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 즉 遺書 란 단어의 의미 그대로 남기는 글이다. 내가 지금 유서를 쓴다면 '젊은 나이에 무슨 허튼수작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의 일이란 알 수 없는 일이어서 당장 오늘 혹은 내일 어떤 상황에 직면할지 모르는 것이 인생이다. 갑작스레 죽음을 맞이했을 때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는 것보다는 미리 한 장 정도 적어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러고 보면 유서를 한 번도 쓰지 않은 것은 아니다. 군 시절 대간첩 작전이 진행되었을 때 소대원들을 데리고 작전에 들어가기 전 적었던 기억이 있다. 수색대라는 특성상 오로지 전진만이 있는 상황에서 실탄으로 무장한 채 작전에 투입될 당시는 나름대로 비장했던 것 같다. 그때 어떤 내용을 적었는지 애석하게도 전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꽤 유치한 내용이었지 싶다.

소위를 단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기에 나름대로 어설픈 국가관이 담겨 있었을 수도 있고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담겨 있을 수도 있고 숫총각으로 생을 마감하는 것에 대한 억울함이 담겨 있을 수도 있다. 어떤 내용이었건 처음으로 적은 유서와 머리카락을 담은 봉투는 어디론가 보내졌고 이후 소식을 알 길이 없다.

살아가는 동안에는 언제고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삶이라는 이면은 늘 죽음이라는 것을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대부분 사람들의 모습이지만 그래서는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이 찾아왔을 때 당황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어? 아직 준비를 못했는데 다음에 오시면 안 될까요?"라고  이야기한다고 통할 노릇도 아니니...삶의 끝은 결국 죽음이고 이 또한 순차적인 과정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전혀 어색한 일은 아니다.

유서를 적는다는 것은 그래서 생을 마무리하는 의미라기보다는 지금까지의 나를 돌아보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준비하는 작은 작업이다. 지금 인생을 얼마나 정리해두고 있는지 자문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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