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컴퓨터는 온갖 잡소리들로 윙윙거린다. 본체를 뜯어 이리저리 위치를 바꾸어도 보고 몇몇 부품은 갈아도 보지만 그 소음은 여전하다. '처음에 살 때는 안 이랬는데.. 왜 이럴까..' 차츰 그 소음이 귀찮고 거슬리기 시작한다. 손에 익어 편하기는 하지만 이제껏 잘 지내오다가 갑자기 삐걱대니 언짢아진다. 그래도 큰 마음 먹고 장만할 때는 평생을 이 녀석들과 함께 하자는 의욕도 높았는데 이제는 바라보기만 해도 어쩐지 정이 떨어진다. 

실상 문제가 있는 것은 아마도 어느 장치 한 두개일 텐데 그 정확한 원인을 찾지 못하다보니 곁에 있는 키보드도 마음에 들지 않고 모니터도 화질이 안 좋은 것만 같다. 어느 날인가는 집에 들어와 컴퓨터를 켜려고 하는 순간 케이스 디자인이 너무 오래되어 답답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성능과는 별 상관도 없는 디자인이나 색상도 이젠 불만이 되어 버린다.

결국 스스로 할 수 있는 노력들을 다 했다고 생각하고 다른 제품으로 바꿔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슬슬 새로 나온 컴퓨터를 알아본다. 내가 가지고 있는 녀석에 비해 값도 저렴하면서 성능은 더 좋아 보인다. 지금 가지고 있는 녀석은 오래 같이 지냈을 뿐이지 장점은 도통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새것을 들이게 된다. 이왕 바꾸는 거 모니터며 키보드며 쓸만한 것들도 죄다 바꾼다. 새술은 새부대에..라지 않느냐며..

이전의 것에 대한 기억은 가끔 새것이 손에 익숙지 않을 때 잠깐잠깐 든다. '그래도 이전 것은 편하게 다룰 수 있었는데...' 하지만 이미 어디론가 처분해 고철이 되어 버린 녀석을 다시 찾아올 수는 없다. 그냥 새로 들인 녀석에 최대한 정을 붙이는 수밖에 없다. 새것이 완전히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전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고 여기저기 좋다는 소문도 내본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신의 선택이 틀렸다는 것이니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영 내키지는 않은 탓이다.

그 소음만 참고 아니 그 소음조차 나와 함께 하면서 생긴 관계의 연속으로 생각하고 자연스레 받아들였으면 됐을텐데 시간이 지나면서 함께 해 온 장점은 묻혀버리고 단점만 보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새로 들인 컴퓨터도 낡게 된다. 그러면 앞서 겪었던 고민을 다시 하게된다.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방법을 스스로 찾을 수 없었기에 또 다시 교체를 해야 하는 상황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것이 자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하는 방법이니까..

우리는 살아가는동안 위와 같은 과정을 무수히 반복한다. 어떤 것이 정답이냐.. 그에 대한 해답은 물론 어디에도 없다..



이성으로서의 여자를 만날 때 늘 아쉬운 점은 확실한 대답을 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이가 어느 정도 들다보니 20대 처럼 서로를 관찰하고 탐색하는 것도 어쩐지 어색하다. 물론 그렇다고 처음 만나는 상대에게 다짜고자 "우리 사귈래요?"라고 묻지는 않는다. 어느 정도 서로를 아는 사이인 경우라면 어정쩡하게 만나는 것보다는 뭔가 서로의 관계를 정하는 것이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인데 이런 내 생각과 여자들의 생각은 또 다른 모양이다.

몇 년 전 마음에 들었던 아가씨에게 장문의 연애편지를 보내고도 아직까지 대답을 듣지 못했고...그 이후에도 비슷한 경우는 몇 번 있었지만 역시 확답을 얻지는 못했다. 연인 관계가 싫다면 그냥 "아니오"라고 답해주면 되는데 그 대답을 주지 않고 결국 본의 아니게 다시는 연락을 하지 않는 사이가 되어 버리는 것은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싶다. 어차피 연락을 끊을 거라면 "저 댁한테 관심없거든요!" 라고 말해주면 차라리 시원할텐데 말이다. 연애보다는 그냥 친구로 지내자고 이야기하는 것도 어려운 것은 아니지 않을까 싶고 "조금 더 시간을 달라"던가 뭔가 반응이 있어야할텐데 일단 말을 꺼내고나면 이후로 감감 무소식이다.

물론 한편 생각해보면 그렇게 무반응인 여자들이라면 애초에 시작을 안 하는 것이 낫다는 반증도 되니 전혀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뭔가 꺼림칙한 것은 사실이다.

내 생각이 틀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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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관계처럼 복잡하면서도 단순한 것도 없는 것 같다. 사랑에 죽고 사랑에 사는 그런 시절을 이제는 떠나 보내고 나니 이성을 만난다는 것에 대한 감정도 이전과는 다른 것 같다는 말이다. 이전에는 누군가를 만나면 사랑이라는 감정을 개입시켰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결혼과 같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서른 중반을 넘기고 또 결혼에 대한 부담감에서 나 스스로를 분리시키고 나니 이성이라는 존재가 여러가지 의미로 다가온다.

주말에 가끔 만나 편하게 영화를 보거나 식사를 하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헤어지는 편한 친구와 같은 이성도 있을 수 있겠고 정말 연중 행사로 스치듯 인사만 나누는 그렇지만 가끔은 문자로도 안부라도 물을 수 있는 이성도 있을 수 있겠다. 또 자주 만나 이야기를 하고 동성 친구처럼 편한 이성도 있을 수 있는데 이런 친구는 가장 위의 주말에 편한 친구와는 또 다른 의미다. 갑자기 저녁에 술 생각이 나서 전화로 불러낼 수 있는 동성 같은 의미로 이해하면 되겠다.

그런가하면 결혼에 서로 부담이 없어 주말에 가끔 여행을 가기도 하고 잠자리를 같이할 수도 있는 이성도 있을 수 있다. 다만 이 친구의 경우는 제법 주의가 요망되는데 이미 애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상대가 있다면 이런 친구가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즉 둘 다 애인이 없는 솔로라는 점이 전제가 되야겠다. 소위 불륜이 벌어지는 것은 결혼한 사람이나 애인이 있는 사람이 이런 친구를 만들게되면서 발생하는 것인데 이건 기본적인 양식의 문제인데도 우리 사회에서는 심심치않게 일어나고 있기도 하다.

내 경우라면 위의 예로 들었던 어느 친구건 다 환영이다. 원초적인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주말에 편하게 만나 어디론가 떠나보고 서로에 대한 부담이 없는 잠자리로 가질 수 있는 친구가 가장 좋다. 이런 친구의 경우 사실 속내를 터놓고 이야기를 할 수도 있고 꼭 같이 자지 않더라도 영화도 보고 밥도 먹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친구가 필요할 때 상대방에게 뭐라고 이야기를 해야하느냐..는 점이다. 일본의 경우 '세프레'라는 단어가 있긴 하지만 이건 또 너무 성적인 부분에만 집착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달리 보면 친한 이성 친구와 잠자리를 같이 할 수 있느냐? 는 문제도 되는데 이에 대해서는 네이버만 두들겨도 수 많은 페이지가 나오니 별론으로 하겠다.

아무튼...결혼을 달나라 이야기로 보내버린 내 상황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여자친구를 만들 수 있는 여지는 있지만 이게 또 이론과 다른지라...실제로 어떻게 될 런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단적으로 누군가 마음에 들어 그 이성에게 "우리 결혼에 부담이 없는 프리섹스를 추구하는 연애를 해볼까?"라고 말한다는 것이 대체 가능한 일이냐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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