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휴대폰이 필수품이 되어 언제 어디서고 손 안의 버튼만 누르면 전화를 할 수 있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전화 한 통 하기란 쉽지가 않았다. 어렵사리 전화를 거는 데 성공을 해도 상대방이 자리에 없거나 받지 않아 버리면 그로써 그 순간의 관계는 더 이상 연장되지 않고 끊어져 버렸다.

특히나 상대가 전화번호를 바꾸기라도 하면 그 관계는 어지간해서는 다시 복원되지 않는다. 몇 년 전의 우리네들의 만남과 헤어짐은 이렇게 애틋한 면이 있었다. 공중전화는 그 이어짐의 끈을 아슬아슬하게 잡아주는 도구였다. 그때가 더 나을까 아니면 너무나 연락이 손쉬워진 지금이 나을까..

연락을 할 수 없어 애태우는 마음이 안타깝고 서글프겠지만 그래도 예전의 그 아날로그적인 만남과 이별이 내게는 더 와닿는다. 인터넷도 없고 휴대폰도 없던 시절이 말이다. 손으로 편지를 쓰거나 그의 집 앞에서 기약없는 기다림에 마음 아파하던 그 시절이 오히려 그리워진다.

요즘의 인연이란 맺기도 쉽지만 끊기도 쉽다. 디지털 부호의 휘발성이 그대로 관계에 담긴 까닭이다


Canon EOS-1Vhs, EF 28-70mm f/2.8L IS USM, RDP-III, LS-40, B&W Converted



7년만에 전화가 왔다. 우습게도 그 아이랑 나는 헤어진 이후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면서도 연락처만은 그대로 이어져 왔다. 어찌보면 그동안 만났던 다른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일이기도 하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 아이가 가지는 의미가 그 정도로 큰 것이었다.

흔히들 남자는 첫사랑을 잊지 못한다고 하는 데 내게는 그냥 하는 말이 아닌 진실인 셈이다. 늦은 밤 아니 이른 새벽 아무런 이유도 없이 눈을 뜬 것도 우연이라면 우연일까...그 순간 걸려온 전화..2-3분 남짓의 짧은 통화였지만 그간의 세월의 무게였을까...이후로 난 잠들 수가 없었다.

그렇게 짧은 통화가 끝나고 우린 다시 그동안의 긴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먼저 전화를 왜 하지 못하냐고 나를 비난해도 내게는 할 말이 없다. 내가 평생 살아가면서 가장 죄스러운 마음이 드는 사람이 어머니를 빼면 그녀가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다시 시작을 하자던가..그냥 편하게 밥이나 먹자고 가볍게 전화를 해도 좋으련만...그녀 앞에서만은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내 자신이 이럴 때는 참 바보같다는 생각만 든다. 그 아이도 이런 내 성격을 잘 알고 있겠지만...

어쩌면 그녀와는 평생 이런 평행선을 그리며 살아갈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내게는 이런 관계라도 감사할 수밖에 없나보다. 변명이라면 변명이고 핑계라면 핑계일 수도 있겠지만...먼저 다가설 수 없는 내 마음도 그리 편하지만은 않다.. 

'세상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돈 안 드는 취미는 없다  (0) 2007.09.28
마이너스는 마이너스를 부르고  (2) 2007.09.20
추한 스캔들을 즐기는 것일까?  (2) 2007.09.13
남들과 다르다? 충고의 조건  (2) 2007.08.26
혼자라고 느끼면  (0) 2007.07.2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