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만년필 제조사 중에 비스콘티라는 곳이 있습니다. 상당히 고가의 만년필을 만드는 곳 중의 하나인데 비스콘티의 특징은 예술성을 강조하는 데 있는 듯한 느낌이 강합니다. 일전에도 한번 소개를 했는데 제가 가지고 있는 만년필은 비스콘티의 반 고흐 시리즈입니다. 시리즈라고 하기는 조금 어색한데 색상만 다르기 때문이죠. 물론 데몬스트레이션 버전인 크리스탈이 있긴 하지만 기본틀은 반 고흐입니다.



반 고흐 시리즈는 상당히 많은 색상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지금 보이는 것은 바닐라 색상입니다. 사실은 오션을 원했지만 재고가 없다고 해서 들여놓은 펜인데 막상 잡아보면 그리 촌스럽다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이 시리즈에 반 고흐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반 고호의 강렬한 색상에 영감을 얻어 제작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무게 중심이 상당히 아래쪽에 있어서 필기하기가 제법 수월하고 금촉 특유의 미끄러짐이 상당히 부드러운 필기감을 보여 줍니다. 비스콘티 만년필은 셀룰로이드라는 식물성 소재로 제작되고 모두 수작업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같은 제품이라도 실제로 같은 것은 하나도 없는 자신만의 펜이라는 점이 장점이지요.




14k의 촉을 가지고 있는데 다른 촉에 비해 상당히 큰 편입니다. 중간에 하트홀도 큼직큼직 해서 잉크의 흐름이 좋은 편에 속합니다. 몽블랑과 굳이 비교하자면 절제된 흐름이랄까요. 닙 사이즈는 F 로 반 고흐 시리즈에는 EF촉은 없는 것 같습니다.




상당히 깔끔한 뒷모습입니다. 전체적으로 만년필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키려는 이탈리아 장인들의 손길이 느껴지는 제품이 비스콘티입니다. 개인적인 바람이라면 평생 글만 쓰고 싶은 것인데 아마 중세 수도원의 필사본을 만드는 수도사가 전생이 아니었을까 생각을 해 봅니다. 아마 지금 인생을 다시 결정할 수 있는 선택의 순간이 부여된다면 그 길을 선택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반 고흐에 추천할만한 잉크는 역시 제가 제일 좋아하는 블루인 제이허빈의 사파이어 블루입니다. 이 사파이어 블루는 잉크의 흐름이 아주 좋은 만년필에서 본연의 색을 보여주는데 제가 가지고 있는 몽블랑의 145의 경우 아무래도 EF촉이다보니 반 고흐에 비해서는 제대로 색을 뽑아주지 못하더군요. 만년필을 단지 글을 쓰는 이상으로 느껴보고 싶은 분이라면 비스콘티 제품을 추천해 봅니다.



전에도 만년필에 대한 이야기를 적은 적이 있지만 난 펜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그렇다고 대단한 명필은 아니지만 펜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왠지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뭐랄까 좀 더 정리가 잘 되는 느낌이다. 아마도 e-book으로 책을 읽는 것보다 종이책을 읽는 것이 더 눈에 잘 들어오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


기존에 사용 중인 만년필은 일상에서 메모를 하기 위해 사용하는 펠리컨의 M150과 플래너에 작은 글씨를 기록하기 위한 세일러의 프로핏이다. 아버지가 주신 파커 제품은 쓰지는 않고 보관만 하고 있다. 역시 만년필하면 아마 파커가 가장 먼저 생각나기 쉬운데 그런 면에서 보면 펠리컨이나 세일러는 조금 낯선 브랜드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만년필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꽤나 친숙한 이름이다.

그리고 3번째 만년필은 좀 더 이름이 낯선 비스콘티다. 소위 조금 잘 나가는(?) 만년필이라면 몽블랑이나 (그라폰)파버카스텔, 오로라 등을 떠올리는 분들도 계실텐데 비스콘티는 여전히 낯선 이름이다. 하지만 이 메이커도 만년필에 관심이 좀 있다면 꽤나 낯익은 이름이 아닐까 싶다. 비스콘티의 특징은 본체의 재질인데 셀룰로이드를 사용하고 있다. 만년필을 식물성으로 만들다니? 라고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그만큼 처음 잡았을 때의 그립감이 부드럽다.

내가 구입한 제품은 비스콘티의 여러 제품 중에 가장 저렴한(?) 반 고호 미디 모델이다. 색상은 바닐라 색으로 만년필이라면 검정을 고집하는 분들에게는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비스콘티의 경우 모든 제품이 손으로 제작되기 때문에 같은 색상을 택하더라도 100% 같은 제품은 없는 것도 특징이다.

무게는 캡이 상당히 무겁고 전체적으로 무게 중심이 펜촉이 있는 앞쪽으로 쏠려있다. 극히 가벼웠던 M150이나 프로핏에 비하면 육중한 느낌도 든다. 필기감은 역시 명불허전인데 금촉의 경우 스틸촉에 비해 종이면에 닿는 소리가 거의 없다. 스틸촉이 사각사각하는 느낌이라면 금촉은 스윽스윽하는 느낌이다.

다만 잉크는 비스콘티의 제품은 나랑은 조금 안 맞는 듯하다. 하긴 기존의 잉크도 어느 정도 말려서(?) 쓰는 스타일이니 묽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잉크는 역시 세일러 잉크와 몽블랑 잉크인데 일단 비스콘티 잉크에 적응을 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다.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만년필을 쓴다는 것이 첨단과는 거리가 먼 일일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인간적인 느낌을 스스로 받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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