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10점

공각기동대 1기를 본 사람이라면 '웃는 남자'의 로고를 기억할 것이다. 그런데 테두리에 뭐라고 씌여져 있는 영문을 자세히 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애니 상에서 이 로고는 계속 회전하고 있기 때문에 화면을 멈추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는 수고를 해야 비로소 전문을 이해할 수 있다.

I thought what I'd do was, I'd pretend I was one of those deaf-mutes.

라고 적혀 있는 이 문장은 공각기동대 1기를 관통하는 주제다. 원문의 출처는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The Catcher in the Rye, 1951)이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여러가지면에서 역사에 미친 영향이 지대한 작품이다.

영화나 음악은 물론이고 존 레논의 암살범인 마크 채프먼이 암살 동기로 지적하기도 한 것은 익히 알려진 바와 같다. 그동안 제대로 보지 못했던 책 중의 하나라 모처럼 시간을 내어 읽어내려갔다. 줄거리와 대략적인 주제는 알고 있었기에 이번에는 행간을 읽는 작업에 주력했다. 책이건 음악이건 그것을 받아들이는 주체의 심리적인 상태에 따라서 느낌은 매번 다르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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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읽을 때 느껴졌던 10대의 방황과 호기심, 일탈에 대한 욕구와 환상이 이번에 읽을 때는 '자유로의 도피'라는 주제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만약 이 책을 단지 남들이 권해서 혹은 공각기동대의 모티브가 되었던 책이라는 점에서 구해보는 것은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 않다. 시대적인 배경도 오래 전이고 10대 소년이 느끼는 감정의 기복이나 다소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 설정, 그리고 미국적 문화 패턴에 대한 압박이 독서를 더디게 하거나 짜증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남들이 대단하다고 느끼는만큼의 이미지가 자신에게 다가오지 않음에 대한 좌절을 맛볼 수도 있는 책이 이 책이기 때문이다. 마치 외눈원숭이 나라에 두눈원숭이가 방문한 것처럼 말이다. 남들은 다 감명깊게 읽었다는 데 내가 보기에는 영 아닌데..라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면 오히려 이 책을 제대로 읽은 것이다.

적어도 이 책을 이해하려면 3번은 봐야할 것같다. 처음 읽을 때의 짜증과 답답함이 두 번째 읽을 때는 호기심을 다가오고 세 번째 읽을 때는 감정의 동화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나는 번역본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번역가에 따라서 원문의 의미를 잘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고 도무지 현실에서는 쓰지도 않을 문장들을 읽고 있자면 내용보다 활자에 연연하게 되니 말이다. 영어가 딸리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겠지만 가능하다면 원서로 읽기를 추천하는 책 중의 하나다.
http://ilifelog.net2009-03-16T04:33:550.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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