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성곽길의 두 번째 코스는 낙산길을 골랐다. 낙산길은 도심 한가운데를 지나는 길로 이전에 걸었던 북악산길과는 꽤 다른 풍경을 보이는 길이다. 낙산구간은 전체적으로 보면 장충체육관에서 혜화문에 이르는 제법 먼 길인데 이번에는 혜화문에서 흥인지문까지로 경로를 잡아 보았다. 낙산이라는 이름은 산의 이름이 낙타의 등처럼 볼록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걷는 중에는 사실 낙타의 등 위를 걷고 있는지 알기는 어려웠다. 멀리서 조망해보기도 애매해서 결국 낙타 모양은 보지 못 한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낙산은 풍수지리상 서울의 주산인 북악산의 좌청룡에 해당한다고 한다. 우청룡은 인왕산인데 인왕산이 제법 산의 모양을 하고 있는 것에 비해 낙산은 주거지와 공원 등으로 둘러 싸여 있어서 산의 모습을 찾기는 어려웠다. 


길의 시작은 북악산길과 같은 한성대입구 역이다. 4번 출구로 나가 조금 올라가면 서울성곽길을 안내하는 표지를 만날 수 있다. 낙산길의 전체적인 아쉬움 중의 하나는 이정표가 제대로 갖추어 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특히 낙산공원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이정표는 거의 없다고 보는 편이 낫다. 스마트폰 지도를 켜고 경로를 찾아야 했으니 말이다. 사진 멀리 혜화문이 보인다.


약간 더 올라가면 왼쪽에 계단이 있는데 자세히 보지 않으면 놓칠 수도 있으니 주의 하자. 이 계단을 올라가면 낙산길이 시작된다. 우리나라의 4계절이 이제 존재 의미가 없다는 말이 이해가 가는데 3월말임에도 제법 햇살이 따가웠다.


전체적인 낙산길의 경로다. 사실 일직선으로 죽 가면 되기 때문에 이정표가 필요없을 수도 있겠지만 실제 길을 걸어보면 생각보다 샛길 이곳저곳을 다녀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내 생각일뿐이긴 하지만 쭉 뻗은 도로라도 안내표지판은 제대로 갖추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전체 길이는 2.2km로 그다지 길지 않아 큰 부담없이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진입 구간에는 제법 성곽길의 운치가 있다. 다만 성곽로 도로가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있어서 가까이서 분위기를 느끼기는 어렵다. 대신 멀리서 바라보는 웅장함이랄까 그런 기분은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초입 구간이다.


만들어진 시대와 보수된 시대에 따라 돌의 색이 다르고 건축 방식이 다르다. 이렇게 한눈에 쉽게 알 수 있는 구간들이 종종 보인다. 한양도성의 전체적인 구간이 제대로 정비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개발을 위해 우리 고유의 것들이 사라져 가는 것은 참 아쉬운 일이다. 지난 것은 되돌릴 수 없는 까닭이다. 그때 그 모습이 아니면 의미가 없는 것들도 있는 법이다.


여담이지만 요즘은 D-SLR은 거의 들고 다니지 않는다. 비교적 편한 곳을 다녀서 그렇게 하고 있는데 파인더를 들여다보고 사진을 찍지 않으니 영 답답하긴 하다. 간편함이라는 이름 때문에 본래의 사진찍기가 퇴색되는 듯한 느낌도 든다. 다음 번 걸음에는 오랜만에 큰 녀석을 데리고 나와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낙산길은 전체적으로 흙길이 없다. 닦인 도로와 정비된 느낌. 그런 인상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인지 약간은 건조하다. 편하게 걸을 수 있는 대신 건조함을 얻은 셈이랄까.. 역시나 나는 흙으로 난 길이 좋다. 이 구간에서 나무와 풀을 볼 수 있는 곳은 얼마 되지 않는데 대부분 이곳 초반부에 집중되어 있다. 걸으면 걸을 수록 푸른색 대신 콘크리트의 회색이 늘어간다.


고양이 한 마리가 볕을 쬐고 있는데 까치가 계속 달려와 고양이를 쫓아내고 있는 게 우스웠다. 조금 가서 앉으면 다시 와서 괴롭히고를 반복해 결국은 고양이가 자리를 뜨고 말았다. 고양이가 조금이라도 위협(?)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싶지만 생각과는 다른 결과가 더 재밌었다.


사실 낙산구간은 그렇게 마음이 편안한 걸음은 아니었다. 아마도 이 사진 한 장으로 대략 설명이 되지 않을까 싶다. 더 많은 이야기를 적어보는 것도 그리 좋은 것 같지 않아 사진 한 장으로 대신한다. 아마도 이길을 먼저 걸었던 분이라면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짐작이 되시리라.


길을 가다가 마주치게 되는 암문이다. 한자로 暗門이라 적는데 정식으로 문을 내지 않고 벽 중간에 뚫은 문을 부르는 말이라고 한다. 적들이 어디에 출입구가 있는지 알지 못하도록 하는 용도이고 평소에는 큰 돌로 막아둔다고 한다. 전쟁의 위험이 사라진 지금은 이렇게 열려 있고 이 문을 지나면 낙산공원으로 들어가게 된다.


낙산공원은 낙산의 정상 부분에 만들어진 공원이다. 제법 넓고 이런저런 시설들이 갖추어져 있는 곳이다. 예전에도 한 번 온 적이 있는데 다른 계절에 찾아오니 또 색다른 느낌이다. 낙산공원을 전체적으로 돌아보고 길을 건너면 대학로로 이어진다. 사람들에게 많은 추억거리들을 남겨주고 있는 장소일텐데 대학로는 나중에 한 번 따로 들러보기로 하겠다.


낙산공원에서 왼쪽을 바라보면 성벽 너머로 서울 중심가를 약간 볼 수 있다. 멀리 남산이 보이고 그 아래로 많은 빌딩들이 보인다. 저 안에서 또 얼마나 많은 인생들의 파란만장한 삶이 펼쳐지고 있을까. 이렇게 한 걸음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는 도시는 조금은 안쓰러운 느낌이 든다. 하지만 모든 것은 상대적인 것이니까...


낙산길에서 들러볼 곳이 또 한 군데 있는데 바로 이화마을이다. 벽화마을로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낙산공원에서 흥인지문 방향으로 걷다보면 오른편에 진입로가 있다. 또 나만의 생각이긴 하지만 나는 이런 인위적으로 조성된 길은 약간 거부감이 있다. 대부분 생활환경이 어려운 곳에 이런 길을 조성하곤 하는데... 역시 위에서 적었던 서울 풍경 사진과 맥락이 같은 이야기다. 


가장 먼저 마주치게 되는 것은 그 고양이 그림이 있는 벽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화벽화마을 꽃그림 계단으로 알려져 있는 이 자리가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들르는 곳이 아닐까. 내가 이화마을에 들렀던 때는 마을 이곳저곳에 공사가 한창이었다. 사실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서 나는 카메라를 주머니에 넣었다. 사진을 찍으러 이곳에 들렀다는 것이 조금 부끄러운 느낌이 들어서였다. 역시 이곳에 가 본 분들이라면 짐작이 가시지 않을까 싶은데..

재개발과 그 뒤안길 이야기. 제법 할 이야기가 많은데 이곳에 풀어나가기에는 주제와 한참을 벗어나니 다음으로 미루겠지만 과거 서울의 가장 어려운 지역 중의 한 곳이었던 난곡에 사진을 찍으러 방문하던 아마추어 사진가들과 그곳 주민들이 크게 대립한 일이 있었다는 정도로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압축하겠다. 누구에게는 그저 취미겠지만 누구에게는 생존 그 자체일 수도 있는 경우가 우리 주변에는 생각보다 많다.


아무튼 이곳을 지나 다시 길을 걸으면 어느새 길은 끝이 난다. 이글을 보신 분들은 어떠실까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참 안타까운(?) 걸음이었다는 생각이다. 이전의 북한산둘레길이나 적어도 지난 번의 북악산길만 해도 그래도 무언가 '길'을 걷는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 낙산길은 도무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물론 내 개인적인 성향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요즘 말로 힐링을 위해 떠난 길에서 무거운 짐만 짊어지고 온 격이랄까...

그리고


도심 한 복판 수 많은 빌딩과 차량의 홍수 속에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며 서 있는 흥인지문을 보면서 그 감정은 절정에 다랐다. 

모든 걸음이 늘 행복할 수는 없다. 지극히 당연한 사실인데도 나는 이번 낙산길도 이전의 여느 길처럼 행복한 길이 될 거라 생각했었다. 고정관념이고 편견이 생겼던 것이다. 하루에도 수 만 번 감정이 요동치는 일상인데 말이다. 길도 마찬가지다. 어떤 길은 평화롭고 행복한 길로 의미를 주지만 어떤 길은 쓸쓸하고 어두운 길로 의미를 준다. 그것들이 주는 의미를 내 안에서 자연스레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던 걸음이었다.

내 감정은 이리 변하고 저리 변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왜 길은 이런 길도 있고 저런 길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이번 걸음은 내게 그런 이야깃거리를 던져 주었다.


Panasonic LX-7


오래 전 대학로 사진입니다. 2003년이니 햇수로는 10년 전이네요. 지금의 대학로와는 또 다른 모습이지요. 요즘도 저런가 모르겠지만 대학로에는 천막을 쳐 놓고 점을 보는 간이 점집(?)들이 많았습니다. 문득 점이라는 게 어떤 것일까 생각을 해 봅니다. 미래를 내다 본다는 것은 아마 인류가 지구상에 생긴 이래로 가장 중요한 관심사 중의 하나는 아니었을까요? 하지만 당장 1분 후의 일도 알지 못 하는 것이 사람이지요. 무엇인가 알 수 없다는 것에 대한 불안이 '점'에 대한 수요를 만든 것이겠지요. 죽음 역시 사람이 겪어볼 수 없기에 막연한 두려움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점을 보는 것은 대개 현실에 불만이 있거나 너무 행복한 경우로 나뉘지 않을까 싶습니다. 현재가 막막하기에 앞으로는 좀 나아질까 싶어 점을 보기도 하고 현재가 너무 만족스럽기에 그 만족이 얼마나 더 지속될 수 있을까 알고 싶어지는 것이지요. 결국 궁극적인 이유는 앞서 적은 '알 수 없음에 대한 불안'이지요. 불안의 이야기가 나오니 프로이트의 격리에 관한 이야기와 알랭 드 보통의 책이 떠오르는데 찬반의 의견이 있겠지만 불안이 격리(떨어짐)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에는 제법 공감하고 있습니다.

'점'을 치는 것도 어찌 보면 이 격리되지 않으려는 의지와 관계가 있을 것 같습니다. 독야청청 홀로 살아간다면 굳이 점을 볼 일은 없겠지요. 하지만 누구와 살아야 한다거나 어떤 조직에 들어가야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관계'를 맺으려는 의지 그러니까 격리되지 않으려는 의지가 강해지면 불안이 생기는 거죠. 그렇게 생각하면 점을 보는 것을 그저 구시대의 풍습이라고 치부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뭔가를 모색하는 과정으로 긍정적으로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점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니 저도 무언가 '불안'하거나 혹은 '관계에 대한 의지'가 있는 모양입니다. 그렇다고 점을 보러 나가거나 타로카드를 펼쳐놓지는 않습니다. 번거로움에 대한 습관적인 거부감도 있지만 무엇보다 '알 수 없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큰 동기부여수단이라고 생각하는 까닭이지요. 미래를 알 수 있다면 현재를 적극적으로 살아갈 의지를 잃게 마련입니다. 애매모호함과 불확실함.. 삶은 결국 이런 모양인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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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진은 전형적인 흑백 필름입니다. 일포드사의 FP4라는 필름인데 ISO125의 특이한 필름이지요. 자주 사용하던 XP2에 비해 소위 선예도가 높고  콘트라스트가 강한 경향을 보이는데 라이카와 결합하면 이렇게 더 강한 이미지가 구현됩니다. XP2는 크로모제닉 특성을 가진 필름이라 전반적으로 부드러운 느낌이 강한데 FP4의 경우는 노출에 제법 민감한 모양을 보이는 흑백필름입니다. 두 사진 모두 노출은 언더로 잡았는데 조금 우울한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Leica M6, Summicron 35mm f/2.0 asph, Ilford FP4, LS-40




그렇게 덥던 8월의 대학로... 머리에 무거운 고양이 인형을 쓴 그...

잠시 자리에 앉아 쉬는 순간에도 머리를 들고 지나는 행인들을 묵묵히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행인이 뜸한 틈에 잠시 무거운 머리를 기대어본다...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머리를 들어야했지만...

이 짧은 순간이 그에게는 가장 편안한 휴식이었기를...


D300, AF-S 35mm f/1.8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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