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날 등산을 생각해본 적은 별로 없다. 물론 비를 맞으며 걷는다는 것이 꽤 즐거운 일이긴 하지만 도시 생활이란 애초에 걱정할 것들이 워낙에 많은지라 비가 오면 우산을 쓰거나 가만히 실내 활동을 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것이 요즘의 모습이다.


비오는 날 얕은 산이라도 걸어보는 것이 우중산책 기분이 나지 않겠냐는 그녀의 말에 그렇게 묻어 두었던 빗속을 걷는 느낌에 대한 향수랄까.. 멀리 가는 대신 집 근처에 있는 그래도 제법 산 느낌이 나는 곳으로 가 보기로 했다. 집을 나설 무렵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던 비는 산 초입에 들어설 무렵에는 제법 장대비가 되어 있었지만 마음만은 상쾌했다.


그러고보니 빗속에서 카메라를 꺼내어 든 게 얼마만일까. 나름 사진에 대해 애착을 가지고 있음에도 이런저런 핑계로 먼지만 쌓여가는 카메라에게 새삼 미안한 마음도 든다. 산은 언제나 거기에 있으니 내 마음만 있다면 오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마음이 선뜻 동하지 않아 마냥 먼 곳으로만 느껴지는 것이 또한 산이라는 존재였는데.. 굳이 먼 길을 나서지 않더라도 가까운 동네산이라도 자주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삶이란 워낙에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것이고 그 진리를 작년과 올해에 걸쳐 절절하게 느끼고 있는 입장이다 보니 하루하루 주어진 삶의 시간들이 소중하고 그 시간 안에서 벌어지는 일상이 소중하다. 삶의 무게추가 바닥까지 내려갔다고 절망해서도 안 되고 구름 위까지 떠 올라있다 해서 기뻐할 일만도 아닌 것이다. 물론 나 역시 사소한 일에 감정이 들쑥날쑥 하루에도 천국과 지옥을 오르내리곤 하지만 예전에 비하면 비교할 수도 없을만큼 나아졌고 그것을 나 스스로 느끼고 있으니 다행이랄까..


삶의 길이 언제나 곧은 길만은 아니기에 그 길에서 만나게 되는 작은 풀 하나라도 소중한 나의 인연으로 생각하는 겸손한 자세를 언제나 간직해야 겠다고 생각해본다. 이렇게 산은 내게 끊임없이 나 자신을 돌아볼 이야기들을 건넨다. 초여름에서 본격적인 여름으로 넘어가는 6월이 어느 날. 쏟아지는 빗속에서 산은 나에게 오늘도 열심히 살고 있냐며 손을 내민다. 


Panasonic LX-7



신카이 마코토는 내가 꽤나 좋아하는 감독이자 프로듀서다. 흔히 그에 대해 영상미가 뛰어나다거나 대사가 매력적(혹은 난해하다)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이번에 개봉된 작품인 '언어의 정원(言の葉の庭)'은 그 두 가지를 한데 어우러지게 한 작품이 아닐까 생각된다. '단어'의 사용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작품들은 해당 언어의 원어로 보고 듣는 것이 가장 좋은데 워낙 뜬구름 잡기식으로 공부한 일본어인지라 듣기는 엉망이어서 꽤나 고생이었다. 혹 의미의 해석이 어색하다면 전적으로 내 탓이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언어'라는 단어에 쓰인 한자인데 아마도 언어라면 언어(言語)가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言の葉이라고 적고 있다는 점.



이 작품이 주요 시간적 배경은 여름이다. 그리고 비가 많이 내리는 장마철이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이 비오는 날 시작되고 비오는 날 끝이 난다. 비가 내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생각을 해보게 되는데 언어의 정원에서 펼쳐지는 비는 아마도 기다림과 설렘 사랑과 아픔 등 여러가지 의미를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지 않나 싶다. 전작인 초속 5cm에서 펼쳐졌던 영상미는 언어의 정원에서 극치를 보인다. 마치 사실주의 화가의 작품을 보는 느낌이랄까. 


사랑이라는 감정은 언제 생겨나는 것일까 생각을 해 본다.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정말 '아주 우연히 만나'는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를 만나 익숙해지다보니 자연히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이어지는 것인지 아니면 애초에 '사랑'이라는 감정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고 그 익숙함이 일상이 되어 버리는 것인지 어느 것이 맞는 것일까 알 수는 없다. 그렇기에 '사랑'은 영원한 인간의 주제가 아닐까. 


신카이 마코토는 '언어의 정원'에서 조금은 특별한 사랑을 다룬다. 하긴 이전에 그가 다룬 작품들도 어느 하나 평범한 것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한국 사람들이라면 조금은 거부감(?)이 들지도 모를 그런 사랑이다. 하지만 그것도 일종의 편견이 아닐까? 나이나 사회적인 신분 혹은 그외의 배경들은 어차피 눈에 보이는 형식일 뿐은 아닐까.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하는데 이유가 딱히 달린다면 그것을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이 생각에 반대하는 분들도 많겠지만...


비 내리는 어느 초여름날 우연이라면 우연하게 시작된 이 만남에서 '사랑'이 시작된다. 그러나 그 사랑은 서로에 대한 사랑이전에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즉 사랑 이전의 사랑이야기를 먼저 써 내려간다. 그리고 그 써 내려감이 잠시 멈춰 어디로 가야할지 도무지 갈피를 찾지 못 하고 있을 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손을 잡아 그 이야기를 마저 써 내려간다. 이 작품은 그렇게 사랑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사랑이란 불완전함과 불안전함이 만나 서로의 결핍을 채워가는 과정이기에...


모든 사랑이 아무런 역경없이 행복하기만 할 리는 없다. 아니 어쩌면 행복하고 즐거운 날들보다 힘겹고 고통스러운 날들이 함께 한다는 것에 더 많이 담겨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그 고통을 그 힘겨움을 함께 한다는 것은 서로의 삶을 지켜내겠다는 다짐과 의지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사랑의 과정 속에는 오해도 갈등도 있을 수 있다. 아니 오히려 그것들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마음에도 없는 말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것처럼 사랑에 독이 되는 것도 없다.


사랑은 행복한 일이고 즐거운 일이고 기쁜 일이다. 하지만 그 행복한 순간에 이르기 위해서는 긴 기다림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긴 기다림 끝에 서로를 마주 보고 섰을 때 비로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평온함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난 어느 날 우연히 만나 그날로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쉽게 믿지 않는다. 설령 그렇게 시작되더라도 지속되기는 어렵다. 오랜 기다림의 시간 끝에 시작된 사랑도 때로는 너무나 쉽게 깨질 수 있기 때문에...


흔히 '너를 위해 떠나겠다'든지 '당신에게는 내가 부족해', '더 좋은 사람 만나' 라든지 하는 말들을 하곤 하는데 이런 말은 결국 서로에게 큰 상처만 줄뿐이다. 왜 스스로 선택한 사랑에 책임을 지지 못하는가. 자신이 선택한 사랑이라면 상대에 대한 약속 이전에 자기 자신에 대한 약속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것일까. 물론 그 순간순간에 이런 것들을 생각할만큼 이성적이지는 못한 것이 또 우리네 사람이니 그토록 많은 만남과 이별이 존재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끝내 그 순간을 이겨낸다면 그것으로 사랑은 한 번의 기회를 더 얻은 것이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말이다. 사랑의 날들은 그렇게 이겨내고 버텨내야 하는 날들이 대부분이다. 아름답고 달콤한 시간만으로 가득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사람의 삶이란 그리고 사랑이란 그렇지가 않은 법. 결국 사랑이란 두 사람이 하나가 되어 세상과 맞서 이겨내는 순간순간들의 기록이 아닐까. 사랑을 하는데 사랑을 하기 전보다 왜 마음이 더 아플까를 묻지만 그게 정상이다.


오랜만에 진득하게 앉아서 본 작품이었다. 상영시간은 1시간이 채 안 되지만 그 속에 담겨 있는 의미들을 생각하기에는 충분했다. 워낙 감독이 영상과 단어에 의미를 많이 부여하는 까닭에 장면장면에 꽤 신경을 써야했고 안 들리는 일본어에 귀를 세우고 있느라 피로도가 올라가기는 했지만 내게는 괜찮은 작품이었다. 다른 이들에게는 호불호가 많이 갈릴 것 같다. 신카이 마코토의 이전 작품을 몇 편 보고 간다면 조금은 도움이 되지 싶다.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이게 뭐야?'라는 인상을 줄 지도 모르겠다.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가고나면 이후의 이야기들이 짧게 펼쳐지는데 여주인공 유키노가 보낸 편지의 날짜가 내년 2월인 점이 재밌다. 비오는 날이 거의 대부분이다보니 여름만을 배경으로 하는 것 같지만 사실 남자 주인공의 이름에는 가을이 여자 주인공의 이름에는 겨울이 담겨 있다. 그리고 이 편지의 끝부분에 등장하는 '따뜻한 계절' 즉 봄까지 포함하면 4계절이 모두 들어있는 셈이다. 봄은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은 그래서 아직은 알 수 없지만 긍정적인 두 사람의 미래를 암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무엇보다 손글씨로 안부를 묻는다는 설정이 마음에 든다.

그리고 이 작품에는 고전 문학 선생인 유키노가 일본의 고대 문학 작품집인 '만엽집'에 실린 작품으로 이야기를 건네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미 여러 곳에 소개가 되었기 때문에 문장을 옮겨 오기보다 의미만 적어 보면 먼저 

"멀리서 천둥 소리가 들리고 구름이 낀 것을 보니 비가 올 것 같다. 비가 오면 당신을 잡아둘 수 있을텐데.."라고 말을 건네고  이에 대해

"천둥 소리가 작게 들리고 비가 내리지 않더라도 나는 여기에 머무르겠습니다. 당신이 그러기를 바란다면.."이라고 답을 한다. 

꽤나 낭만적인 문답인데 이 대사가 오고 가는 장면이 제법 처리가 멋드러진 탓인지 '아, 멋진 대사를 하고 있군'이라는 인상을 남겼다. 이 두 대사는 작품의 시작과 끝에 나뉘어져 등장하고 천둥과 구름 그리고 비는 여러 곳에서 복선으로 등장하는데 작품 전체의 줄거리와 이들의 관련을 연결해서 보는 것도 좀 더 작품에 몰입해서 볼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한 번만 보고 여러 복선들을 맞추기는 아무래도 어려워보인다.

"사랑, 기억하고 있나요?" 라는 대사가 문득 떠오른다.




비가 제법 많이 내리는 날이었는데 갑자기 내린 비였습니다. 저곳은 마을버스를 타는 곳인데 아가씨 한 명이 어쩔 줄을 몰라하며 내리는 비를 그대로 다 맞고 있더군요. 표정은 잘 안 보이지만 뭐랄까 황당하다는 웃음... 비가 올 것 같지 않았는데 갑자기 쏟아지니 어쩔 수가 없었던 거죠.

뒤의 천막에라도 가 비를 피하면 되지 않겠나 싶지만 이미 워낙 많이 맞은터라 이제와서 비를 피해봐야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살다보면 그럴 때가 있죠. 자신이 예상한 것보다 더 많은 일들이 한번에 터져버려서 그저 손을 놓고 쏟아져들어오는 것들을 온몸으로 받아낼 수밖에 없는 순간..

아마도 그 당시 저분의 마음은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이제와 생각을 해봅니다. 딱 10년 전의 사진인데 동네도 지금과는 너무나 다릅니다. 지금 저곳에 가보면 남아있는 가게는 하나도 없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하지만 요즘은 3년정도면 강산이 변하는 것 같네요. 아니 스마트폰 한대가 새로 나오는 1년이면 변할까요?

흑백은 요즘과 같은 시대에 아련한 향수처럼 다가옵니다. 일전에 앞으로 가능한 흑백 촬영을 하겠다 했었는데 이전의 사진 스캔 폴더를 뒤적여보면 생각보다 흑백사진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흑백 필름은 스캔작업이 제법 까다로운데 그래도 그 당시에는 재미가 붙어 열심히 했던 것 같습니다. 이 사진은 후지 리얼라가 원판이고 사후에 라이트룸에서 레드 필터를 적용시킨 것입니다.


Contax T3, RealaLS-40 film scan


사용자 삽입 이미지


흑백사진은 비 오는 날이 제격이다. 무언가 아스라한 그러면서도 고독한 이미지는 흑백이 아니면 좀처럼 만들기 어렵다. 하지만 때로는 흑백 자체가 주는 인상이 너무 강해 이미지 전체의 분위기를 무겁게 할 수도 있으므로 적절한 구도나 노출을 주는 것이 중요하지 싶다.

그런 면에서 이 사진은 훨씬 우울한 분위기가 나버렸다. 사진은 그 장면을 찍는 순간의 사진가의 감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당시 내 기분이 이랬을까? 게다가 사용한 필름은 네오팬 50. 주미크론을 선택한 상황에서 네오팬은 적절한 선택은 아니었던 셈이다. 생각을 제대로 하지 않고 사진을 찍으면 어떤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진이 되어 버렸다.

우울한 날에 우울한 사진가와 우울한 필름..이런 조합이 만들어낸 사진은 어쩔 수 없는 우울한 컨셉인 셈이다. 사진이 정직하다가는 것은 이런 면이 아닐까.. 감정을 그대로 실어주니까..

Leica M6, Summicron 35mm f/2.0, Fuji Neopan, LS-40


'사진 이야기 > 풍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秘苑...정조의 흔적  (0) 2011.08.17
살며 생각하며...그리고  (6) 2011.03.20
하늘에 서서 바람을 바라보다  (2) 2010.12.06
문경새재 가는 길  (0) 2010.11.21
대청봉을 오르던 날..  (2) 2010.08.02
비가 내리면 인터넷이 느려진다..는 옛말(?)도 있지만 적어도 오늘은 그말이 맞는 것 같다.

오늘따라 블로그의 로딩속도도 무척 느리고 (뭔가를 계속 읽어들이는데...)

파비콘이나 아이콘은 수정을 해도 제대로 반영이 안 된다. (오히려 2개가 보인다...)

스킨 수정으로 쓰던 믹시 버튼은 플러그인을 깔자마자 어디론가 사라져버렸고...

트래픽 감당을 못해 티스토리로 옮겨왔더니 조회수는 한 4분의 1로 떨어져 버렸다.


시간을 거슬러 출근 시간

역 앞에 바로 서는 버스가 뒤에 보여서 기다렸더니 내 앞에서 쌩하고 지나가고

당산역 높은 계단을 올라 플랫폼에 도착하니 "이제 왔냐"며 열차도 떠나가고

접은 우산은 애꿎은 어른신 무릎 위로 떨어져 한참을 민망하게 하더니

예상대로 역 출구를 나서자마자 떠나는 회사행 버스...

대충 오늘이 제법 만만치 않은 하루가 되겠구나 생각을 했었는데

꼭 그런 예감은 절대적으로 맞아 떨어진다.


...이 글을 포스팅 하고 나니 믹시 버튼이 돌아왔다..=_=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