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오랜 시간 사진을 찍고 있고 사진에 대한 제 나름대로의 정의를 가지고 있음에도 늘 파인더 안을 들여다보면 고민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사실 다큐사진 쪽을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었는데 그꿈을 접는 순간부터 문제가 된 것이죠.

제가 좋아하는 사진은 인물 스냅입니다. 다만 그 인물의 모습이나 표정에 삶이 담겨있어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최민식 선생님은 영원한 사표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데 요즘 들어 제 사진을 보면 어색하고 부끄럽기만 합니다. 대체 무엇을 담고자 하는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예전처럼 그림이 잘 그려지지가 않네요. 그저 멍한 풍경이나 생각없는 공간을 담고 있으니 큰일입니다.

요즘에는 디지털 카메라가 워낙 보급이 잘 되어서 언제 어디를 가도 카메라 하나쯤은 다들 들고 다니지만 인터넷의 수많은 사진들을 봐도 거의 대부분의 사진들이 2차원의 이미지 이상의 의미를 그려내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이전 필름을 공부할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아무 생각없는 사진들을 찍어내고 있네요.

오랜만에 다시 브레송의 글을 읽었습니다.

"To take a photograph is to align the head, the eye and the heart. It's a way of life."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아마 내 인생을 통털어서 요즘처럼 평화로운(?) 시간은 아마 없지 않을까 싶다. 이직을 준비하는 기간이라는 부담감이 있고 하루하루 생활해나가야 한다는 경제적인 부담감이 있지만 적어도 마음만큼은 세상사의 번거로움으로부터 해방된 시기가 아닐까 한다. 물론 여전히 처리되지 않은 퇴직금때문에 사장에게 메일을 쓰느라 모처럼 스트레스를 받기는 했지만 말이다.

사실 이 기간을 어떻게 보내야할까 많은 생각을 했다. 원래의 계획이라면 한 달정도 전국일주라도 가 볼 생각이었는데 역시나 문제는 돈이었고 한 달을 전국을 돌아보려면 생활비마저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아 일찌감치 접어야 했다. 이런 면에서 보면 1년치 월급을 털어 세계일주를 떠났던 지형 선배는 참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시간을 효과적으로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 했는데 역시 책과 사진이 가장 좋은 해답이었고 어떻게 보면 그나마 내가 잘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것들이기도 하니 나름대로의 타협점을 찾은 듯 하다. 특히 그동안 모아두기만 하고 읽지 못했던 책들을 미친듯이 읽을 수 있다는 것은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으면 누릴 수 없는 특권(?)이랄까?

책을 읽는다는 것은 여행 이상의 경험을 얻을 수 있다. 물론 오감이 느끼는 만족과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대단하다. 아마 책이 없었다면 나는 굳이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약간 어려운 책 한 권과 약간 가벼운 책 한 권을 동시에 읽는다. 어려운 책을 연속으로 읽는 두뇌의 피로감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으로 생각해낸 것인데 가금은 주객이 전도되기도 한다. 어제 마무리한 책은 제수알도 부팔리노의 '그날 밤의 거짓말'인데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 세기의 눈'과 같이 읽다보니 아무래도 이 책을 읽는 속도가 더 빨랐다. 덕분에 대체할 책을 다시 찾아야 했는데 이번에는 조금 유쾌한 책인 폴 오스터의 '우연의 음악'을 골라보았다.





한 남자의 결정적 순간

눈을 닮은 마법의 상자 "사진기"

그리고 순간을 위한 손의 투쟁

진화하는 인간의 욕심

아름다운 순간을 멈추고픈 욕망

끊임없이 발전해 가는 기술

사진 기술

그리고 결정적 순간을 원했던 한 남자

촬영을 위한 만반의 준비

소형 라이카 카메라, 35미리 표준렌즈

자연광

그리고

떨림이 없는 손

나는 삶을 포착하겠다고 살아가는 행위 속에서

삶을 간직하겠다고 마음먹고

숨막히는 느낌을 맛보며

언제라도 뛰어들 수 있는 채비를 갖추고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그가 포착한 순간

화려한 빛도

활기찬 움직임도 없는

단조로운 일상

그 속의 사람들

그렇게 얻은

결정적 순간의 개념

끊임없이 바뀌는 상(象)이 시간을 초월한 형태와

표정과 내용의 조화에 도달한 절정의 순간"

그리고 눈앞의 상황 모두를

한 장의 테두리 속에 가뒀다.

70여 년의 촬영

그러나 때와 장소만 밝힌 채

제목이 없는 그의 사진

단 250여 점

그리고 그가 찾아낸 마지막 결정적 순간

난 평생

결정적 순간을

카메라로

포착하길 바랐다.

하지만

인생의 모든 순간이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1908-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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