 기억이 떠올랐던 순간인데 눈이 내림과 동시에 쓸어야했던 그런 시절이 지금도 여전한가보다.


애초에 등산 시작점의 고도가 높아서인지 얼마 가지 않아 정상이 보인다. 성곽을 옆에 끼고 걸으면 제설작업이 되어 있지 않아 눈 밟는 느낌이 좀 나긴 하는데 성곽만 따라가다가는 중간에 길이 끊어지기도 하니 주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길이 거의 능선 형태로 되어 있어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막을 대책이 없으니 겨울에는 준비를 철저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


겸재 정선이 그린 인왕제색도가 정확히 어느 방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얼핏 비슷한 것같기도 하다. 그림에 나오는 집은 지금은 무엇이 되어 있을까? 휴일이라 사람들이 제법 있을 줄 알았는데 열 명도 채 만나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근무서는 경찰들을 더 많이 만났다. 인왕산에 이렇게 경계가 삼엄한 것은 과거 1.21사태로 알려져 있는 그 사건의 여파가 아닐까 싶다.

성곽을 따라 눈이 쌓여있고 그 눈을 따라 길이 보인다. 그리고 그길을 조용히 걸어가본다. 바람은 제법 찼지만 찬바람이 오히려 머릿속을 싹 비워주는 그런 느낌이 들어 꽤나 괜찮았던 산행이었다. 하늘이 흐린 곳과 맑은 곳이 나뉘어 있어 어느 방향에서 바라보면 파랗고 어느 방향에서 보면 회색빛이었던 것도 재미있었던 점이랄까.


오르고 내리는 길이 거의 계단이다. 흙길을 걸을 때에 비해 발이나 무릎에 가해지는 충격은 훨씬 크다. 그런 충격을 줄이는 방법은 천천히 가는 것. 정상에 오르는 것을 목표로 앞만 보고 씩씩거리며 산에 오르면 산은 오만한 인간에게 피로감을 선사한다. 주변 경관도 즐기며 차분히 산과 이야기하며 걸으면 힘도 들지 않고 어느새 정상에 다다르게 된다. 산에 오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겸손이다.


눈이 좀 더 내렸다면 하는 아쉬움도 남지만 그래도 어제 눈이 내린 것이 참 다행이다 싶었다. 눈 쌓인 산은 참 볼 때마다 멋지다. 그리고 그 속을 걸어나간다는 것은 꽤나 즐거운 일이기도 하다. 인왕산은 전체적으로 등산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기 때문에 어느 코스를 선택하더라도 오전에 출발한다면 점심 전에 내려올 수 있다. 


멀게만 느껴지던 정상이 바로 눈앞까지 다가온다. 좌우로 넓게 펼쳐진 서울 시내가 죽 둘러서 보이는데 제법 시원스럽고 볼만하다. 오른쪽 멀리 청와대도 보이는데 사진 금지라고 써 놓은 표지판이 하도 많아 그쪽은 그냥 눈으로만 보고 말았다. 굳이 사진으로 남길만한 것도 아닌 것 같고...


제일 헷갈리기 쉬운 구간인데 성곽길 따라서 올라가면 길이 없다. 좀 더 오른쪽에 길이 나 있으니 그곳으로 가야 한다. 나도 처음엔 이곳이 길인가 해서 올라가다가 중간에 보이는 작은 계단으로 얼른 방향을 바꿨다. 성곽들이 복원된 것은 좋은데 너무 깨끗해서 주변과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느낌도 든다. 가능하면 오래된 돌을 구해다가 만들었으면 어떨까 싶기도 한데 쉬운 일은 아니겠지 싶다.

이길을 올라가면 정상이다. 역시나 눈은 거의 없어 미끄러지는 위험없이 편하게 오를 수 있었다. 다른 계절에는 인왕산에 사람들이 제법 많다는데 겨울이라 사람이 없는 것인지 크리스마스라 없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사람이 적은 것이 산에 오르기에는 좋은지라 오히려 오늘 인왕산을 찾은 것이 괜찮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이다.


그래도 경찰들이 여기의 눈은 안 치워주는 배려를 해서 처음으로 눈을 쓸어주고 한 바퀴 빙 돌며 서울 시내를 바라본다. 셀카라도 찍어보고 싶었지만 바로 앞에 초소가 있고 경찰들이 왔다 갔다 하고 있어서 영 민망해서 그만 두기로 했다. 혼자 산에 다니면 아쉬운 점 중의 하나가 내가 담긴 사진이 없다는 것인데 여태 사진을 취미로 했으면서도 나를 찍은 사진은 거의 없는지라 그냥 그려려니 하기로 했다.


이쪽 방향으로는 사진을 찍어도 딱히 뭐라 하지 않길래 한장 담아봤다.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일찍 정상에 올라와서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고 다른 산과는 다르게 초소와 근무하는 이들이 왔다갔다 하고 있어 정상에 올랐다는 느낌이 그리 들지 않는 것도 인왕산의 특징이라면 특징이겠다. 나는 배낭에 등산 의류 끼어 입고 올라가고 있는데 휙휙 날아다니는 젊은 경찰들을 보면 좀 민망한 느낌도 있고...


하산길 역시 깔끔하게 제설작업이 되어 있다. 이쪽 방향은 창의문으로 가는 방향이다. 멀리 보이는 풍경이 참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아마도 눈이 쌓인 덕분이 아닐까 싶은데 눈이 쌓이지 않은 겨울산은 뭐랄까 조금은 쓸쓸한 느낌이 강한데 눈이 이렇게 덮혀 있으면 쓸쓸한 느낌은 여간해서는 들지 않는다.


희한하게 생긴 큰바위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다. 뭔가 전설이라도 담겨 있음직한데 주변에 뭐라 적혀있지는 않았다. 분명 무슨 사연이 담겨 있는 것이 분명한데 집에 돌아와 검색을 해봐도 알 길이 없다. 오늘 산행에서 본 것 중에 제일 특이한 것은 이 바위 두 개였다.


조금 걷다가 이정표를 만나게 되는데 사진에 보이는 기차바위로 향하는 길과 창의문으로 향하는 길이 갈리게 된다. 기차바위는 수락산이 유명하다고 하는데 인왕산 기차바위도 꽤 괜찮다고 한다. 사실 인왕산에서 바위 구경하는 것도 흥미진진한 일인데 독립문역에서 올라오는 코스에서는 유명한 바위들을 거의 만나지 못했다. 아니면 내가 모르고 지나쳤는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오늘 목표는 창의문 방향이니 기차바위는 다음으로 미뤄둔다.


성곽을 따라 죽 내려가는 계단이 이어져 있다. 계단만 보고 걷는 것도 좋지만 가끔 멈춰서 주변을 둘러보면 경치가 꽤나 볼만하다. 멀리서 바라보는 도시는 그래도 운치가 있다. 그안으로 들어가 삶 자체와 마주치면 여러 감정들이 몰아치겠지만 이렇게 멀리 떨어져서 보면 그저 하나의 풍경처럼 다가온다. 가끔은 삶 자체도 멀리서 볼 필요가 그래서 있는 것이 아닐까.


멀리 보이는 북한산 자락. 이렇게 보니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웅장해보인다. 산은 멀리서 보는 것도 좋고 가까이 보는 것도 좋다. 인왕산도 저 북한산 자락에서 이어진 것처럼 보인다. 중간중간 잘리긴 했지만 산줄기가 뻗어있는 모양을 보면 능선따라 죽 걸어가면 북한산에 이를 것만도 같다.


그리고 이제 본격적인 하산길이다. 이길을 따라 죽 걸어내려오면 오래지 않아 도로와 만나게 된다. 그 도로를 가로질러 조금 더 걸어가면 윤동주 시인의 언덕을 만날 수 있고 조금 더 걸어가면 창의문이다. 창의문에 대해서는 다른 글로 올리기로 하겠다. 그곳에 대해 적을 내용도 제법 되고 서울성곽길 전반에 대한 글도 있어야 할 것같다는 생각에서다.


이정표를 보다가 뭔가 희한한 게 보인다. "인왕산에서 굴러온 바위" 저것은 대체 무엇인가.. 인왕산이 바위로 유명하다고 하긴 하지만 바위가 굴러 내려온 것이 있나 싶어 호기심이 발동한다. 창의문으로 바로 이동하려다가 잠깐 들라보기로 했는데...


바위 하나가 굴러 내려온 것이 아니라 여러 바위(?)들을 묶어 놓은 것이다. 나름 바위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가 되는 녀석도 있지만 대개 작은 돌들이다. 인왕산 자체가 바위산이다보니 이런저런 이유로 바위들이 굴러내려오는 모양인데 굴러내려온 바위들을 저런 식으로 모아둔 것도 재밌다.


그리고 만나게 되는 장소가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다. 이곳이 윤동주의 이름을 따게 된 것은 그가 실제로 이 근처에 살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큰 바위 하나에 시인의 시를 앞뒤로 적어두고 있어 제법 분위기가 괜찮다. 여기서 창의문 쪽으로 좀 더 이동하면 윤동주 기념관도 있다는 데 어쩐 일인지 내가 가는 방향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시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쉽지 않다고 생각된다. 자기 내면을 깊게 그리고 투명하게 들여다봐야 만날 수 있을까말까한 자신의 본질. 그 본질을 온전히 밖으로 끄집어 내어야 하는 고통을 감수한 후에야 비로소 시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너무나 익숙한 시지만 한참 그 앞에 서서 싯구를 반복해서 읽어본다. 나는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가...부끄럽다면 떳떳해지자고 생각을 하면서...


Panasonic LX-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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