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늘 새옹지마와 같아서 한 치 앞을 섵불리 내다 볼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생각이 그 어느 때보다 내 머릿속을 가득 메우는 한 해가 바로 올해다. 아버지가 쓰러지시고 그 이후 정말 숨 쉴 틈도 없이 몰아치던 폭풍우 속에서 어머니와 동생 그리고 나 세 사람은 각자 큰 생각들을 가지게 되었을 테고 햇수로 2년이라는 시간을 병간호와 뒷수습으로 보내다보니 개인적으로는 참 잔인한 시간들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상처가 클 수록 혹은 슬픔이 클 수록 뒤이어 오는 기쁨이나 행복도 큰 법이라는 아주 단순한 진리를 우리는 너무 쉽게 잊고 사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 사후 경제적인 마무리 중에 우여곡절 끝에 남겨두었던 청약통장... 그리고 우연치않게 알게 된 공고문 한 장은 우리 가족을 그동안의 힘겨움 속에서 잠시 벗어나게 해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일에는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다. 어떤 결과가 있다면 그에 이르는 길은 사소한 어긋남도 없이 완벽한 계획 속에서 그 결과에 다다르게 된다. 어쩌면 운명론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가볍게 넘길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오늘 계약서 한 장을 받아왔다.


아버지가 평생 내 집을 갖기를 바랐었지만 이루지 못하고 가신 것을 자식 대에 이르러서 비로소 이루게되었다. 그리고 이제 살게 될 곳은 그동안의 우리 가족의 삶의 영역이 되었던 곳과는 정반대로 한참을 가야 다다를 수 있는 곳이다. 지금 사는 동네에서의 우리 가족의 삶은 어머니 말처럼 '자식 둘 대학 보낸 것이 전부'라고 할만큼 그리 괜찮은 삶은 아니었다. 동생은 결혼을 하면서 이곳을 진즉에 떠났지만 어머니와 나는 이제사 떠나는 셈이다. 섭섭하다는 감정보다는 시원하다는 감정이 많은 곳이다.

무척이나 힘겨웠던 일들 속에 전혀 예상도 못 하던 좋은 일이 있는 것을 보니 역시 새옹지마라는 말이 어긋나지 않음을 느끼게 되었고 그 기쁨 뒤에 언젠가는 또 다른 힘겨움이 다가올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는 겸손함을 느끼게 되었던 한해가 아닌가 싶다. 물론 아직 올해가 마무리가 되지는 않았기에 아직 또 다른 기쁨이나 혹은 슬픔이 다가올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참 크고도 큰 두 가지 사건이 벌어진 해였기에 다른 일들은 어지간해서는 담담하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아무튼 하나의 일이 끝난다는 것은 다시 출발점에 선다는 것이다. 우리네 삶에 끝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항상 진행형이고 항상 현재형인 것이 우리네 생이고 일상이다. 비록 죽음이라는 단절이 있을지언정 끝이 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이제 공은 내게로 넘어왔다. 남은 삶이 방향을 잡고 그 방향으로 배를 저어가는 것은 온전히 내 몫이다. 과거에 어떤 일이 있어 그것이 내 생각에 혹은 내 행동에 어떤 영향을 주었더라도 이제는 그것을 그대로 묻고 완전히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내년에는 아니 바로 이 시간부터 내 삶은 달라지고 있고 그렇게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게 살아가는 방법이고 걸어가는 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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