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안에 오래 된 여행용 트렁크가 하나 있다. 그 트렁크를 열면 후보생 시절 쓰던 가방이 하나 있고 그 가방을 열면 오래된 기억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온다. 어지간해서는 열지 않는... 이제는 기억에서조차 희미해져 가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 가방. 오랜만에 청소를 하다 그 가방을 열게 되었다.

군 시절은 내게는 꽤나 특이했던 시간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학사장교로 군생활을 시작했다는 것부터가 남들과는 조금 달랐고 3년 3개월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이라는 점도 달랐을테다. 경북 영천과 광주를 거쳐 최전방으로 배치되기 전까지 교육생 시절의 크고 작은 이야기들도 돌아보면 제법 재미있었던 기억이다.

초임 근무지가 수색대였는데 생전 운동과는 거리가 멀었던 내가 특공무술 시범을 보일 정도였으니 군대란 참 대단한 곳이지 싶다. 소대장 시절에는 유서를 쓰고 실탄 박스를 싣고 나가보기도 했는데 그날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다들 잘 지내고 있을까.. 외모로만 보면 거칠어보이기만 했던 우리 소대원들..하지만 누구보다 마음이 따뜻한 녀석들이었는데...

중위 진급을 하면서 잠시 일반 대대에서 참모를 하다가 전역할 때까지는 신병교육대에서 교관 생활을 했는데 신병들의 모습을 보면 사람이 참 속한 집단 그리고 복장이 얼마나 그 사람의 정신세계까지 지배할 수 있는가를 직접 체험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래도 군에서 만난 친구, 선배들이 아직도 친한 벗으로 남아 있다. 어설펐던 여군 장교와의 에피소드는 가끔 떠올려보면 쓴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수류탄 교장에서 수류탄을 그대로 떨어뜨렸던 훈련병 이야기는 아직도 아찔하다. 반면 그때 만난 동기 하나는 얼마 전 지병으로 세상을 등졌으니 인연이란 늘 그렇게 맺고 끊어지고의 반복이 아닌가 싶다.

장교들은 전역을 해도 소위 개구리마크를 달고 나오지 않기 때문에 전역 시절의 계급장이 그대로 박혀 있는 전투복과 전투모도 여전히 남아있고 수료식에서 눈물을 펑펑 쏟던 훈련병들이 자대에서 보내온 편지도 여전히 내 가방에 담겨 오래 전 기억을 되돌이켜 준다. 

덧) 적고 보니 이글이 1,000번째 글이네요. 그동안 지운 글도 있었지만 글 숫자를 정확하게 본 것은 처음이네요 :)


오랜만에 앨범을 뒤적였다. 그러고보니 제대한 지도 참 오래되었다. 내가 군에 갈 당시에는 복무기간이 제법 길었던 시절이라 학사장교의 경우 소위 임관 전 교육 3개월에 실제 복무 36개월을 붙여 실제적으로는 39개월이라는 기간을 군에 있었어야 했다. 같은 학번인 ROTC장교들이 전역한 후에도 1년을 더 있었던 셈.

보통 남자들에게 다시 군에 가라하면 가겠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다시는 안 간다고들 말하지만 내 경우는 시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다시 갈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물론 사병과 장교가 여러가지면에서 차이가 많기 때문에 편한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냐고 하실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전방 수색대에서 보내던 시절에는 육체적으로는 상당히 힘들었던 시기였던 것은 분명하다.


군 시절 사진들이 상당히 많은 편인데 부대 특성인지 제 성격인지는 몰라도 사람들하고 어울리면서 그 기억들을 남기는 것을 무척 좋아했던 것 같다. 이 사진은 언젠가의 훈련같은데 우리 소대원들 데리고 나가서 찍은 사진이다. 저 녀석들 지금은 어떻게들 지내고 있는지...

수색대라는 특성 상 제법 훈련이 많았고 소대 단위로 철저하게 독립이 되어 있는 부대다보니 아무래도 한 소대 내에서의 단결이나 인화가 무척이나 중요했었다. 지금은 체력이 제법 부실하지만 당시는 아침마다 몸에 타이어를 달고 연병장을 돌았었던 때라 무척이나 튼실했었는데..

아무튼 첨단 무기들이 난무하는 시대에 수색대라는 조직은 참 뭐랄까..몸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조금은 전근대적인 조직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던 것이 사실인데 그래도 직접 사람이 임무를 수행하는 것과 기계가 하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겠지 싶다..그러고보면 이 시절에 제법 추억들이 많았던 것 같다.

흔히 남자들이 군대 이야기를 하는 것을 싫어한다는데...뭐랄까..그래도 남자들이 모여서 군대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된다. 아무 것도 없이 바닥에서 시작하는 곳이고 사회에서 무얼 하고 왔건 계급이 전부이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점을 함께 나누고 등등... 뭐라고 딱 짚어 이야기하기는 힘들지만 아마 전역자들이라면 대개 공감을 하지 않을까 싶다..

Band of Brothers를 보다가 뜬금없이 앨범을 뒤적이며..

오늘 동기회장에게 결국 친구 녀석이 운명했다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사람이 가는 것이 이렇게 빠를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병원에 입원한게 이번 달 초였으니 한 달만에 운명을 달리하고 말았습니다..

현역 제대하신 분들 중에 아직도 동기들 모임을 갖는 분들이 많으시겠지만 장교들의 경우 기수 구분이 되어 있고 그 기수는 평생 자기를 따라다니는 보이지 않는 인식표가 되어 남아 있게 됩니다. 제 경우는 학사장교로 군에 갔는데 김일성이 사망하던 날 입대해서 유난히 훈련이 혹독했던 기수기도 합니다..

그 친구는 통신 병과였고 저는 보병 병과였기 때문에 교육을 받는 중에는 얼굴을 잘 몰랐지만 최전방 사단으로 배치를 받고 우연치 않게 그 친구와 제가 신병교육대에 배정을 받았었습니다. 물론 행정 착오였는지 저는 그날 밤 다시 전방으로 올라가 수색대에 근무하게 되었고 그 친구와는 근 2년 넘게 연락이 되지 않았었습니다.

중위를 달고 몇 개월 후에 저는 다시 신교대로 돌아왔고 오래 전 친구를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신교대에는 학사장교 출신들이 4명이나 있어 제법 부대 내에서도 재미있게 지낼 수가 있었는데 전역을 하고 각자의 길을 가면서 연락을 뜸해졌죠. 물론 제가 게으른 탓에 먼저 나서서 이리저리 찾아다니지 못해서였지만 그 친구는 전역 후에도 저를 제법 오래 찾았었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10년의 세월이 지나고 이전에 글을 적었듯이 간경화 말기라는 소식을 대학 후배를 통해 듣고 다음 날 대구로 내려가 그 녀석 얼굴을 본 것이 결국 마지막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보내기 전에 이야기라도 할 수 있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을까요..

죽음이라는 것도 사실 알고 보면 삶의 연장선 상에 위치한 그래서 결국은 누구나 다다르게 되는 하나의 지점이지만 막상 당장 지금 이 시간부터 누군가를 볼 수 없고 이야기를 할 수 없고 체온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은 남아있는 이들에게는 참 고통스러운 일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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