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예스24의 리뷰 서적은 제목이 제법 자극적이다. 책표지 색도 그렇고 '뭔가 해 보자'는 도전적인 느낌이다. '차'다. 내게 차는 아무 이유없이 좋은 그런 존재다. 처음 운전면허를 따고 운전을 할 때만 해도 내 안에 그런 폭풍과도 같은 기질이 있는지 몰랐다. 그리고 내 차를 10년이 넘게 몰면서 느낀 가장 큰 감상은 '내가 차고 차가 나다'라는 조금은 과하다 싶을 정도의 생각이다.

저자 신동헌은 네이버에 조이라이드라는 블로거로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혹 조이라이드라고 하니 '그 사람'을 떠올릴 분이 계실지 모르지만 전혀 아니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신동헌의 글이 마음에 드는 것은 일단 차를 좋아한다는 점, 건방질 정도의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차를 사랑한다는 점이다. 물론 차란 그저 이동수단일 뿐이라는 분들도 많겠지만 나처럼 어디선가 들려오는 배기음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을 정도의 느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차는 또 다른 나 이상의 존재로 여겨지게 된다.

절세미녀가 수영복을 반만 입고 유혹해도 포르쉐 911의 엉덩이에 적혀 있는 Turbo(물론 끝에 S자가 하나 더 붙어있다면 금상첨화)라는 글자에 더 눈이 가게 된다. 8등신 미녀의 선이 아름다운가? 아니다 아우디  R8의 옆라인을 본 적이 있는가? 아무리 요염한 목소리가 들려와도 8기통, 12기통의 그르렁거리는 배기음에 빨려들어가게 된다. 미녀의 미끈한 살결보다 땀으로 단단하게 뭉쳐진 가죽 스티어링휠이 더 매력적인 것이다. 내게 차란 그런 존재고 신동헌의 이책은 그런 내 마음을 여지 없이 흔들어 놓는다.

저자도 이야기하고 있지만 '인간 수컷들이 바퀴 네 개 달린 물건에 정신을 빼앗겨 버리는 정확한 이유'는 나 역시 알 수 없다. 책의 내용은 대부분 시승기가 차지하고 있다. 시승기는 필자에 따라 정말 천지차이가 날 정도로 다른데 신동헌의 '말빨'로 듣는 시승기는 역시나 피를 끓게 하는 매력이 있다. 시승기 이외에도 운전법, 길들이기 방법, '남자라면' 끌리는 튜닝 등등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실려 있어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된다. 저자의 말투가 조금 거슬리는 분도 있겠지만.. 차에 대해 시원하게 풀어준다는 점을 생각하고 그냥 편하게 읽으면 된다.

포르쉐는 정장을 입고도 탈 수 있는 스포츠카다. 머리가 희끗한 백발의 노인이 타기에 어울리는 차지만 그 성능만큼은 어디에 내놔도 떨어지지 않는다. 아니 '포르쉐'라는 단어 자체에서 오는 느낌이란 람보르기니나 페라리 혹은 그 이상의 차 이름을 들었을 때보다 강하다. 나 역시 포르쉐는 광신도라면 광신도인데 저 개구리 같은 눈매에 어쩌다가 빠지게 되었는지 알 길은 없다. 언젠가 911 터보가 시동을 걸고 천천히 도로로 빠져나오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정말 넋을 놓고 쳐다보고 있었던 적이 있다. 포르쉐의 마력이란..

데라야마 슈지는 '일점호화주의'라는 독특한 말을 만들어냈는데 바퀴벌레가 기어다니는 아파트에 살면서도 알파 로메오를 끌고 다니는 '한방'을 이야기한다. 물론 보는 이에 따라서는 객기도 그런 객기가 없고 현실을 외면한 무책임의 절정일 수도 있겠지만 뭐랄까..차에 한방을 거는 인생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난 여전히 믿고 있다. 물론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농담으로 '남자가 죽기 전에 문 두 개 달린 차는 타야지'라고 난 이야기하곤 하는데..사실 농담만은 아니다. 그래서 생애 마지막 차를 고른다면 역시 문 두 개 달린 차(스쿠프나 포르테 쿱도 있긴 하지만...) 를 고를 생각이다. 독거노인이다보니 먹여살릴 처자도 없으니 적어도 그런 부분에서는 자유롭지 싶은데...

문 두 개가 달린 차 중에서는 선택의 폭은 제법 넓다. 끝판왕(내가 생각하는)인 911 터보S로 간다면야 더할 나위가 없지만 어지간한 로또 당첨으로는 무리지 싶고 역시나 BMW E46 M3이다. E46 M3는  벌써 나온 지가 12년이 넘어가고 있으니 앞으로 한 10년만 더 있으면 어찌어찌 장만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지금도 가격은 출고가에 비하면 바닥을 치고는 있다.

E46 M3은 요즘 나오는 차들에 비해 출력면에서는 형편없이 낮다. 대충 300마력 정도니까 제네시스 쿠페 3.8보다 출력은 떨어진다. 그럼에도 이 녀석이 마음에 든다. 이유? 남자가 차를 좋아하는데 이유는 없다. 미녀를 보면 기분이 좋듯이 난 이 녀석을 보면 기분이 좋다. 그게 전부다. 하나 더 덧붙이면 이제는 너무 편안한 승차감의 스포츠카들에 대한 거부감이랄까?

이제는 고리타분한 디자인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E46 M3 그나마 튜닝한 차 사진을 골랐지만 뭐 크게 다른 점은 없다.

아무튼 오랜만에 꽤나 역동적인 책이다. 사실 자동차 시승기나 기타 자동차 정보는 인터넷에 널릴 대로 널려 있다. 오히려 동영상도 넘치고 있으니 보다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종이책으로 만나는 자동차들은 왠지 느낌이 다르다. 책꽂이에 꽂아두고 마음 내킬 때마다 열어볼 수 있으니 그것도 큰 매력이다. 선명한 사진과 적나라한 시승기는 읽을 때마다 불쑥불쑥 밖으로 나가고 싶은 충동이 들게 한다. 

남자에게 차란 어떤 존재냐는 질문에는 선뜻 답하기 어렵지만 내게 차란 어떤 존재냐고 묻는다면 삶의 원동력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한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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