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시화 시인의 신작 시집인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의 첫번째 시를 읽다가 한 줄에 눈이 멎었다. 

'이미 떠나간 것과 작별하는 법을 배웠지'

나는 이 행을 읽고 또 읽는다. 시인은 절반의 생을 길에서 보내며 비로소 떠나간 것과 작별하는 법을 배웠다한다.

나 스스로 이별을 결심하고 나 스스로 떠나왔음에도 나는 아직 작별하는 법을 배우지는 못 했다.

아니 작별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이별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 이별의 대상은 사람일 수도 있고 사물일 수도 있고 혹은 어떤 생각이나 가치 같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이미 그 대상을 떠났다고 확신하면서도 마음 어느 한 구석엔가는 그 대상의 흔적들을 꼬깃꼬깃 접어놓고 있었다.

그것을 미련이라 부르건 혹은 그 대상에 보낸 내 마음의 일부라고 부르건 상관없다. 

그저 나는 그것들을 놓지 않으려 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동안 들인 마음이 아까워서 그동안 보낸 시간이 아까워서 그저 내 이기심에 붙들어두고 있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미 떠나간 것들과 작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그에 대한 대답은 나 역시 시인처럼 길 위에서 찾아야할지도 모르겠다.

그 대답을 명확하게 알고 있다면 세상의 모든 이별이 아플리가 없으니 말이다.


봄이 오는 길

정봉렬

봄은 길을 따라 오지 않는다

바다를 건너 올 때도
뱃길 따르지 않고
산맥을 넘을 때도
바람에 몸을 싣지 않는다

봄이 오는 길은 따로 없다
언 땅 밑으로 흐르는 물에나
깊은 잠 속의 짧은 꿈에서도
아지랑이로 살아오고
만나고 헤어지는 정류장을 아무도 모른다.
 



펜을 다시 잡으면서 가장 많이 하는 일 중의 하나는 시를 옮겨 적는 일이다.

악필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시인의 시를 옮겨 적다보면 번거로운 세상사는 잠시 잊을 수 있다.

145는 이제야 조금씩 길이 들어 가는데 완전하게 손에 익숙해지려면 한 달 정도는 더 있어야지 싶다.

Montblanc P145 EF, Aurora Bl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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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e live with me, and be my love,

        And we will all the pleasure prove

        That valleys, groves, hills and fields,

        Woods, or steepy mountain yields.

 

        And we will sit upon the rocks,

        Seeing the shepherds feed their flocks,

        By shallow rivers to whose falls

        Melodious birds sing madrigals.

 

        And I will make thee beds of roses,

        And a thousand fragrant posies,

        A cap of flowers, and a kirtle,

        Embroider'd all with leaves of myrtle;

 

        A gown made of the finest wool,

        Which from our pretty lambs we pull,

        Fair-lined slippers for the cold,

        With buckles of the purest gold;

 

        A belt of straw, and ivy-buds,

        With coral clasps and amber studs;

        And if these pleasures may thee move,

        Come live with me, and be my love.

 

        The shepherds-swains shall dance and sing

        For they delight each May morning;

        If these delights thy mind may move,

        Then live with me and be my love. 


Christopher Marlowe (1564-1593)


전원시의 하나로 손꼽히는 말로의 작품입니다. 5월에 한 번쯤 읽어볼만한 시라고 할 수 있겠네요. 문장을 보다보면 '아 이렇게 순진무구하게 사랑을 구할 수도 있을까' 라는 생각도 들 정도입니다. 말로 본인의 세상에 대한 시각과는 상당히 상반된 시인데 어쩌면 지극히 역설적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한 마음을 표현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시에 대한 답시도 제법 많은 데 The nymph's reply to the shepherd 라는 작품이 가장 잘 알려져 있지요.

많은 이들이 이 시에 대한 평가를 할 때 세상물정 모르고 어리석다..고도 하지만 누구보다도 인간의 근본 존재에 대해 고뇌하고 그 파멸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하고 있던 말로가 굳이 이런 순진무구하기만 한 시를 쓴 것은 왜 일까를 생각해볼 필요도 분명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한 없이 순진한 목동의 구애에 대한 세상살이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여인의 화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The nymph's reply to the shepherd


If all the world and love were young,
And truth in every shepherd's tongue,
These pretty pleasures might me move
To live with thee and be thy love.

Time drives the flocks from field to fold,
When rivers rage and rocks grow cold;
And Philomel becometh dumb;
The rest complains of cares to come.

The flowers do fade, and wanton fields
To wayward winter reckoning yields:
A honey tongue, a heart of gall,
Is fancy's spring, but sorrow's fall.

The gowns, thy shoes, thy beds of roses,
Thy cap, thy kirtle, and thy posies
Soon break, soon wither, soon forgotten,—
In folly ripe, in reason rotten.

Thy belt of straw and ivy buds,
Thy coral clasps and amber studs,
All these in me no means can move
To come to thee and be thy love.

But could youth last and love still breed,
Had joys no date nor age no need,
Then these delights my mind might move
To live with thee and be thy love. 

Sir Walter Ralegh



좋아하는 작가나 철학자를 골라보라면 그 사람의 생각이나 분위기 혹은 감상이 어느 정도 느껴진다. 어떤 작가나 철학자의 필체나 사상에 공감이 간다는 것은 본인 스스로 그와 어느 정도 일체감이 있기 때문이다. 내 경우에는 내가 좋아하는 저자들을 통해 현재의 내가 이루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들을 간접적으로 해소한다. 그리고 그네들의 삶의 궤적과 사상의 흐름을 바라보며 때로는 내가 작가가 되어 그 시대를 그 시간을 살아보기도 하고 때로는 그들이 내가 되어 현재 나의 삶의 그림자를 따라오도록 하기도 한다.

기형도, 짧은 삶동안 그가 남긴 시작들은 어느 하나 처절하지 않은 것이 없고 그의 시들을 읽노라면 가슴 한 구석이 왜 그리도 시리고 아픈지 모르겠다. 죽음조차도 그다웠다고나 할까. 물론 그의 시작들이 밝은 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받아들이고 나를 대신해주기 바랐던 그는 철저하게 외롭고 우울한 시인이었다. 눈이 아닌 마음이 먼저 읽을 수 있는 시를 썼던 시인.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지금도 가장 자주 회자되는 기형도의 마지막 시작인 빈집(1989)은 읽는 이의 시점에 따라 독자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이 시 한 편으로 인해 나 역시 내가 처한 지금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었고 그렇게 내 내면의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와 움츠러진 내 영혼을 밖으로 끄집어낸 그에게 부끄러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문학의 힘이란 얼마나 위대한가..

그리고 랭보

나는 차라리 이 시인을 만나지 않는 것이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가뜩이나 비관에 익숙해진 내게 랭보 그리고 니체가 준 영향은 아주 확고했으니 말이다. 기형도가 조금은 완곡한 어조로 감정을 풀어냈다면 랭보는 말 그대로 생각나는대로 내뱉었다. 그리고 그렇게 내뱉은 시구 하나하나가 내 가슴에는 얼음비수처럼 그대로 박혀버렸다. 지극히도 이기적인 이 시인은 20대가 되기 전에 자기 할 말을 다 해버리고 아프리카로 떠나버렸다. 기형도와 랭보 두 사람은 특히나 겨울에 어울리는 시인이다. 황량함, 쓸쓸함, 그리고 고독과 따스함에 대한 욕망...

아, 나는 이제 인생에 아무런 미련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나의 삶 자체가 매우 피곤한 것이었고
또 그렇게 사는 것이 습관화 되어 있었습니다.
요즘은 하루 하루가 피곤의 연속이며 기후 또한 참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 우스꽝스러우리 만큼
격렬한 슬픔에 빠진다 할지라도
스스로 생명을 단축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도 평생을 살아가면서 몇년 쯤의
참된 규칙을 가져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이 단 한 번으로 끝난다는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사실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라르에서 쓴 랭보의 편지 중에 보이는 이 문장은 제법 많은 젊은 회의주의자들의 환영을 받았지싶고 나 역시 이 문장에 꽤나 공감한다. 다만 철저하게 인생에게 내침을 당하면서도 그래도 삶을 이어가야 한다고 말한 부분에는 그다지 찬성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보통 기형도와 보들레르의 시적 연관성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하지만 보들레르와 랭보를 묶어서는 별로 이야기 하지 않는다. 내 문학적인 지식이 짧아 전자보다는 후자가 맞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여전히 기형도는 랭보에 좀 더 가깝다. 물론 보들레르의 문학적인 맥을 이었다는 관점이라면 그 둘은 이미 같은 스승을 두고 있는 것이겠지만...


잘 가거라, 언제나 마른 손으로 악수를 청하던 그대여 
밤 세워 호루라기 부는 세상 어느 위치에선가 용감한 꿈 꾸며 
살아있을 그대. 
잘가거라 약기운으로 붉게 얇은 등을 축축이 적시던 헝겊같은 
달빛이여. 초침 부러진 어느 젊은 여름밤이여.
 

기형도 <비가2 - 붉은 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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