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가 뭐에요?” 라는 질문에 ‘독서’라고 대답하는 것은 진부하다는 말이 있지만 취미를 <틈나는 시간에 즐기는 그 무언가>를 말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내 취미는 사진과 독서다. 이렇게 적어놓고 보면 이력서에 쓰는 전형적인 패턴같기도 하고 가장 만만한 것을 고른 것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는 없지만 엄연한 사실이니 부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책을 좋아하게 된 것은 순전히 부모님 덕분이다. 어려서부터 무슨 날만 되면 부모님은 내게 ‘책’을 주셨다. 일단 당신들께서 책을 워낙 좋아하시는 데다가 가풍이라고까지 하기는 그렇지만 독서와 클래식 속에서 자란 덕분에 나이가 들어서도 책을 손에서 놓는 일은 거의 없게 됐다.

내 책 읽는 습관은 조금 독특한데 일단 한 권의 책을 집어 들면 내용의 이해여부에 관계없이 죽 읽어 나간다. 그 다음에 어느 정도 시간 차이를 두고 다시 그 책을 읽는다. 물론 다시 읽을 때에는 정독을 한다. 그러면 처음에 빠르게 읽으며 지나쳤던 내용들이 하나 둘 구색을 맞추기 시작한다.

그러고 나서 한참 후에 (기간은 정해져있지 않다) 그 책을 다시 읽는다. 보통 한 권의 책을 세 번 정도 읽는 게 내 독서습관이다. 그 다음에 그 책을 다시 잡게 되면 맨 앞장서부터 읽는 것이 아니라 아무 곳이건 펼쳐진 부분부터 읽는다.

물론 이렇게 책을 읽기에 적당하지 않은 장르도 있다. 추리소설이 바로 그런 류인데 기대를 하고 극장 앞에서 시간만 기다리고 있는 데 누군가 뒤에서 “범인은 심은하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모양이라 조금 난감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결론을 알고 읽게 되면 작가의 논리적 틀이 얼마나 완벽한 지를 따져볼 수 있는 시간이 되니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다. 즉 나 같은 독자들이 많을수록 작가들은 고민을 많이 해야 하는 셈이다.

각설하고 책을 읽다보면 당연히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생긴다. 여러 번 곱씹어도 보고 다른 서적을 참고해도 이해가 잘 가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자주 사용하는 방법은 저자의 말 혹은 역자의 말을 읽는 것이다. 아무래도 저자가 아닌 이상 저자의 의도를 완전히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니 이런 방법을 사용해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지금까지 읽어 온 책들 중에서 아직도 벽을 넘지 못하는 책들이 있느냐?” 고 누군가 물었는데 대답은 “당연히 많다” 책에 관한 한 잡식성인 성격 탓에 전문적인 지식을 파고들어가는 책들은 역시나 어렵다. 또한 문학작품이라도 그 의미를 잡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 책들을 골라보면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유희(Glasperlenspiel)’가 가장 먼저 꼽힌다. 가장 좋아하는 작가 1순위로 꼽는 헤세의 대표작 중의 대표작을 아직도 벽으로 느끼고 있으니 난감한 일이다. 그 다음은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Die Welt als Wille und Vorstellung)’다. 니체 철학에 자극원이 된 이 책은 몇 차례 인내를 가지고 시도를 해봤지만 여전히 벽으로 남아 있다.

오늘부터 다시 읽는 책은 푸코의 ‘광기의 역사(Histoire de la folie l’ ge classique)’다. 이 책 역시 과거에 실패(?)의 전력이 있는 책으로 ‘이번에는 반드시’라고 마음을 다잡고는 있지만 언어의 마술사라 불러도 부족한 푸코 특유의 문장 덕분에 아침 지하철 내내 인상만 쓰고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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