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시화 시인의 신작 시집인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의 첫번째 시를 읽다가 한 줄에 눈이 멎었다. 

'이미 떠나간 것과 작별하는 법을 배웠지'

나는 이 행을 읽고 또 읽는다. 시인은 절반의 생을 길에서 보내며 비로소 떠나간 것과 작별하는 법을 배웠다한다.

나 스스로 이별을 결심하고 나 스스로 떠나왔음에도 나는 아직 작별하는 법을 배우지는 못 했다.

아니 작별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이별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 이별의 대상은 사람일 수도 있고 사물일 수도 있고 혹은 어떤 생각이나 가치 같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이미 그 대상을 떠났다고 확신하면서도 마음 어느 한 구석엔가는 그 대상의 흔적들을 꼬깃꼬깃 접어놓고 있었다.

그것을 미련이라 부르건 혹은 그 대상에 보낸 내 마음의 일부라고 부르건 상관없다. 

그저 나는 그것들을 놓지 않으려 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동안 들인 마음이 아까워서 그동안 보낸 시간이 아까워서 그저 내 이기심에 붙들어두고 있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미 떠나간 것들과 작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그에 대한 대답은 나 역시 시인처럼 길 위에서 찾아야할지도 모르겠다.

그 대답을 명확하게 알고 있다면 세상의 모든 이별이 아플리가 없으니 말이다.



마음을 비운다는 말을 많이 하지만 실상 살아가는 동안 정말 마음을 비우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아마 그런 상황이라면 대개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포기한 경우가 아닐까.. 이미 포기한 상태라면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아도 본전이니 마음을 비우기가 쉽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무엇인가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마음을 비우기란 쉽지가 않다. 이렇게 마음은 소유욕, 욕심과 밀접하다.

손에 쥔 것을 놓지 않고서는 다른 것을 잡을 수 없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두 손 가득히 무언가를 잡고 있으면서 또 다른 것을 잡으려 하는 것은 다리 위에서 자신의 그림자가 물고 있는 고기를 얻기 위해 짖어버리는 개의 행동과 다를 바 없다. 이렇게 우리네 삶은 무엇인가에 대한 소유욕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그리고 때로는 위의 개의 우화처럼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고 또 얻으려 하는 경우도 종종 보인다. 

마음을 비워야 얻는다는 것. 손에 쥔 것을 놓아야 얻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것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무한한 공포를 느끼고 살아간다. 약하디 약한 것이 인간이다..권력을 원하고 재력을 원하고 사랑을 원하고.. 세상의 어떤 척도가 되는 이러한 것들이 사실은 무엇인가 없음에 대한 고통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많은 철학자들이 익히 이야기한 것처럼.. 분리에 대한 불안. 참 적당한 해석이다.

결국..마음이 공허한 것을 채우기 위해 우리는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묻게 된다. 무엇인가를 얻고 추구한다는 것이 자신의 마음이 비어있기 때문에 그 공간을 채워야 한다는 집착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시간이 갈 수록 그 채움은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것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마음이 허전하면 허전할 수록 물질적인 것들에 대한 집착이 커 가고 사람에 대한 집착이 커 간다. 그리고 그 집착은 욕심이 되고 때로는 폭력이 된다. 무엇인가 없다는 것은 이렇게 인간을 힘에 의존하게 만든다. 정치권력을 얻기 위해 발버둥치고 돈을 얻기 위해 발버둥치고 성적 만족을 얻기 위해 발버둥치고.. 결국 공허함에서 비롯된다.

권력을 추구하는 핑계로 국민과 민족을 내세우고 돈을 추구하는 핑계로 행복과 생활을 내세우고 성욕을 채우기 위한 핑계로 사랑을 내세우면서 정작 추구해야 할 본질들은 저 멀리로 던져 버린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애초에 자신이 무엇을 원했는지조차 잊게 된다. 수단이 목적이 된다.

허나 정작 그것들을 얻기 위해서는 비워야 하는데... 지금 가지고 있는 것조차 느끼지도 못하면서 다른 것들을 향해 주먹 쥔 손을 뻗는 그런 삶을 우리네 인간들은 이제껏 반복해오고 있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모든 것을 얻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자세다. 그럼에도 먼지 한 톨조차 놓지 않으려는 것이 나약한 인간의 본성이다.



친구들 중에는 이제 독신은 남아 있지 않고 후배 녀석들도 거의 다 결혼을 해서 이제 솔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내가 대표적인 인물이 되어 버렸다. 새로 만나는 사람들은 내가 아직도 미혼이라면 일단 놀라고 결혼에 별 생각이 없다는 말을 들으면 또 한번 놀란다. 이젠 그것도 적응이 되어서 그려려니 하지만 내가 왜 결혼을 안하는지 똑같은 설명을 해야 하는 것이 조금 번거로울 뿐이다.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면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낫다고들 하고 나도 그말에는 찬성을 하지만 결혼에 있어서는 글쎄..라는 생각이 좀 더 강하다. 후회한다고 돌이킬 수 없는 일은 어쩌면 안 하는 것만 못하지 않을까? 그것은 결혼이라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 걸린 문제기 때문이다. 몸에 생긴 상처는 치유가 비교적 쉽지만 마음에 생긴 상처는 치유가 어렵다.

어쩌면 내가 본의아니게 독신이 된 것도 아직 내게 남아있는 상처때문이겠지만...

지금은 굳이 그 상처를 낫게 하려는 생각도 없다. 오히려 이렇게 아직도 내 마음 속 어딘가에 상처가 남아 있는 것이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내가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이야기를 했을 때 꽤나 서운해하셨던 부모님들에 대한 죄송함이지만..그나마 동생 녀석이 올해 장가를 가니 한 시름을 더시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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