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상사에 다녀온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다시 그곳을 찾았습니다. 이번에는 어머니께서 한 번 가보고 싶으시다하셔서 아침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길상사는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6번 출구로 나가면 셔틀버스를 타고 올라갈 수 있습니다. 일전에는 걸어서 다녀왔지만 이번에는 버스를 탔습니다.


입구에서부터 화려한 연등들이 방문객들을 반깁니다. 사찰에 연등이 걸린 것을 본 것은 참 오랜만인데 곧 부처님오신날이니 이미 준비를 하는 분주한 모습이었습니다. 이날은 날도 꽤나 좋은 편이어서 다른 때보다 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전에 방문했을 때 찍지 못 했던 관음상입니다. 천주교와 불교가 묘하게 어울린 모습으로 서 있는 관음상을 보면 종교라는 것이 끝끝내 추구하는 바는 다르지 않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불교나 천주교나 그런 면에서는 이전부터 잘 어울려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 크지 않은 절이기에 연등만으로 절 전체가 가득 찬 느낌이었습니다. 다시 찾아가 보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길상사에 들르기 전 이전 포스팅에서 적었던 소인형을 발견한 것도 큰 수확이랄까요. 

길상사를 다시 찾으면서 인연이라는 주제에 대해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단 사람간의 인연 뿐 아니라 세상의 어떤 것과도 인연은 맺어질 수 있는 것이고 그 마주치는 인연들을 하나하나 소중하고 간직하고 가꿔가다보면 삶 자체가 윤택해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20여일만에 꼭 같은 장소가 참 많이도 달라지더군요. 물론 장소 자체, 건물들 자체는 달라진 것이 없지만 그 장소와 건물을 둘러싼 분위기랄까..그런 변화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제법 빠른 것 같습니다. 사람도 별반 다르지 않아 한 사람 자체는 언제나 같지만 그 사람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는 매시간시간 본인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빠른 것이 인생사가 아닌가 합니다.

법정스님의 흔적 그리고 백석과 그의 연인 자야의 흔적이 어디엔가 여전히 남아있겠지만 오늘 이 순간만큼은 이곳을 방문한 이들의 흔적이 사찰 전체를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어머니와 길상사를 들르기로 하고 한성대 입구역에 도착하니 시간이 조금 남아 길 건너에 있던 아름다운가게를 찾았다. 잘 뒤져 보면 생각보다 좋은 물건들을 찾을 수 있는지라 이것저것 보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얘, 이거 봐라!"며 나를 부르셨다. 어머니 손에 들린 것은 작은 소 인형..

이 별로 귀엽지도 않고 어디 하나 뚜렷한 개성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인형을 왜 어머니는 그렇게 기뻐하며 나를 부르셨을까. 사실 이 인형은 우리집에 있던 인형이다. 워낙 인형을 좋아하시는 어머니의 성격 탓에 집안에 제법 인형들이 많았는데 이 녀석하고 꼭같이 생겼지만 크기만 좀 더 큰 녀석이 1988년 우리집에 있었단다.


나도 이 녀석을 제법 오래 봐왔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아무래도 낡을 수밖에 없었고 어머니는 여기저기 튿어진 곳을 실로 꿰매며 계속 간직해오셨다. 그리고 아마 몇 년 전인 것으로 기억하는데 더 이상 인형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 없게 되어 집에서 내보냈는데 전의 그 녀석과 꼭 같은 크기만 좀 작은 녀석을 찾은 것이다.

인연(글쎄 인형과 인연을 이야기한다는 것에 반감을 가질 분도 계시겠지만)이라는 것이 참 오묘한 것이어서 아침에 불쑥 길상사에 가겠다고 집을 나선 것. 한성대 입구에 생각보다 일찍 도착해 셔틀버스를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남았다는 것. 길 건너에 아름다운가게가 보인 것과 그 안에 이 녀석이 있었다는 것은 그저 인연이라고밖에 달리 설명할 길은 없었다.

남들에게는 그저 작은 소모양을 한 인형이고 크게 매력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팔리지 않고 그렇게 남아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에게 이 인형은 한 세월을 같이 해 온 복덩이요 재산이었던 것이다. 

세상의 모든 가치라는 것은 결국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고 그 결정은 살아오는 동안의 경험과 기억들이 바탕이 된다. 인형 하나 가지고 무슨 철학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삶이란 그렇게 복잡한 것 같으면서도 단순한 것이다. 

아무튼 이 작은 인형은 어머니에게 지난 20여년의 시간을 잠시 되돌릴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이 정도면 충분한 가치가 있지 않은가?



아무 예정도 없이 문득 아침에 생각이 나 길상사로 발길을 옮겼다. 길상사..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사실 그 위치가 삼청동 어딘가로 알고 있을 정도로 그렇게 관심이 있는 곳은 아니었지만 뭐랄까 마음을 좀 차분하게 정리해보자는 생각에 무척이나 흐린 하늘을 위로 하고 무작정 길을 나섰다.

길상사 홈페이지에 들러 길을 알아보니 삼청동 근처기는 한데 정확한 위치는 성북동이다. 삼청동 어딘가에서 본 이정표를 떠올리며 삼청동으로 향했으면 조금 더 많은 걸음을 걸었겠지 싶다.

위의 지도에서도 볼 수 있지만 4호선 한성대입구 역에서 그냥 직진을 하다가 우회전을 살짝한 다음 또 직진을 하면 되는 간단한 경로였다. 셔틀버스를 타는 것이 좋다는 조언을 '이 정도면 걸어가도 되겠네?'라며 뿌리치고 출발했는데 편한 복장이 아닌 다음에는 셔틀버스를 타는 것이 좋다. 평지를 어느 정도 지나면 그 다음부터는 내내 오르막이다. 성인 남자의 발걸음으로 15분 정도 걸리니 만만한 거리는 아니다.

길상사로 가는 그리고 다시 원점으로 내려오는 셔틀버스 시간표다. 아침에는 조금 자주 있는 편이고 오후에는 드문드문있으니 시간대를 미리 알아보고 출발하는 것이 좋겠다. 내려오는 길은 내리막이니 걸어간다고 해도 올라가는 길은 날이 슬슬 따뜻해지는 요즘이라면 제법 땀을 흘려야 한다.

걸어올라가는 동안 좌우로 제법 큰 주택들을 볼 수 있는데 성북동, 평창동으로 이어지는 오래된 부자 마을의 모습이 보인다. 이 동네는 평창동이나 구기동처럼 오래 전부터 부유한 이들이 머물고 있는 곳인지라 신흥 부촌들에 비해 소박(?)하다는 느낌도 든다. 아무튼 걷는 내내 딱딱한 포장 도로라 발이 편하지는 않다. 그렇게 걷다 보면 오른쪽에 길상사 입구가 보인다.

길상사는 많이들 아는 것처럼 1997년 대원각이라는 요정을 개조해 만든 곳이다. 법정스님은 이곳을 절 냄새 나지 않는 곳으로 만들라고 했다는데 입구의 분위기나 내부의 분위기 모두 보통의 사찰과는 다른 그러니까 절 냄새 나지 않는 그런 공간이었다.

여느 사찰을 생각하고 사찰 풍경을 담아봐야지라고 생각했던 내 기대는 일주문을 들어서는 순간 모두 사라졌다. 그러나 이것이 오히려 길상사만이 줄 수 있는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특정한 종교에 매이지 않고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들어가 앉아 쉴 수 있는 공간이었으니 말이다.

대원각이 법정스님에게 시주되어 길상사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데에는 조금 더 먼 사연이 있다. 시인 백석과 그의 연인 자야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백석과 자야(백석이 대원각의 주인인 김영한에게 붙인 이름, 길상사라는 이름은 또한 그녀의 법명인 길상화에서 비롯된다.) 법정스님의 이야기와 백석의 이야기 그리고 자야의 사랑이야기를 모두 담기에는 공간이 한참 부족하다.

길상사 경내에는 법정스님의 자취가 곳곳에 남아 있다. 스님의 글귀 중에 따온 것들을 나무로 틀을 짜 액자처럼 군데군데 걸어둔 것이 그것인데 책으로 읽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 든다. 전후좌우로 길게 뻗친 좁은 길들을 걷다가 문득문득 만나는 글귀들을 한참을 들여다보곤 했다.


평일임에도 사람들이 제법 많아 호젓하게 생각을 하기는 수월치 않았지만 아기자기한 공간을 걸으며 오래 전 연인의 이야기, 스님 이야기를 생각하다보니 장소는 그대로인데 사람만 없구나...라는 생각에 조금은 쓸쓸한 느낌도 들었다. 어쩌면 백석이 걷던 혹은 자야가 걷던 혹은 법정스님이 걷던 그길의 모래들은 아직도 그대로일텐데...


당시의 열렬했던 사랑, 수도자의 염불도 이제는 간곳없이 사라지고 세월의 바람에 점점 퇴색되어 가고 있는 건물들과 몇해의 세월 피고지고를 반복해온 꽃들이 낯선 이방인들을 무심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길상사 경내를 걸으며 내가 느낀 감정은 그런 것이었다.


사실 법정스님과 백석과 자야를 모두 생각하며 경내를 돌아보기는 쉽지가 않았다. 뜨거웠던 연인의 감정이 그대로 담겨 있는 곳 그리고 그 열정만큼이나 한 시대를 이끌어온 수도자의 넋이 담겨 있는 곳이라는 점 때문인데 절을 나와 내리막길을 걷는 동안 가만히 생각해보니 사실은 그 뜨거움이 그 마음이 본래는 하나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나는 하나만 보고 그것을 섣불리 판단했구나..'는 후회가 밀려왔다.

사랑도 수행도 결국은 마음의 일이고 마음의 일이라는 건 온전히 사람 그 자체의 일이다. 애써 그것을 나누려할 것이 아니라 물 흐르듯 하나로 묶어 내 안에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었다. 

세속의 삶 속에서 '무소유'를 이야기한 법정스님 그리고 '1,000억이라는 돈은 백석의 시 한 줄만도 못하다'고 이야기했던 자야... 결국은 같은 것이다. 모두가 사랑이다.

몹시도 흐린 어느 봄날, 갈상사를 찾은 내 마음은 거기서 잠시 멈추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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