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책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거슬러 올가면 군 시절부터다. 신병교육대대 교육장교를 지내면서 신병교육지침서를 제작했는데 아직도 그책 뒷면에는 중위 OOO라는 내 이름이 고이 간직되어 있다. 물론 대학시절에 선배를 도와 석사논문 작업을 같이 하기도 했지만 정식으로 다른 사람들이 보는 책에 내 이름이 들어간 것은 제한적이긴 하지만 이때가 처음이었다.

이후 잡지사에 들어가 기자생활을 하면서 내 이름을 세상에 찍어 내기 시작했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서서히 이름이 노출되기 시작할 무렵에는 "야, 이 정도만 해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곤 했다. 누군가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은 대단히 흥미진진한 일인데 특히 지식을 기반으로 하는 잡지나 서적을 통해 그런 작업이 이루어지는 것은 나름대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후 단행본과 잡지, 온라인 미디어 등에 글을 쓰면서 제법 뭔가를 만들어내는 것에 익숙해졌지만 본격적으로 책 한권을 온전히 내손으로 기획부터 인쇄까지 만든 것은 바로 이전 직장에서가 처음이었다. 따라서 나 개인적으로는 대단히 큰 욕심이 있었지만  어수선한 회사 분위기 탓에 좀 더 완성도를 높일 수 없었던 것은 앞으로도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다.

책 한권을 혼자서 만든다는 것은 아마 직접 해보지 않고서는 그 고충을 알 수가 없지 싶다. 어떤 책을 만들지 기획을 하고 일정을 잡고 저자와 부지런히 면담을 한다. 내부 구성은 어떻게 할지 각각의 구성에 따른 리드문의 발췌, 책 전체를 관통하는 철학 만들기, 표지 디자인과 내지 디자인, 카피 문구와 이후 홍보 계획 등은 책상 앞에서 이루어지는 머리를 감싸쥐게 하는 작업이고 출력소와 인쇄소를 왔다갔다하며 없어진 폰트는 없는지 페이지가 넘치지는 않는지 색상은 어떻게 갈 것이며 실제 인쇄시 어떤 배색이 이루어지는지를 살피는 일 등은 발로 뛰는 작업이다.

이외에도 여러가지 부수적인 작업들이 있겠지만 이 모든 것을 나 혼자서 하기는 확실히 벅찼다. 그나마 내뜻대로 책을 만들 수 있는 여건도 아니었고 나가기 전에 만들고 나가라는 압박 역시 좀더 책에 집중하지 못하게된 원인이 아니었나 싶다. 결국 모든 작업이 마무리되고 제본된 책이 내손에 도착했을때는 기쁨보다는 아쉬움이 많았다. 누구 하나 도와주지 않는 상황에서 1인다역을 해가며 만든 책인만큼 감회도 남달라야 했는데...

아무튼 책의 마감과 동시에 나는 회사를 그만둬야했다. 이후 책의 판매나 피드백 같은 것은 들을 수 없었다. 마치 아이를 낳자마자 빼앗겨버린 어머니의 심정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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