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둘레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 작년 5월 8일이고 어제 그러니까 2013년 5월 8일에 마지막 구간인 21구간 우이령길을 걷었다. 뭔가 지고 있던 짐을 덜어놓은 기분이 들면서도 아쉬운 마음이다. 북한산둘레길은 총 길이가 71.8km에 달하고 서울과 경기도를 오가며 길이 나 있어서 구간마다 계절마다 독특한 느낌을 주는 길이다. 서울이나 경기에 사는 이들에게는 강북5산(불수사도북)이 있고 이 둘레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 큰 혜택을 받고 있는 셈이다.


둘레길 홈페이지에서 캡쳐한 전체 구간이다. 처음 이 길을 완주해봐야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았는데 막상 걷기를 시작하고 나니 딱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둘레길을 걷는 동안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무뚝뚝하게 스치고 지나가는 사람들, 가볍게 목례를 던져 주는 사람들 그리고 함께 길을 걸었던 사람들... 결국 길이라는 것은 사람과 이어지는 그런 것이 아닐까 돌아온 길을 떠올리며 그런 생각이 든다.


21구간 우이령길은 사전예약구간이다. 하지만 주말을 제외하면 어지간해서는 예약이 가능하다. 내가 택한 코스는 교현에서 출발해서 우이동으로 들어오는 코스인데 이길을 가려면 서울에서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에 내려 740번이나 34번을 타고 석굴암 입구에서 내리면 된다. 우이에서 출발하는 것도 괜찮긴 한데 만약 식사를 할 생각이 있다면 우이동 쪽이 먹거리가 조금 더 많기 때문에 교현에서 출발하는 것이 낫다. 우이로 나올 경우는 버스를 타고 수유역이나 쌍문역으로 가면 된다. 

미리 적지만 21구간 우이령길은 별 다른 특징이 없는 구간이다. 길도 출발한 선에서부터 거의 일직선으로 나있다고 보면 된다. 오르막도 내리막도 많지 않고 계단은 아예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남녀노소 누구나 갈 수 있다. 구간 안쪽에 군부대와 경찰부대가 있어서 가끔 차들도 다닌다. 애초에 둘레길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가는 편이 오히려 나을 수도 있다.


오랜만에 보는 군부대 앞 표지. 무려 39개월을 복무했지만 저걸 지키는 부대는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원칙으로 지키는 이유는 원칙이 있어야 예외나 융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소위 FM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이유인데 어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닥쳤을 때 뭔가 기준이 있다는 것은 커다란 힘이 된다. 쓰지도 않는 것을 왜 매일 연습하냐고 이야기하는 것은 매너리즘에 빠진 이들이 하는 쉬운 핑계일뿐이다.


길을 이렇게 거의 일직선으로 곧게 나 있고 갈림길도 없다시피해 헷갈릴 일도 없다. 그저 산의 공기를 마시며 천천히 걸으면 된다. 다만 햇빛을 피할 곳이 거의 없는데 여름에 이 길을 걸을 때는 준비를 잘 해야할 것 같다. 햇빛이 그대로 내리 쬐기 때문에 길의 난이도가 낮음에도 쉬이 지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늘 이후 이 길을 가는 분이라면 선크림, 선글라스, 팔토시, 모자 정도는 꼭 준비하시길...


계절의 탓인지 날파리들이 심심치 않게 얼굴로 달려 든다. 전에 무슨 TV방송에서 날파리들이 사람 눈에 알을 낳는다는 끔찍한 소리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렇지 않더라도 눈 앞으로 달려드는 것은 신경이 제법 쓰인다. 길을 들어설 때부터 길을 마무리 할 때까지 날파리와의 전쟁이다. 이 날파리들은 참 묘하게도 사람의 눈 앞에서 왔다갔다 하는데 어떻게들 알고 그리 달려드는지...


길을 조금 더 가면 멀리 오봉이 보인다. 원님의 딸을 맞아들이기 위해 내기로 던진 돌이 올라가 자리 잡았다는 전설이 함께 한 오봉. 다섯 개의 봉우리인데 나중에 사진을 더 올리겠지만 4개까지는 그럴 듯 한데 나머지 하나는 조금 애매하다. 사봉이라고 하기 뭐해서 오봉이라 한 것인지 아니면 원해 다섯 개의 돌이 있었는데 한 개가 굴러 내려간 것인지 알 길은 없다.


문든 편지를 써 본 적이 언제인가 돌이켜본다. 흔한 연애편지가 아닌 가족들에게 편지를 써 본 적이 있던가.. 아마도 남자들에게는 군 시절이 거의 유일하지 않을까? 뭔가 절실한 환경에서는 가족에게 글을 쓴다. 나는 지금도 군 시절의 편지들을 가지고 있는데 가족들이 보낸 편지,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 신병교육대 교관 시절 훈련병들이 보낸 편지 등등이 남아 있다. 지금 그 편지들을 읽어보면 참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당시에는 가장 마음속에 담긴 이야기들이 오고간 것이 아니었을까?


길을 걷는 중에 간간히 총소리가 들려 사격장이 있구나라는 것은 알았지만 어느 정도 가니 군인들의 함성 소리가 들려온다. 유격훈련이 한창 진행 중이었던 것이다. 장교 교육 시절 받았던 유격은 정말이지 다시는 가고 싶지 않았던 고통 그 자체였는데... 늘 사람들은 자신이 겪은 일은 과장하는 습성이 있어서 요즘 군대 편해졌다느니 우리 때는 얼마나 고생했는데..라는 말을 하곤 하지만 사실 현실적으로 바로 지금 그 일을 겪고 있는 사람보다 힘든 사람은 없는 법이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에게 "그것도 못 이겨내냐"라고 말하는 것은 정말 조심해야 한다.


전체적인 우이령길의 안내도다. 앞서도 적었지만 길을 걷는 자체는 어렵지 않으니 가벼운 산책코스로 이용하기에도 적당하지만 계절에 따라 준비를 해 가야 할 것들은 잘 챙겨갈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구간은 다른 구간처럼 중간에 걷기를 그만둘 수가 없다. 빠져 나갈 샛길이 존재하지 않으니 볼일은 미리미리 다 보고 걷도록 하자.


이제 이 초소를 지나면 길이 좁아진다. 본격적인 걷기가 시작되는 지점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전체적으로 21구간은 구간 자체를 걷는 시간보다 출발점까지 가는 시간 종착점에서 교통편을 이용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는 시간이 만만치 않다. 여기쯤 왔으면 일단 좀 쉬어 가는 것도 괜찮다. 요즘 방울토마토를 종종 먹는데 평생 살면서 올해 처음으로 제대로 먹게된 녀석이다. 의자에 앉아 한개 두개 입에 넣어본다. 톡 터지는 맛이 산행에는 제격이다. 


표지판대로 맨발로 걸어도 괜찮다 싶다. 등산화를 신고벗는 것에 별다른 귀찮음을 느끼지 않는다면 여기서부터는 신발을 벗고 걸어보는 것도 좋으리라. 실제로 몇몇 분들은 맨발로 길을 걷고 있었는데 행여 발에 뭐라도 박히지 않을까라는 소심함에 나는 끝내 신발을 벗지는 못했다. 상을 차려줘도 수저를 들지 못하니 원...아무튼 맨발로 길을 걷는 것은 권할만한 일이다. 올 여름 어느 바닷가 백사장이라도 걸어보면 어떨까.


앞서 사진들이나 큰 차이가 없다. 뭔가 풍경이라는 것이 있는 것은 아니고 처음부터 내내 이런 모양이다. 지루하게도 생각될 수 있는데 그럴 때는 걸음을 느리게 걸으며 나무들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도 지루함을 물리치는 좋은 방법이다. 겨우내 이곳에는 이런 푸름은 전혀 없었을 것이고 계절이 바뀌어 순식간에 길 전체가 생명으로 가득하게 된 것만 해도 신비로운 일이니 말이다.


조금 더 자세히 보이는 오봉이다. 4개까지는 '아..'하고 이해가 가는데 다섯번 째는 긴가민가하다. 아마도 바위 위에 또 다른 바위가 도드라져보이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120mm까지 당겨보아도 내 눈에는 여전히 '사봉'이다. 바위가 한 개 더 올라가 있어야 오봉이라는 이름에 어울릴거라고 내가 애초에 생각을 고정해둔 탓이겠지만 말이다.


전방에 가면 도로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대전차장애물. 이곳에 이런 것이 있으니 좀 뜬금없다 싶기도 하지만 교현에서 우이까지 산을 관통해 갈 수 있는 길이 공식적으로는 이길밖에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전차의 폭이 이렇게 좁은 경우는 좀처럼 많지는 않겠지만... 지금은 그저 과거의 역사의 흔적의 하나 정도로 남겨져 있다.  


그리고 이곳이 소귀고개인데 우이령의 우리말 표현이다. 우이령이라고 하면 대체 무슨 뜻인가 생각을 해야 하지만(물론 내 경우다.) 소귀라고 하니 단박에 이해가 간다. 차라리 소귀고개라는 표현을 그대로 쓰는 게 낫지 않겠나 싶은데 그러지 못 하는 여러 이유들이 있겠다는 짐작은 간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살던 동네 이름이 우이동에서 소귀동으로 바뀌면 그것을 별 것 아닌 것처럼 받아들일 수 있겠나.. 아파트 이름을 바꾸었더니 집값이 올라갔다고 반기는 것이 우리네들의 생각인데 소귀동이라면...


북한산둘레길 21구간 우이령길은 이렇게 끝이 난다. 우이동에서 출발하는 코스를 관리하는 사무소를 지나 버스를 타는 지점까지 걷는 거리가 제법 멀다. 좌우로 음식점들이 죽 늘어서 있고 포장된 길을 죽 걷다보면 지금 한창 공사 중인 큰길로 나오게 된다. 

우이령길은 실제 거리는 짧지 않음에도 '아, 벌써 길이 끝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금방 걸을 수 있다. 석굴암 입구에서 우이동 버스 정류장까지 거리가 약  7km정도 되는데 아주 단순하게 성인 남성이 1시간에 4km를 걷는다는 기준을 적용하면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사이면 얼추 전체 거리를 걸을 수 있다. 마지막 구간이고 예약제인탓에 뭔가 특별한 것이라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 이래저래 심심한 길이지만 이제까지 걸어온 발자취를 떠올리면서 걷게 되면 애틋한 마음마저 드는 것이 21구간 우이령길의 매력이다.

이제 길 하나를 마무리했으니 다음에는 어디를 걸을까 행복한 고민이다. 미뤄두었던 북한산 오르기를 해볼까 전부터 가 보고 싶던 사패산을 가볼까 생각이 많다. 어찌 되었건 그래도 산이 그리고 길이 좋은 것은 언제고 다시 돌아와 그곳에 설 수 있다는 점때문이다. 인간의 유한한 삶에 비하면 산이나 길이 가지고 있는 삶의 길이와 깊이는 거의 무한에 가까우니까 말이다.


Panasonic LX-7

 

둘레길도 어느덧 중반이다. 처음 1구간을 걸을 때 막연하게 '완주를 해보아야겠다'고 생각만 했었는데 어느새 11구간이다. 시작이 절반이라는데 절반을 왔으니 끝까지 걷는 것도 그리 어렵지는 않으리라. 오늘은 어느 여름날처럼 제법 한낮의 햇살이 따가왔다. 처음 걷기로 한 구간은 9,10구간이었지만 한 구간 더 나아가 11구간까지 걷기로 했다.

9구간은 이전 8구간의 종료지점에서 바로 시작하기 때문에 8구간에서부터 이어서 걸은 경우가 아니라면 어느 정도 거리 손실이 있게 된다. 오늘은 9구간의 시작지점을 북한산국립공원의 안내에 따라 잡았기 때문에 생각보다 구간의 종료가 빨랐는데 집에 돌아와서야 이런 사실을 알았으니 이점은 유의하시는 게 좋을 듯하다. 

9,10,11구간은 11구간만 약간 난이도가 있고 9,10구간은 무난한 난이도여서 전체 구간을 한번에 걷는 것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다. 위의 표를 보면 마지막 효자길에서 고도가 급격하게 높아지는데 생각만큼 힘들지는 않으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좀 더 자세한 이동경로는 이곳을 참조하시면 되겠다.

9,10,11구간을 전부 완주할 경우 전체 소요거리(버스정류장 이동거리 포함)는 7.91km고 성인 남녀 기준(조금 느긋한 걸음)으로 3시간 10분 가량 소요된다. 시작점은 3호선 연신내역에 내린 다음 3번 출구로 나가 그대로 직진을 해서 30여 미터쯤 걸어가면 버스정류장이 있다. 여기서 7211번을 타면 된다. 중앙 차로에는 이 버스가 없으니 주의하자.


전형적인 가을의 파란색이 두드러졌던 하루였다. 진관사(하나고) 입구 버스정류장에 내려 조금 걸어가면 오른쪽으로 꺾어지는 길목에서 마실길 구간임을 알려 주는 이정표와 만날 수 있다. 멀리 북한산이 보인다. 마음은 산 정상에 있지만 몸은 둘레길이다. 9구간 정도 오게 되면 서울의 서쪽으로 제법 많이 이동한 셈이다. 북한산을 아래에서부터 왼쪽으로 시계 방향으로 돌아가는 코스라고 생각하면 된다.


북한산둘레길은 각 구간별로 주요 지점을 이정표에 기록하고 있는데 9구간은 효자동을 대표 이름으로 삼고 있다. 휴일이어서 그런지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 구간을 오고 가는 모습이었는데 이쪽에서 북한산 등반로가 이어져 있어 그렇다고 한다. 사실 오늘 연신내역에서 마주 친 등산객들의 숫자가 내가 평생 만나본 등산객 숫자보다 많은 것 같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다. 한편 생각해보면 내가 그만큼 산을 자주 찾지 않았다는 말이 되기도 하지만...


분명 9구간의 진입 통로는 8구간의 종료점에 표기 되어 있지만 이곳에서 한 번 더 만날 수 있다. 여기서부터 생각을 하면 실제로 걷는 9구간의 거리는 매우 짧은 편이다. 구간 이름인 마실길답게 정말 가벼운 동네 산책하는 수준의 길이 이어져 있는데 좌우 둘러보고 오고가는 사람들과 마주치다 보면 어느새 구간이 종료된다.


팔자 편하게 늘어져 있다는 표현이 어울리게 잘 자는 녀석이다. 누가 와서 업어가도 모를 지경이다.(물론 시도하려는 분은 없겠지만) 그늘이 진 것이 꼭 이불을 덥고 있는 것 같은 모양새인데 아직은 오전이라 햇살이 그렇게 따갑지는 않아 편히 잘 수 있나 보다 싶었다. 늘 드는 생각이지만 개발을 보면 꼭 잡아보고 싶다. 오래 전 기르던 강아지 생각도 나고... 동물을 기른다면 역시 개를 길러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 번 해 본다.


마실길은 정말 편하게 걸을 수 있다. 휴일이라 오고가는 사람들에 잠깐잠깐 지체되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오고가는 모습도 나름 볼거리가 되는 셈이다. 가끔 다른 분들의 사진을 찍어 드리기도 하고 사진에 찍히기도 하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걸으면 된다. 휴일에 둘레길을 걷기 위해 내가 나온 것처럼 다른 이들도 그런 생각으로 나온 것인데 '왜 사람이 이리 많아?'라고 생각하고 불평을 할 일은 아닌 것이다. 다른 이들도 나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할테니 말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조금 걷다보니 이미 9구간은 종료되어 있었다. 10구간 내시묘역길 구간이다. 이 지점을 경계로 9-10구간이 갈리는데 조금 더 진행하면 10구간 입구를 알리는 문을 만나게 되지만 사실상 이곳이 분기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근처에 수방사 교육대가 있어 지도에 상세하게 표시되지는 않는 지점이기도 하다. 


내시묘역길 구간을 담은 블로그에 한결같이 소개되는 비석이다. 경천군이라는 이에게 나라에서 하사한 토지니 소나무를 베기 위해 들어가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문이라고 보면 된다. 세월이 흐르면 사람은 간 곳이 없고 그 흔적만 남아 그 사람을 기억하게 된다. 100년도 못 살면서 1,000년의 근심으로 사는 것이 사람이라 한다. 나는 지금 100년의 근심을 하고 있을까 1,000년의 근심을 하고 있을까.. 근심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나은 일이지 싶다. 그저 주어진 순간에 최선을 다할 뿐... 


10구간은 전반적으로 길이 평탄하고 걷기에 큰 부담이 없는 그러면서도 한적하고 고요한 느낌이 강한 구간이다. 물론 나들이 인파들은 어쩔 수 없었지만 그 속에서도 '묘역'이라는 이름에서 오는 왠지 모를 적막함이랄까..그런 것이 느껴졌다. 실제 내시들의 묘역은 사유지 안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이 구간을 걸으면서 만나기는 어려웠다.


하늘이 정말 '가을이구나'싶은 날이었다. 혼자서 길을 걷는 것도 좋지만 같은 목적지를 공유하는 누군가와 걷는 것은 또 다른 느낌과 의미가 있다. 그 시간이 짧건 혹은 길건 한 방향을 바라보고 걸어간다는 것이 참 소중하다. 그 길을 끝까지 함께 걷건 혹은 중간에 다른 길로 멀어져 각자의 길을 가게 되건 적어도 함께 한 시간만큼은 좋은 기억으로 남게 되는 것이니 살아가는 동안 그런 기억들을 모아둔다는 것 아니 모을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기억을 새긴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삶의 전부일지도 모르겠다. 만나는 사람들, 하는 일들, 나를 둘러 싼 모든 것들이 하루하루 매시간시간 하나둘 쌓여가고 그것이 나의 역사가 되고 결국은 그것이 나의 삶이 된다. 과거를 돌아볼 필요도 없고 미래를 바라볼 필요도 없다. 그저 지금이 최선이다. 현재에 만든 기억이 과거가 되고 또한 미래가 된다. 지나치게 과거에 얽매이고 지나치게 미래를 갈구했던 시간들 속에서 정작 현재를 잃고 살지는 않았는지 반성하게 된다. 현실적이라는 건 현재에 충실하라는 말이다.


살아가는 이야기, 살아온 이야기 속에 어느덧 10구간도 종료. 전체적으로 9구간과 10구간은 난이도가 거의 없고 평지를 걷는 수준이어서 손쉽게 걸을 수 있다. 그만큼 속도도 빠르다. 11구간 효자길도 하급 난이도의 구간인데 거리는 내시묘역길보다 짧지만 체감상으로는 중하 정도의 난이도랄까. 이전 구간보다는 약간 높낮이도 있고 산길도 있어 조금 시간이 걸리는 구간이다.


처음 이 구간에 접어들면서 마주치는 황당함인데 도로 옆으로 난 길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이쪽편의 북한산 자락이 험한 편이어서 산으로 길을 내지 못 하고 할 수 없이 돌려돌려 길을 낸 것이라는 말을 듣고 이해는 갔지만 이건 좀..이라는 생각이 든다. 둘레길도 초반부는 제법 각종 시설이 원칙대로 잘 구비되어 있지만 이 정도쯤 오게 되면 여기저기 부실한 부분들이 눈에 띄는데 '어쩔 수 없나..'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앞으로는 개선이 되겠지라고 기대를 해 본다. 한여름이었다면 이곳을 걷기는 제법 힘들었겠지 싶다.


어느 정도 걸어가면 이 이정표를 만날 수 있는데 사실 여기서부터 제대로 된 구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제법 산길이고 밤골을 지나게 되면서 정말 많은 밤들을(물론 거의 대부분 알맹이는 없는) 볼 수 있다. 가끔 머리 위로 밤송이가 떨어지기도 하니 모자 정도는 챙기도록 하면 좋겠다. 이쪽으로 올라가면 북한산의 등반 코스 중의 하나인 백운대 코스를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전 구간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효자의 길은 멀고도 험한 법인가 제법 산길이다. 일반 도로를 걷다 흙길을 걸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발 밑으로 구르는 돌부스러기나 흙들의 느낌이 포근하다. 맨발로도 걸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흙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도란도란 나누는 이야기 속에 풀들이 나무들이 돌들이 그렇게 뒤로뒤로 스쳐지나간다.


오랜만에 등장하는 계단길이다. 사실 계단은 산행에서 그리 반가운 존재는 아니지만 한편으로는 하나의 이정표가 될 수 있다. 사람의 손길이 닿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니 많이 지쳤다면 이 계단을 보고 힘을 얻을 수도 있다. 인공물이 하나 없는 산길은 가끔은 막연한 피로를 불러올 때도 있으니 말이다. 아무튼..똑딱이 카메라는 색감을 잡기가 쉽지가 않다. 내 SLR의 경우는 철저하게 내 세팅으로 되어 있어 잘 나오건 안 나오건 그려려니 하는데 이 녀석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이런저런 코치를 받아가며 색감을 바꾸어 봐도 영 마음에 들지는 않는데.. 그렇다고 기계를 탓할 노릇은 또 아니니...


계곡을 감싸고 도는 다리의 느낌이 또한 포근하다. 날은 덥고 땀은 흐르지만 이런 풍경은 잔잔한 감동을 준다. 사계절의 풍경이 제각기 주는 느낌은 다르겠지만 역시 가을과 겨울의 풍경이 내게는 마음에 와 닿는다. 머지않아 겨울이고 백색으로 물든 계절이 오면 이곳은 또 어떤 느낌과 생각을 던져줄까 미리 생각을 해 본다. 그래도 올해는 둘레길을 걸으며 여름과 초가을 사진이 많아져서 흐뭇하기도 하다. 사진에 늘 겨울만 나오면 그 또한 식상한 일이다.


오늘의 걷기가 거의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다. 조금 더 진행하면 밤골탐방지원센터를 만나게 되고 그곳에서 백운대와 다음 구간으로 그리고 하산 코스로 길이 나뉘게 된다. 갈림길이란 늘 사람에게 선택을 요구하는데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문제다. 온전히 자신의 결심만으로 하나의 길을 택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허나 내가 내린 결정이 능동적이건 수동적이건 결국 그 결정에 책임을 져야 하는 건 자신이다. 가끔 이 단순한 진리를 잊게 되는데 그럴 경우 꼭 문제가 생기곤 한다. 시작이 '나'라면 그 끝도 '내'가 내야 한다.


12구간 충의길을 알리는 문을 만날 수 있다. 충의길은 중급 난이도로 이제까지 걸어온 거리와 시간을 생각하면 이어서 가기는 쉽지 않다. 이 구간은 다음 주 정도에 혼자 와 볼 생각이다. 이곳을 뒤로 하고 내려 와 길을 건너 버스를 타면 연신내역으로 되돌아갈 수도 있다. 내려가는 길은 제법 긴 편인데 휴일일 경우는 오고가는 차들이 많으니 주의하도록 하자. 연신내역으로 이동해 조금은 늦은 점심을 먹고 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시간이 정말 어찌가는 줄도 모르게 빨리 갔다. 

어떤 이는 잠깐 이야기를 나누어도 마치 몇 시간을 이야기를 한 것처럼 피로한가 하면 어떤 이는 몇 시간을 이야기해도 잠깐 이야기 한 것처럼 신선하다. 만나자마자 곧 헤어지고 싶어지는 이가 있는가하면 헤어짐이 아쉬워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는 이가 있다. 살아가는 동안 마주치는 수 많은 사람들 중에 후자와 같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어느 새 이만큼을 왔다. 거리상으로는 절반을 더 걸어온 셈이다. 막막함이 구체화되고 현실이 되니 이루어지는 셈이다. 거북이 걸음이고 황소걸음이지만 목표를 가지고 한 걸음씩 나아가다보면 아예 시작도 안 한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일단 시작하자. 일단 밖으로 나가 걸어보자. 한 걸음.. 그 시작이 절반이고 그 절반이 전부가 된다. 

 


아이팟을 구입하면서 가장 활용도가 높은 어플리케이션이라면 내 경우에는 역시 나이키+다.  터치의 경우 나이키+ 센서가 본체에 내장되어 있는데 이것과 외부 센서를 무선으로 연동시키면 달린 거리와 시간 그리고 소모된 칼로리 등의 정보가 기록되는 도구다. 한편 생각해보면 뭐 대단한 것이냐고 할 수도 있지만 운동이라는 것이 왠지 강제적이지 않으면 잘 안 하게 된다는 점에서 나처럼 게으른 사람에게는 적당한 도구지 싶다. 나이키+의 재미있는 기능 중의 하나는 웹사이트에 모든 정보가 기록되고 이것을 전 세계 나이키+사용자들과 공유한다는 점이다. 즉 경쟁도 할 수 있고 팀을 만들어 함께 달릴 수도 있는 것으로 제법 유용한 기능이다.

아무튼 아이팟과 나이키+를 1주일동안 사용한 결과는


이렇게 나타났다. 원래 1주일만에 기록을 했어야 정확한데 8일치가 되었으니 매주 주간 기록을 하기보다는 누적치를 기록하는 것이 나을 듯하다..

8일치 운동에 대한 결과는


즉 8일 동안 27.3km를 달렸고 1키로를 달리는데 평균 6분 13초가 걸린다는 통계다. 학창 시절에 비해서 확실히 약해진 체력은 어쩔 수 없는 듯하다. 특히 군 시절(본의 아니게 수색대에 근무하던 시절)에는 아침마다 자갈밭 구보와 산악 구보로 제법 탄탄한 체력을 유지했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아저씨가 된 모양이다.



오늘 달린 데이터인데 달리는 방법을 약간 변화를 주었더니 달리는 속도가 구불구불 나온다. 이 표를 보면 4.21키로를 달리는 데 27분 13초가 걸렸고 속도는 6.27 소모된 칼로리는 336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운동타입의 3K는 처음 달리기를 시작할 때 정해두는 자신의 목표인데 달리기를 시작한 첫 주의 목표를 3km로 두었기 때문에 저렇게 표시된다.

아무튼 1주일을 달려보니 체력이 완전히 바닥난 상태에서 시작한 것이라 처음에는 숨쉬기도 힘들었고 무릎 아래로 전해지는 통증이 제법 심해 돌아와서 맨소레담을 바르고 누워있곤 했는데 슬슬 적응이 되는지 숨쉬는 부분은 이제 어느 정도 극복이 되는 것 같고 하체 쪽의 단련이 좀 더 되면 지금보다는 더 안정적으로 달릴 수 있지 싶다.

1주차의 3km 목표는 이제 넘어선 듯 한데..아이팟에 내장된 다음 목표는 5km다. 사실 3km의 벽을 넘기도 쉽지는 않았는데 5km는 어떨지 일단 달려보고 알 일이다. 

 
아침에 달리기를 시작하고나니 그동안 얼마나 운동을 안 하고 살았는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처음에는 제법 힘이 많이 들었다. 요즘에는 그나마 조금씩 적응이 되어 가는지 체력도 나아지는 듯한 느낌이다.

우리 동네에는 운동장이랄까..아무튼 제법 잘 관리된 육상 트랙과 운동 기구 그리고 산책로가 있는 공원이 있는데 그나마 세금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운동을 하다보면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트랙을 거꾸로 달린다
이분들은 일단 특징이 제법 운동을 하기 위한 복장도 잘 갖추고 있어 하루이틀 나온 분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분명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게 되어 있는 트랙을 거꾸로 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과 계속 얼굴을 마주치게 되는데 왜 거꾸로 달리는지 도통 이해가 안 간다. 문제는 이분들은 눈이 마주치면 밝게 웃는다는 점인데 힘들어 죽겠는데 같이 웃어주기는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다.

진한 화장에 선글라스
대부분 가벼운 체육복 차림인 것이 보통인데 간혹 옆에만 가도 제법 강한 향이 나는 진한 화장을 한 분들이 있다. 이분들의 특징은 또 진한 선글라스를 끼고 있다는 점인데 운동 시간이 보통 아침인만큼 그렇게 강한 햇빛도 없음에도 뭐랄까 멋을 내러 운동장에 나온 것인지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이분들은 대개 걷기 운동만 하다가 어디론가 사라진다. 비슷한 부류로 정장 비슷한 차림으로 운동하러 오는 남자분들도 있다. 진한 화장과 만나기 위해 온 것인지 알 길은 없다.

트랙에 각종 오물을
트랙을 달리다보면 힘이 드는 것은 사실인데 굳이 트랙에 침을 뱉는 분들이 있다. 결국 고스란히 다른 이들이 그것을 밟게 되는데 이건 근본적인 가정 교육의 문제가 아닌가 하는데..이미 장년들이니 고치기는 틀렸다. 이보다 더 한 것은 한 손으로 한 쪽 코를 막고 시원하게 푸는 분들...집에서도 그럴까

운동은 무슨
분명 운동복 차림인데 벤티나 정자에 앉아 담배만 줄창 피다가 사라지는 분들. 동네 친목을 다지기 위해 나온 것이라면 할 말은 없지만 트랙을 달리거나 운동을 하다보면 담배연기는 진짜 고통스러운 부분 중의 하나다. 나 역시 담배를 피긴 하지만 운동장에서는 자제를 해야하지 않을까

친애하는 동민 여러분
끝으로 운동장이 제법 크다보니 각종 행사가 빈번한데 특히 유치원 행사가 많다. 얼마 전에는 유치원 사생 대회가 있었는데 유치원 아이들을 앞에 앉혀두고 무슨 모임 회장 소개부터 시작해서 후원회 회장 등등 이름도 생각이 안 나는 각종 조직의 장들을 거창하게 소개하고 있었다. 유치원 아이들에게 벌써 유세를 하는 것인지..이분들의 특징은 소개가 끝나면 잠시 머물다가 어디론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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