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 아마도 학창 시절 한두 번쯤은 들어본 이름일테다. 뭔가 이름이 특이해서 미술사조를 구분할 때 어렵지 않게 초현실주의라고 끼워 맞출 수 있었던 그 사람이다. 우리가 달리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여기까지가 대부분이 아닐까 싶다. 흘러내리는 느낌의 시계 그림(기억의 영속성)까지 기억한다면 시험 대비를 열심히 한 축에 속하지 않을까?
 
살바도르 달리는 화가이면서 조각가이고 또 영화제작자이기도 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의 표현 그대로 미치광이였다. 초현실주의를 하니 미칠 수도 있지 않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그가 활동하던 당시에는 그런 의식보다는 달리 본인 스스로의 내면에서 흘러나오는대로 자유롭게 그리고 만들어낸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 그의 작품과 일상에서의 행동들이 일반인(?)들이 보기에 미친 것처럼 보였을테고 이 시크한 화가는 그런 반응을 오히려 즐기며 스스로를 미치광이 취급해 버린다.


남들이 바라보는 시선을 그대로 인정해버리면 아무 문제가 없다. 남들이 미쳤다고 하니 그렇다고 대답해버리면 다른 이들도 할말이 없고 본인 스스로도로 아무렇지도 않게 미친 모양을 유지할 수 있다. 달리는 평생 이 미친 삶을 살았는데 피카소와 프로이트 같은 또 다른 미친 사람들로부터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이책에는 그런 내용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말 그대로 극도로 세속적이고 욕망을 감추지 않으며 세상의 신중함과 '~척하기'를 그대로 배척해버린 달리는 한창 나이에 이책 즉 자서전을 집필한다. 자서전을 미리 써 두면 그에 맞는 삶을 살 수있다는 이유인데 한편으로는 말이 안 되는 것 같으면서도 일면 달리다운 생각이지 싶다. 총 3개의 파트 14개의 단락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원서를 보지 않아 알 수는 없지만 문체 자체가 말 그대로 건방지고 솔직하다. 아무 거리낌이 없다. 그런 성격이 아니었다면 그의 작품 또한 나오지 않았을테지만..

그러나 한 사람, 그의 평생의 사랑이었던 갈라에 대해서만큼은 유연하고 온화한 모습도 보인다. 당시 사람들은 갈라와 함께 있을 때의 달리는 마치 다른 사람같았다고 증언하는데 극도로 정신을 소모하는 일이 많았던 달리에게 유일하게 평온을 줄 수 있었던 (혹은 본인 스스로가 그렇다고 최면을 걸었던) 존재였기에 그런 행동과 생각이 가능했을듯 하다.

아무리 자서전이라고 해도 절정기의 시기에 자신의 과거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아니 좀 더 강하게 들춰내어 공개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후의 자신에 대한 평가가 완전히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인데 달리는 오히려 자신의 과거의 꿈, 정욕, 망상, 집착과 같은 감정들을 조금은 과장스럽게 그리고 자유롭게 묘사할 수 있었던 그의 정신에 경의를 표한다. 아무리 스스로가 자신이 있어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텐데..

달리의 작품들은 선뜻 와닿지는 않는다. 사람에 따라서는 혐오스럽게 느낄 수도 있는데 아마도 너무나 적나라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면에 감추어진 자기만의 비밀을 들추어낸 듯한 느낌. 그 느낌을 그의 작품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프로이트 역시 그런 활동을 했었는데 그래서인지 두 사람에게는 극단적인 평가가 늘 뒷따르고 있다. 우선 달리의 작품들을 찾아보자. 

붙여진 제목과 잘 어울리지 않는 작품들이라고 생각되겠지만 가능한 많은 작품들을 보고난 후에 이책을 읽어보자. 왜 그가 그런 작품을 만들게 되었는지 무엇보다 어떤 마음에서 그런 의도가 나왔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세상을 집어 삼키려는듯한 강렬한 그의 광기어린 작품들이 만들어진 이면에는 그의 책 첫머리에 적혀 있듯 "그의 야심은 과대망상적 광기처럼 멈출 줄 모르고 커져만 갔"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아무튼... 누군가 미쳤다면 그를 미치게 한 이유가 있을테다. 무작정 미친 사람이라고 등을 돌리기 전에 그 이유를 들어본다면 그의 광기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이책은 스스로 미쳤다고 공언한 달리의 삶과 사랑과 작품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비록 그 문체 역시 선뜻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부분이 많지만 말이다.

책의 내용과 별도로 책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면 책의 판형이 조금 애매해 한손으로 들고 읽기는 어려운 편이다. 책의 분량(457페이지)이 제법 되기 때문에 어려운 면도 있지만 가로가 긴 모양이라 두손으로 받쳐 들고 읽어야 한다. 아쉬운 점은 뭐랄까 초현실주의의 대가인 달리의 책이라는 점에 너무 얽매인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보통의 다른 책들과 다른 디자인과 내부 구성이다. 표지를 거의 통째로 접어 버린 책날개는 그렇지 않아도 불안한 '들고 읽기'를 더 어렵게 만들었다.

달리의 책이기 때문에 디자인 역시 초현실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는 몰라도 형식적인(약간은 어설픈)면에 치우쳐진 느낌이 강해 오히려 글을 읽는데 방해가 됐다. 달리에 대한 소개글을 가로로 보게 한 것은 아직도 이유를 모르겠다.




참 오랜만에 제대로 된 미술관 안내서적을 읽었다는 느낌이 든다. 책을 처음 받았을 때 495페이지에 달하는 두께에 놀랐고 사진의 질을 높이기 위한 종이를 사용하다보니 무게도 만만치 않아 또 놀랐다. 들고 다니면서 읽기에는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역시나 출퇴근 길에 읽기에는 적지 않은 부담이 됐다. 

그럼에도 이책은 재밌다. 미술관을 소개한 책이 무슨 '재미'가 있냐고 할 수도 있지만 이런 류의 책들을 여러 권 읽어 봤지만 이책만큼 몰입감을 준 책은 드물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우선 머리말이 길다. 뜬금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머리말이 긴 것은 단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저자가 우리에게 하고픈 말이 오죽 많았기에 이렇게 구구절절 써 놓았을까 싶어 정독을 했다. 역시나 저자는 할말이 많았다.



무엇보다 저자 본인이 여행 카다록에 나와있는대로의 잘 짜여진 모범 코스로 유럽의 미술관을 돌아보고 느낀 아쉬움에서 이책을 쓸 생각을 했기 때문에, 책에 실린 미술관들이나 작품 그리고 작가들에 대한 소개가 제법 심도 깊고 정말 필요한 정보들로 채워 넣었음이 절실하게 느껴진다. 겉으로 드러난 외적인 부분만이 아닌 비하인드 스토리랄까..독자의 흥미를 끄는 요소를 많이 다루고 있는 점도 장점이다.

저자의 미술관 기행은 영국에서 출발한다. 조금 의외일 수도 있겠지만 현대 미술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사치 갤러리의 비중은 어느 미술관 못지 않게 크기 때문에 가장 먼저 집고 넘어 간다. 영국을 출발해 프랑스로 그리고 독일, 네덜란드, 스페인으로 이어진다. 뒤의 세 나라는 미술관이라는 시각에서만 보면 우리에겐 조금 낯설 수도 있는데 저자는 그런 점을 염두에 둔듯 제법 상세하게 그 나라들의 미술관을 소개하고 있다.



그런 소개 덕분에 소위 문화 선진국들에 국한된 지식의 폭을 꽤 넓힐 수 있었다. 애초에 잘 알려진 미술관이 없는 나라들에 대해 무관심했던 탓도 있겠지만 말이다. 총 16개의 미술관을 다루고 있지만 내가 알고 있는 미술관은 채 몇 개가 되지 않았다. 이 정도면 문화에 대한 편식도 제법 심한 편이 아닌가 싶었다.



이책의 하이라이트는 독일의 홈브로이히 박물관이다. 읽는 이마다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가 이 미술관의 소개에 높은 점수를 준 것은 다름 아닌 '지식을 버리고 당신의 눈을 믿어라'는 문장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미술 작품을 볼 때 무엇을 보는가를 생각해보자. 모나리자를 본다고 할 때 우리는 우리가 학교 혹은 기타의 경로로 배운 '지식'을 먼저 생각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어떻고 그림의 배경이 어떻고 작품이 있는 미술관은 어디고 등등...

홈브로이히 박물관은 그런 우리의 모든 배경 지식을 무시해버린다. 아무런 표제도 없이 그저 작품만 있다. 판단은 보는 이가 하면 된다. 학창 시절 국어 시간에 시를 분석하는 것이 참 마음에 안 들었었다. 윤동주의 시는 무조건 저항시라던가 하는 식의... 시인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시어들을 시험에 적합한 문제로 만들어 외우던 시절... 그런 편견 속에서 우리는 시인의 마음을 읽지 못 하고 지나쳤었다.

미술 역시 마찬가지다. 낭만파니 인상파니..하는 이론들에 묻혀 정작 작가들이 표현하고자 했던 진심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이 사실이었다.이책을 읽어 내려 가면서 그런 선입견들이 얼마나 예술 작품을 오해하게 하는데 크게 작용하는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으니 이 정도면 이책을 제대로 읽어 내것으로 만든 것이 아닐까 싶다.

마음 같아서야 직접 소개된 미술관들을 찾아 내 마음의 눈에 비치는 대로의 감상을 하고 싶지만 그렇지 못한 여건이 아쉽다. 여느 안내서를 읽었다면 책을 읽고 나서 금세 잊었을 수도 있겠지만 이책을 읽어 가면서는 실제로 미술관을 찾아가보고 싶은 마음이 계속 들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진들을 담고 있음에도 아쉬움이 큰 것을 보면 작가의 의도가 책에 잘 반영이 된 모양이다. 

한 가지 욕심이 있다면 저자가 찍은 사진들만 별도로 부록 형식으로 모아봤으면 어떨까 싶다. 본책이 워낙 무게가 나가는 이유도 있지만 때로는 글 조차도 잊고 작품만을 보고 싶을 때가 있으니 말이다.


이책은 도발적이다. 띠지에 적힌 카피는 "돈이 모이는 곳에서 예술은 태어나고 발전한다"이다. 흔히 예술가들은 가난하다고 하는데 이건 무슨 소리인가? 이책은 기존의 예술작품을 바라보는 시선과는 다른 면에서 예술작품을 바라본다. 한편에서 생각해보면 천박한 것처럼 생각되지만 화가들의 작품이 고가에 판매되야 화가들도 먹고 살 수가 있고 그래야 또 많은 작품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시선이다. 일응 타당한 이야기다.

꽤나 성공한 사업가의 아내인 리자 게라드디니의 초상이라는 게 거의 확실시 되고 있다. p.22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돈을 받고 초상화를 그리지 않았으면 모나리자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마네의 사회비판적인 시각이 없었으면 풀밭 위의 식사나 올랭피아는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예술=돈의 공식을 적절히 활용한 앤디 워홀이나 데미안 허스트를 돈만 밝히는 속물이라고 비판만 할 수 있을까? 초야에 묻혀 있는 예술품들을 전 세계적으로 알리는 것은 다름 아닌 경매장이다. 이율배반적으로 들리지만 이렇게 예술은 시대와 돈 그리고 권력과 떼기 어려운 관계인 셈이다.


누드에 대한 위선, 그에 대한 거침없는 반격. 마네의 올랭피아. p99

또한 예술가들의 권력, 사회통념과의 대결 구도를 그린다. 돈과 권력...어쩌면 세상을 움직이는 가장 큰 세력들과 때로는 어울리기도 하고 때로는 그들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며 이제까지의 역사를 만들어온 장본인이다. 이책에서는 이 두 가지 구조를 큰 틀로 삼아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물론 권력과 사회통념에 맞서 싸우는 일종의 투쟁에 대한 언급은 많지는 않다. 과거 TV프로그램에서 다루어졌던 내용이다보니 아무래도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만한 주제와 이야기 위주로 풀어갔기 때문이리라..


 워홀의 오렌지 마릴린. 이 작품의 가격은? 145억 원이다. p 157

책은 크게 다섯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언뜻 보면 시대순이지만 꼼꼼하게 다시 들여다보면 가치관의 변화에 따른 진행이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에서 파리로 다시 뉴욕에서 영국으로 그리고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로 넘어 오는 이야기의 진행은 단순히 시대의 흐름에 따른 예술 작품에 대한 평가라기보다는 시대에 따른 권력의 이동, 경제의 이동에 대한 흐름이라 보는 것이 더 어울린다.


시대에 대한 교묘한 비판.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 p121

그 흐름 속에서 흐름에 동화하며 혹은 흐름에 역행하며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했던 예술가들을 통해 예술이라는 것의 사회적인 면을 조망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책이 주는 의미는 각별하다. 미술사와 작가들이 다루어지기 때문에 어려운 책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사회상과의 긴밀한 연관을 다루기 때문에 전문적인 지식이 없더라도 읽기가 수월하다. 무엇보다 기존에 잘 모르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는 점이 매력적이고 신선하다. 요즘 방영되고 있는 명작스캔들과의 비교도 재미있을 것 같다.





저는 건강한 리뷰문화를 만들기 위한 그린리뷰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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