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산행은 다른 계절에 비해 소위 '장비'가 필요해진다. '명필이 붓을 탓하랴'는 말도 있지만 겨울의 산에 대해서는 이 말이 어느 정도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겨울 산행에 필수적인 장비들을 적어보자면 이것저것 많겠지만 가장 우선적으로 장만(?) 해야할 품목에 배낭을 꼽아본다. 왜냐하면 겨울산에 오르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여러가지 장비나 의류들을 담을 수 있는 시작이자 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민고민 끝에 한 녀석을 들였다.


풍뎅이처럼 불룩 튀어나온 전면부가 인상적인 그레고리 Z40 2014년형이다. 그레고리 배낭이 이름값을 하는지는 이전에 사용해본 적이 없어 알 길은 없었고 고어텍스처럼 과대 평가된 것이 아닌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무렵 우연히 찾은 매장에서 등에 메본 이후 다른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거다! 라고 유레카를 외친 배낭이기도 하다.


뒷면은 이렇게 생겼다. 등산 배낭이 뭐 저리 복잡한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산행 중 땀이 등에 차서 흐르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이전에도 이런 비슷한 류의 배낭을 사용해본 일이 있지만 심하게 땀이 나는 경우라면 이런 기능성 장치로도 사실 감당하기는 어렵다. Z40의 무게 배분은 아래에 보이는 허리끈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데 허리끈을 조인 상태에서 흔한 말로 어깨 부분에 달걀이 하나 들어갈 정도의 여유가 생긴다.


옆에서 바라보면 대략 이런 모양새인데 곡선으로 프레임이 들어가 있고 그것을 지지하는 이중 구조로 되어 있어서 전체적인 배낭의 수납력은 떨어지게 된다. 40리터급 배낭이면 1박 2일 정도의 산행에 무난해야 하는데 이 독특한 프레임 구조 덕분에 패킹을 신경 써서 하지 않으면 넣을 것 못 넣고 가는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통기 시스템은 사용자마다 호불호가 분명히 갈릴 부분이기도 하다.


상단 헤드 부분에는 안쪽과 바깥쪽으로 각각 수납 공간이 있다. 자주 사용하는 물건은 바깥쪽에 배치하면 되는데 전체적으로 내부 파티션은 없는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작은 물건을 패킹해야 하는 경우는 별도의 디팩이나 주머니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이런 점은 다소 불만이긴 하지만 말이다. 재질은 일단 어느 정도 방수성을 갖고 있으며 내장된 레인커버가 있어서 악천후 대비는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튼실한 허리벨트에 비해 늘 욕을 먹는 허리벨트 주머니는 신형 모델에서도 별반 개선된 것이 없어 보인다. 아이폰5S가 들어가고나면 거의 여유 공간은 없는 편인데 간단한 행동식이나 랜턴 정도는 수납이 가능하지만 문제는 벨트가 배낭을 맸을 때 허리 좌우로 많이 치우치기 때문에 물건을 넣고 꺼내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40리터급 배낭에 너무 많은 것을 바랄 수도 있겠지만 아쉬운 부분임은 분명하다.


이전 모델과 다르게 신형 Z40은 하단부 개방이 되지 않고 경사가 진 형태로 되어 있다. 덕분에 배낭을 똑바로 세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2014년형의 경우 백패킹을 염두에 두고 제작했다는 말도 있는데 사진에 보는 것처럼 하단에 깔판 같은 것을  묶을 수 있는 고리가 추가되어 있는 것을 보면 어느 정도 그런 의도로 제작된 것 같기도 하다. 침낭을 묶기에는 조금 짧아 보이기는 한다.


전면의 풍뎅이 같은 부분은 그 형태 그대로 통짜의 수납 공간인데 가벼운 바람막이 정도는 수납이 가능하지만 우모복 같은 패딩류는 넣기에는 공간이 부족해보인다. 제조사의 설명으로는 옷을 넣는 곳이 맞기는 한데 역시 평가가 엇갈리는 부분이다. 도드라진 모습에 비해 애매한 수납공간이라 이곳을 어떤 용도로 쓰는 것이 좋을지는 고민이 좀 더 필요해보인다.


풍뎅이 부분을 들어올리면 나타나는 공간인데 또 하나의 수납공간이 등장한다. 그 공간은 제법 넓은데 역시 통짜 공간이라 애매하다. 아마도 내 패킹 습관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주머니가 많은 것이 좋은데 그런 면에서는 Z40은 꽤나 불친절한 배낭인 것은 분명하다. 착용감에 반해서 들인 녀석이긴 한데 앞으로 산행을 하면서 적당한 사용법을 찾아야 할 것같다.


헤드를 들어올리면 이런 모양이다. 앞서 이야기한 내부 수납 공간이 하나 더 있다. 중간쯤에 보이는 삼각형 모양쪽으로 수낭의 빨대(?)가 나오게 되어 있는데 수낭을 쓸 일은 없으니 내게는 불필요한 부분이다. 다른 배낭들도 그렇겠지만 Z40은 유난히 체결되는 고리들이 많은데 군대 시절 생각하면 소위 끈처리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 정도다.


배낭의 메인(?)부분은 이렇게 되어 있다. 상단을 조이는 방식인데 끈을 한쪽으로 당기면 배낭 입구가 개방되고 다른 쪽을 당기면 조여지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이 좋은 것이 배낭의 크기를 어느 정도 사용자가 조절할 수 있다는 점때문이다. Z40도 이곳저곳에 배치된 끈들을 타이트하게 정리하면 제법 컴팩트한 크기로 작아진다.


위에서 보면 이런 모양인데 사진상으로는 잘 티가 나지 않지만 손을 넣어보면 프레임 구조때문에 수납 공간이 넉넉하다는 느낌보다는 좁다는 느낌이 먼저 든다. 패킹을 효율적으로 하는 기술이 많이 부족한지라 결국은 디팩을 채워넣은 다음 나머지 공간을 활용해야 할 것 같은데 패킹을 잘 하는 분들은 넉넉한 공간일 수도 있겠다.


배낭을 거꾸로 돌리면 이렇게 보이는데 이전 버전과 달라진 것은 스틱 걸이가 고무줄식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화면 상단에 좌우로 고리 2개가 보이는데 이 줄을 당긴 다음 스킥 하단부를 고정시키는 방식이다. 아무튼 Z40에서도 스틱을 걸고 풀기 위해서는 여전히 배낭을 등에서 벗어야 한다. 중간에 보이는 아래로 처진 고리 모양은 전면부를 개방할 수 있는 지퍼다.


지퍼를 열면 이렇게 배낭의 전면이 개방되는 형태인데 배낭을 위에서 부터 열지 않고 바로 내용물을 꺼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디팩 사용자라면 전면부가 개방되는 코끼리 디팩을 사용하는 것이 좀 더 편리하고 Z40의 경우는 미스테리월의 스몰-롱 디팩이 적당한 크기로 잘 어울린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이 지퍼에 연결된 천끈인데 끈을 지퍼에 고정시킨 부분이 바깥쪽으로 되어 있고 마무리가 약간 날카롭게 되어 있어 급하게 끈을 잡고 지퍼를 열 때 손이 다칠 수도 있는 점이다. 보통 지퍼를 열 때 좀 더 많은 힘이 들어가는 점을 생각한다면 방향을 반대로 고정시켰으면 어땠을까 싶은 부분인데 사용자가 주의를 하는 수밖에 없다.


글을 적다보니 처음 내가 Z40을 등에 메보고 느낀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아 보이는데 아마도 직접 산행을 하고 난 이후의 감상이 아닌 방안에서 리뷰를 하듯 이것저것 비판적으로 바라봤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정말 쓸만한 배낭인지는 꽤 많은 산행을 함께 한 다음에 비로소 알게될 것같다.

사진에 한창 빠져 있을 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사진을 찍는 것보다 바디나 렌즈에 더 신경을 썼던 기억이 있는데 등산에 한창 빠지고 나니 정작 산에 가는 것보다 산행 장비들에 정신이 팔리는 요즘이다. 취미라는 게 결국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즐기는 것이 아니냐는 서툰 변명을 해 본다.



보통 헤드램프는 새벽 산행이나 야간 산행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도구지만 항상 배낭 구석에 넣어두면 요긴하게 사용되는 장비 중의 하나다. 여름을 제외한 계절에는 해가 일찍 지게 되는데 산의 경우는 그 속도가 상대적으로 빨라 금방 어두워지게 된다. 사람이 느끼는 여러 공포 중에 어둠에 대한 공포는 상상을 초월하는데 이 작은 헤드램프의 위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헤드램프를 다루는 업체는 제법 많지만 보통 페츨이나 블랙다이아몬드, 마무트 등에서 출시된 제품을 주로 사용한다. 지금 소개하는 장비는 블랙다이아몬드의 뉴스팟 헤드램프다. 


이 제품은 맨 위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5개의 LED로 구성되어 있는데 중앙 부분의 큰 LED(트리플파워)가 90루멘의 밝기를 내는 메인 LED이고 양쪽으로 한쌍씩 흰색과 적색의 LED로 구성되어 있다. 메인 LED의 90루멘은 바로 위의 그림에서 보듯 약 70미터 전방까지 밝혀주는 밝기로 중앙으로 상당히 강한 빛을 모아 주기 때문에 진행하는 방향의 지형이나 경로를 파악하기 쉽게 해 준다. 


중앙에 크게 보이는 것이 트리플파워로 이루어진 메인 LED이고 좌우로 2개씩 있는 싱글파워 LED는 윗부분이 백색 아랫부분이 적색으로 구성되어 있다. 적색 LED는 각종 경고용으로 백색 LED는 근접 거리에서 빛을 밝히는데 사용하면 된다. 전체적인 만듦새는 단단한 편인데 생활방수는 기대하기 어려워보이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모든 조작은 상단의 큰 고무버튼으로 하면 되는데 누르는 시간과 횟수에 따라 각각 전용의 모드가 있다. 버튼 하나로 모든 제어를 하는 방식은 호불호가 갈리는 부분이기도 하다. 버튼은 돌출부가 넓고 누르기 쉬운 편이다. 다만 겨울용 장갑을 끼고는 약간 어려운 편인데 맨손이라면 버튼이 눌렸을 때 딸깍하는 느낌을 바로 받을 수 있지만 두꺼운 장갑을 낀 상태에서는 그 느낌을 알아채기 어렵기 때문인데 버튼의 접점을 좀 더 위로 올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처음 작동을 시키면 정면에서 바라봤을 때 좌측부분에 위치란 LED가 점멸을 하게 되는 데 이때의 색깔로 배터리의 남은 양을 파악할 수 있다. 제조사 설명으로는 메인 LED를 작동했을 때 50시간을 버틴다고 하지만 아마도 그 상황은 상온에서 방금 뜯은 배터리를 이용할 때일테고 실제로는 그보다 짧다는 점, 특히 겨울에는 배터리 소모가 상당히 빠르다는 점을 생각하면 예비 배터리(AAA사이즈)는 반드시 준비해야 한다.


밴드 부분은 상당히 부드러운 스판 재질이어서 맨살에 대도 큰 부담이 없다. 하지만 땀이 배면 아무래도 좋을 것은 없으니 가능하면 모자 위에 쓰는 것이 좋다. 무게가 90그램으로 워낙 가벼워서 밴드를 약간 조이지 않으면 거의 느낌이 없을 정도다. 물론 배터리를 모두 채우면 약간 묵직한 느낌은 들지만 그렇다고 머리에 부담이 갈 정도는 아니다. 


헤드 부분은 이렇게 아래로 딱딱 끊어지는 방식으로 조절할 수 있는데 직각으로 내릴 수도 있다. 헤드램프를 작동한 다음에는 가능하면 아래로 내리고 이동하는 것이 혹시 마주칠 수도 있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다. 특히나 이 정도로 밝은 헤드램프는 순간적으로 상대방의 눈을 안 보이게 알 수도 있으니 주의해서 이용해야 한다. 물론 이 제품의 밝기가 굉장히 밝은 편은 아니긴 해도 말이다.


배터리는 이렇게 본체를 분리한 다음에 넣게 되는데 본체를 연결한 플라스틱 재질의 고정 장치가 조금 불안불안하다. 그리고 본체를 분리하면 상당히 힘없이 두개로 나뉘어 덜렁덜렁하기 때문에 배터리를 갈아 끼울 때는 평평한 곳에서 하는 것이 좋겠다. 원가 절감 측면인지는 모르겠지만 헤드램프 자체의 가격이 만만치 않은데 이렇게 처리되어 있는 부분은 영 아쉬운 부분이다. 배터리는 넣을 때 딱 고정되는 느낌이 들지 않으니 잘 확인할 필요가 있다.


스팟의 간단한 조작법이다. 위에서부터 메인램프, 흐린 밝기, 연속발광, 적색 발광 순으로 버튼을 누르는 시간이나 횟수에 따라 변경됨을 알 수 있다. 버튼 하나로 여러 가지 모드의 조작이 가능한 점은 꽤 편리한 방식이지 싶다. 헤드램프를 장만할 때 그냥 메인 LED 하나만 있는 것은 배터리 관리도 쉽지 않고 밝기가 고정되어 있어 여러 상황에 대처하기 어렵기 때문에 가능하면 몇 가지 모드가 있는 제품을 고르는 것이 좋다.

산에 가는데 뭐 대단한 장비를 가져 가냐고 할 수도 있지만 자연 앞에서는 최대한 겸손하게 다가서야 한다. 특히나 언제 어떻게 기상여건이 바뀔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는 곳이 산이기 때문에 헤드램프는 사용을 하건 안 하건 항상 배낭 한 구석에 넣고 다녀야할 필수품 중의 하나다. 옷을 사는 데 비용을 투자하는 것에는 인색하지 않으면서 이런 필수 장비에 생각보다 무관심한 분들이 많은데 정 내키지 않는다면 작은 플래시라도 항상 휴대하도록 하자. 가져가서 사용하지 않고 들고 오는 것이 낫지 가져가지 않아 고생하는 것처럼 위험한 일도 없으니 말이다.


'산 이야기 > 주변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겨울 산행을 준비하며 맞이한 친구  (14) 2014.11.03

사진 관련 폴더를 정리하다가 이전에 모아두었던 글들이 제법 많더군요. 대부분 상당히 오래 전의 글이라 요즘엔 크게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아래에 옮겨오는 글은 지금도 마찬가지로 유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원작자 분은 누구신지 기억이 안 나네요.


--------
1. 사진은 예술과 과학의 만남이다.
보고, 관찰하고 이해하는 것은 예술 기술에 대해 읽고, 생각하고 배우고 연습하는 것은 과학

도자기를 만들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과는 달리 사진이란 화학, 물리학적인 기술에 크게 의존한 매체이다. 그러므로 사진가란 예술적, 창조적인 소양뿐만 아니라 기술과 과학에 대한 이해도 함께 가져야만 좋은 사진을 완성해 낼 수 있다. 예술적 소양을 키우기 위해서 다른 이들의 작품을 보거나 자기 주변 사물을 관찰하고 영감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것 외에 별 뾰족한 방법은 없다 반면 과학적인 부분은 노력을 통해 누구에게나 가능하다. 재료나 도구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면, 그것을 이용하여 자신의 영감을 표현해 내는 도구로 쓸 수 있게 된다. 아무리 숭고하고 창조적인 영감이라도, 이런 과학이나 기술이 부족해서 전달에 실패한다면, 한낱 마음속의 영감에서 끝나버리고 만다.

2. 장비를 걸림돌이 되게 할 것인가? 아니면 디딤돌로 쓸 것인가?

물이 절반 담긴 컵을 보고 어떤 사람은 물이 반쯤 담겨있다고 말하지만, 다른 이들은 반쯤 비어있다고 말한다. 자신은 어떤 쪽에 속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장비로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너무도 많이 알고 있다. 자신이 가진 장비의 한계 때문에 어떤 사진을 찍지 못한다고 늘 불만이 태산이다. 가령 어떤 이는 매크로 렌즈가 없어서 꽃사진을 찍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매크로 렌즈 없이도 얼마든지 아름다운 꽃사진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접사링이나 접사렌즈를 쓰든지, 아니면 꽃의 무더기를 찍을 수도 있고, 좀 큰 꽃을 찾아서 얼마든지 꽃의 아름다움을 표현해 낼 수 있다. 자신이 가진 장비로 할 수 있는 것을 찾는데 주저하지 말자.

3. 장비보다는 책과 필름을 사는데 돈을 써라

이것은 알면서도 지키지 않는 가장 대표적인 상식이다. 마음속 깊이 잘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탐나는 장비만 보면 그 유혹을 떨치기 힘들다. 장비 사는 것이 무조건 나쁘다고 하는 말은 아니다. 새로운 기능은 좋은 사진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가능성을 확장한다는 점을 누구도 부인하진 못한다. 하지만 몸에 배도록 하는 연습 없이는 아무리 좋은 기능도 제 몫을 하기 어렵다. 만일 다음에 장비를 사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참기 어려워 질 때, 스스로 ‘정말 그 장비가 자신의 사진을 발전시키는데 필요한 것인가?’ 한번 반문해 보라. 하나 무시할 수 없는 것은, 새 장비가 사진에 대한 정열을 불사르는데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4. 내 최고의 작품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자만은 타성을 부른다. 어떤 순간 자기의 사진이 더 이상 발전할 길 없는 완벽에 도달했다고 느끼면, 바로 그 순간부터 사진이 퇴보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절대로, 아무리 잘된 사진이라 할지라도, 자기 평생 최고의 사진이라고 생각하거나 완벽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항상, 새로 배울 것은 남아있는 법이고, 더 발전할 여지는 남아있게 마련이다. 다음 번에는, 현재 자신의 수준을 능가하는 작품을 만들어 내겠다는 의지를 버려서는 안 된다. 좋은 사진이 나왔다면 오히려 더 좋은 사진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갔어야 된다. 물론 자신의 능력에 대해 현실적인 평가도 필요하다. 그러지 못하고 허황한 목표를 쫓다보면 결국엔 상처만 받고, 포기하게 될 위험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5. 셔터를 누르는 것은 빈 화폭에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다.

필름을 살 때, 나는 늘 필름은 필름일 뿐이라고 스스로 말한다. 왜 프로들은 같은 필름을 가지고 기막힌 사진을 만들어 내는가? 왜 나는 같은 것을 가지고 그저 그런 사진들밖엔 찍지 못하나? 아직 찍지 않은 필름이란 빈 캔버스와 같다. 그 위에 좋은 작품이 만들어 질 수도, 망친 그림이 될 수도 있다. 좋은 작품이 될 것인지, 아니면 쓰레기가 될 것인지는 오직 자신에게 달려있다. 자신의 능력이 최종결과를 좌우하게 되어 있다. 셔터를 누를 때 얼마나 진지한 마음인지를 늘 되새겨야 한다. 그러면 자신이 찍는 사진에 대해 좀더 비평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결과물을 좌우하는 것은 결국 자신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6. 셔터를 누르기 전에 생각하라.

무시한다고 화낼 필요는 없다. 알고도 못하는 많은 것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담배가 해로운 것 알면서도 줄담배를 피우는 것이나 가식이 나쁘지만 멈추지 못하고 탐식하는 것, 이런 것과 마찬가지이다. 행동에 옮기기 전에 깊이 한번 더 생각을 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 모두 다 아는 사실이지만 늘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자동화나 기능의 발전 덕분에 종래에는 필수적이었던 여러 단계를 생략하고도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었지만 ‘생각한다’ 는 것은 절대로 그냥 생략하고 넘어갈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 생각이란, 필름이나 렌즈의 선택, 노출, 구도 등, 사진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단계에 의식적인 판단을 뜻한다. 앞서 말했듯이 생각이란 같은 필름을 써서 보다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회를 늘려준다. 사진을 찍으면서 더 좋은 이미지를 원하는 게 사실이라면 셔터를 누르기 전에 잠깐의 시간을 더 할애하지 않을 이유란 하등에 없다. 예를 들어 프레임 안에서 어떤 부분이 더 강조되기를 원하는지 한번 더 생각해서 위치를 옮겨볼 수도 있게 된다. 1~2 초만이라도 더 생각한다면 그것은 엄청난 차이를 가져 올 것이다. 의식하고 노력해서 습관이 되도록 하자.

7. 셔터를 누르지 않으면 사진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책상머리에 앉아서 자기가 찍을 수 있는 어떤 사진을 상상하느니 당장 카메라 들고 나가서 찍고 볼일이다.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어떤 장비만 구하고 나면 대단한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믿고 있음을 보게 된다. 나 자신도 예외는 아니다. 문제는 이런 것이 실제로 나가서 사진을 찍지 않는다면 ‘가능성’ 이나 ‘잠재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이다. 직접 카메라를 들고 나가서 셔터를 누르지 않고는 사진이 만들어지지 않는 법이다. ‘나도 저런 사진 찍을 수 있어’ 하는 얘기 많이 들어 보지 않았는지… ‘우리는 자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가지고 판단하지만 남들은 우리가 내어놓는 결과물을 보고 우리를 판단할 뿐이다.’ 그러니 앉아서 말이나 생각만 할게 아니라 카메라를 들고 나가서 사진을 만들자.

8. 돌이켜 보는 일은, 앞을 내다보는 잃은 것보다 수월한 일이다.

사진을 보고 뭐가 잘되었느니 아니니 하고 말하는 것은 누구든지 하기 쉬운 일이다. 뒤돌아보기란 언제든 쉽다. 경제학자들은 상반기 내내, 금년만 까지 무슨 일이 일어날것인지 가지고 이야기한다. 다음 하반기 동안은 왜 자기들이 예측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는지를 말하며 보낸다. 잘된 사진을 보면서 우리는 쉽게 그것이 빛을 잘 이용해서인지, 아니면 느낌이나 구도 때문인지 말하곤 한다. 잘못된 사진을 비평할 때는 노출실패, 포커스를 못맞추었다든가 아니면 배경에 거슬리는 것이 들어 있다고 말한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또 자신의 사진을 위해서 좋은 공부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 한번 생각해 보자. 자신이 사진을 찍을 때 정말 그렇게 화면의 모든 부분을 완벽하게 보고 찍었던가? 자신이 사진을 보고 비평하듯, 화인더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생각을 하며 작품을 만들고 있나? 잘못된 사진을 비평하는 것보다는 좋은 사진을 찍는 일이 수십배 어려운 일이다. 자신의 비평적인 안목을 셔터를 누르기 전에 활용하라. 그것이 바로, 예리한 비평가를 대단한 사진가로 바꾸어 놓아줄 열쇠이다.

9. 사진이란 빛을 다듬고 그리는 작업이다.


희랍어로 포토그라피란 말은 빛을 그린다는 말이다. 빛이 없이 사진이 될 수 있나? 너무도 당연한 말이기도 하다. 내게 좋은 빛이란 사진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기도 하다. 짐 주커만의 얘기에 의하면 ‘세상에 나쁜 소재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어떤 시간에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에 달려 있다.’ 그가 말한 것은 다른 요소들도 많지만 빛의 질이란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한 것이다. 그렇다고 빛이 좋고 나쁘다고 보면 곤란하다. 빛의 성질이 다를 뿐...

10. 자신에게 냉혹하고, 남들에게 너그럽게 대하라.

자신의 실력이 계속 발전되기를 원한다면, 또 친구들이 자신을 버리고 떠나가지 않기를 바란다면 자신에게 냉혹하고, 남들에게 너그러울 줄 알아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속으론 형편없다고 생각하면서 겉으로 침이 마르게 칭찬을 하라는 것은 아니다. 내 말은 자만하지 말고 자신의 사진에 대해 냉혹히 비평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과, 동시에 다른 이들의 작품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보며 예의를 잃지 말라는 말이다. 자신의 작품에 대해 자만하는 것은 금물이다. 그것은 주위에 유능한 사진가 친구들을 멀어지게 하는 첩경이기도 하다.

11. 미적 안목과 기술은 상호보완적이라야 한다.

기술이 따라주지 않는 안목이란 실현될 수 없는 환상일 뿐이다. 미적 안목이 없는 기술이란 잘 찍은 쓰레기를 만들어 낼뿐이다. 첫 번째 예술과 과학에 대한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이런 상황을 한번 가정해보자. 만일 가수 이선희가 목소리를 잃었다면. (팬들한테는 악몽일 것이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속으로 고소해 하겠지만) 그녀는 어떻게 그녀의 감정을 표현해 낼 수 있을까? 가수에게 목소리가 없다는 것은 기술이 결여된 사진가의 경우와 같다. 목소리는 없이도 그녀는 모든 느낌이나 열정을 그대로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는 예술가가 자신의 감정을 전달할 수단을 가지지 못하는 것과 같다. 아무리 자신의 이념이나 컨셉트가 좋다손 쳐도 보는 이들을 납득하거나 감동하게 하지 못한다.

12. 기술에 대해 이해하는 것과 그것을 쓸 줄 아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누구든지 기술서적을 읽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중 어떤 사람은 좋은 사진가가 되고 다른 사람들은 사진이론 전문가가 되고 만다. 다음의 예는 가상의 인물들이다. ‘김모씨는 사진 장비나 기술에 대해 얘기하기를 즐긴다. 그는 사진에 대해서는 말이 막히는 법이 없고, 최신 카메라의 재원에서부터 후지프로비아의 상반측불궤에 대해서도 막힘 없이 줄줄 욀 수 있다. 기술에 관해서 어떤 것이라도 그에게 물으면 모든 답을 얻을 수 있다. 한마디로 모르는 게 없다. 한가지 이상한 것은 아무도 그의 사진을 보았다는 이가 없다….’ 이런 사람 주위에서 보았는가? 사진 이론전문가 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사진가는 아니다.

13. 자기에게 없는 장비를 가지고 어떻게 쓸 수 있는지를 아느니 보다, 자기가 가진 장비를 가지고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라.

만일 내가 400미리 2.8 짜리 렌즈만 가지고 있다면, 사자가 영양을 덮치는 장면을 찍을 수 있을 텐데… 혹은, 어안 렌즈 하나 있으면 멋진 사진을 만들 수 있을 텐데… 상상 속에서 환상의 사진을 꿈꾸지 말고 지금 가진 장비를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찾는 게 낫지 않을까? 모든 사람들은 남들이 갖지 못한 무엇을 가지고 있다. 지금 F100을 가지고 있다면 F5가 가지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진을 방금 시작해서 카메라 바디조차도 없는 불쌍한 친구를 생각해 보라. 행복하게도 어떤 장비든 가지고 있다면 감사한 마음으로 그 장비가 해낼 수 있는 최대의 능력을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