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부활 1

레프 톨스토이 저/박형규 역
민음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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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 문학의 절정

이 책을 읽기 전 부활의 여주인공은 아나스타샤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아나스타샤라는 말이 부활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에 가지고 있었던 착각이긴 했지만 왠지 어울리지 않을까 싶었다. 민음사의 부활은 두 권으로 나뉘어 있다. 두 권 모두 제법 두꺼운데 읽는 데 오래 걸리지 않을까 싶었지만 생각보다 몰입이 잘 된 편이다.

네흘류도프와 카츄샤라는 두 주인공이 있고 둘 사이의 연결고리는 제법 단단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어쩌면 두 개의 서로 다른 줄거리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고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그 생각은 확실해졌다. 아마 각자의 이야기만 가지고 별도의 소설을 써도 전혀 무리가 없을 것 같다.

남자와 여자. 사랑이야기가 나오지만 사랑이라는 주제보다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각각의 주제들에 대한 톨스토이의 성찰력은 놀라워서 가끔 던져지는 문장들을 곱씹어 생각해야할 때가 많았다.

네흘류도프 쪽에서 보자면 철모르는 귀족 집안의 남자가 한 여자를 통해 그리고 그 여자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성숙하게 변모해가는 과정이 이어진다. 세상 부러울 것 없이 지내다가 평민들의 삶을 직접 들여다보고서야 사회의 부조리와 차별을 깨닫고 그 과정 속에서 성숙해져가지만 때로는 이전의 화려한 생활의 편안함을 갈구하기도 하는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다.

카츄사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끌려가게 되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세상에 대한 불신, 사랑에 대한 불신을 간직한 채 그저 흘러가는 대로 체념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 안에는 순수함에 대한 동경, 사랑에 대한 믿음을 동시에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끝내 내리는 마지막 선택은 의외의 반전인 듯 하면서도 그녀의 지고지순함을 보여준다.

그야말로 모든 인간군상들의 모습을 톨스토이는 이 책에 담고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수 많은 인물들 속에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네들의 모습이 모두 다 들어있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다. 이 책의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 지위가 높건 그렇지 않건 평민이나 죄수, 혹은 간수와 정치가, 빈농들과 지주들...

요즘의 어느 나라의 풍경에 빗대어봐도 인물을 대입해보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결국 세월이 흘러도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겉에 걸친 옷이 달라지고 마차 대신 차를 탈지언정 그 근본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인간들의 심리와 본성을 적나라하고 진지하게 담아 내는 톨스토이의 통찰력에 새삼 놀랄 뿐이다.

아마도 이 책은 읽는 이의 상황(사회적인 신분, 처지 등)에 따라 제각기 달리 해석될 지도 모르겠는데 이 점 또한 이 책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다. 만약 노동운동을 하는 이가 읽는다면 아마도 계급투쟁을 위한 지침서가 될 수도 있겠고 순수한 사랑을 동경하는 이가 읽는다면 아가페적인 사랑의 표본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도서]오셀로

윌리엄 셰익스피어 저/최종철 역
민음사 | 2001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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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질투, 미움과 배신 그리고 죽음이란..


셰익스피어의 비극은 사랑을 전제로 한다. 지난 번 서평을 쓴 멕베스가 권력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했다면 오셀로는 전형적인 남녀간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 남녀간의 사랑이야 워낙에 오래된 주제다보니 오래 전에 쓰인 글이라 해도 지금 읽어도 별로 이질적이지가 않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질투에 휩싸인 남자가 아내를 죽이고 그것이 오해와 음모에서 벌어진 것을 깨닫고 자살을 하게 되는...어쩌면 요즘도 흔히 일어나는 비극이다. 가만 생각해보면 예나 지금이나 사랑을 깨는 큰 원인 중의 하나가 질투와 오해라는 것은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간사한지 그리고 그 본성이 세월이 지나도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흥미를 끈다.

오셀로의 비극은 단지 오셀로가 데스데모나를 오해하고 살해했다는데 있지 않다. 오셀로가 데스데모나라는 지고하고 순수한 여성을 오해하고 살해하도록 만든 제3자가 있다. 오셀로와 데스데모나 두 사람과 직접적인 연관도 없는 이아고의 등장과 그의 모함이 이 비극을 이끌어간다. 어쩌면 이 작품의 주인공은 이아고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오셀로의 행동이 이 비극을 만들어가도록 부추겼을지는 몰라도 막상 음모를 계획하고 추진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본인의 선택이기 때문에 이아고라는 인간 내면의 사악함이 없었다면 이 비극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한 인간의 증오심과 복수심이 전혀 다른 양상에서 비극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이점이 셰익스피어의 다른 비극들과의 차이점이 아닐까 싶다.

약간 시점을 바꿔 보자. 데스데모나는 이 비극에서 어떤 위치일까? 단지 이아고가 오셀로에게 복수하기 위해 선택한 대상일뿐일까? 그렇다면 데스데모나의 위치는 너무도 하찮게 된다. 정절과 고귀함의 상징인 데스데모나를 그녀와는 상관도 없는 제3자가 파멸시키도록 만든 작가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아직 이 부분까지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인종과 계급과 나이를 넘어서 오셀로라는 인간을 사랑하게 되고 그때문에 죽게 된다. 작품에서는 그게 전부다. 셰익스피어는 남녀차별주의자였던 것일까? 다른 작품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점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이 작품에서의 데스데모나는 너무나 무기력하게 무너져 버린다. 작가의 의도는 무엇일까...이 점을 알기 위해서는 한 번의 독서로는 부족하리라...

그리고 결말에서의 오셀로의 자결..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그것을 죽음으로 속죄하는데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들 하는데 나는 오히려 그가 무책임하다고 생각된다. 죽음이란 모든 것으로부터의 도피다. 아무 것도 듣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 외에는 말이다. 결국 오셀로는 데스데모나로부터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망친 것은 아니었을까..

햄릿, 멕베스에 이어 읽은 오셀로다. 세 권 모두 출판사와 번역자가 다른데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열린책들의 번역이 제일 낫지 않나 싶다. 민음사의 오셀로는 전반적으로 희곡이라는 느낌을 느끼기는 어려웠다. 마치 그냥 소설을 읽듯이 술술 넘어가는 방식인데 이런 편집을 좋아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내 경우는 열린책들처럼 연극의 대본처럼 된 방식이 읽기에 편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독자의 선택이니 가능하다면 직접 서점에 가서 읽어보기를 바란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은 모두 희곡이기 때문에 한 번 읽어볼 양으로 책을 펼쳤다가도 쉽게 읽히지 않는 경험을 하고 나면 그저 제목만 기억할 뿐 내용은 아무래도 좋다는 식이 되기 십상이다. 내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아 햄릿은 그나마 서평을 쓰기 위해 완역판을 읽었지만 나머지 3편은 읽지 못했었다. 그리고 이번에 큰 마음 먹고 시도한 작품이 맥베스다.

4대 비극이라 불리는 작품들 중에 심리묘사가 가장 잘 된 작품을 꼽으라면 나는 '맥베스' 이책을 꼽는다. 햄릿을 꼽지 않은 이유는 그 머뭇거림이 때로는 구차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차라리 맥베스의 과단성에 조금 더 점수를 준다. 물론 이 생각은 현재의 내 심리상태를 반영한 것이니까 시간이 지나면 맥베스의 과단성을 무모함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맥베스에는 비현실적인 공간과 시간과 대상이 존재하는데 바로 마녀들의 존재다. 그리고 이 마녀들은 극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마녀들의 노래 중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아름다운 것은 추한 것, 추한 것은 아름다운 것. 안개 낀 더러운 대기 속을 날아다니자."

아름다운 것은 추한 것이고 추한 것은 아름다운 것이라니.. 한번에 와 닿지는 않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느 순간 이 문장이 확 와닿을 때가 있다. 이 문장만을 떼어 놓고 보면 이해하기가 쉽지 않지만 맥베스 전편을 읽어 나가다 보면 이 문장이 적절하게 사용되었다는 느낌이 온다. 

맥베스의 감정 변화, 맥베스 부인의 감정의 기복.. 첫장에 등장하는 충성과 반역, 마지막장에 등장하는 충성과 반역.. 아름다운 것이 곧 추한 것이고 추한 것이 곧 아름다운 것이라는 문장을 줄거리를 통해 보여주고 있었고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이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허나.. 이 문장은 이 희곡을 읽는데서 그치기에는 왠지 아깝다. 어쩌면 하루하루의 나의 삶 혹은 타인의 삶과 세상의 번거로움에 빗대어 보아도 크게 어색하지 않은 문장이다. 아니 바로 우리네 삶의 현장에서 이 문장은 1초도 거르지 않고 적용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특히나 '이익'이 끼어들게 되면 아무리 숭고한 이상과 생각일지라도 그것이 나의 이익과 어긋나면 곧 추한 것이 되고 비열하고 더러운 생각과 행동일지라도 나의 이익에 도움이 되면 아름다운 것이 되는 경우를 우리를 직접 삶 속에서 겪고 있지 않은가.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국가의 존망이 달린 일까지.. 그 영역은 무한대에 가깝지 싶다.

세상에 절대적인 진리라는 것이 있을까..라는 의문을 우리는 많이 가지지만 그에 대한 뚜렷한 대답은 하지 못 한다. 그러나 세상에 상대적인 진리라는 것이 있을까? 라고 묻는다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긍정할 수 있을 것이다. 맥베스는 그런 상대적인 진리 안에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인간의 심리를 꿰뚫고 있어 읽는내내 가슴이 찔리는 느낌이다. 

내면에 감추어둔 욕망을 비밀을 꿰뚫림당하면 불편한 법이다. 맥베스는 그런 불편함을 독자들에게 있는 그대로 선사한다. 장르는 다르지만 이전의 하루키가 그랬었고 그때의 하루키의 글에 나는 푹 빠지기도 했었다. 물론 지금은 그 궤도를 많이 벗어난 모습에 관망 중이긴 하지만..

번역은 제법 마음에 든다. 뭐랄까 상황상황의 격정적인 감정을 잘 살리고 있어 책을 읽어내려가는 동안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다. 그러나 이 또한 상대적인 것이니 번역자의 번역이 지나치게 극적이다라고 느끼는 분도 계시리라..

이제 4대 비극 중 햄릿과 맥배스에 대한 감상이 마무리됐다. 곧 이어 올라갈 글은 '오셀로'다 이번에는 민음사의 번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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