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손으로 무언가를 쓰는 것을 무척 좋아합니다. 특히 만년필과 연필을 좋아하는데 둘 다 전형적인 아날로그라는 매력이 있지요. 만년필 이야기는 한참 오래 전에 적어 놓은 것이 있고 연필이야기도 이전에 한 편 써 두었는데 오늘 새로운 녀석을 들여 놓아 기쁜 마음에 글을 적어 봅니다.

오늘 도착한 녀석은 이녀석입니다. 파버카스텔은 육각 연필의 시조격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카스텔 9000은 그중에서도 유서가 깊은 연필이지요. 아마 100년은 더 되었을 겁니다. 파버카스텔과 스테들러 두 회사는 필기구를 좋아하는 분들께는 제법 친숙한 이름이지 싶습니다. 스테들러가 갑자기 왜 나오는지는 잠시 후에 나옵니다. ^^

오늘 데려온 녀석들은 심 경도가 5B인데요. 아마 4B까지는 학창 시절에 미술 시간에 많이들 써보셨을텐데요 5B는 조금 낯설죠? 보통 흔한 연필이 HB니까 5B면 제법 진하고 무른 편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처음 박스를 열었을 때 나는 나무 냄새도 참 좋습니다.

카스텔 9000은 오늘 입양한 5B까지 해서 3종류의 경도를 가지게 됐네요. 가장 아래 6B가 보이시죠? 카스텔 9000은 경도가 7B인 녀석까지 나오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가장 위에 보이는 요상한 녀석은 한창 장비병(?)에 걸렸을 때 무리해서 장만했던 UFO라는 녀석입니다. 저거 사고 눈물 많이 흘렸지요. 결국 아까워서 쓰지도 못 하고 사진 찍을 때만 등장합니다..;

아무튼 5B라면 심이 훨씬 빨리 닳게 되지요. 그만큼 연필의 수명이 줄어든다고 할 수 있는데 몽당연필의 수명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찾아보다가 펜슬홀더라는 녀석을 찾았습니다.

바로 이녀석인데 앞서 적은 스테들러의 제품입니다. 스테들러는 파버카스텔을 압도하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필기구 회사지요. 스테들러가 연필을 만든 지는 거의 400년이 다 되어간답니다. 아마 지금 책상 위에 한두 개쯤 이 회사의 제품이 있으시지 않을까요? 스테들러의 대표적인 연필은 옐로우펜슬입니다. 정말 쉽게 볼 수 있는 연필이지요. 

세 자루의 옐로우펜슬이 거의 지우개 부분만 남을 정도로 남았습니다. 보통 몽당연필이 되면 뒷부분을 깎아 모나미 볼펜에 끼워 쓰곤 하는데 이녀석처럼 뒷부분에 지우개가 달려 있으면 그것도 쉽지 않지요. 이녀석들을 펜슬홀더에 끼워주면 됩니다.

이렇게 되는데 아주 짧은 몽당연필에서부터 반 정도 남은 연필까지 수납(?)이 가능합니다. 재질은 알루미늄 비슷한데 그립 부분은 무게 중심을 잡는 역할을 하고 있어서 약간 무겁습니다. 이런 식으로 몽당연필을 끼워 쓰면 더 이상 깎을 수 없을 때까지 연필을 쓸 수가 있게 됩니다. 물론 연필 뒤에 달린 지우개를 책상 위에 튕기는 잔재미는 더 이상 없겠지만요.

가격은 저렴한 편 -전혀 저렴하지 않습니다- 은 아니지만 연필을 많이 사용하는 분들이라면 꽤 매력적인 제품이 아닐까 싶네요. 쓴다고 닳는 것도 아니다보니 관리만 잘 해 주면 하나 장만해서 평생 쓸 수 있지 않을까요?

배송료 맞추느라 덤으로 주문한 에너겔 두 자루입니다. 이 펜은 명성(?)은 이미 들었지만 써 보기는 처음인데 뭐랄까요 잉크가 콸콸 나오네요 정말. 기존에 쓰던 제트스트림에 비교할 정도도 아니고 잉크 새는 만년필 수준이랄까요. 디자인은 어딘가 어색하고(다른 펜보다 깁니다) 그립감도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닌데 잉크 하나는 압권입니다. 덕분에 빨리 닳을테니 그리 오래 쓰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필기구 이야기를 써봤습니다. 한참 글을 쓰는 것에 집중하던 때에는 만년필이며 종이며 잉크 이야기를 많이 했었는데 만년필을 책상 속에 고이 넣어둔 터라 언제 다시 만년필과 잉크 이야기를 쓸런지는 모르겠네요. 사실 만년필도 이제 제게 남아 있는 게 두 자루뿐이라 적을 말도 많이 없긴 합니다. ^^




요즘은 연필을 쓰는 사람이 많지 않을 듯 합니다. 글쓰기를 워낙에 좋아하다보니 가장 원초적인 연필에 끌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파버카스텔의 연필은 연필 본연의 철학에 충실한 제품입니다. 가격이 좀 비싸다는 점이 있기는 한데..아날로그의 향수를 그리워하는 분들에게는 제법 좋은 벗이 되어 줍니다.


디지털 시대에 만년필과 연필을 쓴다는 것이 뒤떨어진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지만 오히려 손으로 글을 써나가는 동안 숨겨져 있던 자신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전에도 만년필에 대한 이야기를 적은 적이 있지만 난 펜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그렇다고 대단한 명필은 아니지만 펜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왠지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뭐랄까 좀 더 정리가 잘 되는 느낌이다. 아마도 e-book으로 책을 읽는 것보다 종이책을 읽는 것이 더 눈에 잘 들어오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


기존에 사용 중인 만년필은 일상에서 메모를 하기 위해 사용하는 펠리컨의 M150과 플래너에 작은 글씨를 기록하기 위한 세일러의 프로핏이다. 아버지가 주신 파커 제품은 쓰지는 않고 보관만 하고 있다. 역시 만년필하면 아마 파커가 가장 먼저 생각나기 쉬운데 그런 면에서 보면 펠리컨이나 세일러는 조금 낯선 브랜드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만년필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꽤나 친숙한 이름이다.

그리고 3번째 만년필은 좀 더 이름이 낯선 비스콘티다. 소위 조금 잘 나가는(?) 만년필이라면 몽블랑이나 (그라폰)파버카스텔, 오로라 등을 떠올리는 분들도 계실텐데 비스콘티는 여전히 낯선 이름이다. 하지만 이 메이커도 만년필에 관심이 좀 있다면 꽤나 낯익은 이름이 아닐까 싶다. 비스콘티의 특징은 본체의 재질인데 셀룰로이드를 사용하고 있다. 만년필을 식물성으로 만들다니? 라고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그만큼 처음 잡았을 때의 그립감이 부드럽다.

내가 구입한 제품은 비스콘티의 여러 제품 중에 가장 저렴한(?) 반 고호 미디 모델이다. 색상은 바닐라 색으로 만년필이라면 검정을 고집하는 분들에게는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비스콘티의 경우 모든 제품이 손으로 제작되기 때문에 같은 색상을 택하더라도 100% 같은 제품은 없는 것도 특징이다.

무게는 캡이 상당히 무겁고 전체적으로 무게 중심이 펜촉이 있는 앞쪽으로 쏠려있다. 극히 가벼웠던 M150이나 프로핏에 비하면 육중한 느낌도 든다. 필기감은 역시 명불허전인데 금촉의 경우 스틸촉에 비해 종이면에 닿는 소리가 거의 없다. 스틸촉이 사각사각하는 느낌이라면 금촉은 스윽스윽하는 느낌이다.

다만 잉크는 비스콘티의 제품은 나랑은 조금 안 맞는 듯하다. 하긴 기존의 잉크도 어느 정도 말려서(?) 쓰는 스타일이니 묽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잉크는 역시 세일러 잉크와 몽블랑 잉크인데 일단 비스콘티 잉크에 적응을 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다.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만년필을 쓴다는 것이 첨단과는 거리가 먼 일일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인간적인 느낌을 스스로 받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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