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이 길어져서 새로 글 창을 하나 열어 14구간 산너미길을 이어 적어 본다. 산너미길은 북한산둘레길의 난이도 '상'구간 중의 하나로 둘레길에서 난이도가 '상'인 구간은 모두 3개(5구간 명상길, 14구간 산너미길, 16구간 보루길)인데 그중의 하나인 길이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구간은 산을 넘어 가는 길이다. 그리고 그 산은 다름 아닌 사패산이다. 그리고 전체 난이도 '상'인 구간 중에 이곳 14구간이 가장 힘든 곳으로 알려져 있다.

국립공원의 안내상으로 이 구간은 2.3Km, 소요시간은 1시간 10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실제로 걸은 거리와 측정상의 거리가 다를 경우는 오르막과 내리막 특히 계단이 많은 곳으로 생각하면 된다. 이 구간은 전체적으로 고도가 제법 올라가고 계단이 높고 길게 이어져 있는 편이다. 그리고 겨울인데다가 눈까지 쌓여있는 지역들이 있음을 감안하면 실제 이동 속도는 더 오래 걸릴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좋다.


산너미길을 알리는 입구다. 입구에 다다르기 전에 화장실이 있으니 미리 이용하도록 하자. 그리고 오늘 이후로 이곳을 찾는 분들이라면 가능하다면 아이젠을 준비하기를 권한다. 눈이 내린 날이라면 아이젠은 필수인데 이 구간은 꽤 오래 오르막이 있고 능선 구간도 있는데다가 내리막 계단이 제법 길어서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난 고무신 신고도 대청봉에 오른다'고 하실 분도 있겠지만 막을 수 있는 위험이 있다면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약간 뒤에서 찍은 사진인데 이정표에 사패산이 보인다. 역시 등산의 유혹에 빠지게 되는 지점이다. 오늘은 겨울산행 준비도 다 했겠다. 무엇보다 먹을 것도 있다. 1.9km... 가볼만하다는 생각이 여전히 괴롭혔지만 둘레길 완주 후로 미뤄두기로 한다. 망설이는 나를 흘깃 쳐다보고 아저씨 한 분이 스틱을 한 개만 들고 유유히 걸어 올라간다. 배낭도 없이 오리털 파카를 입고... 괜찮았을까 모르겠다. 아무튼 이번 구간만 해도 사패산의 6부 능선까지는 오를 수 있으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기로 한다.


들어서자마자 계단이다. 이전 구간의 평온함과 약간의 지루함은 이 구간에서 모두 날려버릴 수 있다. 특히 겨울이라면 제법 긴장감마저 느낄 수 있는 구간이다. 역시 이 구간도 제법 한산했는데 정상에서 한 부부를 만난 것을 빼고는 사람의 흔적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좌우로 겨울색 옷을 입은 나무들이 벗이 되어 천천히 길을 걸어본다.


왼편으로 계곡이 보이고 오른편으로는 길이 보인다. 난 이런 길을 제법 좋아하는데 얼지 않은 물 흐르는 소리가 적막함을 깨고 들려오는 느낌이 참 좋다. 겨울이 모든 것이 숨죽이고 있지 않음을 흐르는 물은 이렇게 보여준다. 여기까지 사진을 보신 분들 중에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셨다면 눈치가 빠른 분이다. 스틱을 들고 카메라를 꺼냈다 뺐다를 반복하다가 이미지 비율 버튼이 4:3으로 바뀐 것을 알아채지 못했던 것. 이하 사진들은 전부 4:3 비율이다..


물이 얼음이 되지만 그 얼음을 녹이는 것이 또 물이다. 사실 물과 얼음은 같은 것인데 눈에 보이는 것은 이렇게 다르다. 살아가면서 실상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을 우리들은 얼마나 다르다고 생각하고 살고 있는지 생각해보게 해 준다. 결국은 물이고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이 물이다. 上善若水[상선약수]란 말을 또 한번 되새기게 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렇게 혼자 걸으면 생각이 많아진다. 그리고 이게 혼자 걷는 길의 장점이기도 하다.


아직까지는 길가에 눈도 없고 드문드문 햇살이 들어 그리 어렵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 길이 이어진다. 황량함이 느껴지지만 그 속에서 생명의 끈을 이어가는 나무들이 꿋꿋이 서 있다. 이전 구간에 비해 확실히 숨이 차 오르는 지역들이 많아지는데 걷는 페이스를 적당하게 잘 조절해야 한다. 이 구간부터 시작했다면 그래도 괜찮지만 이전 구간에서 이어서 오는 경우라면 체력이 많이 소모된 상태기 때문이다.


'울띄교'라고 적힌 것이 맞나 한참 들여다본다. 이건 무슨 의미일까 주변을 둘러보지만 설명이 없어 아쉬웠다. 스틱을 들고 다닐 때는 이런 나무 다리 구간에서는 가능하면 바닥을 찍지 않도록 하자. 나무가 패일 수도 있고 스틱의 촉부분이 나무 틈 사이에 끼는 경우도 있기 때문인데 살짝 들고 이동하면 된다. 고무다리를 씌운 분이라면 상관없겠지만 수시로 고무다리를 씌웠다 뺐다하는 것도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사실은 내가 게으른 것이다-


가지런히 놓인 돌로 만든 계단이 정겹다. 한발한발 올라가면서 산이 이렇게 부르는구나 생각을 한다. 그러고보니 왜 갑자기 산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나 스스로도 궁금해진다. 군대에서 그렇게 지겹도록 다니던 산이라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생각까지 했던 곳인데...아마 차가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도 해봤지만 다시 차를 들여도 오히려 산에 가려고 더 많이 이용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번에 만나게 되는 다리는 갓바위교. 이것은 바위 이름에서 빌려왔겠구나 추측을 해본다. 산너미길이라는 이름에 참 어울리게 이 구간은 산 넘고 다리 건너는 일이 많다. 길이란 결국은 혼자서 걸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가까운 가족도 결국은 곁을 떠나게 되고 자신의 마지막 순간 역시 고독하게 홀로 가는 것이니.. 가끔은 홀로 걷는 일에 익숙해질 필요도 있지 않을까..물론 누군가 곁에서 토닥여주는 것이 그래도 더 좋긴 하다.


바로 만나게 되는 사패교. 사패산 안으로 들어와 있으니 이런 이름의 다리도 하나 있어야지 싶다. 사패산은 어느 소개에 따르면 북한산 귀신들도 잘 모르는 숨겨진 산이고 가장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라 한다. 양주와 의정부에 걸쳐 있는 산이고 무엇보다 이곳이 천연의 생태를 유지하게 된 계기는 얼마 전까지 군사보호구역으로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었기 때문이다. 대략 등반 시간은 4시간 정도 소요된다는데 꼭 들러볼 곳으로 기억해둔다.


사람의 손이 많이 닿지는 않았지만 길은 그래도 곧게 나 있다. 길이라는 단어는 참 내게 정겨운 단어다. 사진을 시작하고서부터 길 사진이 제법 많은 편인데 길 자체에 대한 생각이 그만큼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왠지 길이라는 것이 내가 살아가는 모양새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좋아하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앞으로도 길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 이어질 것이고...


고개를 살짝 넘을 무렵 슬슬 지난 폭설의 자취가 나를 마주 한다. 꽤 오랜 내리막인데 그나마 사람들도 거의 다니지 않아 그대로 얼어 있다. 여기서부터는 아이젠을 끼고 가는 것이 좋다. 세상 좋다는 등산화도 아이젠만 못하기 때문인데 여기서부터 이 구간의 정상 전망대까지는 아이젠을 그대로 장착하고 걷기를 권한다. 처음 몇 발을 괜찮으려니 생각하고 가다가 스틱으로 간신히 버텼기 때문이다.


한참을 걷다보면 능선길이다. 이제 좌우로 전망이 시원하게 뚫리고 바람이 본격적으로 불어오기 시작한다. 확실히 겨울 산행이 신경쓸 것이 많은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옷도 부지런히 갈아입고 장갑도 갈아 끼워주고 귀마개도 해 보고 하다보니 배낭을 몇 번을 들었다놨다를 반복해야 한다. 그것이 귀찮다고 그냥 버티다가는 산의 무서움을 온몸으로 깨닫게 된다. 겨울 산행을 가는 이들의 배낭이 그렇게 커 보이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전망대에 오르면 멀리 의정부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의정부까지 왔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하기도 하다. 북한산이라는 산자락이 얼마나 넓게 뻗어 있는지 새삼 느끼게 되는데 주변을 죽 둘러봐도 능선들이 죽죽 이어져 있어 어디가 끝인지 모를 정도다. 주변에...특히 서울을 끼고 이렇게 광활한 녹지대가 살아 있구나라는 것을 이제사 알게 되었으니 앞으로 갈 곳이 정말 많다고 새삼 생각이 든다.

여기 전망대에서 처음으로 한 부부를 만났다. 등산장비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 지역 주민이 아니셨나 싶은데 먼저 반갑게 인사를 건네 주신다. 부부가 같이 산에 다닐 수 있다는 것은 꽤나 행복한 일이다. 다시 말하면 한평생을 같이 살아가는 두 사람이 비슷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전혀 다른 삶의 길을 살아오다 어느 갈림길에서 만나 이어지는 길을 함께 걷는 것. 그 앞에 어떤 고비가 있건 행복이 있건 온전히 두 사람이 함께 마주하는 것. 그것이 가능한 것이 부부이고 가능해야 부부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내리막 계단은 경사가 급하고 제법 길게 이어져 있다. 다행히 아직 이곳의 눈은 모두 녹아 아이젠을 사용하지 않고도 걸을 수 있지만 내리막 구간은 무엇보다 무릎에 가는 충격이 상당하기 때문에 스틱을 잘 활용해야 한다. 가뜩이나 부실한 체력인지라 스틱 쓰랴 사진 찍으랴 정신이 없지만 시원하게 펼쳐져 있는 풍광을 보는 것만으로도 오늘 이곳에 오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이곳의 진지는 제법 모양새를 잘 갖추고 있다. 보아하니 60mm 박격포 진지가 아닐까 싶은데..사실 나는 일반 보병 부대에 근무한 적이 없어서 60mm박격포 운용을 본 적이 없어서 추측만 해볼 뿐이다. 처음엔 60미터인가 생각을 했지만 길을 지나나보면 이런 진지가 몇 개 더 보이는데 60M-1, 60M-2 이런 식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니 포 진지가 맞는 것도 같다. 그러고보니 내가 조작해본 박격포는 81mm가 전부였구나.


몇 번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걸으며 이 생각 저 생각하다보면 이 구간도 슬슬 종착점에 다다라간다는 것이 느껴진다. 오랜만의 외출치고는 제법 오래 걸은 셈이고 동계 등산 장비들을 처음 테스트 하는 산행인지라 이런저런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덕분에 본격적인 겨울 산행 준비를 좀 더 잘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나름 괜찮은 산행이었다. 아마 이 다음의 걸음은 북한산둘레길이 아니라 인왕산이 될 것 같다. 서울의 우백호라 불리는 산이다.


조금 더 이동하면 이 문과 마주 하게 되는데 안골길의 시작은 아니고 산너미길의 끝지점이다. 안골길은 아래로 조금 더 내려가면 진입로가 보인다. 여기서부터는 꽤 오랜 시간을 걸어야 한다. 대충 20분이 넘는 시간을 걸어야 버스 정류장에 이를 수 있으니 이곳에서 정비를 하고 이동하면 되겠다. 길은 그대로 아스팔트길로 이어지고 좌우로 많이 식당들이 있으니 쉬어 가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고 아니면 의정부쪽으로 이동해도 좋겠다.


문을 뒤에서 본 모습. 이 다리는 안골교란다. 조금 이름을 대충 지은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지역을 대표하는 이름이니 이해하고 넘어갈 일이다. 13구간에 이어 14구간까지 마치고 나니 3시간 20분 정도 소요되었다. 확실히 겨울이라 장비 갈아 입는 시간이 많이 걸렸고 눈길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더 걸린 까닭이다. 하지만 산행에 있어 시간처럼 버려두어야 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일상의 시간을 잊기 위해 찾는 곳이 산인데 그곳에서 또 시간에 연연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글 위에 지도를 붙여 두는 것은 이후 이길을 가게 될 분들을 위한 작은 안내자 역할을 하기 위함이지 무슨 기록을 세우기 위함은 아니다.


길을 따라 조금 더 내려가면 이렇게 안골길의 입구를 만날 수 있다. 왼편에 보이는 보루길은 무엇일까 궁금한데 다음 걷기에서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마 안골길 안에서 의정부에 있는 직동공원으로 이어지는 다른 길과 만날 수 있다는 의미인 것같다. 자전거 출입금지라고 씌어 있는 것으로 봐서는 길이 제법 평탄하지 않을까?


그런데 어쩐 일인지 입구 우측의 이정표가 무너져 있다. 국립공원측에서 모르고 있나 싶었지만 플래카드까지 걸어둔 것을 보니 알고 있는 것은 분명한데 수리를 미뤄둔 것이다. 보기에도 영 좋지가 않고 행여 위험할까 싶어 국립공원관리공단에 문의를 넣었더니 다음날 보수가 완료되었다고 사진까지 올려주었다. 

이후로 이곳을 가시는 분들은 똑바로 바로 서 있는 이정표를 보실 수 있겠다. 이런 부분은 정말 칭찬할만한 일인데 사실 나는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도 다음날 바로 수리를 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생각해보면 국립공원을 이용하다가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공단에 알려 주는 것이 좋겠다. 확실히 저렇게 보니 좋아보이지 않는가..

이렇게 북한산둘레길을 14구간을 마무리했다. 21개 구간이 이제 7구간이 남아있다. 나머지 구간들은 서울의 북쪽에서 동쪽으로 돌아가는 길이고 마지막 구간인 우이령길은 북한산을 관통하는 길이다. 우이령길은 아마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관통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생각을 하는데 사전 예약을 해야하지만 평일이라면 1,000명이 모일 것 같지는 않으니 선착순 입장도 가능하지 싶다.

사회에 나오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한 취미는 사진이었고 그 다음은 자동차였다. 그리고 이제는 등산이다. 아마 이 3가지만 평생 가지고 가기에도 어느 하나 제대로 소화해내기 어렵지 않을까 싶지만 그래도 참 좋은 취미를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물론 수 없이 맞는 시행착오로 인한 경제적인 지출은 상당하지만 돈으로 살 수 있는 경험이 이런 것이라면 기꺼이 지불할 용의가 있다.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만큼 많은 일들이 마무리되었던 한해다. 결국 인생은 제로섬게임이라지만 그래도 얻는 순간 잃는 순간에 각각 느끼는 감정의 깊이는 다르다고 생각된다. 내게 12월은 미련은 사라지고 희망은 남은 그런 달로 기억될 것같다. 이제 열흘도 채 안 남은 2012년... 올해의 마지막 산행 준비를 해 본다. 아마도 그리 멀리 가지는 않겠지 싶다. 그리고 올 겨울 안에 태백산에 다시 오를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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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오늘 길을 나선 것은 북한산둘레길 기념품을 받으러 수유쪽에 있는 둘레길지원센터에 가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보니 지난 19일부터 내부 정비에 들어가면서 쉬고 있더군요. (제가 늘 이럽니다) 이달 말까지는 계속 정비라하는데 미리 전화라도 해볼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처럼 시간내서 멀리 갔는데 그냥 돌아가기는 또 애매해 북한산에 올라가볼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준비를 뭔가 해간 것이 아니고 몸상태가 그리 좋지는 않아  그나마 쉬운 코스는 어디일까 북한산 홈페이지를 보니 바로 제가 있는 지점에서 대동문까지 가는 코스가 있더군요. 난이도는 '하'라니 가볼만하다 싶었습니다. 


위의 사진에서 S로 되어 있는 곳이 백련공원지킴터로 전체 이동 코스는 '백련공원지킴터 - 백련사 - 진달래능선 - 대동문'에 이르는 편도 2.7Km구간입니다. 정식 코스로는 6번째 코스로 이름이 붙여져 있는데 편도 1시간 10분이 걸린다 하니 왕복 2시간 정도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위의 지도를 보시면 올라간 길로 내려온 것이 아니라 다른 길로 내려온 것을 보실 수 있으실텐데 그 사정은 아래에 나옵니다. 아무튼 출발지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지하철 4호선 수유역에 내린 다음 1번 출구로 나가 마을버스 1번을 타고 백련사까지 가시면 됩니다.


오늘은 날이 무척 흐려서 전체적으로 사진이 어둡게 나오더군요. 이 코스의 시작은 이렇게 완만한 도로에서부터입니다. 둘레길을 여러 번 다녔지만 마음 먹고 북한산을 올라가기는 제법 오랜만이라 조금 긴장도 되더군요. 장비는 특별한 것은 없고 집티 한 장입고 혹시나 해서 목장갑 비슷한 거 하나 가져갔는데 이 장갑이 오늘 제대로 역할을 했습니다.


대동문까지는 2.7Km라고 알려줍니다. 아직 초입이어서 운동기구도 있고 산에 오른다는 느낌보다는 이전의 둘레길 같은 느낌이 더 나더군요. 날이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것 같이 흐렸지만 하산할 때까지 눈은 내리지 않아 조금 아쉽기도 했습니다. 북한산둘레길하고 어느 정도 구간을 공유하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이정표에도 둘레길 정보가 함께 나와 있네요.


슬슬 진달래능선에 진입합니다. 이름이 꽤 귀여운 맛이 있습니다. 실제로 이쪽 코스는 그렇게 어려운 지점도 없어서 천천히 걸으면 산책하는 느낌으로 올라갈 수 있는 그런 구간이 대부분입니다. 바람도 불지 않아 제법 땀이 많이 났는데 집티 한 장만 입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오르내리는 분들의 복장을 유심히 봤는데 고어텍스 자켓을 입은 분들은 덥지 않을까 싶더군요. 실제로 저랑 비슷하게 같이 가던 젊은 분 한 분은 정말 땀을 육수처럼 흘리더군요. '겉옷 벗으세요'라는 말이 나올 뻔 했지만 왠지 오지랖 같아서 입안에 담아 두었습니다. 


대충 오르막길은 이런 모양새를 하고 있습니다. 북한산의 많은 코스들이 나름대로 특색이 있겠지만 이 코스는 잔돌과 약간 큰돌들이 섞여있는 형태랄까요. 간간히 큰 바위들도 나오지만 바위보다는 잔돌들이 더 많은 편입니다. 만약 이 코스로 올라가 그대로 내려온다면 보통 신는 일반적인 등산화로도 큰 무리는 없어 보입니다. 문제는 제가 내려온 구간이죠.


초겨울이지만 산의 푸름은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스산한 계절인 겨울을 잔뜩 입고 있는 그런 느낌이 더 들었는데 그 스산함 위로 눈이 쌓이면 그래도 조금은 밝은 느낌이 들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이쯤오면 몸에 열이 펄펄 납니다. 몸에는 열이 나고 얼굴이나 손은 찬 묘한 상태가 되는데 이럴 때 체온 관리를 잘 해야 합니다. 여름에는 잘 느끼지 못했던 기능성 의류의 성능을 체험하는 순간이기도 하지요.


멀리 만경대와 백운대 그리고 인수봉이 보입니다. 이 세 봉우리를 합해서 삼각산이라는 이름이 나온 것이지요. 북한산이라는 이름 대신 원래의 이름을 되찾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기까지 오르는 분들도 제법 많을텐데 욕심은 나지만 오늘의 목표는 대동문이니 얌전하게 거기까지만 가기로 합니다. 사실 저렇게 보니 저기까지 오른다는게 만만한 일은 아니구나 싶더군요. 예전에는 어떻게 잘도 다녔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상상이 안 갈 일입니다. 


좌우로 문처럼 되어 있는 바위가 재미있습니다. 저곳을 지난 이들의 숫자가 얼마나 될까요. 문득 산에 다시 가게된 것이 참 다행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에 갈 수 있다는 것은 몸이 건강하다는 이야기이고 그래도 비교적 큰 돈 들이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취미니까요. 그렇긴해도 막상 정상을 향해 오르다보면 '내가 지금 무슨 고생을 사서 하나'라는 생각도 들곤 합니다. 그 푸념을 날려버리는 것은 정상에 올랐을 때의 성취감이겠죠.


거의 막바지에 접어들 무렵이 되면 인내력 테스트가 시작됩니다. 난이도가 '하'라더니 이게 뭐냐 싶습니다. 둘레길 열쇠고리 받으러 왔기 때문에 가방 안에 들어있는 것은 게토레이 한 병, 점심도 안 먹고 허기진 배를 붙잡고 올라가려니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드는 장소입니다. 그래도 꾸역꾸역 올라가면 됩니다. 벌써부터 내려가면 뭐 먹을까 생각을 하게 됩니다. 


대동문에 다다르기 전의 좁은 골목 같은 오르막인데 며칠 전 내린 비인지는 몰라도 계단이 얼음계단이 되어 있습니다.  엇. 아이젠도 없는데 어쩌나 싶었지만 그래도 얼지 않은 곳 유심히 찾아서 또 올라갑니다. 이제는 북한산에 올 때는 가방 빈 자리에 아이젠을 꼭 넣어서 와야할 시기인 것 같습니다. 다른 계절에는 잘 느끼지 못했는데 겨울에는 카메라도 제법 신경이 쓰입니다. 사진보다는 걷기 자체에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계절이지요.


대동문은 북한산성의 남쪽 성문입니다. 북한산성은 조선 숙종 37년 그러니까 1711년에 지어진 것으로 왜란과 호란 이후 한양 외곽을 방어하는 수단으로 쌓은 것이라 합니다. 그러고보면 당시 사람들은 참 체력도 좋았다 싶습니다. 이 꼭대기에 이런 성을 쌓고 또 성벽을 이어 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텐데요. 북한산성은 아울러 사적 162호기도 합니다. 유물 답사편에 나중에 정리를 해야할텐데 조금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왜 이리 높은 곳에...

이곳을 들러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성벽 둘레로 죽 돗자리가 깔려 있고 사람들이 옹기종기 앉아 밥을 먹고 있습니다. 꽤 재밌는 풍경이기도 한데 평일인 오늘도 어김없이 많은 분들이 진을 치고 앉아 있어 성벽을 사진에 담지는 못했네요.


안내 표지판을 보니 갈만한 곳들이 정말 많습니다. 이곳에 오면 욕심이 저절로 생기는 모양입니다. 적혀 있는 소요시간을 보면서 갈까말까 망설입니다. 하지만 무리하면 탈이 나는 법이고 사전에 정보를 알고 오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가 얼마나 크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까닭에 이만 하산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온 길을 그대로 돌아가면 이미 한 번 온 길이니 어렵지 않게 내려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제법 걸리는 길이지요. 그런데 아래쪽에 뭔가 다른 길이 보입니다. 길이도 훨씬 짧습니다. '저 길로 가면 금방 내려가는 거 아닐까?' 싶은데 희한하게 소요시간이 적혀있지 않습니다. 아주 단순하게 온 길 생각만 하고 30분이면 가겠는데 라고 어림짐작을 합니다. 문제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오늘의 가장 큰 교훈은 '모르는 길은 가지 마라'입니다. 


처음 진입을 하니 계단만 죽 있습니다. 다만 경사가 좀 가파른 편인데 이런 모양새라면 갈만하지 않을까 싶어 계속 내려가봅니다. 올라올 때와 가장 큰 차이점은 진달래능선을 탈 때는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꽤 많았지만 이곳은 딱 두 명 만났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난이도가 제법 되는 길이기 때문이지요.


올라올 때 보기 힘들었던 로프가 보입니다. 이 코스는 거의가 암벽 구간입니다. 내리막으로 택한다면 발에 가해지는 충격이 일단 제법 큰데 내리막에서는 아무래도 속도가 빠르다보니 충격이 좀 더 큰 편이니 주의가 필요합니다. 경사도도 제법 가파르고 전체적으로 편하게 갈 수 있는 구간은 아닙니다.


대략 이런 길이 줄줄이 이어지는데 비가 온 뒤나 눈이 내린 날에는 꽤 조심하지 않으면 다치기 쉬운 길이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별 생각없이 챙겨넣었던 장갑이 제 역할을 한 곳이기도 합니다. 전체적인 거리는 짧지만 이런 구간이 계속되기 때문에 소요시간은 진달래능선 쪽과 별 차이가 없으니 바위산길에 대해 특별한 애정이 없다면 이길을 굳이 고를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빨리 내려가서 늦은 점심을 먹어볼까 생각하며 꼼수를 부린다고 한 것이 화를 불렀달까요. 오르막 후에 쉬지 않고 내려온 탓에 다리 힘이 별로 많지 않아서 한발한발을 신경써야 하는 이런 구간들은 꽤 조심스럽더군요. 이쪽 코스를 생각하신다면 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에 내려오시기 바랍니다. 하산 길은 이런 길들을 계속 내려오느라 사진이 거의 없습니다. 카메라도 가방에 넣어두고 걷는 데만 신경을 쓰는 것이 낫습니다. 중간쯤에 이르면 계곡 물길을 가로 질러 가는 구간이 있는데 물구경한다고 이리저리 다니다가 오른발이 빠져서 또 고생을 했네요. 고어텍스가 제 기능을 발휘한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여기까지 오면 힘든 내리막은 없습니다. 대신 돌멩이로 만들어진 길이 종작첨까지 이어지는데 이게 생각보다 발에 부담이 많이 갑니다. 가능하면 돌을 밟지 말고 흙을 밟으며 이동하는 것이 피로를 줄이는 방법입니다. 종착점에는 마을버스 1번이 거의 상시 대기하고 있으니 그것을 타고 다시 수유역으로 이동하면 됩니다.

아무튼 열쇠고리 받으러 나선 길이 등산이 되었고 괜한 호기심에 고생을 좀 한 산행이 되었는데 역시나 모르는 길은 선뜻 가지 않는 것이 제일이고 조금 무겁더라도 가방 안에 이것저것 챙겨서 다니는 것이 좋다는 교훈을 얻었네요. 겨울 산행은 다른 계절과 달리 땀과의 싸움, 추위와 바람과의 싸움이 이어지기 때문에 체온의 유지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그에 어울리는 복장이 필요합니다. 

산은 늘 그 자리에 있네요. 저만 움직이면 언제고 만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습니다. 어찌보면 일방적인 관계일 수도 있지만 산은 그래도 싫다는 내색 한 번 안 합니다. 그저 그렇게 묵묵히 제가 찾아오기만을 기다릴 뿐이죠. 그래서 산에 가면 고개를 숙입니다. 고맙기 때문입니다.




올 1월 태백산행을 했었지요. 겨울 산행을 가기는 군대 이후로 처음이고 산행 자체에 대한 개념도 없던 시절이라(한여름에 청바지 입고 대청봉에 오를 정도의 상식 수준) 집에 있는 두꺼운 옷들 몇 가지 주섬주섬 끼어 입고 올라갔었습니다. 아마 지금 겨울 태백을 다시 가라고 하면 늘어난 지식(?)만큼 장비도 늘어나겠지요.

겨울산은 다른 계절과 달라 역시 보이는 것이 눈이고 하늘입니다. 흰색과 파란색이 절정을 이루는 그런 계절이 겨울이 아닌가 싶고 그래서 겨울이면 눈맞은 강아지처럼 이리저리 돌아다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올해 아니 이번 겨울에 겨울산행을 갈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일단 아이젠을 하나 장만하기는 했으니 어딘가 가긴 하겠지만 그게 태백산이 될지 아니면 이전의 둘레길의 연장일지는 단정짓기가 애매한 요즘입니다. 몸살로 며칠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보니 어딜 간다는게 막막해지기도 하는 탓도 있고 나름 외로움을 잘 타는지라 혼자 돌아다니는 것에 대한 묘한 거부감 비슷한 것이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그래도 가능하다면 태백은 한 번 더 가 보고 싶은 곳이네요. 새벽같이 일어나 서울을 출발하면 어찌어찌 당일 코스로 가능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사실 시간이 없어 어디를 가지 못 한다는 것은 핑계지요. 그만큼 절실하지 않다는 말일 뿐입니다. 뭔가 절실하면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겠지요. 이번 겨울에 얼마나 제 마음이 산으로 들로 향하는지 저도 지켜볼 일입니다.

개인적으로 사연도 많은 11월도 이제 종반으로 다가서고 있습니다. 올 한 해 어떻게 잘 들 보내고 계신지요? 


Nikon D300, AF-S DX NIKKOR 35mm f1.8G, HDR


가을이 뉘엿뉘엿 넘어가는 11월의 첫날 둘레길을 다시 찾았다. 오랜만이라고 반갑게 맞아주지는 않는 것 같지만 산은 언제나 그렇게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고보면 산처럼 한결같은 것도 많지는 않다. 자연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빠르게 변화하기에 이렇게 무뚝뚝하지만 늘 제자리에 버티고 서서 나를 반기는 산은 어쩌면 내게 하나의 큰 버팀목 같은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오늘 코스는 서울을 벗어나게 된다. 서울의 북서쪽 외곽을 지나 경기도 남부에 이르는 길인데 마무리되는 지점은 대충 송추, 장흥 부근이다. 송추라면 기억하시는 분들은 전투방위가 생각나실테고 장흥은 커피 한 잔 -행간을 읽으시는 분들은 다른 것을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정도가 생각나실까? 가을도 아니고 그렇다고 겨울도 아닌 11월의 첫째날은 아침에 집을 나설 때는 제법 차가운 바람이 걱정됐지만 막상 길을 걸을 때에는 비교적 두껍게 입지 않아도 걸을 만하다 싶을 정도였다.


북한산국립공원에서 안내하는 12구간 충의길의 거리는 3.7km로 대략 1시간 45분이 소요되며 난이도는 중급 수준이고 실제로 걷게 되면 4.2km정도에 시간은 1시간 20분 정도 소요된다. 이번 구간은 시작점이 지하철 구파발역에서 버스로 제법 멀리 와야 한다. 이번 구간과 다음 구간이 서울에서 출발하는 경로로는 마지막인데 구파발역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출발점으로 이동한 다음 북한산 등반로로 향하다보면 중간에 갈림길을 만나게 된다.


사람은 습관의 동물이라던가. 몇몇 구간을 혼자 걷지 않다가 불쑥 혼자 걷게 되니 뭔가 허전한 마음이 걷는 내내 가시질 않았다. 딱히 뭐라 설명하기는 애매한 그런 느낌이랄까. 입구로 가는 중간에 은행잎 위로 서리가 내린 것인지 밤사이 내린 비가 얼은 것인지 모를 얼음 알갱이들이 제법 보였다. 아직 그 색이 바래지 않은 은행잎과 물방울과 얼음조각들이 이번 걷기의 시작을 알려주는듯 했다.


오늘은 LX5만 들고 나갔는데 집에 두고 온 카메라가 자기 생각을 해달라는 것인지 색감이 니콘 비스무리하게 나왔다. 이번 구간은 말그대로 사방이 온통 낙엽으로 가득 차 있었다. 변화를 위해서는 무언가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자연의 단순한 진리를 어렵거나 복잡하게 생각할 것도 없이 그저 눈으로 보고 발로 밟아 느끼면 그만일 정도였다. 북한산에는 이미 단풍은 남아있지 않았다. 가장 화려한 시간이 지난 후에는 이렇게 회색빛의 세상이 오는데 단풍의 시기에 이곳을 왔다면 한 가지만 보고 다른 한 가지는 놓칠 수도 있었으니 차라리 오늘이 적당한 때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12구간 충의길은 다른 구간의 이름짓기법과는 조금 다른데 사실 이 구간에는 무언가 특징적인 것이 없다. 그래서였는지 국립공원측도 고민 끝에 '주변에 군부대가 많으니 충의길이라고 하자'라고 결심한 것처럼 보인다. 구간 자체는 중급 난이도라 하지만 실제로 걸어보면 하급 정도가 아닐까 싶은데 정말 걷기 편하고 인적도 아주 드문 편이니 데이트 하기에 꽤 어울리는(사람 나름이겠으나) 구간이다. 


길은 대부분 흙길이라 걷기에 편하고 낙엽들이 푹신푹신한 느낌도 더해주기 때문에 천천히 걸으며 저물어가는 가을을 배웅하기에 적당한 길이 아닌가 생각됐다. 지난 밤에 내린 비의 흔적들이 여전히 남아 있음에도 미끄럽지 않아 큰 어려움은 없었다. 구간을 마칠 때까지 딱 두 명과 마추쳤다. 북한산국립공원도 이 구간의 특징으로 인적이 드물다고 하고 있는데 꽤나 좋은 구간임에도 왜 사람들이 적은지는 알 길이 없다. 서울에서 이동하기에 멀다는 점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출렁다리'라고 불리는 다리인데 이런 다리가 2개인가 3개가 있다. 다리 위를 걸으면 위아래로 출렁거리는 느낌이 제법 강한데 평지로 나온 다음에도 몇걸음은 출렁거리는 느낌이 유지되는 점이 재밌다 다리 자체는 아주 튼실하게 만들어져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구간에 들어서기 전에 깜빡하고 음료수를 준비하지 않았다. 늘 들고 다니는 묘한 빗깔의 파워에이드가 오늘따라 그리웠다. 결국 종착점에 가서야 그 녀석을 만날 수 있었다.


그냥 편하게 걸으면 족했다. 이제까지 걸어온 어느 길보다 걷기가 편했다. 길도 널찍하고 크게 오르내리는 구간도 없기 때문에 주변의 바람소리와 신발 밑으로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걸으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낙엽은 영어로는 'dead leaves'라고도 하는데 그 표현에 비하면 물론 한자기는 하지만 우리말이 더 운치가 있어서 좋다. 그래도 길을 걷는 내내 뭔가 허전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든 사람은 몰라도 난 사람은 안다던가... 


이것은 버섯일까? 쓰러진 나무 위로 피어 오르는 또 다른 생명들이 묘한 부조화를 이루며 있었다. 하나의 생명이 사그라짐으로 인해 또 다른 생명이 살게 된다는 것은 한편 생각해보면 잔인해보이기도 하지만 조금 큰 틀에서 생각해보면 결국 그렇게 생명이라는 것이 이어지는 것인 셈이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순리일테니 오히려 새로운 생명을 반길 일이다. 산길을 나서 일반도로로 접어들었을 때 길가에 반듯하게 누운 채 식어있는 강아지 한 마리를 보았는데 이때의 감정이 그때까지 이어졌을지도 모르겠다.


온통 낙엽이다. 내년 봄을 맞이하기 위해 산은 가을부터 준비를 한다. 계절에 맞게 그저 흐르는 순리대로 받아들인다. 나무들이라 해서 싱싱한 나뭇잎을 떨구는게 내키겠냐만 그것이 주어진 순리라면 그저 묵묵히 받아들임을 늦가을의 이 산길은 내게 보여주고 있었다. 아마도 그 큰 흐름에 맞서는 것은 우리네 인간밖에 없지 않을까.


햇빛은 산의 구석구석을 비춘다. 자기가 선 자리에 볕이 들지 않는다 해도 나무들은 그저 기다릴 뿐 달리 말이 없다. 그리고 언젠가 싸늘한 바람을 뚫고 한 조각의 빛이 내려오면 그 빛에 온몸을 기대고 선다. 빛이 자기 자리에 들 때까지는 묵묵하게 스스로의 길을 갈 뿐이다. 그것이 자연이고 그것이 순리다. 그저 수동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능동적인 기다림이다.


흔히 미래에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꿈을 갖는다. 그리고 그꿈을 이루기 위해 여러가지로 노력을 한다. 미래란 현재의 다른 모습이다. 현재가 이제까지 내가 걸어온 결과이듯 말이다. 현재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과거의 내가 그런 생각과 결정을 했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것은 하나로 돌아와 제자리에 선다. 모든 것의 시작이자 과정이자 결과는 나로 인한다는 것. 미래에 어떤 모습의 나를 만나고 싶다면 현재의 나를 보면 된다. 구태여 점을 볼 것도 막연함에 두려워할 것도 없도 없다. 지금의 모습이 미래의 모습이니 말이다.


이제까지 둘레길을 걷다가 이런 표지판은 처음 만났는데 생태계 보호를 위해 사람들이 오고가는 것을 막아둔 것이다. 실제로 나무로 울타리가 쳐져 있어 더 이상 이길을 따라 위로 가지 못 하게 하고 있다. 우리는 쉽게 나뭇가지 하나를 꺾을 수 있지만 나무가 그렇게 자라는데 걸리는 시간은 십 수년에 이를 수도 있다. 무언가를 파괴하는 것은 순간이지만 창조하는 것은 기다림이 필요하다. 사람도 모양이 갖추어져 나오는데 10달이나 걸리지 않는가.


이 구간은 대체로 좌우가 막혀 있는 편인데 가끔 이렇게 뻥 뚫린 여백을 만나게 되면 절로 마음이 시원해진다. 길을 걷다보면 간간히 총성이 들려오는데 근처 군부대에서 훈련을 하는 경우다. 총소리를 듣기도 참 오랜만이다. 소대장 시절 연말에 그동안 쓰지 않은 총알을 모두 소모해야 한다며 분대장 몇 데리고 나가 연발로 원없이 총을 쏴야했던 날이 문득 떠올랐다. 사실 총소리는 굉장히 큰편이다.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감당하기 쉬운 수준은 아니다. 전쟁 중에 총소리, 포소리 때문에 공황이 생긴다는 말이 이해가 갈 정도로 크다.


조금 더 내려가면 일반 도로(39번 도로)와 만나게 되는데 어지간해서는 여기까지 걷고 이 구간은 종료하는 편이 낫다. 여기서부터 포장된 길을 정말 하염없이 걸어야 한다. 혹 산길에서 낭만적인 데이트라도 했다면 바로 차를 타기를 권한다. 이제까지 만들어둔 낭만적인 분위기가 완전히 깨질 수 있으니 말이다. 특히나 계절이 극단적인 여름이나 겨울에는 몸에 무리가 갈 수도 있으니 주의를 요한다.


좌우로 보이는 것은 멀리 보이는 산들과 군부대가 전부인 길이다. 차들도 그리 많이 다니지는 않아서 조금 휑하다 싶을 정도의 길인데 이제까지 나무들이 가려준 덕분에 맞지 않았던 늦가을 바람이 제법 얼굴을 때리고 지나갔다. 이 포장도로에 진입하면 경기도에 들어선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처음 시작한 지점이 서울에서도 제법 동쪽이었는데 북한산 자락이 참 넓게 그리고 멀리 뻗어있구나 싶다. 


조금 더 걸으면 예약제로 운영되는 둘레길의 마지막 구간인 우이령길로 갈 수 있는 갈림길을 만날 수 있다. 우이령길을 가는 것은 역시나 내년이나 되어야 가능하지 싶다. 이제 12구간을 마쳤으니 올해가 두달 남은 지금으로서는 굳이 무리할 이유도 없으니 말이다. 산자락에는 늘 뭔가 수상해보이는 모텔들이 있는데 소문으로 들리는 그런 이야기가 실제로 있긴 한가 보다. 그러나 그런 일들이 꼭 산이라 해서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상황이기에 두드러질 뿐이다. 


이 하염없이 길기만한 길은 1km가 넘게 이어진다. 사실 이때만 해도 어느 정도 걸으면 다음 구간 안내가 나오겠지 싶어 거기까지만 가자는 생각이었다. 다음 구간은 거리가 5km가 넘기 때문에 오늘 이어서 가기는 어차피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생각은 잠시 후에 바뀌게 된다. 아무튼 발바닥이 조금 피곤해지는 길이기는 하지만 천천히 걷는다 생각하면 직선으로 난 길이기 때문에 죽 걸어갈 수는 있다. 사방에 바람막이가 없으니 옷깃은 단단히 여밀 필요가 있다.


이번 구간을 마쳐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이 표지판을 만나고나서다. 가는 방향과 수평으로 있기 때문에 어쩌면 못 보고 지나칠 수도 있는데 그런 점을 생각했는지 제법 크다. 표지판의 의미는 12구간과 13구간은 달리 분기점이 없다는 말이다. 이 지점을 시작으로 13구간이라는 말인데 앞을 보니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같은 모양의 직선 도로가 죽 이어져 있다. 더 이상 걷기는 무리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여기서 조금 더 가면 건널목이 나오고 길을 건너 34번이나 704번을 타면 구파발로 돌아갈 수 있다.

전체적으로 12구간 충의길은 뚜렷한 특징은 없는 그러나 편하게 산책하듯이 걸을 수 있는 그런 길이었다. 낙엽이 푹신한 길을 걸으며 이런저런 생각도 해 보고 제법 차가워진 바람을 느끼며 또 하나의 계절이 오고가는구나라는 상념에 젖어볼 수고 있었다. 서울에서 경기도로 이어지는 점도 이제까지 제법 많이 걸어왔구나 라는 생각을 들게 했는데 21개 중에 이제 12개가 마무리되었으니 많으면 9번의 걸음만 하면 하나의 추억의 책이 완성된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조금 멀리 남겨둘까라는 생각도 해 보는데 크게 시간이나 구간에 구애받지 않을 생각이니 내년 초쯤에는 마무리가 되지 싶다.

사전에 일정이 있던 것도 아니고 갑작스레 걷게됐는데 한 가지 생각을 결정을 짓고자 함이었다. 길이 마무리될 때까지 대충 결심을 했는데 걷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생각을 바꾸었다. 무엇인가 스스로 단정을 짓고 그것을 옳다고 자기최면을 거는 것처럼 위험한 일이 없다.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하고 무엇보다 조율을 해나갈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일방적으로 내린 결정은 당시에는 그것이 옳다고 느낄지는 몰라도 멀리 보면 정말 소중한 것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산의 어느 이름모를 꽃처럼 주어진 자리에 충실하며 순리를 기다려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니 말이다.


Panasonic LX-5


설악산 대청봉을 오르는 코스는 제법 많은데 내가 고른 아니 내게 주어진 길은 오색약수터를 시작으로 하는 가장 쉽다는 코스였다. 설악산 대청봉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높고 험한 산이라는 사전 지식은 당연히 없었고 사진을 딱히 찍을 의도도 없었던 지라 비상용으로 들고간 2G휴대폰과 20년은 됐음직한 똑딱이 디지털카메라가 전부였다.


등산에 대해 지식이 전무하던 시절이어서 이날 내 복장은 산 좀 타는 분들이라면 황당하다 싶을 정도였는데 청바지에 면티(그것도 카라가 있는 남방 안에 면티를 받쳐 입었다!) 하나 딸랑 입고 올라갔었다. 그것도 8월에 말이다. 오르내리는 와중에 마주쳤던 사람들이 왜 나를 유심히 봤는지 그때는 전혀 알지 못했었다.

아무튼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내 배낭에는 파워에이드 1.5리터 짜리 한 병과 김밥 한 줄 그리고 초콜릿 서너 개가 전부였는데 나중에 지인들에게 들려주니 살아돌아온게 신기하다는 반응이었다. 아무튼 깊은 산이라 그런지 동네 다람쥐들도 딱히 사람 경계는 안 하는 모양새..


처음에는 '설악산이다~' 라는 기쁜 마음에 정말 아무 생각없이 씩씩하게 돌격 앞으로를 했는데.. 시간이 갈 수록 정신이 몽롱해지고 게다가 날씨는 비가 왔다가 바람이 불었다가 맑았다가.. 도통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무슨 계단이 그리 많은지 살다살다 그렇게 많은 계단은 처음 봤다. 보통 오색약수를 기점으로 대청봉을 찍고 내려오는 시간은 9시간 정도를 잡는다고 한다. 거리상으로는 5km정도인데 고도차가 워낙 커서 만만하게 볼 코스는 아니다.. 물론 나는 이런 것들을 내려온 후에야 알았다.


당시 정상에는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듯한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는데 정상에 올라와 있는 사람도 단 두 명뿐이었다. 정말 한 치 앞도 보기 힘들고 바람때문에 서 있을 수도 없었는데 옷은 이미 폭싹 젖은 상태고 그래도 인증샷을 날려야 한다는 집념에 정말 간신히 담은 사진 한 장. 

문제는 내려가는 길이었다. 올라가는 것은 어찌어찌했는데 이미 다리는 힘이 다 풀렸고 솔직한 말로 '이대로 죽는구나' 싶을 정도의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무엇보다 계단의 숫자와 경사가 내려갈 때는 훨씬 강하게 느껴졌다. 몇 번을 넘어질 뻔하기를 반복한 끝에 하산은 성공. 대충 전체 등반 시간은 7시간 정도였다. 

등반이라하기도 뭐한 것이 시내 어딘가에 약속이 있어 나가는 복장으로 비바람치는 대청봉을 올라갔다왔으니 무식하면 용감한 것은 둘째치고 인간이란 그렇게 약한 것만도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다시 그 복장으로 어디든 산에 올라가라면 이제는 고개부터 저을 테지만 말이다. 이후 좋다는 등산장비들을 하나 둘 구입도 해봤지만 아직 그 장비들을 쓸만한 곳은 가 보지 못 했다. 


무식하면 용감했던 그날의 복장. 이 정도 복장으로도 비바람 몰아치는 대청봉을 오를 수는 있다. 그러나 자칫 생사가 엇갈리는 광경과 마주칠 수도 있으므로 기본적인 등산 장비는 반드시 갖추기를 권한다. 무엇보다 청바지 입고 등산하려는 생각은 절대 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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