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어려운 시기에.." 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은 것 같다. 3포니 5포니 해서 이 땅의 남녀가 결혼은 그저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이야기로 생각하게 된 요즘. 다른 이유없이 오직 서로에 대한 마음만으로 한 가정을 만들게 됐다. 어려서부터 내 꿈이랄까.. 항상 마음 속에 담아 두고 있던 것은 내 가정을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세파에 시달리는 동안 절실하게 느껴왔다.

그리고 지금 길 위에서 만나 길을 함께 걷던 이와 남은 생을 또 같이 걸어가게 되었다. 우리 둘을 이어지게 해 준 곳이 이 블로그이고 이 블로그를 통해 인연이 된 장소에서 우리 둘은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서로의 마음 속에서 그려 본다. 가족이 되어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경제적인 것이 가장 우선시 되는 것이 요즘의 풍조지만 우리 둘에게는 그저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다.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 간의 관계의 시작이자 끝은 '나눔'이 아닐까. 도란도란 두 사람만의 공간에서 이야기를 하고 서로 공감할 수 있다면 세상살이야 다 고만고만한 것 아닐까.

우리는 서로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가장 가까이 있어주었다. 이거면 된 것이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도 마찬가지다. 가장 힘들 때 그리고 가장 기쁠 때 곁에서 손을 잡아주고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으면 된다. 삶을 너무 어렵게 생각할 일도 아니고 삶을 너무 쉽게 생각할 일도 아니다. 그저 두 사람이 충실되게 서로를 바라보고 이해하고 세상과 맞서 나가면 되는 것. 

그녀를 알게된 지 햇수로 4년이 되었고 연애를 시작한 지 만 1년이 되었고 앞으로 살아온 날들보다 더 많은 날들을 함께 하게 되었다.


연인들이라면 한 번쯤은 찾는 곳이 이곳 정동진이 아닐까 싶다. 정동진이 유명해진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우리가 이곳을 찾은 것은 새벽열차를 타고 떠나는 거의 마지막(?) 여행이 아닐까 싶은 마음에서였다. 청량리에서 11시 넘어 출발해 새벽 4시경에 도착하는 무박열차는 한창 나이 때는 별 무리 없이 즐기며 다녀올 수 있는 낭만이 있겠지만 한 두 해 나이가 들다보면 어쩐지 낭만보다 고단함이 점점 더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청량리에서부터 스냅식으로 여행을 죽 그려보고자 했던 생각은 덜컹거리는 열차와 자는둥마는둥하는 밤샘에 금세 어디론가 사라졌다. 35mm를 들고가야 한다는 내면의 압박은 극심했지만 결국 가벼움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LX-7만 들고 왔는데 일상의 스냅과 여행 스냅은 확실히 달라서 줌렌즈의 유용성에 새삼 놀랐달까.. 그래도 최대한 괜찮은 사진을 건져보겠다고 RAW 파일로 찍었더니 돌아와서 편집이 만만치가 않았다.


동해의 일출이란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는건지 좀처럼 해가 뜨는 모습을 보기는 어려웠지만 하루의 시작을 연인과 바라본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아무튼 파인더가 없는 똑딱이 디카는 여전히 사용법이 익숙지가 않아서 노출을 잡는데 늘 애를 먹는다.- 그래도 해가 뜨는 순간. 주변이 어둠에서 단 몇 초 사이에 환한 빛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역시나 감동적이다.


나는 바다를 유난히 좋아한다. '바다에 와서 소원 풀었네요?'라는 그녀의 말에 새삼 내가 얼마나 바다 이야기를 많이 했나 싶기도 했다. 한 없이 멀리 펼쳐진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모습, 약간은 비릿한 냄새와 함께 얼굴을 스치는 바람.. 이 두 가지만 해도 바다를 찾을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어쩌면 일상이 지나치게 도심에 집중이 된 삶을 평생 살아오다보니 막히지 않은 공간 자체에 대한 동경이 늘 내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지 않았을까..


단 몇 분 사이에 어둑했던 역 주변에 햇살이 드리우고 보이지 않던 길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온다. 그렇구나..원래 길이 있었는데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았을 뿐이구나.. 우리네 삶도 그런 것 같다. 어딘가 분명히 내가 걸어갈 수 있는 길이 곧게 뻗어 있음에도 잠시의 어둠에 마음을 빼앗겨 그 길이 있다는 사실조차 잊는 것은 아닐까. 해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했다. 그 어둠만 이겨내면 사방이 환해지는 공간 속에 내가 걸어갈 길이 또렷하게 놓여있음을 찾을 수 있다.


사진은 많이 찍고 볼 일이다. 예전처럼 필름을 현상하고 인화해야 하는 수고로움(물론 그 기다림의 즐거움은 없어졌지만)이 사라진 지금은 다다익선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다. 사진이 몇몇 특별한 계층들의 전유물이 되던 시대도 이미 지난 지 오래고 휴대폰에 붙어 있는 카메라만 해도 좋은 사진들을 많이 만들어내는 게 요즘이다. 어색함에 혹은 결정적인 순간에 대한 욕망에 누르지 못한 한 컷에 나의 소중한 기억들이 담길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한다면 사진 찍는 일에 인색할 것은 아니다. 


그녀를 만난 이후 내 사진에 대부분은 소위 '셀카'가 주를 이루고 있다. 내 사진의 색이 변한 부분 중의 하나기도 한데 처음에는 나도 어지간히 어색했었지만 지금은 내가 먼저 카메라를 들고 포즈를 잡을 정도가 됐으니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 맞는 모양이다. 아무튼 덕분에 DSLR은 점점 더 제습함 속에 들어갈 일이 많아졌다. 그나마 들고 다니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은 35mm인데도 말이다.


여담이지만 요즘 새로 출시된 두 녀석이 마음을 어지간히 흔든다. LX-7의 후속기(사실 따져보면 완전히 달라졌다.)인 LX-100, 그리고 항상 나와 궁합이 맞지 않았던 캐논의 G7X다. LX시리즈를 제법 오래 사용을 했었기에 어쩌면 LX-100으로 넘어가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내 사진인생에서 늘 뭔가 나와 엇갈렸던 캐논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생각보다 크게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겠다. 뭐.. 직접 내 손에 오려면 내년은 훨씬 넘은 언젠가가 되겠지만 가끔은 이런 상상으로도 즐겁다.


Panasonic LX-7 & iPhone5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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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시작이라는 것은 나름대로의 여러가지 의미를 스스로에게 부여한다. 본격적인 겨울의 시작이 내게 주는 의미 중 가장 큰 것은 역시 '정리'라는 단어가 아닐까 싶다. 이제는 희미하게 사라져 가는 지난 시간들의 수많았던 순간들을 고이 접어 과거라는 이름으로 봉인하는 일과 막연하게 혹은 혹시나..라는 미련과 기대를 남겨 두었던 미래를 좀 더 멀리 미뤄두는 것이랄까. 사실 겨울을 기다렸으면서도 한편에서는 내심 조금은 늦게 와 주었으면 바란 것도 이 정리를 해야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달력을 보고 지난 시간들을 하나 둘 돌아보며 조금은 아쉬운 웃음으로 넘겨 버릴 수 있게 되었고 모아 두었던 기억의 단편들을 보이는 것이던 혹은 보이지 않는 것이던 하나 둘 내 기억과 시야에서 지워나간다. 겨울의 기억이 유난히 많은 내게 이 계절은 생각만큼 쉬이 지나칠 수 없는 시기인 것은 분명하지만 오히려 이 계절이 아니면 머릿속 어딘가에서 방황하고 있을 기억의 조각들과 방안 곳곳에서 떠돌고 있는 과거의 흔적들을 온전히 찾아 떠나보내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 본다. 


방 구석에 먼지가 수북이 쌓인채 잠들어 있는 커다란 여행 가방에서 오랜 기억의 흔적들을 끄집어 내고 이제는 다시 그것들을 마주 하지 않으련다는 생각을 하며 가방을 텅 비워가는 작업도 내가 겨울에 해야하는 일이다. 수많은 약속과 다짐들, 다정한 말과 글들이 이제는 부질없는 한숨의 이유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씁쓸하기는 하지만 그것들을 더 이상 내 주변에 놓아둘 이유도 없어졌고 오히려 이런 것들을 나 홀로 보관하고 있는 것이 나 자신뿐 아니라 이전의 기억들에게도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몇번을 망설이다 치워나간다.


생각해보면 지난 추억의 흔적들 특히나 물리적인 흔적들을 보관한다는 것은 꽤나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두 사람이 결혼까지 이르러 한 집에 살게 된다면 그 흔적들은 미래의 어느날에 다시 들춰보아도 즐거운 서로의 공감대가 되겠지만 이미 다른 사랑을 찾아 다니는 사람 혹은 다른 이의 아내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사람과 나눈 기억들을 나 혼자 보관한다는 것은 객관적인 시각에서 보면 찌질하거나 비참한 일이 아닐까. 남자의 기억의 방이란 그런 것이라는 말을 듣긴 했지만 남자의 사랑이란 원래 그렇게 유치하고 어리석은 모양이다.


혹시나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라며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 알게된 첫 소식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다더라..라는 이야기일 때는 내심 섭섭하기도 하지만 한편에서는 시원하기도 한 그런 감정이 교차하게 되는데 그런 이야기를 듣고 '우리가 사귄 게 얼마나 오래인데.. 둘이 아니면 못 산다며..'라는 말을 되새기며 한탄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보편적으로 여자의 사랑은 그렇게 대상이 옮겨가면 지난 시간은 새로운 시간으로 덮어 버리는데 이것을 남자들은 좀처럼 이해하지 못한다. 아마도 생물학적인 특성이 큰 이유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러니 그런 이야기를 들었더라도 마음에 담아둘 필요는 전혀 없다.


아무튼 지난 기억들을 하나 둘 끄집어 내어 눈 앞에 놓고 그때의 감정과 지금의 감정을 찬찬히 바라본다. 이런저런 생각이 들고 여러 장면들이 눈앞에 스치지만 그래도 예전처럼 마음이 쓰리지는 않는 것을 보면 이제는 이런 물건들이나 기록들을 보관해둘 필요가 없어졌다는 나름의 확신이 서는 모양이다. 텅빈 가방을 보니 뭔가 휑한 마음이 들기는 하지만 오늘따라 바람이 많이 불어서..라고 위안을 해 본다.

요즘에는 사랑이라는 감정조차 내게는 사치스러운 것이 아닐까라는 조금은 회의적인 생각마저 드는 상황인데 나이가 하나 둘 더 들어갈 수록 뭐랄까 '사람'자체가 좋아 사랑이 시작되고 이어지는 확률은 극히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경험에서 비롯된) 생각때문인지도 모르겠다.


Nikon F3hp, Ai Nikkor 105mm f/1.8S, Ilford XP2. LS40

제가 무척 좋아하는 한자어가 있는데 바로 連理枝입니다. 연리지라고 읽는데 아마 우리나라에도 이 나무들이 제법 있어 한두 번 정도는 어디선가 보시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네요. 얼마 전 태풍이 왔을 때 금산사의 연리지가 부러졌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리기도 했습니다.

이 단어는 원래의 의미와는 약간 다르게 쓰여 지금은 남녀사이의 애틋한 정을 뜻하지요. 특히 부부사이의 정을 의미하는데 전혀 다른 근본에서 자란 두 개의 가지가 이어져 하나의 가지처럼 서로 의지하고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전 가족에 대해 뭐랄까 환상이라면 환상을 가지고 있는데 어릴 적부터 언젠가 좋은 여자 만나 가족을 꾸리고 사는 게 꿈이었지요.. 뭐 별것도 아닌게 꿈이다 하실 수도 있지만요..

하지만 이꿈은 참 이루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꿈으로 남아있지만 어쩌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더 애틋한 기다림과 희망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주변에 결혼한 이들로부터 혹은 인터넷 등에서 결혼 이후의 냉정한(?)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보기도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내 가족을 만든다는 것은 참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은 변치 않고 있습니다.

사람을 만나기는 그리 어렵지 않고 연애를 하기도 그리 어렵지 않지요. 결혼을 하는 것도 어쩌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만 그 이후의 삶을 꾸려 가는 일은 참 대단한 거라 생각이 됩니다. '나'가 아닌 '우리'로서의 삶이라는 건 이제까지 하나의 결정만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시각에서 두 개의 결정을 합쳐 하나로 만든 다음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는 커다란 벽이 있기 때문이지요. 

결혼의 문턱에서 현실이라는 벽에 많이들 부딪히고 그벽을 끝내 넘지 못 하는 경우를 종종 보았고 겪기도 했지만 결국 그벽이란 건 두 사람의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나서는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되더군요. 결혼이란 어쩌면 나를 버리고 그 사람이 되어 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은 나 하나만이 아닌 서로 노력해야 하는 그래서 두 사람이 각자 상대에게 녹아들어 상대가 되어 가는 그런 모습이 되어서야 비로소 온전히 세상을 마주 볼 수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만약 그 벽을 넘지 못 했거나 못 한다면 아직 두 사람이 서로를 남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서로를 남으로 여기고 '나'를 먼저 생각하면 영원한 평행선을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저 나를 상대에게 녹여 가야 하는 것이죠.. 그래야 온전한 連理枝가 되는 것이 아닐까 이제사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아무튼.. 連理枝는 이후 백락천에 의해 의미가 바뀌게 됩니다. 주인공은 잘 아시는 당 현종과 양귀비지요. 양귀비가 죽은 이후 현종은 이 시를 늘 외우곤 했다는데 한번 보시지요.


長恨歌(장한가)


七月七日長生殿

夜半無人和語時

在天願作比翼鳥

在地願爲連理枝

天長地久有時盡

此恨綿綿無絶期


7월 7일 장생전에서

깊은 밤 사람들 모르게 한 맹세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기를 원하고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기를 원하네

높은 하늘 넓은 땅 다할 때 있는데

이 한 끝없이 계속되네.


Nikon F5, AF DC Nikkor 105mm f2D, Kodak Supra 100, LS-40



사랑을 할 때 서로 주고받는 대화들은 참 절절하기가 그지 없어서 당장 단 하루라도 상대가 없으면 살 수 없을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별을 앞둔 시점에서는 그 감정과 언어의 표현이 극에 다다라게 되는 데 상대의 기억을 평생 안고 가겠다거나 다른 사랑을 하지 않고 살아가겠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주고 받거나 마음 속으로 다짐을 하곤 한다.

그러나 시간이란 감정을 무디게 하기 십상이다. 어지간한 의지 혹은 이전의 대상에 대한 확신이 없고서는 하루하루 날이 바뀔 때마다 감정 역시 변화하기 마련이다. 헤어진 지 한 달 만에 다른 이와 결혼을 했다는 소식을 듣는 일도 있는데 애초에 이건 서로의 관계가 사랑이라 부르기는 어려운 관계였을 뿐이다. 그러고보면 나 역시 살아오는 동안 나 스스로의 경험 그리고 주변의 경우를 종합해보면 이말이 어느 정도 타탕하지 않나 싶다.

어쩌면 그렇게 현실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감정에 취해 이리저리 흔들리며 방황하는 것보다 나은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이 밥먹여주지 않는다고 믿는다면 더더욱 그렇다. 흔히 사랑과 착각을 하는 감정이 연민, 외로움에 대한 보상 혹은 성욕이다. 상대가 안쓰러워 보여서 정을 주다보니, 혼자라는 외로움때문에 그리고 성욕을 풀기 위하여..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사랑이라 부를 수는 없다. 중첩은 될 수 있지만 독립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결국은 자기중심적인 해소책에 불과하다. 사랑은 이유없이 상대가 존재한다는 자체를 바라보는 것이다. 앞선 감정들은 본인은 사랑이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자기자신의 순수한 이기심일 뿐이기에 상대가 누구라도 별반 차이는 없는 감정이다. 잠시 마음이 아프고 힘들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변명을 하기 위해 합리화하는 과정일 뿐이다. 그리고 새로이 나타난 대상에 금방 몰입하게 된다. 그러고나선 앞선 과정들을 또 다시 겪게 된다. 상당히 많은 관계들이 이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내 지난 기억 속에서 과연 순수하게 상대만을 바라보았던 적은 언제였나 물어본다. 낭패스럽게도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다. 나 역시 내 이기심을 감추고 욕망을 추구한 것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날이 갈 수록 순수한 사랑을 찾기는 어렵다. 다시 말해서 내가 그만큼 때가 타고 있다는 말이고 이 때를 지우지 않는다면 사랑이라는 말을 꺼내는 것조차 부끄러운 일이지 않을까 싶다.

만약 사랑에 실패했다거나 아직 사랑을 찾지 못 했다면 그것은 상대의 탓도 아니고 나를 못 알아봐주는 것도 아니다. 순전히 자기자신의 문제고 자기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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