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내 인생을 통털어서 요즘처럼 평화로운(?) 시간은 아마 없지 않을까 싶다. 이직을 준비하는 기간이라는 부담감이 있고 하루하루 생활해나가야 한다는 경제적인 부담감이 있지만 적어도 마음만큼은 세상사의 번거로움으로부터 해방된 시기가 아닐까 한다. 물론 여전히 처리되지 않은 퇴직금때문에 사장에게 메일을 쓰느라 모처럼 스트레스를 받기는 했지만 말이다.

사실 이 기간을 어떻게 보내야할까 많은 생각을 했다. 원래의 계획이라면 한 달정도 전국일주라도 가 볼 생각이었는데 역시나 문제는 돈이었고 한 달을 전국을 돌아보려면 생활비마저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아 일찌감치 접어야 했다. 이런 면에서 보면 1년치 월급을 털어 세계일주를 떠났던 지형 선배는 참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시간을 효과적으로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 했는데 역시 책과 사진이 가장 좋은 해답이었고 어떻게 보면 그나마 내가 잘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것들이기도 하니 나름대로의 타협점을 찾은 듯 하다. 특히 그동안 모아두기만 하고 읽지 못했던 책들을 미친듯이 읽을 수 있다는 것은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으면 누릴 수 없는 특권(?)이랄까?

책을 읽는다는 것은 여행 이상의 경험을 얻을 수 있다. 물론 오감이 느끼는 만족과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대단하다. 아마 책이 없었다면 나는 굳이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약간 어려운 책 한 권과 약간 가벼운 책 한 권을 동시에 읽는다. 어려운 책을 연속으로 읽는 두뇌의 피로감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으로 생각해낸 것인데 가금은 주객이 전도되기도 한다. 어제 마무리한 책은 제수알도 부팔리노의 '그날 밤의 거짓말'인데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 세기의 눈'과 같이 읽다보니 아무래도 이 책을 읽는 속도가 더 빨랐다. 덕분에 대체할 책을 다시 찾아야 했는데 이번에는 조금 유쾌한 책인 폴 오스터의 '우연의 음악'을 골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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