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런 류의 책은 여간해서는 읽지 않는다. '뻔한 이야기'를 적어 놓는 경우가 워낙에 많아서다. 특히나 대선을 앞두고 출마자 중의 한 명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의 책이라면 읽지 않아도 대충 내용이 보일 것 같았다. 그럼에도 나는 이책을 구입했다.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던 안철수라는 사람에 대한 호감이 막연한 호감인지 아니면 뚜렷한 이유가 있는 것인지 확인해볼 요량이었다. 제목은 의외로 간결하다. '안철수의 생각'이다. 사실 그게 지금은 가장 필요한 시점이고 정확한 제목이다.

판매량이 많은 까닭인지 방금 찍어낸듯한 종이향이 코를 찌를 정도다. 하얀 표지와 간단한 사진 한 장 그리고 진한 종이향이 스며든 책을 손에 들고 페이지를 넘겨본다. 책은 총3편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실제로 읽어보면 4편이다. 맺는 글인 '미래의 주인공들에게' 역시 그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1장과 마지막 장은 개인적인 이야기가 많지만 2장과 3장은 사회 전반에 대한 심층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 엮은이도 이야기했지만 안철수 교수가 이렇게 다방면에 깊은 성찰을 하고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2장과 3장은 마치 국정운영의 지표로 삼을 청사진과 같은 느낌이 드는데 만약 안 교수가 출마를 하게된다면 그리고 어떤 모습으로건 정치를 하게된다면 이책은 그의 나아갈 방향 그리고 그를 평가할 지표가 되기에 충분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정치인이 아닌 사람이 자신이 정치를 하게 되면 어떻게 하겠다라는 점을 이렇게 뚜렷하게 보여준다는 점이 한편에서는 과욕은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들지만 그만큼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분명히 알고 있다는 증거도 되는 셈이니 앞으로 그의 행보를 지켜보는 것도 꽤나 흥미있는 일이 되겠지 싶다.

대담 형식으로 쓰여 있어 읽어나가는데 큰 부담이 없고 방송에서 본 그의 말투며 표정이 책을 읽어나가는동안 그대로 재연되는듯한 느낌을 주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부분에서 '자기자랑'이 등장한다는 점. 그러나 나는 이것을 자랑이 아닌 자신감의 표현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이루어낸 것을 당당하게 말하는 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자신감이다. 그리고 그 이룸을 어떻게 만들어냈다고 스스로 납득하고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 안철수를 놓고 볼 때 꽤나 부러운 점이었다.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엘리트의 패배를 모르는 삶을 산 것이 아닌 점은 의외였다. 그는 모든 것을 노력으로 이뤄낸 스타일이다. 그리고 그 이룸의 기본이 된 것은 경험이었다. 생각보다 안 교수는 많은 경험을 했는데 대외적으로 알려진 성공스토리 이상의 실패와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그리고 그 실패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바꾸어 나가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이점이 아마 안철수 교수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그는 정확하게 자신에 대한 지지의 실체를 알고 있다. 기성 정치에 지친 그래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의 지지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모든 이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일일히 설명할 수 없기에 책으로 이야기를 건넸다. 물론 책 역시 모든 이에게 접근성이 있는 것은 아니니 이후의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만약 이책이 대선을 위한 출사표라면 전 국민을 대상으로한 공약집인 셈이다. 활자로 이렇게 뚜렷하게 찍힌 내용들을 안철수라는 인간이라면 어떤 식으로 책임을 지고 구현해낼 것인가.

대선에 나오는 일이 없더라도 이책은 정치를 하려는 이들, 현재 정치를 하는 이들을 떠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 고민해야 할 내용들을 담고 있다. 무엇보다 그저 당연하게 생각되는 상식들이 외면받고 있는 현시점에서 너무나 당연한 상식들을 다시 상기시켜 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희망을 꿈꿀 수 있는 것은 희망을 가져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안철수는 희망을 가져본 사람이고 그 희망을 실현해낸 사람이다. 개인적인 희망을 넘어 국가적인 희망을 그는 실현해낼 수 있을 것인가?


[도서]보이지 않는 고릴라

크리스토퍼 차브리스,대니얼 사이먼스 공저/김명철 역
김영사 | 2011년 03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완벽한 것 같지만 불완전한 인간

농구공을 던지는 학생들이 있다. 학생들이 농구공을 서로 던지는 횟수를 헤아리라고 한다. 눈은 정신없이 학생들과 공을 따라다닌다. 횟수를 헤아리고 나면 질문자가 묻는다. 

중간에 등장한 고릴라를 보셨나요?

우리가 세상을 느끼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가장 큰 것은 시각이다. 우리는 눈으로 세상을 보고 정보를 입수하고 그 정보를 판단한다. 눈으로 보는 것은 맛이나 촉각 혹은 청각보다 진실이라고 믿기 쉽다. '무언가가 보인다'는 것의 위력은 그렇게 큰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감각은 생각보다 허점이 많다. 그리고 그 허점이 드러나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은 당사자의 마음에 있다. 우리는 흔히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말을 많이 한다. 이책의 가장 큰 줄기가 된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은 그 맹점을 짚어 내고 있다.

학생들이 공을 던지는 것에 온 신경을 집중하다보니 화면 중간에 등장하는 고릴라를 보지 못 한다. 어떻게 저렇게 또렷한 존재를 못 볼 수 있나? 라고 실험 후에 사람들은 이야기하지만 눈으로 들어온 정보를 우리 마음이 혹은 뇌가 차단해버렸기 때문이다.

이책을 읽는 동안 참 인간이라는 존재가 세밀하고 정교한 것 같으면서도 생각보다 오류가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생각해보면 책을 읽는 데 집중하면 외부의 소리를 듣지 못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는 데 그런 현상 역시 고릴라를 발견하지 못 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집중이나 자기 최면을 통해 망각이나 오류가 생길 수도 있지만 다른 면에서는 제법 긍정적인 면으로도 활용이 가능한 셈이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랄까?

아무튼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정보는 동일하지만 그 정보를 인식하고 해석하는 것은 뇌가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그 정보를 왜곡하는 경우가 우리의 일상에서는 생각보다 많이 일어나는 셈이다. 

운전 중에 전화를 한다던가 DMB를 본다던가 혹은 화장을 하면서도 '나는 괜찮겠지'라고 착각을 하는 것도 외부의 환경을 본인 스스로 극복할 수 있다는 착각에서 비롯된다. 

문제는 우리가 그 왜곡 혹은 착각을 확신하는 데서 자주 발생하는데 이책을 통해 그런 착각이나 오류가 생기는 상황들을 살펴보고 미리 대비할 수 있다면 이책을 읽은 보람은 충분히 느낄 수 있다고 생각된다. 

물론 이 이론을 악용해 국정감사나 청문회에서 정치인들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분명히 전달했다'는 식의 발뺌을 하는데 써서는 안 되겠지만 말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주석 부분을 전혀 번역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50페이지가 넘는 주석 부분은 본문을 이해하는데 있어 상당히 도움이 되는데도 김영사의 의도인지 번역자의 의도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 정보를 습득하는 것을 막고 있다. 이럴 거면 애초에 주석을 달지 않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다. 과거의 서평들을 보니 이 부분은 여전히 개선의 여지는 없어 보인다.




데리다와 들뢰즈..현대 철학은 물론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두 사람이 아닐까 싶다. 이책은 이 두 사람을 묶어서 이야기한다. 제법 적절한 묶음인데 김영사의 '지식인마을'이라는 일종의 기획물 중의 한 권이다.

이런 시도는 제법 신선한데 일반인들의 경우 직접 저자가 쓴 책(1차 문헌)을 읽기가 쉽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2차 문헌인 이와 같은 책들은 적당한 안내자의 역할을 해 주는 동시에 해당 저자들의 저서를 본격적으로 읽기 위한 몸풀기로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2차 문헌은 제3자에 의한 재해석인 경우가 많아(물론 번역 작품에 대해서도 나는 같은 생각이다) 온전히 원저자의 의도를 파악하기 힘들거나 혹은 아예 왜곡된 지식을 습득할 위험도 동시에 안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2차 문헌을 피할 수 없는 것은 해당 언어에 대한 지식의 부족과 해당 철학에 대한 지식의 부족때문이다.

이책의 저자도 지적하고 있듯이 특히나 언어의 유희에 정통한 데리다의 저작을 읽기 위해서는 프랑스어를 원어민 이상으로 구사할 수 있어야 하는데 사실 외국인인 우리에게 이것은 쉽지 않은 부분이다.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는 번역물 혹은 2차 문헌으로 지식을 습득할 수밖에 없는데 이때 중요한 것은 번역자와 2차 문헌 저자의 실력이다.

김영사의 지식인마을 시리즈는 아직 이책밖에 읽지 않아 뭐라고 판단을 내리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이책에만 한정을 둔다면 잘 짜인 구조는 성공적이지만 그안에 담은 내용은 어색하다는 인상이다. 초대-만남-대화-이슈라는 4단계의 편집방식을 택한 이책은 처음에는 '상당히 인상적이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대화'부분에서는 상당히 실망할 수밖에 없었는데 뭐랄까 저자 자신도 헷갈리는 듯한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여러 명의 인사들을 불러 모아 그들의 입을 빌어 생각이나 사상을 설명한다는 의도는 좋았지만 저자 자신이 이 대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주장이나 생각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 듯 '대화'라기보다는 '설명'에 치우는 분위기였다. 이런 방식의 글을 전개는 오히려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가 보다 잘 이끌어가고 있는데 내 지식의 빈약함때문인지는 몰라도 이책의 저자가 풀어간 설명들은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책의 도입부인 초대-만남 부분은 상당히 잘 쓰여져 있다. 데리다와 들뢰즈의 사상, 생각, 인생을 초심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글을 잘 풀어가고 있다. 아마 이런 이유로 대화 부분이 영 어색하게 생각되었는지도 모르겠는데 앞부분의 저자와 뒷부분의 저자가 다른 사람은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물론 내가 이 블로그에서 여러 번 적듯 책에 대한 판단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다. 내가 이책에 대해 느낀 점은 내 느낌일 뿐이다. 다른 이가 이책을 접할 때 오히려 대화 부분이 매끄럽고 앞부분이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다. 어찌되었건 제법 신선한 시도와 전개 방식인 것은 분명하니 스스로 읽어 보고 판단하기를 바란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