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진은 제법 오래 전 재개발로 동네 전체가 허물어지던 어느 동네를 찾았을 때 찍은 사진이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삶의 기반을 두고 있던 집이 헐린다는 느낌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그러나 그런 일들이 우리네 삶 속에서 제법 적지 않게 일어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공간이 허물어지는 것.. 그것은 물리적인 공간일 수도 혹은 정신적인 공간일 수도 있다.

당시 나는 이 사진을 찍을 때 그리고 그 동네를 걸으며 그 사람들이 혹은 그 동네가 안쓰럽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뒤돌아 생각해보니 얼마나 나의 오만스러움과 착각이 당시의 나를 감싸고 있었는지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려 온다. 흔히 재개발 지역, 혹은 공사장의 인부들의 모습, 시장의 상인 등을 프레임에 담으며 삶의 모습을 느끼고 싶다곤 하지만 그것은 사진을 찍는 이의 교만스러움 외에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네들의 삶 속에 직접 들어가 오욕칠정의 모든 감정을 함께 겪지 않고서 어느 날 카메라 하나 달랑 매고 그 동네를 한 번 휙 둘러보고 그 사람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사진가는 겸손해야 하고 피사체와 공감할 수 있어야 하는데 어린 시절의 내 사진..그리고 지금의 내 사진 역시 피사체와 너무나 동떨어진 그런 먼 거리의 사진들이 대부분이다. 파인더 안을 들여다봤을 때 그런 감정이 느껴진다면 카메라를 내려놓고 한 발 더 다가설 필요가 있다.


Contax Aria, Distagon 35mm f/2.8, LS-40 필름 스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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