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으로 한 걸음 돌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일까 생각을 하다가 예전부터 내게 익숙한 일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게 가장 익숙한 일이라면 역시나 글을 쓰는 일, 사진을 찍는 일 그리고 운전을 하는 일인데 일단은 글과 사진을 다시 추스려보는 것이 좋겠다 싶었다. 사실 과분한 카메라를 2대나 가지고 있으면서도 늘 먼지만 쌓이게 방치해두고 있는 것이 현실인지라 어디 장터에라도 내놓으면 좋은 값을 받을지는 몰라도 지금의 내게는 장식품 정도의 역할도 못 하고 있기 때문에 꽤나 미안한 마음도 들었기 때문이다.

사진이란 어디를 가야 비로소 찍을 수 있는 것이 아닌데도 예전에는 '출사'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였었다. 특히나 디지털이 일반화되기 이전의 필름카메라 시절에는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것 자체가 남들의 시선을 끄는 일이어서 어쩐지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요즘은 카메라 둘러메고 다니는 것(오히려 SLR은 촌스러워 보일 지경이다)이 전혀 어색하지 않으니 숫기없는 내게는 꽤나 좋아진 시절이다.

테라야마 슈지의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라는 구호(?)도 있듯이 일단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가면 무언가 세상이 달리 보이기 마련이다. 한 가지 늘 잊는 것이 있는데 카메라 파인더를 통해 세상이 다르게 보이는만큼 세상 역시 나를 다르게 본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이것을 좀처럼 알아차리지 못하고 '나' 위주의 사진을 찍었었는데 그래서는 일방적인 사진만 나올 뿐이다. 참 깨닫기 어려웠던 부분이다. 

모델 사진을 찍어도 모델과 눈이 맞았을 때 찍은 사진이 좀 더 실감이 나듯이 일상의 소소함을 찍을 때도 그 일상이 나를 바라보는 순간들을 잡아보자라고 생각하면 좀 더 사진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 사진을 찍으면서 늘 염두에 두고 싶은 생각이다.

아무튼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노력 중이다.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그런 일상에 익숙해야 하기 때문이다.


Nikon F5, AF Nikkor 24-85mm F2.8-4D, Ilford Delta 400, LS-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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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시작이라는 것은 나름대로의 여러가지 의미를 스스로에게 부여한다. 본격적인 겨울의 시작이 내게 주는 의미 중 가장 큰 것은 역시 '정리'라는 단어가 아닐까 싶다. 이제는 희미하게 사라져 가는 지난 시간들의 수많았던 순간들을 고이 접어 과거라는 이름으로 봉인하는 일과 막연하게 혹은 혹시나..라는 미련과 기대를 남겨 두었던 미래를 좀 더 멀리 미뤄두는 것이랄까. 사실 겨울을 기다렸으면서도 한편에서는 내심 조금은 늦게 와 주었으면 바란 것도 이 정리를 해야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달력을 보고 지난 시간들을 하나 둘 돌아보며 조금은 아쉬운 웃음으로 넘겨 버릴 수 있게 되었고 모아 두었던 기억의 단편들을 보이는 것이던 혹은 보이지 않는 것이던 하나 둘 내 기억과 시야에서 지워나간다. 겨울의 기억이 유난히 많은 내게 이 계절은 생각만큼 쉬이 지나칠 수 없는 시기인 것은 분명하지만 오히려 이 계절이 아니면 머릿속 어딘가에서 방황하고 있을 기억의 조각들과 방안 곳곳에서 떠돌고 있는 과거의 흔적들을 온전히 찾아 떠나보내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 본다. 


방 구석에 먼지가 수북이 쌓인채 잠들어 있는 커다란 여행 가방에서 오랜 기억의 흔적들을 끄집어 내고 이제는 다시 그것들을 마주 하지 않으련다는 생각을 하며 가방을 텅 비워가는 작업도 내가 겨울에 해야하는 일이다. 수많은 약속과 다짐들, 다정한 말과 글들이 이제는 부질없는 한숨의 이유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씁쓸하기는 하지만 그것들을 더 이상 내 주변에 놓아둘 이유도 없어졌고 오히려 이런 것들을 나 홀로 보관하고 있는 것이 나 자신뿐 아니라 이전의 기억들에게도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몇번을 망설이다 치워나간다.


생각해보면 지난 추억의 흔적들 특히나 물리적인 흔적들을 보관한다는 것은 꽤나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두 사람이 결혼까지 이르러 한 집에 살게 된다면 그 흔적들은 미래의 어느날에 다시 들춰보아도 즐거운 서로의 공감대가 되겠지만 이미 다른 사랑을 찾아 다니는 사람 혹은 다른 이의 아내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사람과 나눈 기억들을 나 혼자 보관한다는 것은 객관적인 시각에서 보면 찌질하거나 비참한 일이 아닐까. 남자의 기억의 방이란 그런 것이라는 말을 듣긴 했지만 남자의 사랑이란 원래 그렇게 유치하고 어리석은 모양이다.


혹시나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라며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 알게된 첫 소식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다더라..라는 이야기일 때는 내심 섭섭하기도 하지만 한편에서는 시원하기도 한 그런 감정이 교차하게 되는데 그런 이야기를 듣고 '우리가 사귄 게 얼마나 오래인데.. 둘이 아니면 못 산다며..'라는 말을 되새기며 한탄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보편적으로 여자의 사랑은 그렇게 대상이 옮겨가면 지난 시간은 새로운 시간으로 덮어 버리는데 이것을 남자들은 좀처럼 이해하지 못한다. 아마도 생물학적인 특성이 큰 이유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러니 그런 이야기를 들었더라도 마음에 담아둘 필요는 전혀 없다.


아무튼 지난 기억들을 하나 둘 끄집어 내어 눈 앞에 놓고 그때의 감정과 지금의 감정을 찬찬히 바라본다. 이런저런 생각이 들고 여러 장면들이 눈앞에 스치지만 그래도 예전처럼 마음이 쓰리지는 않는 것을 보면 이제는 이런 물건들이나 기록들을 보관해둘 필요가 없어졌다는 나름의 확신이 서는 모양이다. 텅빈 가방을 보니 뭔가 휑한 마음이 들기는 하지만 오늘따라 바람이 많이 불어서..라고 위안을 해 본다.

요즘에는 사랑이라는 감정조차 내게는 사치스러운 것이 아닐까라는 조금은 회의적인 생각마저 드는 상황인데 나이가 하나 둘 더 들어갈 수록 뭐랄까 '사람'자체가 좋아 사랑이 시작되고 이어지는 확률은 극히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경험에서 비롯된) 생각때문인지도 모르겠다.


Nikon F3hp, Ai Nikkor 105mm f/1.8S, Ilford XP2. LS40

 

어제오늘은 역시나 가을날답게 하늘은 높고 사람은 살찌는 평온한 주말이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비슷한 하루를 보내고 있을 즈음 후배로부터 몇 건의 문자가 오고 가게 되었고 하던 일을 멈추고 한참을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지금 어떤 삶의 모습을 살아가고 있건 이땅을 살아가는 우리네들은 서른을 훌쩍 넘기고나면 미래에 대한 막연함에 많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이때쯤되면 소위 잘 나가는 사람이건 그렇지 않은 사람이건 불안한 마음이 들게 되지요.

아마 많은 부분에서 그 원인은 경제적인 문제가 차지할 거라고 생각을 하곤 했는데 여기저기 이야기를 들어보면 또 그것만도 아닌 여러 문제들이 복잡하게 얽히더군요. 가만히 생각을 해 보면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누군가 우리의 미래를 잘 만들어진 계획표에 담아 놓고 그것을 수행하도록(?) 강요를 했기에 우리로서는 당장 공부가 싫어도 공부만 하면 되니 차라리 속 편안한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고부터가 문제였죠. 그 다음에는 어떤 것을 하라고 누가 정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가고 결혼하고 집사고 아이 낳았더니 살아갈 낙을 잃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 바로 이것이 원인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혹은 가족이 원하는 틀을 맞춰갈 때는 목표가 있었지만(물론 자신이 정한 것은 아닌 경우가 많지요) 그것들이 하나둘 이루어지고나니 '공허함'이 밀려드는 것이지요. 이 공허함을 해소하기 위해 때로는 안 좋은 관계에 빠지는 일도 종종 보게 됩니다.

이것은 한편에서 생각해보면 사회적인 문제지만 근본적으로는 부모가 아이에게 꿈을 불어넣어주지 못한 탓도 분명히 있습니다. '넌 무조건 좋은 대학 가야해 그래서 좋은 직장 들어가고 그 다음엔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그대로 따라갔더니 나중엔 뭐가 하고 싶은 지 본인이 모르는 것이지요. 뭔가 하고 싶은대로 하고 싶은데 뭘 하고 싶은지 그 자체를 모르는 겁니다. 저는 미혼에 아직은 독거노인이라 어찌할 방법은 없지만 아이들 기르시는 분들은 아이들에게 꿈을 키워주세요. 스스로 살아갈 힘을 어릴 때 불어넣어주는 건 부모님의 가장 큰 역할입니다. 선생님들의 역할도 이에 못지 않죠.

글이 삼천포를 지나 만리포로 가고 있네요. 이 이야기를 하려던 것이 아닌데...(그래도 아주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습니다)  원래 제가 글을 쓰는 스타일이 하나의 글을 여러 번 며칠에 걸쳐 쓰는 편인데 한번에 생각나는대로 지금처럼 쓰다보니 원래 쓰려던 글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네요. 아무튼 쓰고 싶었던 것은 맨 위의 부분인데 이어서 적어보면...

스스로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는 시점에 다다랐다면 그때가 바로 새로운 시작을 위한 꿈을 준비할 때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시기는 서른이건 마흔이건 혹은 예순이건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생각을 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순간부터 스스로의 생각과 힘으로 살아가는 첫날이 되기 때문이지요. 타인에 의해 만들어진 삶은 수백 살을 살아도 나의 삶이 될 수가 없습니다. 하루를 살아도 내 의지대로 살아야 그것이 자신의 삶이지요.

다만 어떤 선택이건 그 선택에는 온전한 책임이 따릅니다. '이제까지는 주어진 길대로 살았으니 나는 아무 책임이 없어.' '주변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 할 수 없는 일이야.'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랬나 부모님이 그러라고 해서 그랬지..' 이런 류의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은 결국 자신이 자신의 삶을 한 번도 제대로 산 적이 없다는 것을 외부에 알리는 것외에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저도 예전에는 이런 생각을 많이 했었지요. 그러다보니 정작 스스로 어떤 선택을 해야할 때 머뭇거리게 되고 주저하게 되고 힘들어하게 됩니다. 아무도 도와 주지 않는다는 것. 정해진 길이 없다는 것을 생각해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틀에서 벗어나 스스로 무언가 결정을 하게 되면 이제는 온전히 홀로 서서 걸어야 합니다. 함께 걸어가 줄 동반자나 동지가 있다면 좋겠지만 홀로 내린 선택의 경우는 이럴 경우가 거의 없죠. 책임을 진다는 것은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 만들어진 길에 대해 후회나 미련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지요. 아빠가 이미 자전거의 뒤를 잡아주지 않고 있음에도 잘 잡아주고 있다고 생각한 아이가 곧바로 자전거를 타는 이야기는 많이들 들으셨을텐데요. 막상 홀로 걸어가보면 처음의 두려움보다 스스로 나아가는 하루하루에 감사하고 만족하게 됩니다. 물론 이 역시 연습이 필요하죠.

끝으로 적자면 자신을 믿는 것이 가장 우선입니다.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은 자기자신입니다. 누구에게도 의존할 수 없는 것이죠. 그리고 현재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스스로 걸어가는 길이 그리 고되거나 힘겹지만은 않을 겁니다.. 그렇다고 제가 위에 적은 모든 것들을 실천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글은 어쩌면 저 자신을 한 번 더 토닥이는 글일 수도 있겠네요. 그리고 제게 의견을 구했던 분들께 전하는 제 답변이기도 합니다. 어떤 선택이건 그 선택은 최선입니다. 똑바로 걸어가면 됩니다. 두 다리로 어깨를 활짝 펴고말이죠. 늦은 주말 마무리들 잘 하시기 바랍니다.

 


Leica M6, Summicron 35mm f/2.0 asph, Ilford Pan F, LS-40

 

오래 전 대학로 사진입니다. 2003년이니 햇수로는 10년 전이네요. 지금의 대학로와는 또 다른 모습이지요. 요즘도 저런가 모르겠지만 대학로에는 천막을 쳐 놓고 점을 보는 간이 점집(?)들이 많았습니다. 문득 점이라는 게 어떤 것일까 생각을 해 봅니다. 미래를 내다 본다는 것은 아마 인류가 지구상에 생긴 이래로 가장 중요한 관심사 중의 하나는 아니었을까요? 하지만 당장 1분 후의 일도 알지 못 하는 것이 사람이지요. 무엇인가 알 수 없다는 것에 대한 불안이 '점'에 대한 수요를 만든 것이겠지요. 죽음 역시 사람이 겪어볼 수 없기에 막연한 두려움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점을 보는 것은 대개 현실에 불만이 있거나 너무 행복한 경우로 나뉘지 않을까 싶습니다. 현재가 막막하기에 앞으로는 좀 나아질까 싶어 점을 보기도 하고 현재가 너무 만족스럽기에 그 만족이 얼마나 더 지속될 수 있을까 알고 싶어지는 것이지요. 결국 궁극적인 이유는 앞서 적은 '알 수 없음에 대한 불안'이지요. 불안의 이야기가 나오니 프로이트의 격리에 관한 이야기와 알랭 드 보통의 책이 떠오르는데 찬반의 의견이 있겠지만 불안이 격리(떨어짐)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에는 제법 공감하고 있습니다.

'점'을 치는 것도 어찌 보면 이 격리되지 않으려는 의지와 관계가 있을 것 같습니다. 독야청청 홀로 살아간다면 굳이 점을 볼 일은 없겠지요. 하지만 누구와 살아야 한다거나 어떤 조직에 들어가야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관계'를 맺으려는 의지 그러니까 격리되지 않으려는 의지가 강해지면 불안이 생기는 거죠. 그렇게 생각하면 점을 보는 것을 그저 구시대의 풍습이라고 치부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뭔가를 모색하는 과정으로 긍정적으로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점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니 저도 무언가 '불안'하거나 혹은 '관계에 대한 의지'가 있는 모양입니다. 그렇다고 점을 보러 나가거나 타로카드를 펼쳐놓지는 않습니다. 번거로움에 대한 습관적인 거부감도 있지만 무엇보다 '알 수 없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큰 동기부여수단이라고 생각하는 까닭이지요. 미래를 알 수 있다면 현재를 적극적으로 살아갈 의지를 잃게 마련입니다. 애매모호함과 불확실함.. 삶은 결국 이런 모양인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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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진은 전형적인 흑백 필름입니다. 일포드사의 FP4라는 필름인데 ISO125의 특이한 필름이지요. 자주 사용하던 XP2에 비해 소위 선예도가 높고  콘트라스트가 강한 경향을 보이는데 라이카와 결합하면 이렇게 더 강한 이미지가 구현됩니다. XP2는 크로모제닉 특성을 가진 필름이라 전반적으로 부드러운 느낌이 강한데 FP4의 경우는 노출에 제법 민감한 모양을 보이는 흑백필름입니다. 두 사진 모두 노출은 언더로 잡았는데 조금 우울한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Leica M6, Summicron 35mm f/2.0 asph, Ilford FP4, LS-40



낡은 묘비 앞에 서 본다.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와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묘비에 묻는다면 죽은 이들은 무어라 대답을 할까.. 그것도 본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세상을 등져야 하는 운명을 묵묵히 받아들인 그네들이라면 무어라 대답을 할까.. 어느 바람이 차갑던 날의 묘비는 치열한 겨울의 얼음보다 더 차가운 체온을 내게 전해주고 있었다.

삶에 있어서... 끝끝내 안고 가야할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 자체에 대한 당위성을 부여해준다. 결국 삶이란 어떤 이유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 되고 그것으로 한 사람은 충분히 살아갈 의미와 이유를 얻게 된다. 그런 이유마저 없다면 결코 내 의지에 의해 시작된 것이 아닌 이 삶이라는 것은 꽤나 번거로운 일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한 번의 삶에 있어 그런 의미를 찾아낸다는 것은 축복에 가까운 일...

하지만 어느 순간엔가 그것이 나로 인한 것이거나 혹은 다른 이유에서거나 그 의미가 되는 "존재"가 사라지게 되고 나면 마치 온몸의 살점이 다 사라지고 뼈만 앙상하게 남아 몰아치는 겨울밤의 찬바람을 그저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그 바람이 내 뼈마디마디를 스치도록 놓아둘 수밖에 없는 그런 "내"가 되고 만다. 너무나 차가운 바람에 마음의 조각조차 뼈마디에 붙어 있기를 힘겨워하며 비명을 내지르곤 한다. 하지만 바람은 그런 나를 더 세게 몰아칠 뿐이고... 마침내 바람소리에 내 비명마저 잠겨 들어 어느 샌가 "나"의 작은 소리조각조차 남지 않게 될 때 비로소 바람은 잦아든다.

차가운 얼음대지에 주저 앉아 텅빈 하늘을 바라보다가 문득 정신이 들어 주변을 돌아보면 어느 한 곳 내가 기댈 곳 없는 오직 광활한 - 사막보다도 넓은- 공간이 나를 사방에서 압박해옴을 깨닫게 되고 어떤 방향을 생각할 것도 없이 일단 일어서 한참을 달리다 숨이 턱에 걸려 쓰러지고나면 무엇때문에 지금까지 삶을 이어온 것인가 또 한 번 하늘을 우러르며 이젠 흐르지도 않을 눈물을 흘려본다. 

내가... 내가 이 짧은 생에서 원한 것은 그렇게 큰 것도 아니었는데.. 그저 누군가 내 어깨에 살포시 손을 얹어 따스한 체온을 전해주기만을 바랐을 뿐인데.. 그것이 그렇게 하늘이 "나"를 버릴 정도로 가져서는 안 되는 꿈이고 희망이었나. 차가운 묘비에 뜨거운 눈물 몇 방울을 떨어뜨려보아도 그저 묘비를 타고 흐르는 눈물이 다시 내 발치로 흘러흘러 나를 감쌀 뿐이었다. "잃는다"는 것은 결국 "사라진다"와 같은 말임을 비로소 깨닫지만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몸도 마음도 받아들일 수 없어 묘비 주위를 서성인다.

우리는 헤어졌지만 나는 너를 보낸 적이 없다. 뼈마디를 스치고 지나가던 그 날카롭던 겨울의 어느 바람에도 끝끝내 내가 놓지 못한 것은 너의 웃음과 너의 말투와 너의 체온... 비록 눈물이 차가운 얼음조각조차 되지 못한 채 영원히 묘비 주위를 맴돌뿐이지만..그래서 끝끝내 다시는 너를 마주하지 못 하더라도.. 그래도 나는 너를 놓은 적이 없다. 소월의 어느 싯구처럼 그렇게 부르다 내가 죽을 그런 이름이 되어 있을 뿐...

너와 나는... 그렇게... 내가 묘비가 되어 있거나 혹은 네가 묘비가 되어 있을 뿐... 

그리고 다시 손을 댄 묘비는 어느새 내 체온과 같은 온도가 되어 있었다...


Nikon F3hp, Ai Nikkor 35mm f/1.4S, Kodak T400CN, LS-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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