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오래 전 잡지를 만들 때 인터뷰를 위해 이외수 작가를 찾아 직접 강원도 화천을 방문했었다. 작가가 직접 책에 서명과 날인(정확한 표현은 아닐지 모르겠지만..)을 해 주니 이외수 작가가 쓴 책 중에 한 권을 골라야했고 문득 손에 들어온 책이 이책 '칼'이다.

기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가서 그런지 독대를 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는데 참 재미있는 분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 인터뷰였다. 사실 아침에 자다가 갑자기 불려나간거라 나보다는 외부 인터뷰어가 거의 모든 대화를 했고 옆에서 조용히 듣거나 집구경을 했던 걸로 기억된다. 겨울도 겨울이었지만 도로가 얼어붙을 정도의 화천을 운전해가기는 쉽지 않았었다.

이책의 줄거리에 등장하는 모티브를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는데 내 기억으로는 일본의 전설이 아니었나 싶다. 피를 먹어야 완전한 명검이 탄생한다는 이야기..그 이야기와 비슷하다는 생각으로 집어든 책이었는데 책을 읽어 가는 동안은 칼 자체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무기력한 주인공 박정달에 좀더 마음이 갔다.

무기력한 주인공이라고 적었는데 뭐랄까..박정달이 살아온 삶이나 살아갈 방향을 들여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과 조금은 주인공을 폄하하고픈 생각도 간간히 들었는데 어느 순간엔가 주인공의 무기력과 공상, 환상과 집착이 결국은 내게도 있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현재의 내 삶이 사실은 내 의지와는 관계없는 타인의 혹은 외부 환경 때문에 정해져버렸으니 나는 아무 책임이 없다는 무기력과 그래도 살아가기 위해서 무언가 자신만의 이상을 찾아야 한다는 집착.. 그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의 삶으로만 보기에는 어쩐지 현실과의 오버랩이 수상쩍다.

박정달은 고지식한..그리고 세상의 원칙에 순응하려는 사람이었지만 소위 그 상식이 실제로는 별 필요도 없고 오히려 자신에게 불리한 일들만 만들어낸다는데에 반발한다. 이 역시 우리네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리고 찾아낸 자신만의 꿈이자 존재 그 자체..

스스로를 완성하기 위해 자신의 가장 큰 이상과 꿈을 실현하기 위해 결국은 자신을 버려야 한다는 결말은 한편에서는 신파조로 들리지만 한편에서는 애처롭다. 그리고 돌아온 현실의 나를 바라볼때 나는 어떤 칼을 만들고 있는가 묻게 된다. 아니 아직 만들 생각조차 하고 있지 않는 것은 아닐까?


[도서]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박완서 저
현대문학 | 201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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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지 못한 길은 어디였을까..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가 있다. 시의 내용이야 어떻든 우리는 살아가면서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그 길이 나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가지 않은 길이건 아니면 어떤 외적인 의지에 의해 가지 못한 길이건 그 길은 우리에게 늘 미련아닌 미련으로 남아 있기 마련이다.

박완서 작가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라는 생각이 책장을 넘기게 한다. 그러나 실상의 내용은 못 가본 길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오히려 그가 걸어왔던 길에 대한 이야기였다. 마치 작가의 앞에 앉아 담소를 나누듯이 차분하게 쓰인 글을 읽어가면서 어느샌가 나는 이책의 제목을 잊고 말았다.

소설가는 분명 소설을 쓰는 사람이지만 그네들이 쓰는 산문, 수필은 소설 못지 않게 읽을거리가 많다. 특히 익히 그 소설가의 소설을 읽은 다음에는 뭐랄까 작가에게 좀 더 친근감을 느끼게 된다고나 할까.. 일반적인 산문을 읽는 것에 비해 좀 더 글에 몰입되는 느낌이다.

이책 역시 마찬가지여서 조용조용한 어조로 작가의 살아온 날들의 이야기를 듣고있노라면 자연스레 미소도 지어지며 말 그대로 책 속으로 빠져 드는 느낌이다. 굳이 책의 첫 장부터 읽어나갈 필요도 없다. 그저 손이 가는 페이지 아무 곳이나 읽어나가면 된다. 

책을 읽으면서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독자들에게 제법 큰 혜택(?)이 된다. 그리고 그런 글을 쓰는 작가를 만난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 아닐까 싶다. 박완서 작가와 같은 시대에 살면서 그의 글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은 그래서 행복한 일이다. 

물론 이제는 그의 새로운 글을 읽을 수는 없겠지만 한편에서 생각해보면 이제까지의 그의 글을 되돌이켜 읽어볼 수 있는 시간이 준비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소리 없이 나를 스쳐간 것은 시간이었다. 시간이 나를 치유했다. 나를 스쳐간 시간 속에 치유의 효능도 있었던 것은  많은 사람이 사랑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

 


감성마을로 가는 길이 아직 남아있는 눈때문에 쉽지는 않았다. 게다가 감성마을 입구가 아직 비포장인 곳들이 제법 있다보니 잔뜩 차체를 낮춰둔 내차로는 바닥을 쓸고다니다시피 지나야만 했다. 범퍼 도색한지 며칠이나 지났다고...

이외수 선생님과의 대화는 40분 정도 이어졌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적겠지만 확실히 특이한 분이라는 점은 확실했다. 하지만 그 '특이함'을 얻기까지의 그분의 삶은 상당히 고단한 것 또한 사실이었다.

사인을 받을 책으로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칼'을 골랐다. 내가 '소설가 이외수'를 알게된 책이다보니 아무래도 제일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있는 것은 사인과 낙관. 낙관을 찍는 위치가 정해져있다는 점도 재미있었다.

"이렇게 쓰고 낙관을 찍어줘도 못 믿는 사람들이 많아. 요즘은 사인도 인쇄해서 나눠주냐고 하더라고"라는 말이 공감이 간다.

"사모님 이름도 같이 넣어주면 반찬이 달라질텐데" 라는 선생님의 말에 "저 아직 결혼 안 했습니다."

잠시 침묵...

오히려 왜 결혼을 안 했는지 혹은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없이 짧게 흐른 그 침묵이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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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작가가 되어보자!

사춘기 소년소녀들의 꿈이기도 하고 나름대로 “나는 그래도 문학적인 자질은 어느 정도 있는 것 같아”라고 자부하는 이들이 갖는 꿈이다. 작가라는 직업, 얼마나 매력적인가? 아침 출근시간에 쫓기며 부산을 떨 필요도 없고 상사와 부하들 사이에 끼어 난처한 꼴을 당하지 않아도 된다. 이름이 알려지기 전까지는 조금 어렵겠지만 대박 한 권만 내면 나름대로 유명인이 되지 않는가!

평생직장이니 정년 걱정도 없고 “직업이 어떻게 되시죠?”라는 질문에 요란스럽게 혹은 아주 단출하게 디자인한 명함을 건네며 “작가입니다”라고 짐짓 위세를 떨어볼 수도 있다. 경치 좋은 곳에 서재를 꾸미고 벽 한 면을 모두 책으로 채워볼 꿈도 꾼다. 소재를 찾아 전 세계를 돌아볼 수도 있다. 내키면 하루키처럼 몇 년정도 외국에 사는 것도 좋다. 이보다 더 멋진 직업이 있을까? ‘그래 작가가 되어 보는 거야. 베스트셀러라는 책들 읽어 봐도 뭐 그리 잘 쓴 것 같지는 않던데 나라고 그런 책을 못 쓸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운다.

‘대학 시절부터 부지런히 신춘문예에 응모하며 작가의 길을 가는 것보다 어느 날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난 천재라는 호칭이 나름 더 어울리지 않겠는가’라고 자위하며 C군은 사표를 던졌다. “그만두고 무얼 하려는가?”라는 사장의 물음에 “베스트셀러를 쓰려고요”라고 자신 있게 답하지만 왠지 나를 바라보는 사장의 눈빛은 측은하다는 표정이다. ‘두고 보자, 나중에 유명해지면 이 회사 다닌 것을 절대 밝히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짐을 싼다. 아니 이미 며칠 전부터 한두 가지 씩 집으로 옮겨 두었기 때문에 막상 떠나는 날이 되었어도 가방 한 개도 채 못 채울 짐이다.

건물을 나서니 이제 정말 자유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당장 내일이라도 책 한 권은 무난하게 쓸텐데...

오늘밤은 오랜만에 잠들기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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