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 만약 학생들에게 순종을 아느냐고 물으면 '태정태세'로 시작하는 조선 왕조 왕들의 호칭 중에 마지막에 있는 왕이라는 정도일 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TV드라마였던 마이프린세스가 생각이 날까? 만약 그렇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아마 성인들을 대상으로 순종이 누구인지 아느냐고 묻는다면 이름만 들어봤다는 이도 찾기가 쉽지 않을 것같다.

조선 왕조의 마지막 왕인 순종. 고종까지는 역사책에서도 비교적 다루는 양이 있어 어느 정도 아는 이들이 있지만 순종에 대해서는 교과서에서 다루는 양이 적다. 그러나 순종의 제위기에 안중근 의사의 의거가 있었고 한일합방조약이 있었다. 이토 히로부미와 이완용이 등장하고 우리나라의 실질적인 맥이 끊긴 시기임에도 당시의 왕인 순종에 대한 인지도는 왜 이렇게 낮을까. 우리가 또 잘 아는 6.10 만세 운동도 다름아닌 순종의 장례식에 열렸음에도 말이다. 

내 생각으로는 후세에 순종을 그저 무능력한 왕(혹은 순종은 강제로 즉위한 것이므로 아예 그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의견들)으로 인식해 제대로 조명하지 않은 이유 그리고 일본의 계획적인 역사 지우기가 결합되어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한다. 국가 차원에서 봐도 순종과 그 이후의 왕족에 대한 관심은 극히 미미하다. 나라를 잃어 버린 마지막 왕과 왕손들을 기억하기조차 싫었던 것일까..그러나 그 시대 역시 엄연한 우리의 역사인데...

결국 마지막 왕과 그 후손들에 대한 관심은 언론이나 작가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번에 발간된 '길 위의 황제'는 다름 아닌 순종 그 자신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책은 제목보다 지은이가 익숙하다. 바로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으로 유명세를 탄 박영규 작가다. 물론 이 '한 권으로...' 시리즈에 대해서 혹평을 하는 이들도 있지만 어찌되었건 국민들의 역사에 대한 관심을 증대시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다.

 
아무튼..'길 위의 황제'는 주변의 강압에 못 이긴 순종이 일본을 억지로 방문하게된 열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워낙 파란만장한 시기였던 대한제국 말기라는 시기에 순종의 일본 방문을 주제로 잡아낸 것은 제법 신선하다. 아마 이 이야기를 알고 있는 독자들이 많지 않을 것이라는 작가의 의도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순종의 입을 빌어 책은 전개가 되고 있는데 왕의 말투를 의식해서일까 술술 넘어가는 느낌보다는 낯선 느낌을 받고 책장을 넘기게 된다.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면서 바로 얼마 전의 우리나라의 일이었음에도 마치 외국의 어느 누군가를 훔쳐보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그만큼 순종이 우리에게 낯선 인물로 각인되어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아마도 이런 문장 형식 때문에 소설의 형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마음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의 느낌은 적다. 조금은 아쉬운 부분이다.

그러나 책을 읽어 가는 동안(비록 소설일지라도) 대한제국의 최후의 시기에 그리고 우리의 주권이 일본으로 넘어가던 시기의 분위기를 잘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당시의 왕이었던 순종의 눈과 귀와 입을 통해 그 상황을 접하게 되다 보니 왠지 모를 억울함이 분노가 통탄함이 느껴졌다. 아주 미세한 부분까지 묘사해낸 작가의 필력덕분이겠지만 책을 읽어 가는 내내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순종을 조선의 마지막 임금으로 보건 그렇지 않건 그가 비운의 인물임은 부인할 수 없다. 그의 시대에 조선의 왕조가 맥이 끊겼고 대한제국의 황조가 멸망을 했다.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쓰여졌고 어느 정도 작가의 감정(머리말에도 있듯이 순종을 기피하는 이들이 그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봐주기를 바란다는)이 개입되다보니 순종의 비극성은 한층 더 해진 감이 있지만 오히려 소실이라는 형식을 빌어 작가 입장에서는 조금은 강하게 그를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그렇게라도 작가는 순종을 우리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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