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시화 시인의 신작 시집인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의 첫번째 시를 읽다가 한 줄에 눈이 멎었다. 

'이미 떠나간 것과 작별하는 법을 배웠지'

나는 이 행을 읽고 또 읽는다. 시인은 절반의 생을 길에서 보내며 비로소 떠나간 것과 작별하는 법을 배웠다한다.

나 스스로 이별을 결심하고 나 스스로 떠나왔음에도 나는 아직 작별하는 법을 배우지는 못 했다.

아니 작별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이별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 이별의 대상은 사람일 수도 있고 사물일 수도 있고 혹은 어떤 생각이나 가치 같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이미 그 대상을 떠났다고 확신하면서도 마음 어느 한 구석엔가는 그 대상의 흔적들을 꼬깃꼬깃 접어놓고 있었다.

그것을 미련이라 부르건 혹은 그 대상에 보낸 내 마음의 일부라고 부르건 상관없다. 

그저 나는 그것들을 놓지 않으려 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동안 들인 마음이 아까워서 그동안 보낸 시간이 아까워서 그저 내 이기심에 붙들어두고 있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미 떠나간 것들과 작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그에 대한 대답은 나 역시 시인처럼 길 위에서 찾아야할지도 모르겠다.

그 대답을 명확하게 알고 있다면 세상의 모든 이별이 아플리가 없으니 말이다.


우연치않게 류시화 시인이 올린 글에 답글을 달았다가 받게 된 시인의 신작 시집. 방금 도착한 새책에는 종이 특유의 향이 물씬 배어 있다. 그의 시는 늘 제목에서부터 마음을 져며오는 무언가가 있어 마음이 쓸쓸한 날에는 읽기가 쉽지 않은데 이번 시집의 제목도 만만치가 않다.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이라니..

작가로부터 내 이름이 적힌 작품집을 받기는 이외수 선생의 소설 이후 두 번째다. 새삼 어깨가 으쓱해진다. 물론 시인은 나라는 이를 알지 못 하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적힌 내 이름과 시인의 이름을 보니 장난감 선물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기분이 좋다. 왜 유명인들의 서명을 그리들 받고 싶어 하는지 이해가 간다.

시집은 천천히 읽어갈 생각이다. 그리고 이제 새로이 세상에 나온 책이기에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기 전에는 어느 싯구도 이곳에서는 인용하지 않을 생각이다. 내용이 궁금하면 직접 읽어볼 일이다. 소설의 경우 특정한 문단을 옮겨 적어도 소설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만 시의 경우 한 줄만 옮겨 적어도 시 전체를 옮겨온 모양이 된다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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